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63
062화
“무슨 일이길래 그래?”
최용달이 뒤에서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내 심기가 영 불편하다는 것을 느낀 걸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 우선순위를 결정했다.
‘일단 용달파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거의 없어.’
갖다 바칠 사과도 나한테 다 뺏겼고, 녹음기에 대한 거짓말도 들켜 버렸다.
류수혁, 그 자식이 이미 녹음기를 손에 넣었을 줄이야.
의미심장하게 말하긴 했지만, 정황상 그놈이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오늘 최철호 의원과 만난 것도 그걸로 뭔가를 뜯어내기 위함일 거고.
“형님.”
“어?”
“먼저 가볼 테니까, 이쪽으로 연락해요.”
나는 SA시큐리티의 명함을 건넸다.
최용달은 그걸 받아 들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S, SA시큐리티?”
“새로운 소식 있으면 바로바로 보고하시고.”
“야, 야. 잠깐만. 돈은 돌려주고 가야지. 최철호한테 주기로 한 돈이잖아.”
“이미 구라 치다 걸렸는데 뭘 또 잘 보이시려고. 애초에 녹음기가 다른 쪽으로 넘어간 이상 용달파는 버려질 수밖에 없어.”
내 현실적인 말에 최용달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냐?”
“그건 알아서 생각해야지. 나 먼저 갑니다.”
“자, 잠깐! 상훈, 아니 이 사장님!”
나는 미련 없이 사과 박스를 싣고 온 트럭에 올랐다.
최용달이 이를 보며 안절부절못했지만, 차마 나를 끌어내릴 수는 없었는지 제자리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부르릉-.
트럭에 시동이 걸리자 최용달이 다급하게 운전석으로 달려왔다.
“사, 사장님. 이대로 가시면 저는 죽습니다. 완전히 끝이라고요!”
“명함 줬잖아요. 살아남으면 연락하시라니까.”
“야, 잠깐만. 야 이 새끼야! 이대로 내 돈 들고 튀면 죽여 버린다! 야!”
“어허, 떨어져요.”
부아앙-!
트럭이 출발하자 운전석에 착 달라붙어 있던 최용달이 옆으로 넘어져 나뒹굴었다.
그러게, 떨어지라니까.
“아이고, 야! 야 이 새……!”
나는 최용달을 뒤로하고 내 사무실을 향해 액셀을 밟았다.
사실 이대로 두면 최용달은 알아서 몰락할 것이다.
하지만 최용달이라는 패가 사라진다면, 최철호에게 접근할 방법이 사라지게 된다.
탁.
나는 손가락으로 핸들을 두드리며 미간을 좁혔다.
“류수혁…….”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정확히 떠오르진 않지만, 분명 전생 어느 때에 들어 본 것 같았다.
일단 확실한 건, 그놈은 내 손에 박살 날 거라는 것이다.
일단 어디 있다가 강남파로 온 놈인지 알아보고, 그 뒤에 조져야겠지.
녹음기랑 돈도 다 뺏은 뒤에 참치잡이 배에 처넣어 버릴 거다.
내 계획을 망쳐 버린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겠어.
[돼지]나는 핸드폰을 열어 돼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그래. 내가 보낸 거 봤지?”
류수혁. 네가 어디서 나타난 누군지 싹 다 파헤쳐 주마.
***
다음 날, 난 사무실에 앉아 돼지한테 보고를 들었다.
“류수혁 임마 서울 놈이 아니든데예?”
생각보다 정보가 쉽게 나와서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뭐 하던 놈인데?”
“제 친구가 천안 통 출신인데, 가한테 듣기로는 류수혁이가 거서 젤 큰 조직 이인자였다 카데예. 원래 거기 대장 키워준 놈인데, 금마가 워낙 잘 쳐가 대장 먹고, 류수혁이가 이인자 됐답니다.”
“천안?”
“예. 뭐 야망도 존나게 크고 음흉한 놈이었다던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안 보이더랍니다.”
천안이라면 정 상무가 강남파로 들어오기 전에 보스로 있던 충청식구파가 관리하던 지역이다.
그렇다면 류수혁이 충청식구파의 이인자였다가 강남파로 넘어왔다는 소린데…….
왜 주철수는 정 상무가 아니라 류수혁을 데려온 거지?
일단 천안에 내려가 봐야 상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내려가야겠네.”
“예? 천안 말입니꺼?”
“그래. 라세흠 부장 불러 봐.”
“아, 예.”
잠시 후, 라세흠 부장이 땀을 닦으며 다가왔다.
“또 애들 패다 왔어요?”
“패다니. 실력 향상을 위한 대련이지.”
“부장님. 저랑 같이 천안 갔다 옵시다.”
“천안? 천안은 왜. 누구 조지러 가는데?”
역시 사람 패는 일 냄새는 잘 맡네.
사실 천안은 나 혼자 가도 상관은 없지만, 워낙 큰 조직이고 쪽수도 많아서 하나하나 상대하기엔 귀찮았다.
그래서 라세흠 부장을 데려가는 거다.
“거기 큰 조직이 하나 있는데, 제가 거기 대가리한테 원한이 조금 있거든요.”
“아하. 그럼 그놈 하나만 조지러 가는 거냐?”
“뭐 알아볼 것도 있고 겸사겸사.”
“나야 좋지. 안 그래도 좀이 쑤셨는데 잘됐네. 언제 출발하는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지금 바로요.”
***
라세흠 부장과 나는 천안종합터미널에서 내렸다.
짐은 지갑과 핸드폰뿐.
빠르게 처리하고 다시 올라가 풍원한정식 일을 해결할 생각이다.
라세흠 부장이 버스에서 한숨 푹 잤는지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풀었다.
“어우. 잘 잤다.”
“이제 갑시다. 택시 잡을게요.”
“뭔 택시야.”
“그럼 뭐 타고 가시게요.”
펄쩍펄쩍.
제자리 뛰기를 한 라세흠 부장이 바지를 걷으며 말했다.
“뛰어가자. 운동도 좀 할 겸.”
“예?”
5km를 가야 하는데 뛰긴 뭘 뛰어.
나는 지나가던 택시를 잡았다.
“저는 택시 타고 갈 테니까, 뛰어오든 날아오든 알아서 해요. 주소는 보내 드릴게.”
“좋아. 누가 먼저 도착하나 해 볼까?”
“여기 순대가 그렇게 맛있다는데…….”
그 말을 들은 라세흠 부장이 자기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후다닥 달려 내 옆좌석에 올랐다.
“기사님! 출발합시다!”
“목적지도 아직 말씀 안 드렸어요.”
나는 피식 웃으며 기사님에게 주소를 불렀다.
그리고 몸을 뒤로 기댄 뒤 창문 바깥을 구경했다.
나름 길도 닦여 있고 건물들도 있었지만, 저 멀리에는 아직 넓은 논밭이 군데군데 보였다.
2022년의 천안과는 다른 풍경에 새삼 내가 과거로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상념에 빠져 있자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갑시다.”
“저기야?
딸랑.
우리가 도착한 곳은 병천순대로 유명한 국밥집이었다.
라세흠 부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메뉴판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저기, 어머니!”
“잉?”
“국밥 두 개랑 순대 두 판 주세요.”
“서울에서 온겨?”
“예. 어떻게 아셨어요?”
“총각이 덩치두 산 만한디 말투가 나긋나긋하니 그러지. 금방 갖다줄 테니께 좀만 기달려.”
“맛있게 해 주세요!”
흐흐 웃으며 돌아온 라세흠 부장이 날 보더니 손짓했다.
“뭐 해. 안 시키고.”
“예? 두 개씩 시켰잖아요.”
“내가 먹을 것만 먼저 말씀드린 건데? 너도 먹을 만큼 주문해.”
“…….”
그렇게 나도 국밥과 순대를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자, 따끈따끈하게 김이 올라오는 음식이 나왔다.
후루룩.
“커어…….”
“시원하네요.”
나는 밥을 먹으면서 라세흠에게 물었다.
“충청식구파라고 들어보셨어요?”
“충청식구? 처음 듣는데.”
“여기 천안을 다 먹은 깡패 조직인데, 충청도에서 제일 큰 놈들이거든요.”
“어, 그래? 대장이 좀 쎈가?”
“그건 모르겠고……. 일단 제가 이놈들 대가리랑 단둘이 좀 만나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라세흠 부장이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대가리 빼고 다 눕히면 단둘이 만나는 거 아냐?”
물어볼 걸 물어봤어야 했는데.
내가 다시 고민에 빠지자, 라세흠 부장도 고개를 갸웃하더니 의견을 냈다.
“좀 무식한 방법이긴 한데, 하나 생각난 게 있긴 하거든?”
“뭔데요?”
“들어 봐…….”
계획을 들은 나는 뒤로 몸을 기댄 뒤 생각에 잠겼다.
‘괜찮은데?’
대신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충분히 할 만했다.
그냥 막무가내로 뚫고 가는 것보단 훨씬 간단한 방법이니 말이다.
일단 식사는 대충 끝난 것 같으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라세흠 부장은 그런 나를 보며 멀뚱히 앉아 있었다.
“안 가요?”
내 말에 라세흠 부장이 손가락을 슥 들어 올렸다.
“한 판만 더?”
“저녁에 옵시다.”
“오케이.”
겨우 라세흠 부장을 일으켜 세운 뒤 국밥집을 나섰다.
일단 정 상무의 거처부터 알아내야겠어.
***
정 상무. 본명 정무배.
동네 깡패로 시작해 전국구 조폭이 된 인물로, 나중에 주철수에게 흡수되어 승승장구하는 놈이다.
현시점의 충청식구파는 이미 주철수에게 흡수되었어야 할 텐데, 어째서 아직 남아 있는 걸까.
나와 라세흠 부장은 그걸 알아보기 위해 저 멀리 정무배의 사무실이 보이는 오르막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탈탈탈탈.
“그래도 이틀 만에 동선은 알아냈네요.”
“그 정도는 쉽지. 처리하고 가기 전에 국밥집 한 번 더 들르자. 몇 번을 먹어도 질리지가 않네.”
“그러게요.”
탈탈탈탈.
조용히 옆에 앉아서 땅콩을 까먹던 라세흠 부장이 물었다.
“근데 대체 이런 큰 조직 보스한테 무슨 원한이 있는 거냐? 사는 지역도 다른데.”
“음…….”
나랑 전생에 같은 직장에 다녔는데, 걔가 날 죽였어요.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나는 대충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냥 뭐, 사정이 좀 있어요.”
“입대 전에?”
“네.”
“음…….”
라세흠 부장은 땅콩을 하나 더 까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일 거냐?”
“글쎄요. 고민 중입니다.”
정무배가 날 죽인 건, 이번 생에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정무배는 명백한 악인이기 때문에 죽이는 게 세상에 이로운 일이긴 하다.
다만 그냥 담가 버리기엔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좀 있다.
전생에서 강남파가 충청식구파를 흡수하는 데 많은 돈을 썼다고 들었었다.
그런데 이번 생의 강남파는 충청식구파를 흡수하지 못했다.
아마 내가 주철수의 돈줄을 몇 번이고 끊었기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그 거액을 들이면서까지 충청식구파를 먹을 필요가 있었다는 건데…….
‘분명 정무배가 가지고 있던 무언가겠지.’
돈일 수도, 사람일 수도, 이권, 세력일 수도 있다.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왕 정무배를 조질 거라면 빼먹을 수 있는 건 다 빼먹는 게 인지상정.
게다가 원래 주철수가 손에 넣을 거였다면, 분명 높은 가치가 있는 무언가일 것이다.
그게 뭔지는 직접 물어봐야겠지.
-수고하셨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퇴근하는 정무배를 배웅하러 나온 깡패들이다.
정무배의 퇴근 시간과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이틀을 썼다.
탈탈탈.
“부장님. 준비합시다.”
“근데 이걸로 될까?”
“일부러 큰 걸로 준비했어요.”
“아니, 안 죽이는 게 되겠냐고.”
씨익.
나는 라세흠 부장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제가 위치를 괜히 신중하게 고른 게 아닙니다, 부장님. 어디 한두 군데는 부러지겠지만요. 뭐, 죽으면 어쩔 수 없고요.”
“하. 그냥 너 믿고 한다.”
부릉-.
저 멀리 정무배가 차에 타는 게 보였다.
“출발.”
“오케이, 간다……!”
라세흠 부장이 액셀을 거칠게 밟았다.
부아앙!
우리가 탄 트럭이 내리막길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몸을 숙였다.
5초나 지났을까.
부우우웅-!
엄청난 속도로 달려간 트럭이, 정무배가 탄 세단을 그대로 옆에서 들이박았다.
끼익-. 쾅-!
“큽.”
충격에 몸이 들썩였지만, 안전벨트 덕에 튕겨 나가진 않았다.
옆의 라세흠 부장도 당연히 멀쩡했다.
나는 다급하게 앞이 찌그러진 트럭에서 내리며 말했다.
“부장님. 튀어요!”
“그래. 나중에 보자.”
라세흠이 트럭을 몰고 현장을 떠났다.
완벽한 뺑소니였다.
정무배가 탔던 차를 보니, 십여 미터가 넘게 굴러가 뒤집힌 상태였다.
연기가 풀풀 나는 게, 아주 거하게 치였네.
골목에 숨은 뒤 10초 정도를 속으로 세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뒤 다급하게 뒤집힌 차를 향해 달려가며 외쳤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래!”
차 뒷좌석의 문을 열자, 30대 초중반의 정무배가 뒤집힌 채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막상 죽지 않은 걸 보니까 조금 아쉽네.
나는 충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정무배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으세요?”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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