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66
065화
늦은 밤, 한 사람이 앉아 있는 사무실.
책상 위에는 ‘충청흥신소’ 도장이 찍힌 서류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그 옆에 놓여있던 핸드폰에서 갑자기 벨이 울렸다.
따르릉-.
“음?”
류수혁은 야밤에 울리는 핸드폰에 눈살을 찌푸렸다.
심지어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온 전화였다.
“어떤 새끼가 이 밤에 전화를 걸고 지랄이야?”
혼자 있는 탓에 류수혁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항상 호감 가는 미소를 짓고 있던 얼굴은 딱딱하게 굳은 채였고, 매너 있던 말투에도 욕설이 섞여 있었다.
“X발. 안 그래도 피곤한데……. 여보세요?”
-어이, 류수혁이.
통화 버튼을 누르자, 전화 너머에서 어딘가에서 들어 본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류수혁은 목소리 톤을 잡고 물었다.
“누구십니까?”
-나다, 이 씹새꺄.
“뭐?”
갑자기 날아든 욕설에 류수혁은 당황했다.
목소리가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한 게, 생각이 날 듯 말 듯…….
‘아……. 그 떨거지.’
“최용달?”
-그래. 나다.
류수혁이 실소를 지으며 의자에 기대 앉았다.
그의 가면은 상대의 정체를 안 순간 벗겨졌다.
“뭔데 이 시간에 전화질이야? 정체까지 숨겨 가면서.”
-흐흐…….
최용달이 뭔가 불길하게 웃던 그때, 사무실 바깥에서 비서가 봉투 하나를 손에 들고 들어왔다.
“통화 중인 거 안 보여?”
“죄송합니다. 급한 사안이라고 하셔서…….”
“줘.”
류수혁은 종이봉투를 열면서 최용달에게 말했다.
“네가 보낸 거냐?”
-열어 봐.
스윽.
안에 서류들을 꺼낸 류수혁은 심장이 철렁했다.
거기엔 류수혁이 주철수 모르게 돈을 모으기 위해 만든 업체와 자금 조달 루트, 최철호와 만났다는 증거 등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런 미친……!’
하지만 류수혁은 동요하지 않은 것처럼 침착한 말투를 유지했다.
“이 야밤까지 조작된 서류를 만들고 있었나?”
-조작? 맨 밑을 봐라.
서류의 아래에 충청흥신소 도장이 찍힌 게 보였다.
류수혁은 순간적으로 서류를 갈가리 찢어 버릴 뻔했다.
‘개새끼들이……. 이걸 숨기는 대가로 받아 처먹은 게 얼만데…….’
간신히 울컥하는 감정을 삭인 류수혁의 귀에 최용달의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무슨 상황인지 알겠어? 상황 파악이 되냐고, 이 새끼야.
“너…….”
류수혁은 이빨을 꽉 깨물었다.
여기서 화를 내거나 당황해 봤자 꼬투리만 잡힐 뿐이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그래? 그럼 그건 뭔데. 내가 조작한 거라고?
“어디서 인주를 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랄 염병하고 자빠졌네, 이 새끼야. 넌 최철호랑 만났으면 안 됐어. 감히 내 자리를 뺏으려고 해? 이런 X발 진짜……. 너 때문에 끈이 떨어졌으니 책임을 져 줘야겠다. 내가 주소 보낼 테니까 글로 튀어와. 이 개새끼야. 줄타기에도 도리가 있다. 당장 안 나오면 주철수한테 직통으로 보낼 거니까. 주철수한테 숙청당하든지, 나랑 합의를 보든지 알아서 결정해라. 12시까지다. 혼자 오는 게 좋을 거다.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 최용달이 전화를 뚝 끊었다.
류수혁은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봤다.
뿌드득.
“실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차 준비해. 그리고 애들 스물 정도만 데려와라. 연장으로.”
“아, 알겠습니다.”
“이런 X발……!”
비서가 나가고, 잠시 굳은 얼굴로 서 있던 류수혁이 서류를 잡고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쫙! 쫙!
“그냥 죽여 버려야겠어…….”
***
용달파의 사무실.
전화를 끊은 최용달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왜 이렇게 떨리냐. 내가 거짓말을 잘 못 하나?”
“에이, 그건 아니죠.”
그런 최용달의 옆에서 손에 붕대를 감은 이윤한이 중얼거렸다.
저번에 이주혁에게 손등을 칼로 뚫린 놈이었다.
“야, 이 새…….”
이윤한에게 욕을 퍼부으려던 최용달이 멈칫했다.
안 그래도 습격 두 번에 사무실 애들이 거의 다 도망가 버렸다.
남은 놈들은 몇 년 동안 함께한 녀석들뿐이었기에, 최용달은 말을 아꼈다.
“근데 형님. 용태는 어떻게 된 거예요? 살아는 있어요?”
“살아 있을 거다. 아마.”
“예? 아마요?”
“어디 잡혀있는 것 같은데, 아직 죽지는 않은 것 같다.”
“X발, 어떤 새끼가 용태를……!”
“너한테 칼 박았던 놈.”
그 말에 움찔한 이윤한이 조심스럽게 붕대를 감은 손을 붙잡았다.
“그, 그 새끼가요?”
“그래. 이번 일 잘 마치면 얘기 잘해서 돌려받아야지.”
“아니 형님. 그냥 제껴 버리면 되지 왜 이렇게 빌빌 기어요?”
최용달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뭐? 제껴? 지랄을 해라. 두 번이나 한 놈한테 털렸는데, 니들이 그놈을 어떻게 이긴다는 거야?”
“쩝.”
이윤한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라면을 끓이던 김성훈이 툭 뱉었다.
“형님들도 넘긴 거 보니까 잘 치는 거 같긴 하던데, 형님 밑으로는 못 데려옵니까?”
“에라이, 새꺄. 누구 밑에 있을 놈이 아니다. 내가 밑에 들어가야 될 판국이야.”
“그 정도예요?”
“난 놈이야, 난 놈, 이번 일 마무리되면 최철호 의원한테 다시 붙을 수 있게 해 준다는데, 사실 그놈 밑에 있는 게 더 돈이 될 것 같단 말이야.”
최용달은 이주혁에게 붙어 있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무력도 강하고, 돈도 많고, 세력도 크다.
생각에 빠진 최용달에게 이윤한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형님 꿈 이루시려면 최철호 의원한테서 떨어지면 안 되잖아요.”
“……그렇지.”
“국회의원 한번 해 보셔야죠. 그것 때문에 더러운 짓 다 하면서 버틴 건데. 국회의원 최용달. 캬…….”
“방법이 없진 않지.”
최철호 의원한테 붙어 뒤처리도 해 주면서, 최철호와 주변 인물들의 정보를 이주혁에게 넘긴다.
이 사실을 최철호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양쪽에 발을 걸칠 수가 있다.
다만 변수라면 이주혁이 최철호 의원을 완전히 박살내 버리는 경우인데…….
‘뭐, 그러면 이주혁한테 붙어야지.’
무릎을 꿇을 의향까지 있다.
그래도 설마, 현직 국회의원을 상대로 이상한 짓을 하진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최용달은 순간 흠칫했다.
‘그런데 왜 그러면 안 될 것 같지……?’
뭔가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진 듯한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일 거다.
아마도…….
***
잠시 후, 차가 한 폐공장 부지에 멈춰 섰다.
탁.
“후…….”
고급 세단에서 내린 류수혁이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그리고 애용하던 칼이 품 안에 잘 들어 있는지도 확인해 봤다.
류수혁은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폐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수하 몇 명이 그 뒤를 따랐다.
다들 허리춤이 묵직했다.
“최 사장. 협상하러 왔으니 마주 보고 얘기합시다.”
류수혁이 최용달을 불렀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X발…….’
사람을 이 시간에 불렀으면 바로 튀어나올 것이지…….
그렇게 정적만이 흐르던 폐공장에 발소리가 들렸다.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류수혁에게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류수혁이.”
“……하, X발.”
10년 넘게 듣던 목소리에 류수혁의 표정이 굳었다.
“무배야. 네가 서울에는 어쩐 일이냐.”
정무배가 험악한 얼굴을 구기며 사납게 웃었다.
“너 담그러 왔지, 이 새끼야.”
“하하……. 많이 컸다고 이젠 반말이냐?”
“지랄하네.”
류수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내가 너를 잘못 키웠구나.”
“키우긴 개뿔이. 사람 담그고 협잡질하는 거 말고 알려 준 게 뭐가 있다고?”
“그래서 네가 거기까지 올라간 것 아니냐?”
“…….”
“무배야. 일단 관계 청산은 미뤄 두고, 세력을 합쳐서 강남파를 제끼는 건 어떠냐? 최근 주철수의 손발이 몇 개 잘려서 우리 둘로도 충분히 가능할 거다.”
정무배가 눈을 부릅떴다.
“네가 충청식구파의 류수혁이었다면 볼 것도 없이 뜻을 같이했을 거다. 넌 신뢰를 잃었어. 완전히. 우리 충청식구파의 규율을 잊었나?”
류수혁이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배신자는 처단한다?”
“그래. 이걸 만들 땐 네가 배신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무배야. 난 옛날로 돌아가도 지금처럼 할 거다. 지금이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던 쌍팔년도냐? 다들 살길 찾아가는 거지, 배신자는 무슨 배신자야. 너무 옛날식 아냐?”
“뻔뻔하군. 몇 년을 동고동락한 식구들 뒤통수를 쳐놓고 너무 뻔뻔해. 돈이 부족했나? 주철수 뒷구멍에 달라붙어서 떨어지는 콩고물만 주워 먹으면서 알량한 권력을 누리고 싶었어?”
정무배의 격한 비난에 류수혁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며 말했다.
“그래서, 나 담그려고 왔냐? 혼자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은 류수혁이 한쪽 손을 들었다.
그러자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던 정무배의 눈에 달려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허, X발.”
십수 명의 깡패들이 우르르 몰려와 정무배 무리를 포위했다.
“옛날 생각나지?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당연하지. 그럼 그것도 알겠네. 그때 내가 너까지 다 때려눕힌 거.”
“하하. 무배야.”
스릉-.
류수혁의 수하들이 칼을 뽑았다.
“그땐 맨손이었잖냐.”
정무배는 미소 짓는 류수혁을 보며 마주 웃었다.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나? 너한테 뭘 배웠는지.”
타닥!
그 말과 동시에 쇠파이프와 각목을 든 남자들이 스물 가까이 달려와 류수혁의 부하들을 둘러쌌다.
순식간에 살벌해진 분위기에 폐공장 안이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류수혁이 한 바퀴를 돌며 상황을 파악하더니,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감탄했다.
“이야……. 잘 배웠구나?”
“…….”
“사실 전부터 알고 있었다. 네가 나 같은 인간을 혐오한다는 걸 말이야. 예전부터 날 보는 눈빛에서 느껴졌지.”
“정답이다.”
“그런데 무배야, 지금 네 모습을 봐라. 네가 어떻게 충청도를 먹었는지도 떠올려 봐.”
정무배는 무언가를 느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충청도는 넓으니까 통합이 힘들었겠지. 예전부터 뿌리박혀 있던 고인 물들도 있었을 테고. 좋게 말해도 굽히지 않는 꼰대들도 많지 않았냐?”
“…….”
“어떻게 처리했냐?”
정무배의 눈이 흔들리는 걸 본 류수혁이 계속해서 입을 놀렸다.
“힘을 얻기 위해서 피를 많이 봤겠지. 물론 내 핑계를 댈 순 있을 거다. 하지만 내가 나간 후에 달라졌을까? 아니. 똑같았을걸? 이권 챙기려고 찌르고, 일에 방해돼서 쑤시고, 마음에 안 들어서 죽이고…….”
“닥쳐라.”
“넌 나다. 나한테서 모든 걸 배웠다고. 무배야. 몇 년 뒤, 아니 몇십 년 뒤에 넌 나보다 더한 인간이 되어 있을 거다. 사람은 변하지 않아.”
“후…….”
짝!
정무배가 갑자기 자신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흉흉한 눈빛으로 류수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 혓바닥은 여전하구만. 그래, 인정한다. 나도 어느새 너랑 똑같은 놈이 됐다. 근데 어쩌라는 거냐. 넌 여기서 나한테 죽고, 나는 더 큰물로 간다.”
그 말에 류수혁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대화나 협상의 여지는 없었다.
“죽여.”
정무배의 신호와 함께, 두 조직이 맞붙었다.
챙! 퍼억! 푹!
“끄악!”
“욱!”
“죽여! 죽여!”
“으아아아!”
순식간에 폐공장은 광기에 휩싸였다.
그런데도 정무배는 우두커니 선 채 류수혁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옆에서 달려든 놈을 때려눕히고서도 계속해서 류수혁을 노려봤다.
‘날 직접 처리한다는 생각인가.’
류수혁은 난처한 상황에 품 안의 칼을 만지작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X발……. 뭐 되는 게 없네.”
***
한편, 나는 폐공장의 2층에서 땅콩을 하나씩 까먹으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라세흠 부장이 들고 다니던 거 뺏어왔는데…… 은근히 중독성 있네.
챙-! 퍽!
“어우, 살벌해라.”
밑에서 무기와 사람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무배와 류수혁의 무리가 한데 어울려 주먹질하고 칼질하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죽여!”
정무배는 타고난 완력으로 깡패들을 쑤시며 집어 던졌고, 류수혁은 눈에 띄지 않게 틈을 노리며 한 명씩 확실하게 보내는 타입이었다.
그렇게 십여 분을 지켜봤다.
수하들은 거의 다 널브러져 있었고, 정무배와 류수혁만 멀쩡히 서서 서로를 노려봤다.
둘 다 상당히 지쳤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게 보였다.
자,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죽여 버린다!”
“으아아!”
두 사람이 격하게 맞붙기 시작했다.
서로 주먹질하고 발로 차고, 여기 쑤셨다 저기 쑤셨다 난리를 쳤다.
퍽! 푸욱!
“끅!”
뱀처럼 날아든 류수혁의 칼이 정무배의 배를 길게 그었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정무배가 억센 손으로 류수혁의 팔을 붙잡고 그대로 사시미를 찔러 넣었다.
콰득!
“크악……!”
류수혁은 이빨을 꽉 깨물고 반대 손에 쥔 칼을 정무배에게 마구 휘둘렀다.
들어올린 정무배의 팔이 난자되며 피를 이리저리 흩뿌렸다.
나는 그걸 보며 몸을 일으켰다.
“슬슬 끝인가.”
땅콩을 내려놓고선 2층에서 아래를 향해 펄쩍 뛰었다.
후웅-! 콰직!
“욱.”
“어이쿠, 미안.”
내가 깡패 하나를 밟으며 지상에 착지하자, 한 사람의 시선이 나를 향해 꽂혔다.
나머지 하나는 피를 흘리며 바닥에 엎어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음, 역시 이놈이 살아남았나.
“이 개X끼…….”
정무배가 피를 줄줄 흘리며 욕을 내뱉었다.
나는 그걸 보며 미소를 지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저와 함께 갈 수…….”
그리고 싸늘하게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없습니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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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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