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67
066화
그 시각, 라세흠은 사무실의 문을 몰래 열며 어제 들었던 이주혁의 말을 떠올렸다.
-완전히 박살 내는 겁니다. 수뇌부만. 부장님이 보시기에 인간쓰레기다 하는 놈들은 알아서 처리하시고, 거둬서 써먹을 수 있겠다 싶은 어린놈들은 나중에 흡수할 수 있게 모아놔요. 그리고 끈 떨어진 충청흥신소는 우리가 자금을 넣어서 먹어버릴 겁니다. 이해하셨죠?
당연히 이해했다.
한 마디로, 구제 불능인 놈들은 때려눕히고, 나중에 심부름시킬 놈들은 남겨 놓는다.
이 작전에서 라세흠이 할 일은 간단했다.
라세흠은 눈앞에 깔린 깡패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봤다.
‘음. 관상을 보아하니 전부 사람 몇 담가 본 놈들이구만.’
눈을 감은 라세흠이 정신을 집중했다.
두런두런 들리는 말소리, 층간소음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발걸음을 들으며 건물 안에 대략 몇 명 정도가 있는지 파악했다.
이주혁은 사무실이 거의 비어 있을 거라고 했지만, 워낙 규모가 큰 조직이라 그런지 스무 명 이상은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라세흠은 눈을 뜨고 모자를 꾹 누른 뒤 사무실 안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그걸 본 깡패 하나가 의문스러운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뭐여?”
“안녕하세요? 택배가 왔는데 직접 사인하시고 받으셔야 해서요.”
“잉? 택배시킨 적 없는디…….”
라세흠이 깡패를 포옹하는 것처럼 슥 어깨에 손을 올리고, 명치에 순식간에 주먹을 꽂았다.
“끕.”
기습을 당한 깡패는 토할 것처럼 볼을 부풀리더니, 이내 눈이 뒤집힌 채 거품을 물고 축 늘어졌다.
다른 깡패들은 웃고 떠드느라 단말마를 듣지 못한 듯 보였다.
라세흠은 덜렁거리는 녀석을 안 보이는 곳에 조용히 눕혔다.
그리고 파티션 뒤에 숨어 상황을 살폈다.
원래는 대놓고 깽판을 칠 생각이었지만…….
‘오랜만에 하니까 재밌네. 잠입, 첩보, 암살. 좋아.’
라세흠은 발소리를 죽이며 움직였다.
화장실을 가려는지 한 놈이 혼자 출입구 쪽으로 걷는 게 보였다.
확!
“으읍?!”
라세흠이 달려들어 다리로 몸을 묶은 뒤, 입을 막고 목을 졸랐다.
“끅.”
하나를 기절시키고 고개를 든 라세흠은 다른 깡패와 눈이 마주쳤다.
“…….”
“…….”
히죽.
라세흠이 썩은 미소를 짓자 깡패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 개…….”
라세흠은 튕기듯 일어나며 발 앞쪽으로 놈의 턱을 갈겼다.
“컥.”
어느새 깡패들이 품에서 연장을 꺼내며 라세흠을 둘러싸고 있었다.
“넌 뭐여?”
“니가 이런 겨?”
“X벌럼이 여가 어디라고…….”
“하하.”
웃음을 터뜨린 라세흠이 턱을 맞고 무릎을 꿇고 있는 녀석의 뒤통수에 싸커킥을 갈겼다.
뻥!
“얘들아.”
눈을 까뒤집으며 얼굴을 바닥에 처박은 녀석을 뒤로하고, 라세흠은 나머지 깡패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너넨 좀 잘 쳤으면 좋겠다.”
“이런 썅!”
“개노무 섀끼가!”
휘둘러지는 칼을 피하며 라세흠이 공중에 떴다.
한 놈의 어깨를 짚고 다른 놈들의 머리와 가슴에 마구잡이로 발차기를 날렸다.
“윽!”
그리고 주먹을 흘린 뒤 옆구리에 묵직한 바디를 날렸다.
“커흑……!”
간에 정확하게 틀어박힌 주먹에 깡패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배를 부여잡고 옆으로 쓰러지는 놈 뒤편으로 다른 놈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용달파였나, 저번 놈들보단 낫네.’
라세흠은 깡패들에게 경고했다.
“지금부터 먼저 오는 세 놈은 확실하게 불구로 만들어 줄게.”
그 말에 놈들이 주춤했다.
이러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안 오면 내가 간다.”
라세흠은 순식간에 달려 깡패의 가슴팍을 날아 찼다.
퍼억-!
“컥!”
발차기를 맞은 놈이 허공을 가르며 테이블을 뒤엎은 뒤 바닥에 처박혔다.
“안 왔으니까 전부 불구행이다,”
칼을 쥐고 달려드는 놈의 팔을 옆구리 틈으로 흘린 뒤, 관절을 붙잡고 그대로 접으며 어깨에 역으로 사시미를 박아 줬다.
푹!
“윽!”
빠각!
그리고 정강이를 걷어차 주저앉힌 후, 사시미를 뽑고 얼굴을 걷어차 버렸다.
라세흠은 기절한 녀석을 내버려 두고 칼에 묻은 피를 털었다.
‘칼이라.’
오래간만에 잡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원래는 맨몸 격투를 더 선호하지만, 막상 칼을 보니 오늘은 이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깡패들이 칼을 경계하며 슬슬 둘러싸고 있었다.
다구리 폼이 나오는 게, 이런 경험이 있는 듯 보였다.
“죽이진 않을게. 난 준법 시민이니까.”
라세흠은 휘둘러지는 칼을 피하며 손에 칼을 찔러 넣었다.
“아악!”
손등에 꽂았던 사시미를 뽑자 피가 촥 튀었다.
아마 힘줄이 다 끊겨서 숟가락 잡기도 힘들 것이다.
그리고 뒤에서 달려온 놈을 그대로 앞으로 메친 뒤, 손목과 팔꿈치 안쪽을 칼로 마구 쑤셨다.
“악! 으아아아!”
“움직이면 더 다친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사시미를 던져 한 놈의 얼굴에 사시미를 꽂았다.
붙잡고 있던 놈의 손에서 칼을 뺏어 들고, 슬라이딩하며 방망이를 피한 뒤 다른 놈의 허벅지에 칼을 꽂았다.
그리고 다리를 잡고 낮은 자세로 반 바퀴를 돌며 아킬레스건을 그어버렸다.
“끄악! 내, 내 다리!”
라세흠은 비명을 지르는 놈의 다리를 꾹 밟으며 남은 놈들을 훑었다.
열 명이 훌쩍 넘던 놈들은 어느새 절반 이상이 드러누워 있었다.
아직 멀쩡하게 서 있는 녀석들은 연장을 들고 있음에도 달려들지 못했다.
그걸 본 라세흠은 칼을 바닥에 버렸다.
땡그랑.
‘비주얼이 너무 살벌했나.’
라세흠은 양 손바닥을 보이며 깡패들을 안심시켰다.
“알았어, 칼 안 쓸 테니까 들어와.”
“이 미친 새끼!”
“뭐 하는 놈이여?!”
미소를 지은 라세흠이 다시 한번 뛰어들었다.
***
정무배가 피가 줄줄 흐르는 배를 부여잡고 있을 때였다.
태연하게 나타난 이주혁을 노려보며 미간을 좁혔다.
“미친 새끼…….”
놈이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너 뭐야.”
“나 이주혁.”
왜 저렇게 멀쩡한 얼굴인 거지?
순간 머리에 지금까지 놈과 나눴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정무배는 상황을 파악하고 눈을 부릅떴다.
“날 작업한 거구나. 충청식구파를 먹으려는 생각이었냐?”
“예? 작업이라니요. 정 사장님이 약해서 칼 맞아 놓고 왜 제 탓을 하세요. 제가 말씀드린 대로 배신자를 처단하는 데 성공하셨지 않습니까?”
“분명히 네가 류수혁 부하들은 다른 곳으로 유인한다고 했잖아!”
“부하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지랄……, 윽.”
꾸욱.
정무배가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허리를 세웠다.
류수혁 그놈이 특유의 칼질로 뱃속을 휘저었는지, 살짝만 움직여도 극심한 통증이 몸을 자꾸 굳게 만들었다.
정무배는 뻔뻔한 놈의 얼굴을 보자 화가 치밀어올랐다.
놈 때문에 함께 해온 녀석들이 다 당해 버렸다.
“어디서 온 놈이냐. 네가 말한 사연도 거짓말이었냐?”
“음……. 계획에 휘말려서 친구가 죽은 건 사실이야. 류수혁이 아니라 전생의 네 계획이었지만.”
“……전생?”
전생이라니, 이 상황에서 나올 만한 말인가?
정무배는 이주혁이 주변을 둘러보던 사이 땅에 떨어져 있던 칼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던 순간, 눈앞을 기다란 무언가가 가득 채웠다.
깡!
***
땡그랑.
나는 쇠파이프를 바닥에 던지고 장갑이 벗겨지지 않게 쭉 당겼다.
“후.”
머리를 맞고 바닥에 엎어진 정무배를 둘러업었다.
더럽게 무겁네.
190에 100킬로는 넘는 녀석을 들고, 류수혁이 타고 온 걸로 추정되는 세단의 조수석에 앉혔다.
미리 가져온 청테이프를 쫙쫙 뜯고 있자니, 정무배가 낮은 신음을 내며 눈을 떴다.
“으…….”
“깼어?”
정무배가 움직이기 전에 테이프로 시트에 몸을 묶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놈은 저항하지 못했다.
칼에 찔린 상처에도 테이프를 발라 피가 나오는 걸 막아줬다.
깊은 대화를 나눠야 하는데 과다출혈로 죽게 둘 순 없지.
“으, 윽.”
쇼크인지 정무배가 눈을 뒤집으려 하길래, 뺨을 후려쳤다.
짝!
“야, 정신 차려.”
“하, 헉.”
내 충격 요법에 정무배가 삼도천을 건너려다 만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나를 보고 죽일 듯이 노려보기 시작했다.
“왜 눈을 그렇게 떠?”
짝!
뺨을 한 번 더 갈겼는데도 정무배는 계속 나를 노려봤다.
수만 가지 감정이 담긴 눈빛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너한테 왜 이러는지 궁금하지?”
“…….”
“정 상무. 혹시 전생 믿어? 아, 전생이라기엔 조금 애매하네.”
정무배의 마른 입술이 쩍 열렸다.
“……정 상무라니, 무슨 소리냐.”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솔직히 회귀는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뭐라 말해 주기가 어려웠다.
그냥 대충 요약하지 뭐.
“사실 내가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왔거든.”
“…….”
적대적이던 정무 배의 눈빛이 미친놈을 보는 눈으로 변했다.
“미래에서 너는 상무였어. 주철수가 만든 DG그룹이라는 기업의 상무. 나는 거기 잠입한 경찰이었고.”
“개……소리를.”
“닥치고 일단 들어 봐.”
쫘악!
나는 청테이프로 정무배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스읍……. 후. 디스는 오랜만이네.”
오늘의 이벤트를 위해 회귀 후에는 안 피우던 담배를 사 왔다.
담배를 한 번 더 깊게 빨고, 정무배의 얼굴에 연기를 뿜었다.
“어쨌든, 그렇게 15년 가까이 잠입해서 정보를 빼내던 어느 날. 네가 나를 갑자기 부르더라고. 부장인 나는 상무가 호출하니까 갈 수밖에 없었지. 가다가 가스 마시고, 차 뒤집히고……. 그렇게 너한테 잡혀서 죽었다. 이게 내가 너한테 이러는 이유야.”
“읍, 으읍!”
“할 말 있어?”
찌익.
테이프를 뜯어 주자, 정무배가 힘겹게 목소리를 냈다.
“난 아무것도 안 했잖아. 그런데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다.
이 시점의 정무배는 내가 접근하지 않았다면 날 알지도 못했을 거고, 날 죽이지도 않았겠지.
그런데 어쩌라고?
“내가 네 과거를 좀 알아. DG그룹 상무로 있으면서 몇 명을 골로 보냈는지도 알고. 그걸 알면서도 널 살려 둘 이유가 없잖아?”
정무배는 할 말이 없어졌는지 멍하니 날 쳐다봤다.
난 다시 정무배의 입을 덮어 주고, 손가락으로 입 부분에 구멍을 뚫었다.
“갈 땐 가더라도, 담배 한 대 정도는 피우고 가야지.”
테이프의 구멍으로 내가 피우던 담배를 쏙 넣었다.
거꾸로.
칙.
“끕!”
“어우, 미안. 이쪽이 아니었네.”
나는 청테이프를 차 안에 던져 놓고 운전석에 올랐다.
그리고 시동을 건 뒤, 차를 몰아 폐공장 부지 바깥으로 나갔다.
정무배는 말없이 운전만 하는 나를 흔들리는 눈으로 쳐다봤다.
이제 끝이 다가온다는 게 실감이 나서일까.
하지만 동정심은커녕 미소만 지어졌다.
“정 상무. 난 너를 굳이 내 손으로 죽일 생각은 없어.”
“…….”
“피도 많이 흘렸고, 칼도 몇 대 맞았지. 솔직히 내가 손 보태 봤자 큰 의미는 없을 것 같거든?”
옆을 슥 돌아보자, 피를 많이 흘렸는지 정무배가 고개를 꾸벅거리고 있었다.
퍽!
“읍!”
“일어나, 새끼야.”
끼익.
산 깊숙한 곳의 한적한 공터.
나는 운전석에서 청테이프를 챙기고 내렸다.
“상무님. 얌전히 계세요?”
조수석의 문을 열고 테이프를 쫙 뜯어 정무배를 좌석에 칭칭 감기 시작했다.
몸통부터 시작해 팔, 다리, 골반, 목, 이마까지.
거의 미라처럼 보일 때까지 테이프를 바르자, 정무배는 거의 기절하기 직전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운이 좋으면 살 수 있겠지.”
“읍. 읍!”
“근데 그런 운이 너한테 있을까?”
“으읍……!”
“고생해. 류 실장한테 안부 전하고, 거기선 사이좋게 지내고.”
탕!
조수석 문을 닫고 미리 준비해 둔 바이크에 올라탔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테이프는 끊어지지 않을 거다.
나는 헬멧을 쓰고 뻐근한 몸을 풀었다.
부앙-!
날씨 좋고, 바람도 시원하다.
막상 복수하고 나면 허무하진 않을까 했는데…….
“하하…….”
허무는 무슨. 복수는 달콤했다.
***
그 일이 있고 보름 후.
나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금까지 순조롭게 주철수의 손발을 끊어 냈다.
남 실장, 마 이사, 그리고 과거의 정 상무까지.
주철수의 사업도 고춧가루를 뿌리며 최소 몇천억은 날려 먹게 만들었다.
그런데 왜 주철수는 아직 건재한 걸까.
대체 자금이 어디서 나오길래 계속해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걸까?
그러던 그때,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어, 여보세요?”
-나다. 알려줄 게 있어서 연락했다.
수신인은 최용달이었다.
며칠 전 충청식구파를 관리할 사람을 찾고 있을 때 갑자기 녀석이 찾아왔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자기한테 맡겨 달라길래, 덩치와 함께 충청도로 보내 놓은 상태였다.
확실히 믿을 수 있는 놈은 아니지만,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으니까.
덩치가 옆에 딱 붙어 있으니 다른 일을 꾸미진 않을 거다.
“뭔데?”
-네가 궁금해하던 주철수 자금줄. 찾아보니까 하나 나오더라고. 아주 서울을 개판으로 만들려고 하는 건지, 아주 악질이야. 나도 나쁜 짓 많이 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닌데 말이지.
“설명해 봐.”
-약.
“약? 마약?”
분명 주철수가 마종석 이사를 앞세워 마약을 밀수하려던 걸 내가 싹 다 불태워서 막았었는데, 또 마약이 있다고?
내 의문 섞인 말에 최용달이 물었다.
-펜타닐이라고, 들어 봤어?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