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68
067화
펜타닐.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의 일종으로, 진통 효과만큼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미래에는 다른 마약류에 비해 접근성이 좋아 어린 학생들까지 구하기 쉬워서 많은 사회적 논란이 되는 물건이다.
그런데 그게 지금은 아닐 텐데?
펜타닐은 주철수가 201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건드리던 사업이었는데, 왜 벌써 수면 위로 드러난 거지?
나는 당황스러움을 숨기며 최용달에게 물었다.
“뭔지는 잘 아니까 자세히 말해 봐.”
-알고 있나 보네? 그럼 얘기가 편하지. 흥신소 애들 풀어서 강남파 이권이 닿은 지역을 샅샅이 뒤져 봤거든?
“그래서?”
-펜타닐 같은 불법 약물이 뒷골목 쪽에서 돌고 있어. 저번에 스무 살 남짓한 애새끼들이 모여 있길래 보니까, 그런 놈들을 거래책으로 쓰고 있더라고.
“하…….”
-그리고 마사지 업소나 극장 같은 곳에서는 우유 주사가 아주 은밀하게 흥행 중이더라고. 부잣집 도련님이나 연예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게 그쪽이니까.
갑자기 열이 확 뻗쳤다.
전생에선 내 정체를 들키면 안 되니까 이런 일을 보고도 꾹 참고 넘겼다.
하지만 지금도 그럴 필요는 없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겼다.
“자세한 건 메일로 정리해서 보내.”
-알았다.
전화를 끊고 사무실을 나서자 난쟁이가 들어오려다 흠칫했다.
“뭐야, 왜?”
“아니, 다른 게 아이라 SS건설 일로 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가…….”
“급한 일이야?”
“그건 아입니더.”
“그럼 나중에 얘기하자.”
“아, 예. 바쁘신갑네예. 고생하이소.”
나는 난쟁이를 뒤로하고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시간은 어느새 늦은 밤이었다.
사실 목적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마음이 답답해서 뛰쳐나온 거다.
어차피 나온 거, 약쟁이들이나 찾아볼까?
그런 놈들은 지들끼리 모이는 핫스팟이 또 있다.
나는 그 위치들을 대강 알고 말이지.
후드티의 모자를 눌러쓰고 밤길을 성큼성큼 걸었다.
얼마나 갔을까. 네온사인으로 밝았던 주위가 가로등의 깜빡이는 불빛으로 바뀌었을 무렵, 저 멀리서 고함이 들렸다.
-X발! 말이 다르잖아!
소리가 나는 골목 쪽으로 들어가 보니 남자 두 명이 험악한 분위기로 마주보고 있었다.
허리가 구부정한 하나가 백팩을 멘 남자한테 화를 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한쪽이 뭐라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품에서 칼을 꺼냈다.
팅!
-내놓으라고!
-이런 미친!
심각해지는 상황에 나는 땅을 박차고 달렸다.
그리고 그대로 점프해 칼을 든 놈의 어깨를 발로 차버렸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놈은 옆으로 날아가 땅을 데굴데굴 굴렀다.
기절했는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칼을 가지고 다니는 것 치곤 너무 허약한데?
나는 멍한 눈빛으로 날 보고 있는 다른 놈과 눈이 마주쳤다.
“아, 감사…….”
“줘 봐.”
“예?”
녀석이 시치미를 떼길래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뭐 팔려고 했잖아. 줘 봐.”
“무, 무슨 말씀이세요.”
말로 하니까 잘 안 들리나 보네.
녀석은 내 표정이 변하는 걸 봤는지 순식간에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썅! 꺼져!”
“어허.”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건지, 녀석은 좁은 골목을 잘도 달렸다.
하지만 뛰어 봤자 벼룩이지.
나는 몸을 낮추고 큰 보폭으로 쇄도해 녀석을 앞질렀다.
“안녕?”
“X발!”
휘날리는 후드를 콱 붙잡자 녀석의 몸이 덜컥 멈추며 공중에 훅 떴다.
그 상태에서 손을 놓으니 놈이 허공에서 몇 번 다리를 휘적거리더니 바닥에 등으로 떨어졌다.
쿵!
“컥.”
나는 쓰러진 녀석의 가슴을 꾹 밟으며 말했다.
얼굴을 보니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어린놈이었다.
“가방에 든 거 꺼내.”
“X발 왜 이래! 경찰에 신고한다!”
놈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뭐? 경찰에 신고?
“신고해. 신고해 봐, 이 새끼야. 내가 네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는 것 같냐?”
“X발…….”
가방을 탈탈 털어 보니 파스처럼 생긴 것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역시 펜타닐이었다.
“이 새끼야. 이거 들고 경찰서 가 봐?”
“그래서 뭐, 나보고 어쩌라고?”
“말투 봐라.”
짝!
뺨을 후려갈기자 녀석의 머리통이 홱 돌아갔다.
“물어보는 거 제대로 대답 안 하면 해 뜰 때까지 처맞는다. 알았어?”
“네, 넵.”
내 협박에 녀석은 금방 고분고분해졌다.
손가락 몇 개는 부러뜨릴 의향도 있었는데 아쉽네.
“너 몇 살이야?”
“십팔 세요.”
“뒤질래?”
“아, 말이 헛나왔어요. 열여덟이요.”
나는 녀석을 데리고 기절한 놈에게 다시 돌아왔다.
발로 툭 차서 놈을 뒤집자, 앳된 얼굴이 드러났다.
그런데 거뭇거뭇한 눈 밑과 푹 패인 볼 때문에 언뜻 보면 한 서른 중반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가방은 멘 놈한테 약을 구하려고 왔으니, 이놈이 좀 알겠지.
“얘는 뭐야?”
“아, 구성건설 손자요.”
구성건설이라면 나름 유명한 기업일 텐데.
할아버지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이딴 거나 사?
마음 같아선 대가리를 몇 번 밟아 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깨 버리면 귀찮아지니 그냥 뒀다.
“너는 얘랑 어떻게 알게 된 건데? 이 새끼가 칼은 왜 꺼낸 거고?”
“그냥 제 형님이 얘랑 거래하는 걸 저한테 맡겨서요.”
“형님?”
“아, 친형은 아니고……. 그냥 제 윗선, 상사. 뭐 그런 개념? 아까 칼 꺼낸 것도 형님이 가격 올려서 받으라고 해서 좀 비싸게 불렀더니, 갑자기 그런 거고.”
빡!
“아! 왜요!”
“말이 점점 짧아지네, 이 새끼. 그 형님이라는 놈은 뭐 하는 인간인데?”
“저도 잘 몰라요. 그냥 돈 벌려고 돌아다니다가 알게 된 거라. 형님도 그냥 나이 많아 보여서 형님이고.”
“뭐 아는 거 없어?”
내 질문에 잠깐 망설이던 놈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의사 한 명이랑 친한 거 같더라고요. 이거 구할 때 자기가 말한 의사한테 가서 이름 대면 금방 줄 거라고…….”
“의사?”
의사라. 아마 주철수 쪽에서 의사한테까지 라인을 뻗친 것 같은데.
“그럼 그 형님 이름이랑 얼굴 말해 봐. 어디 사는지랑.”
“이름은 박준규고, 한 30대? 어디 사는지는 몰라요. 저도 부르면 가는 거라.”
“자주 나타나는 데는?”
녀석이 눈동자를 굴리길래 머리를 한 대 더 후려쳤다.
퍽!
“아, 아! 아프다고요!”
“잔대가리 굴리지 말고 불어. 알잖아.”
“아니, 형. 저 이거 말하면 죽어요.”
“안 죽어.”
“아 진짜라고요! 그 형님이 진짜로 사람 죽여 봤다고 사진도 보여 주면서 막 위협했다니까요? 저라고 이런 거 팔고 싶겠어요? 안 그래도 요새 부모님이 밤에 어딜 자꾸 나돌아다니냐고 하시는데…….”
대충 꼴을 보아하니, 형님이란 놈이 돈이 필요해 발들인 애들을 신상 정보 털고 협박해서 거래책으로 써먹는 것 같았다.
나는 겁에 질린 녀석에게 내 명함을 줬다.
그걸 본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형 회사에요?”
“그래. 경호업체니까 네 안전은 확실히 보장해 줄 수 있어. 도움이 되면 그 새끼들 잡아넣을 때 네 이름은 빼 줄게. 약속한다.”
“……제 친구가 하나 더 있어요.”
“오케이. 걔도.”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자기 이름을 말했다.
“저는 준우에요. 이준우.”
“어쩌라고.”
“아니, 저는 명함이 없어서.”
“됐고, 형님이란 놈 동선 정리해서 그 번호로 연락해. 잠수타 봐야 다 찾는 방법이 있으니까 다른 생각하지 말고.”
“에이, 안 그러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경찰이죠?”
내 말에 이준우가 화들짝 놀라며 내 팔을 간절한 눈빛으로 붙잡았다.
‘쫄지 마, 새끼야.’
입 모양으로 말하고 경찰에게 용건을 말했다.
“여기 22번지 골목에 이상한 남자가 쓰러져 있는데, 마약을 한 거 같아서요.”
-마약이요?
“예. 빨리 와 주세요.”
-금방 출동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이준우에게 손짓했다.
“이제 가라. 내일 저녁까지는 정리해서 보내 놔라.”
“옙. 형님!”
“꺼져.”
“넵.”
나는 바닥에 아직도 드러누워 있는 구성건설 손자 놈을 보며 착잡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음지도 아닌 이런 골목에서 펜타닐이 거래되는 걸 보면, 대체 서울에 마약이 얼마나 퍼져 있는 걸까.
“하……. 주철수 이 개새끼.”
나는 뒷목을 주무르며 골목을 나섰다.
***
다음 날, 간만에 풍원한정식을 찾아갔다.
임유나한테 말할 것도 있고, 겸사겸사 얼굴도 보고 뭐 그런 거지.
한정식집에서 혼밥은 조금 그래서, 이준우한테 이쪽으로 오라고 연락했다.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이준우가 저 멀리에서 쭈뼛쭈뼛 다가왔다.
“저기, 형. 여기 비싼 데 아니에요?”
“그럼, 비싸지. 안 비싸겠냐? 여기서 하루 회식해서 5천만 원도 나왔다.”
“억…….”
상상도 못 할 액수인지 이준우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런 녀석을 붙잡고 가게 안으로 데려갔다.
“자, 잠깐만요. 마음의 준비를…….”
“지랄 말고. 좋은 거 먹여줄 때 곱게 처먹어.”
그래도 정보 물어다 줄 놈한테 이정도는 사줄 수 있다.
내가 원래 이런 놈이 아닌데, 아직 어리니까 봐주는 거야.
안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의 직원이 나를 맞았다.
“어머, 주혁 씨. 오랜만에 오셨네요?”
“아, 안녕하세요. 혹시 사장님은 안 계세요?”
“빨리 오라고 연락드릴게요! 자리에 앉으세요.”
“아니,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직원은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후다닥 달려갔다.
당황스럽긴 한데, 뭐 어차피 얼굴은 보고 갈 생각이었으니까.
주방 안을 슬쩍 보니, 셰프 모자를 쓴 정태섭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앞치마는 우락부락한 몸 탓에 아기 목에 손수건을 두른 것처럼 보였다.
웃음을 참던 나는 정태섭이 왜 나를 저렇게 보는지 깨달았다.
아……. 아직 차 키를 안 돌려줬구나.
카운터에 정태섭의 차 키를 놓고 주방을 향해 외쳤다.
“여기 두고 간다!”
“…….”
나는 코스 요리 두 개를 주문하고 이준우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조사해왔지?”
“당연하죠. 제가 황금 같은 주말을 그놈 따라다니는 데 썼는데요.”
“말해봐.”
이준우는 백팩에서 꾸깃꾸깃한 종이를 꺼내 펼쳤다.
종이에는 방학 생활계획표같이 생긴 게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어이가 없어 물었다.
“너 고등학생 아니냐?”
“습. 일단 한번 보시죠.”
생활계획표에는 시간대에 따라 형님이라고 불리는 박준규의 동선이 적혀 있었다.
생각보다 잘 정리했네?
“어때요. 생각보다 잘했죠?”
“조용히 하고 밥이나 먹어라.”
어느새 나온 한식 코스 요리에 이준우가 입을 떡 벌렸다.
“이, 이거 다 먹는 거예요?”
“그럼 먹지, 버리냐? 촌놈같이 굴지 말고 싹싹 긁어먹어. 난 이거 마저 보고 먹을 테니까.”
“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먼저 먹겠습니다, 형님.”
갑자기 공손해진 이준우가 숨 쉬는 것도 잊은 듯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박준규의 깡패계획표로 눈을 돌렸다.
녀석은 오후 1시부터 이촌역 근처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때우다가, 저녁쯤에 동아극장으로 출근한다.
잠깐, 극장? 극장이라.
뭔가 구린 냄새가 나는 게, 아무래도 내가 직접 미행해야 할 것 같았다.
그때, 내가 있던 방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천사가 나타났다.
“아, 일행이 계셨네요. 죄송해요.”
아! 천사가 아니라 유나 씨였네.
“아닙니다. 잠깐 들어오시죠.”
“그래도 되나요?”
슥 옆을 돌아보니, 밥을 게걸스럽게 처먹던 이준우가 눈을 땡그랗게 뜨고 임유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마저 먹어라. 눈깔 돌리지 말고.”
“혀, 형 여자 친구예요?”
그 말에 임유나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이준우의 말에 난감한 듯했다.
그러게 왜 괜한 소리를 해서…….
“닥치고 밥이나 먹어라. 유나 씨, 오랜만입니다. 안 그래도 말씀드릴 게 있긴 했는데, 제가 괜히 번거롭게 한 건 아닌지…….”
내 말에 임유나가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
“아니, 아니에요! 그런 거 전혀 아니고…… 그냥 주혁 씨 얼굴이나 보러 온 거예요.”
“오, 정말요?”
유나 씨가 내 얼굴을 보러 왔다니, 이거 감동인데?
나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식사 마치고 잠깐 이야기나 나누시죠.”
“그, 지금 잠시 대화 가능할까요?”
“당연하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임유나와 방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물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아, 그게…….”
임유나가 쭈뼛거리더니, 등 뒤에서 꺼낸 무언가를 내밀었다.
“여, 연극 표가 하나 남아서요. 그, 같이 가기로 한 친구가 약속이 생겼대서…….”
“오, 이런 걸 저한테 주셔도 돼요?”
“그, 데이…….”
그때, 표에 적힌 극장이 내 눈에 들어왔다.
[동아극장 – 이촌역 1번출구]잠깐, 동아극장이라면…….
씨익.
“유나 씨.”
“아, 네.”
“가시죠.”
“네?”
안 그래도 박준규를 잡아야 했는데, 잘 됐어.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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