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88
087화
내 말에 우재성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갑자기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나 본데.
“테스트라뇨?”
“뭘 시치미를 떼고 그러십니까.”
옆에 있던 유나 씨도 나를 거들었다.
“맞아요. 떠볼 거 다 떠보고 이제 와서 모르는 척인가요?”
“음.”
우재성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같이 일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어야 한다는 주의라, 실례했습니다.”
이 녀석이 사과를? 이건 상당히 드문 일인데.
“괜찮습니다. 테스트 좋아하거든요.”
“항상 자신감이 넘치시네요.”
“테스트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어서요.”
내 말에 우재성이 피식 웃었다.
“그럼 우재성 씨. 이번엔 제가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도 우재성 씨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으니까요.”
“그러시죠.”
“우재성 씨의 꿈은 뭡니까?”
“꿈이요? 그건 왜 물으시는지.”
우재성은 굳이 따지자면 악인은 아니다.
그저 선과 악을 구분하며 살지 않는 것 뿐이지.
그런 우재성이 강남파에 붙어서 일했다는 건, 주철수가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약속했기 때문일 거다.
“그걸 알아야 제가 도와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재성 씨는 단순히 돈을 버는 게 목표가 아닌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저번에 통화할 때 제 목표를 이뤄 주실 수 있다, 그런 말을 하신 겁니까?”
“예.”
우재성은 나와 임유나를 번갈아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는 건 처음이네요.”
나도 영광인데. 드디어 속 모를 우 이사의 꿈을 듣게 됐으니까.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던 우재성이 고개를 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한국에 JP모건과 같은 대형 투자은행을 만들 생각입니다.”
“?!”
정말 원대한 꿈이었다.
JP모건. 미국 최대 규모의 은행이자 전 세계로 따져도 중국공상은행과 시가총액 1위를 다툴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는 곳이다.
인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시기는 아니지만, 이 시점에서도 충분히 거대한 파이를 가진 투자은행이다.
그런데, 미국 같은 금융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대한민국에서 그 정도 크기의 투자은행을 만든다?
“허무맹랑하게 들리실 거 압니다.”
“한국에서는 무척 어려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자신 있습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우재성. 이게 네 이상이었냐?
“큭. 저보고 자신감이 넘친다고 하시더니, 우재성 씨에 비하면 새 발의 피네요.”
“그러는 이주혁 씨도 저한테 대한민국을 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미소를 짓는 우재성의 얼굴에서 15년 후 강남파를 재계 3위로 만든 우재성 이사가 겹쳐 보였다.
“제 꿈을 이루면, 이주혁 씨의 꿈도 이루어집니다.”
그렇겠지.
우재성이 한국에서 투자은행을 만드는 데 성공하면, 결국 나도 한국 주식의 흐름을 손에 넣는 거니까.
“제가 움직일 수 있는 재산은 대부분 미국에 묶여 있습니다. 한국에서 제 목표를 이룰 만한 자금을 빼 올 수가 없다는 거죠.”
“반대로 저는 자금 대부분을 한국에서 운용하고 있죠.”
“맞습니다. 그래서 이주혁 씨한테 제안하겠습니다.”
“뭐죠?”
우재성이 손가락 세 개를 폈다.
“3년.”
“3년?”
“딱 3년 만 이주혁 씨의 회사 운영을 맡겠습니다. 사업 관리든, 회계든 상관없습니다. 대신 그 뒤에는 제가 요구하는 액수를 인센티브로 주셔야 합니다.”
“얼마를요?”
“제가 얼마를 요구하든 흔쾌히 내어 주실 겁니다. 장담하죠.”
나도 마음이 우재성에게 기울었다.
이렇게 야망 있는 미친놈인 줄은 몰랐는데, 젊은 시절의 우재성은 그야말로 선구자였다.
‘하….’
주철수는 이런 놈을 그 정도밖에 못 써먹었단 말이야?
“그럼 우재성 씨. 제 제안을 수락하시는 겁니까?”
“흠. 그게 말입니다.”
또 뭐야. 이렇게까지 해 놓고 더 고민한다고?
“아시다시피, 제가 아직 학위를 준비 중입니다. 비즈니스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MBA 학위가 있느냐 없느냐는 하늘과 땅 차이니까요.”
“그렇군요.”
“그러니,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마음과 상황이 정리되면 제가 나중에 한번 한국에 들르겠습니다.”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아무리 마음이 간다 해도, 명문대 학위와 엘리트 코스를 버리는 건 힘들겠지.
그래도 시간을 주면 결국엔 나한테 오게 될 거다.
솔직히 내 제안이 주철수보다 못할 것 같진 않거든.
“그럼, 슬슬 일어날까요?”
“그럽시다.”
임유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따라 일어났다.
물론 임유나도 똑똑한 사람이지만, 대한민국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소리를 이해하긴 어려울 거다.
솔직히 나도 유나 씨 앞에서 이런 과한 말을 한 게 좀 부끄럽긴 하네.
괜히 얼굴이 화끈해져서 가게 바깥으로 나갔다.
“우재성 씨. 타시죠. 숙소까지 태워 드리겠습니다.”
우재성은 손사래를 치며 자전거 위에 앉았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요새 운동 중이라서요. 생각할 것도 있고. 다음에 또 연락 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우재성이 페달을 밟으며 멀어졌다.
집에 돈도 많은 녀석이라 자전거를 타고 다닐 줄은 몰랐는데.
덜컹.
“잠깐, 유나 씨.”
어허, 이 사람이 또 운전대를 잡으려고.
“갈 때는 제가 운전할게요.”
“그래요. 그런데 주혁 씨. 아까 대한민국 얘기는 무슨 말이에요?”
“크흠.”
설명하려니까 민망하네.
그냥 흥미나 좀 생기라고 우재성한테 했던 말인데, 그걸 유나 씨가 기억하고 있었다니.
“나중에 꼭 설명해 줘요.”
“……네. 그럼요,”
부아앙-!
그때, 룸미러 너머로 자동차 여러 대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창문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고 총을 든 놈들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달리고 있었다.
“엎드려요.”
혹시 몰라 유나 씨를 가리고 차 문 뒤에 슬쩍 몸을 숨겼지만, 놈들은 뭐라 지껄이며 그냥 지나갔다.
대충 들어보니 온갖 욕설에 누굴 데려가니, 뭐니 하는 것 같은데.
“설마….”
“네?”
저 방향은 우재성이 자전거를 타고 사라진 곳이었다.
나는 차에서 내리며, 운전석을 임유나에게 양보했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숙소 주소를 알려 줬다.
“먼저 가 있어요. 저는 잠깐 들릴 데가 있어서.”
“저 사람들 쫓아가려는 거죠?”
“…….”
유나 씨, 나랑 몇 번 다니더니 눈치가 점점 빨라지는 것 같아.
“혹시 모르니까 가 보려고요.”
“위험하잖아요. 총 들고 있는 걸 본 거 같은데.”
“멀리서 보기만 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임유나는 누가 봐도 전혀 날 믿지 않는 표정으로 차에 시동을 걸었다.
“물론 주혁 씨를 믿겠지만, 조심하세요. 여긴 한국이 아니니까요.”
염려스러운 얼굴의 유나 씨한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줬다.
걱정 받으니까 기분 좋네.
나는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방장한테 손을 내밀고 영어로 말했다.
“헤이. 우재성이랑 아는 사이지? 바깥에 차 있으면 하나만 빌려줘. 갱단이 쫓아갔어.”
대머리 주방장은 날 잠시 쳐다보더니, 카운터에서 열쇠를 꺼내 던졌다.
텁.
“검은색 바이크다.”
“땡큐.”
나는 바깥으로 나와 구석에 있던 바이크를 찾았다.
장사가 잘 되나, 좋은 거 타네?
바이크에 키를 꽂고 시동을 걸자,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임유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봤다.
“먼저 가 계세요!”
그 말을 남기고 나는 바이크를 출발시켰다.
부아앙-!
우재성, 조금만 기다려라.
네 대표가 간다.
***
우재성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분명히 좋은 기회야. 그런데 왜 어딘가 석연치 않을까.’
오늘 이주혁과 대화를 꽤 오래 나누면서 가졌던 의문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
하지만 마음 깊숙이 남아 있던 의심은 지워지지 않았다.
아까 올해 상장하거나 떠오를 분야를 물어봤었다.
‘유튜브.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라.’
유튜브는 우재성도 관심이 있었다.
지금은 단순히 UCC 사이트로 이용되고 있지만, 사이트 자체의 인터페이스나 기능들을 조금만 더 손보면 이용자를 몇 배로 뛰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
‘여기서 깜짝 놀랄 뻔했지.’
우재성이 어렴풋한 아이디어만 있던 내용을, 이주혁은 정확하게 단어까지 사용하면서 해소해 줬다.
만약 정말 그의 말대로 이런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면…….
‘더더욱 이상하지. 아무리 봐도 나만큼의 지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으니까.’
이주혁이라는 사람에 대해 계속 생각하던 우재성의 뒤에서 커다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빵! 빠앙-!
“음?”
뒤를 돌아보자, 갱단으로 보이는 흑인들이 창문 너머로 총을 겨누고 있었다.
‘이것들은 또 뭐야.’
끼익.
자전거를 세우고 내린 우재성을 차 세 대가 다가와 둘러쌌다.
그리고 그 안에서 총을 든 괴한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중 하나가 권총에 그려진 표식을 보여주며 손짓했다.
“제이슨 우. 맞지? 보스가 부르신다. 얌전히 따라와.”
우재성은 입술을 깨물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젠장.’
저 표식은 이 근방 최대 규모의 갱, 비스트의 표식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놈들은 자신을 죽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우재성은 당당하게 나섰다.
“뭐야, 그건? 처음 보는데.”
“……뭐?”
“쓰레기면 쓰레기답게 총으로나 위협해. 어쭙잖은 너희들만의 멋이나 부리지 말고.”
그 말에 갱들이 분노한 얼굴로 우재성을 노려봤다.
‘차 안에서 탈출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우재성이 계획을 꾸미던 그때, 저 멀리서 바이크의 엔진음이 가까워졌다.
부우웅-!
‘설마 패거리들이 더 있는 건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우재성의 입이 쩍 벌어졌다.
“미친!”
엄청난 속도로 달려온 바이크가, 멍하니 그걸 바라보던 갱 몇을 그대로 밀고 가 아스팔트에 갈아 버렸다.
콰드득-!
“X발! 뭐야?!”
“갑자기 이게 무슨……!”
당황한 갱들은 피칠갑이 된 바이크를 향해 총을 겨눴지만, 거기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설마…….’
불안한 상상을 하던 우재성이 인기척을 느끼고 옆을 돌아보자, 태연한 표정의 이주혁이 목도리로 입을 가리고 갱단원 옆에 서 있었다.
“뭐……!”
“쉿.”
혼란한 상황에 갱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우재성은 다급하게 손짓하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도망가요!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그에 이주혁이 씩 웃으며 한국어로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제가 경호 회사 대표인 거 잊으셨습니까?”
“……?”
갑자기 들려온 낯선 언어에 갱들의 시선이 몰렸다.
하지만 이주혁은 신경도 쓰지 않으며 엄지와 검지를 붙이며 미소지었다.
“요금은 후불로 받겠습니다.”
이주혁의 품에서 번개같이 뽑힌 손이 옆에 있던 갱단원의 목덜미를 강타했다.
퍽!
동시에 놈이 들고 있던 총을 낚아챘다.
“자. 시작하자.”
***
탁!
테이블에 구속영장이 놓인 걸 본 배성복 서장의 눈빛이 당황으로 흔들렸다.
“이, 이게 무슨…….”
완고한 얼굴에 두꺼운 안경을 쓴 중년 남자, 서해결 검사가 뭘 묻냐는 듯 말했다.
“보면 모르십니까?”
“제가 이게 뭔지 몰라서 묻습니까? 갑자기 와서 이게 뭐 하시는 겁니까!”
서해결 검사는 서장의 말을 무시하며 지시를 내렸다.
“저기 책상 아래도 뒤져요. 본체 꼭 챙기고.”
“검사님!”
“예, 서장님.”
배성복 서장이 분노를 담아 소리쳤지만, 서해결 검사는 대수롭지 않았다.
“지금 당신 이러는 거, 나중에 감당할 수 있겠어?”
“협박죄도 추가하기 싫으면 조용히 가시죠.”
“증거 있냐고!”
“증거요?”
툭.
서해결 검사가 사진 몇 장을 테이블 위에 던졌다.
그걸 본 배성복 서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가 주철수에게 상자를 받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힌 사진이었다.
‘이런 X발! 이게 왜 저놈한테?’
그때 강남파에서 나왔다면서 주철수를 치라고 한 미친놈.
뒤를 캐보니 SA시큐리티의 이주혁이라는 놈이었다.
이 사진들은 이주혁이 배성복 서장을 협박할 때 썼던 사진들과 거의 비슷했다.
“여기 명백한 증거가 있습니다. 서장님.”
“이게 무슨 증거가 된다는 거요. 그저 사업 허가 건으로 잠시 만났을 뿐, 법에 저촉되는 행위는 한 적 없소.”
“그건 까 보면 나옵니다. 가시죠.”
배성복 서장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중얼거렸다.
“이주혁이야?”
“예?”
“이주혁 그 새끼냔 말이야.”
서해결 검사는 왜 서장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는 건지 궁금했지만, 일단 증인 보호는 기본이기에 말을 아꼈다.
‘이전에 둘이 만난 적이 있는 건가?’
배성복 서장은 침착한 서해결 검사의 표정을 보더니, 체념한 듯 어깨를 떨면서 낄낄댔다.
“서 검사님. 혹시 모르고 계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서해결 검사에게 다가온 서장이 속삭였다.
“이주혁. 그놈 강남팝니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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