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89
088화
회색 경차 안.
서해결 검사가 운전석에 털썩 앉았다.
“후…….”
배성복 서장을 구속하는 것까진 성공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증거로도 충분히 실형을 살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이주혁 씨가 강남파라니.’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강남파에서 손을 대고 있던 바다스토리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데도 이주혁의 공이 컸고, 청탁을 받으며 온갖 비리를 저지르던 배성복 서장의 검거에도 큰 기여를 했다.
아니, 고작 기여 수준이 아니라 이주혁 덕분에 몇 년이나 앞당겨진 거다.
하지만,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바다스토리 건도 그랬지.’
마침 바다스토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돌아다니던 때 접근했었다.
서해결 검사가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는 듯 말이다.
게다가 자신이 바다스토리의 피해자라면서 호소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이주혁의 어머니는 이미 사망한 지 20년이 넘었고, 부친도 작년 지하철 사고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사망했다.
‘아마 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만들기 위해 그런 거겠지.’
서해결 검사는 두꺼운 안경을 벗어 조수석에 내려놨다.
최근 들어 머리 아픈 일이 너무 많았다.
배성복 서장 건도 그렇고, 이주혁에 관해서도 조사하느라 통 잠을 자질 못했다.
그 상황에서 또 골머리를 썩이는 말을 들어 버렸다.
‘일단 더 조사해 봐야겠어.’
아닐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서해결 검사는 핸드폰을 열고 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잠깐 시간 돼?”
***
탕-! 퍽!
또 한 놈의 팔뚝에 총알이 박혔다.
“X발!”
“죽여! 죽이라고!”
나는 차 뒤에 몸을 숨긴 뒤 탄창에 두 발이 남은 걸 확인하고,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눈에 보이는 다리 두 개를 쐈다.
탕! 탕!
“으악-!”
눈앞에서 피가 줄줄 새는 팔을 부여잡고 있는 놈의 총을 뺏어 들고, 머리를 걷어차 재워줬다.
찰칵.
‘오케이. 아홉 발.’
일단 꼬라박긴 했는데, 생각보다 머릿수가 좀 많네.
그래도 상대할 만했다.
저놈들이 훈련된 군인이나 용병이었다면 위험했겠지만, 제대로 견착도 하지 않고 쏘는 총에 맞을 리가 없지.
차 옆으로 확 튀어 나가 슬금슬금 다가오던 놈의 양팔을 더블 탭으로 제압하고, 그 뒤에 있는 놈한테 한 발을 더 쏜 뒤 다시 숨었다.
이제 한 네 놈 정도 남았나?
“뭐 하는 새끼야!”
“조준! 조준해서 쏴. 이 병신들아!”
그래도 상황을 파악할 줄 아는 놈이 하나는 있네.
갑자기 높아진 난이도에 나는 돌담 뒤에 웅크리고 있는 우재성을 불렀다.
“우재성 씨.”
“뭐, 뭡니까.”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미국인이시니 총은 쏴 보셨겠죠?”
“그게 무슨 소리…….”
촤악-!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바닥에서 밀어 우재성에게 권총 한 자루를 보내고, 나는 피를 흘리고 있던 놈을 주워 들었다.
“아악!”
“엄호사격만 해 주시면 됩니다. 맞추면 더 좋고요.”
“쏴 본 적 없단 말입니다!”
“TV에서 본 대로 해요.”
비명을 지르는 놈을 방패로 삼아 앞으로 박차고 나갔다.
그러자 총을 쏘려던 놈들이 움찔했다.
그래. 망설임 없이 동료를 향해 갈기는 건 힘들 거다.
붙잡은 놈의 어깨 위로 총구만 꺼내 당황한 놈들에게 총알을 먹여 줬다.
탕! 탕!
“크악!”
“악!”
들고 있던 갱단원을 내던지고, 피를 흩뿌리며 쓰러지는 녀석들의 총을 잡아챘다.
그리고 다른 차 옆으로 황급히 굴렀다.
“이 개새끼가……!”
한 놈이 달려오며 기관단총을 난사했다.
연사는 반칙인데.
차 뒤에 몸을 숨긴 뒤, 손을 뻗어 사이드미러의 각도를 살짝 돌렸다.
거울로 돌담 위에 빼꼼 튀어나온 우재성이 보였다.
탕!
“끄아……!”
털썩.
놈이 쓰러지는 걸 본 우재성이 다시 돌담 아래로 쏙 사라졌다.
좋아, 잘하고 있네. 이제 하나 남았나?
다시 움직이려는데 차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튀려는 건가?
“X발! 빨리……!”
부아앙-!
급하게 시동을 건 놈이 빠르게 액셀을 밟으며 도망쳤다.
이 정도면, 정리는 됐네.
“우재성 씨. 이제 됐습니다.”
내가 다가가자, 우재성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생각보다 과감하네. 몇 발을 쏜 거야?
“잘하시는데요?”
“젠장…….”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우재성이 돌담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피가 난무하는 현장을 멍하니 둘러봤다.
현실감이 없겠지.
명문대 학생이 이런 일에 휘말려본 적이 있을 리가.
우재성은 침묵을 깨고 말문을 열었다.
“비스트 갱이라고, 이놈들은 코네티컷의 수많은 갱을 통일한 조직입니다. 이렇게 건드렸다가 저희라는 게 밝혀지면 엄청난 보복을 받을 겁니다.”
보복? 할 거면 하라고 해라.
“먼저 건드린 건 그놈들이죠.”
우재성이 미간을 좁히며 날 쳐다봤다.
“그게 무슨…….”
“저놈들이 먼저 함부로 우재성 씨를 건드렸잖습니까. 우리 회사의 중요 인력이 될 사람인데.”
“…….”
“그리고 악의에는 악의로 갚는 겁니다. 맨손으로 덤볐으면 팔다리만 부러뜨렸을 거고, 칼 들고 휘둘렀으면 힘줄 몇 개만 끊었겠죠. 그런데 이놈들은 명백히 저를 죽이려고 쏜 거잖아요?”
“그 말대로라면 이 사람들도 죽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맞는 말이다. 우재성으로선 이 사건의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놈들을 살려 둘 이유가 없겠지.
하지만 이놈들을 살려 둘 필요는 있다.
“오히려 살려 두는 게 낫습니다.”
“왜죠?”
“그래야 더 혼란이 생기거든요.”
아예 깔끔하게 묻어 버리는 것 보다, 이놈들이 본진으로 돌아가서 보고하게 둘 거다.
이 범죄자들은 몸에 총알을 달고 병원에 갈 수도 없으니 치료하는 데도 고생이겠지.
그럼 나는 그냥 따라가서 아지트 위치만 확인하고 오면 끝이다.
하지만, 우재성은 아직 걱정인지 표정이 어두웠다.
“우재성 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뿌리를 뽑아 드리겠습니다.”
“예?”
우재성한테 대표가 될 사람 능력도 좀 보여 주고, 이 동네의 뒷골목을 장악한 놈들 검은 달러도 좀 가져오고.
겸사겸사 비스트 갱이라는 조직을 싹 다 밀어 버려야겠다.
‘갱단을 혼자서 처리하는 건 무리니까.’
아무래도 이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들을 좀 초빙해야겠어.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우는 있던 중이었다.
우재성이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또 무슨 짓을 하시려고 그런 불길한 표정을 지으십니까.”
불길하다니. 내 일 처리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뒤탈 없이 깔끔하잖아. 목격자도 없고.
나는 우재성의 눈앞에 손가락 세 개를 폈다.
“딱 3일만 기다리십시오.”
씨익.
“비스트 갱을 미국에서 지워 드리겠습니다.”
***
우재성과 함께 숨어서 기다리다 부상자들을 쫓아 가 어디로 가는지 확인했다.
범죄자 새끼들이라 그런지 바닷가 외진 곳에 아지트를 두고 있었다.
나는 위치를 파악한 뒤 일단 우재성을 기숙사까지 데려다줬다.
안전한 거점이 생기면 우재성도 기숙사에서 빼 오든가 해야겠어.
“후…….”
그리고 숙소로 몰래 돌아와 몸에 묻은 것들을 다 닦아 냈다.
그러고도 찝찝해서 샤워까지 마쳤다.
유나 씨랑 마주할 건데 피 냄새 같은 걸 풍길 순 없지.
수건으로 몸을 닦고 침대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즐거운 미국 생활에 잠시 잊고 있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야, 이 새꺄!
“아이고, 부장님.”
라세흠 부장이 전화 너머로 노발대발했다.
-말도 없이 미국에 가?
“아, 일 때문에 간 거예요.”
-지랄하네. 거기서 또 혼자 재밌는 일 벌이고 있는 거겠지. 막 갱단이라도 건든 거 아니냐? 막 총 쏘고 이런 거 아니지?
와, 촉 한 번 귀신 같네. 어떻게 알았지?
“정답입니다, 부장님.”
-……진짜라고? 지금 혼자 갱단을 건들고 있다고?
나는 라세흠 부장이 더 열받기 전에 본론을 꺼냈다.
“아무래도 갱단이랑 전쟁을 벌여야 할 것 같은데, 우리 작전팀 애들 데리고 미국으로 넘어오세요.”
-진짜냐? 우리 진짜 미국으로 넘어가?
“제가 거짓말을 왜 하겠습니까. 빨리 와요. 호신 장비들 챙기시고.”
-오케이. 바로 달려간다.
아,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었지.
“그런데 부장님. 혹시 미국에 아는 사람 없어요? 맨몸으로는 무리라서.”
-아, 화기 말이냐? 아쉽게도 미국 쪽은 없어. 내가 영어 시간에 졸아서.
“그럼 다른 데는 있는 겁니까?”
-시칠리아 쪽에 하나 있긴 해. 그놈도 나랑 성향이 비슷하거든.
끔찍하네. 라세흠 부장이랑 비슷하다고?
“그럼 그냥 오세요. 따로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사원 복지 확실하게 준비해라. 먹을 거, 즐길 거 싹 다.
“누가 대푠지 모르겠네. 알아서 다 세팅해 놓을 테니까 잘 챙겨 와요.”
-준비하고 갈게. 끊는다.
“옙.”
흠. 어디 무기상 아는 사람 없나?
현지 총포상한테 괜히 눈탱이 맞고 기분 잡치는 것보단, 아는 사람한테 장비 구하는 게 나은데….
이건 천천히 찾아보기로 하고.
일단, 나는 노트북을 열어 비스트 갱을 검색해봤다.
그러니 이놈들에 관한 정보가 드문드문 돌아다녔다.
“아주 악질이네, 이거…….”
아까 우재성을 태워다 주면서 물어보니, 비스트 갱이 대충 무슨 일로 돈을 버는지 들을 수 있었다.
불법 무기 거래, 마약 밀매, 인신매매…….
하여튼 팔지 말아야 할 것들은 싹 다 파는 놈들이다.
게다가 간간이 상인들 삥 뜯기까지.
어지간한 한국 조폭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긴 하다. 괜히 우재성이 걱정하는 게 아니었어.
그래도 걱정은 되지 않았다.
우리 직원들이 보통 직원들이어야 걱정을 하든 말든 하지.
어차피 우리 부대원들이 나선 이상, 비스트 갱은 박살 나게 되어 있다.
이건 예정된 미래다.
***
라세흠 부장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넓은 대련실 안으로 들어갔다.
“얘들아-!”
퍽-!
낭만 주먹 고광목이 허공을 날아 라세흠 부장의 발치에 떨어졌다.
쿵!
“컥!”
고광목을 날린 사람은 몇 달 전 잡혀 와 지하실에서 고문받던 강남파의 이사, 마종석이었다.
강남파 정보도 다 불고, 주철수와 계약 기간이 끝났다면서 협조적으로 굴길래 최근 들어선 풀어놓고 지내는 중이다.
뭐, 도망가도 다시 잡아 올 자신이 있으니 말이다.
둘의 대련을 팔짱 끼고 구경하던 부대원들이 라세흠 부장에게 물었다.
“뭡니까? 부장님.”
“왜 그렇게 신나셨습니까?”
사회 물을 좀 먹어서 그런가, 이놈들이 부대에 있을 때보다 싸가지가 좀 없어지긴 했다.
그래도 기분이 좋으니 일대일 대련은 참아 주지.
“주혁이 미국 간 거 알지?”
“아, 예. 혼자 맛있는 거 처먹으러 간 거 아닙니까?”
“호출 왔다. 큰 건수야.”
그 말에 부대원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안 그래도 강남파가 잠잠해 다들 뒷골목 정리나 하던 중이었으니 그럴 만했다.
라세흠 부장이 기대에 찬 눈빛의 부대원들을 향해 외쳤다.
“갱단과의 전쟁이다! 다들 여권이랑 장비 챙겨!”
“우오오-!”
“이야-!”
부대원들이 펄쩍 뛰며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짐을 챙기기 위해 옷을 제대로 챙겨입지도 않은 채 허겁지겁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우두커니 서 있던 마종석 이사도 씩 미소를 지으며 벗고 있던 옷을 챙겨입고 그들을 따랐다.
주저앉아 있던 고광목은 옆을 지나가는 마종석 이사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 새끼는 뭐야?’
처음 봤을 때는 과묵한 느와르 주인공 같은 놈이었는데, 여기 직원들이랑 부대껴서 그런지 이놈도 눈깔이 점점 맛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새 우글우글하던 대련실은 텅 비어 버렸다.
고광목은 이 싸움광들이 나간 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 미친놈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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