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9
008화
“전부 해서 65억?”
“그래.”
사채로 빌려준 것까지 전부 합치면 그 정도라고 한다.
“빌려 준 건 바로 받아 와. 이자 같은 거 받지 말고 바로.”
“야……. 상도의는 지키자.”
“염병하네. 상도의 지키는 새끼가 사채하고 있냐? 받으라고 할 때 받아 와라.”
영광대출 사장 놈이 내 눈을 노려보고 있다.
그래 봐야 네 눈만 아프다.
“빌려 준 거 전부 회수하고 내가 투자하는데 붙어라. 수익금의 30%는 맞춰 줄게.”
“30%면 얼만데?”
“나도 모르지. 근데 못해도 투자금의 50%는 먹을 수 있다. 거기서 30% 떼 줄게. 어때? 이 정도면 괜찮지 않냐?”
65억을 투자하면, 최소 32억 5천만 원의 수익이 나고 여기서 30%를 챙겨 주는 거니까 10억 언저리가 된다.
물론, 이건 최소로 잡았을 때다.
급등한 주식이 악재를 만나면 어디까지 내려갈지 알 수 없다.
바닥에 바닥을 찍고 지하실도 구경하게 만드는 게 주식 판이다.
“그래서 나한테 얼마나 떨어진다는 거야?”
“10억은 넘게 떨어져. 그거 먹고 가지고 있는 거 합쳐서 은퇴해. 지방으로 가면 유지 정도는 해 먹을 수 있겠네.”
“하! 내가 꼴랑 그거 먹고 은퇴하겠어?”
“하기 싫어? 그럼, 하지 마. 그런데, 너 여기서 사채하는 거 주철수 허락은 받고 하는 거냐?”
“……!”
“새끼. 놀라기는. 허락 안 받고, 하고 있구나.”
주철수가 접수한 구역은 강남구와 서초구다.
여기 송파구는 애매한 위치였다.
강남구 바로 옆에 붙어있어서 주철수의 구역이라 하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하기엔 굉장히 밀접하게 붙어 있고.
주철수가 흡수한 조직에 있던 놈이 송파구라는 옆마당에서 장사질을 하는데 허락을 받지 않는다는 건,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짓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게 주철수의 지론이니까.
‘송파구도 내 구역인데, 말도 없이 영업을 해?!’ 이렇게 나오면, 사장 놈은 쥐새끼처럼 꼬리를 말아야 한다.
“주철수한테 내가 친히 말해 줄게. 남서방파에 있던 놈이 네 구역에서 말도 없이 장사하고 있다고.”
“……하지 마. 그건 하지 마라.”
주철수는 어지간히 무서운가 보네.
“알겠어. 안 할게. 대신, 투자받는 걸로 안다.”
“…….”
사장 놈의 입이 다물어졌다.
지금 그가 선택해야 하는 건 나냐, 주철수냐 하는 것이다.
나를 선택하면, 그나마 남는 거라도 있지만, 주철수를 선택하는 순간 사장 놈의 사채 놀이가 끝나는 건 물론이고, 안 그래도 자금이 필요한 시점이라 강탈을 당할 수도 있다.
머리가 나쁜 놈은 아닌 거 같으니,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는 알겠지.
“하……. 오지게 엮이네.”
“네가 못 되게 살았던 벌을 받는 거지. 그래도 나란 천사를 만나서 얼마나 다행이냐? 10억은 더 먹고 떨어질 수 있잖아? 응?”
“……후.”
“인상 풀자. 당장 내가 주철수한테 달려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응?”
“크음…….”
괜히 헛기침하며 얼굴을 틀었다.
여기서 나하고 싸워 봐야 지는 놈은 사장이다.
물리적인 싸움뿐만 아니라, 주철수라는 협박 카드까지 내가 가지고 있기에 사장 놈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일주일. 그 안까지 현금으로 65억 준비할게.”
“콜!”
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사장의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야. 근데 너…….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당연히 무사하지.”
“내가 어디 출신인지 잊은 건 아니겠지? 너 평생 뒤통수 조심하면서 살아야 할 거야.”
“왜? 뒤통수에 빠따라도 날리려고? 맘대로 해라.”
난 고개를 틀었다.
“대신, 꼭 성공해라. 나 죽일 생각으로 하는 거면 무조건 성공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내가 널 죽일 거니까.”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이런 협박이 하루 이틀이겠냐? 전생에 지겹게 들어서 너 같은 놈한테는 긴장감도 안 든다.
***
“사장님. 어떻게 할까요? 남서방파 식구들 다시 모을까요?”
김 군이 ‘영광대출’ 오영광 사장에게 다가가 물었다.
십수 년 동안 조직 생활을 하면서 이런 치욕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조직에서 나와 사채업을 하고 있다지만, 저런 핏덩이에게 이런 수모를 겪을 줄이야.
피가 새어 나오는 중지에 반창고를 붙이고 정강이에 얼음찜질을 하고 있던 오영광 사장이 소파에 누운 채로 고개를 저었다.
“건드리지 마.”
“예? 사장님. 이대로 넘어가실 겁니까? 저 새끼 저거 완전 강제로 우리한테 투자하라고 협박했습니다. 깡패 새끼도 아니고.”
“우리가 깡패잖아.”
“뭐…….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사장님.”
“김 군아.”
“예?”
오영광 사장이 겨우 몸을 일으키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저 새끼 선수다.”
“선, 선수요?”
“눈빛 못 봤냐? 사람 한두 번 담가 본 놈이 아니야. 어디서 굴러먹다가 온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새끼 백 프로 선수 출신이야.”
“……!!”
여기서 말하는 선수가 당연히 야구 선수, 축구 선수를 말하는 게 아니다.
흔히들 말하는 칼잡이들. 또는 킬러들을 그들만의 은어로 선수라 불렀다.
조폭들이 조심해야 하는 것도 선수였다.
그들은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나타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람을 죽인다.
증거도 없고 티도 나지 않으며, 살기가 몸을 아리게 만들 정도다.
이주혁이 나가던 그 순간, 오영광 사장은 그런 살기를 느꼈다.
남서방파에 있을 때, 주철수 사장 옆을 지키던 선수와 같은 살기를.
“건드렸다가 실패하면 우리 둘 다 소리소문없이 이 세상 하직한다.”
“…….”
“투자나 하자. 최소 10억은 챙겨 준다니까 더 챙길 수 있게 기도나 하자고.”
“사, 사장님.”
평소에 보이지 않던 약한 모습이었다.
자기가 아는 오영광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어떤 놈이든 부딪히고 보는 스타일인데, 이주혁이라는 저 젊은 놈한테 겁을 먹은 것이다.
이빨을 드러내는 것보다,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게 현명하다는 게 오영광의 판단이었다.
“너 고향 어디냐?”
“충줍니다.”
“여기 정리하면 거기로 가자. 난 울릉도 출신인데, 섬에는 가기 싫어서.”
“아……. 예. 사장님.”
이 이상 미련을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쓸데없는 미련은 명을 재촉하기 마련이다.
떠날 수 있을 때, 홀연히 떠나야 한다.
그게 저 괴물 같은 이주혁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고, 호랑이 같은 주철수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방법이니까.
***
“영광대출 투자금까지 합쳐도 95억이네. 씁. 이걸로도 부족한데.”
95억이면 상당히 큰돈이지만, 대차 거래를 하기엔 부족한 금액이다.
95억에서 50% 이득을 본다고 해도 47억 5천만 원이다.
그걸 온전히 다 가져가느냐? 그것도 아니다.
최대투자자인 영광대출에 30%는 떼 줘야 한다.
‘사실 쩐주가 30프로만 가져가는 게 말도 안 되지만…….’
어쨌든 그렇게 계약했으니 된 거지.
“전화해 봐야겠네.”
대차 거래를 위해서는 더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100억의 50%는 50억이다.
200억의 50%는 100억이고.
투자금이 많아질수록 가져갈 수 있는 이윤이 커진다.
난 곧바로 일전에 받은 명함으로 전화를 걸었다.
존 허. 투자계의 거물과 만날 약속을 잡고 압구정으로 향했다.
.
.
“소장님 덕분에 상당한 수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뭘요. 젊은 분이 패기 넘치게 도전해서 성공한 거죠.”
HS투자연구소의 허효섭 소장. 내겐 존 허로 더 익숙한 인물이 내 감사 인사에 손을 절레절레했다.
“줄기세포 테마 중에서도 대장주를 잡았으니, 그만한 수익을 가져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렇지. 존 허 말대로 대장주를 잡았기에 가능했던 거지.
그런데, 그걸 존 허라고 모르고 있었을까?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비상장 주식을 왜 저한테 파신 거죠? 줄기세포가 하나의 테마를 이룰 거라는 것도 아셨을 테고 ‘메디슨 포스터’가 대장주라는 것도 아셨을 텐데요.”
“확률을 따른 거죠.”
“확률이라면?”
“전에도 말씀드린 거 같지만, 이 바닥에서 20년입니다. 그동안 상장 주식의 행보가 어떻게 됐는지 확률적으로 통계를 낸 게 있죠. 그중에 60프로 정도는 시초가를 훌쩍 넘어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하지만, 나머지 40프로는 반대입니다. 공모가격보다 못한 시초가를 형성하고 하한가로 직행하는 경우도 있죠.”
전생에 작전주만 건드렸더니, 이런 건 몰랐다.
“저는 승률이 80프로 이상일 때만 거래합니다. ‘메디슨 포스터’는 분명히 매력적인 종목이었지만, 저의 신념에는 부합되지 못하는 종목이었죠. 그래서 판 겁니다. 제가 가진 주식을 당신이 주당 20,000원에 사가는 건 100프로 수익이 나는 거였으니까요.”
주식 거래 시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신념을 지킨다.
자기가 정해 놓은 규칙을 지키고 그에 벗어나면 과감하게 쳐 버리며 부합하면 마땅히 거래에 임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존 허는 그런 신념을 바탕으로 20년 동안 수익을 냈고, 앞으로 15년 동안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것이다.
“대단하시군요. 돈 앞에서 그러기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쉽습니다. 돈에 집착해서 안 쉬운 거죠. 원칙만 지키면 돈 벌기 이렇게 쉬운 판도 없습니다.”
확실히 투자계의 전설이 될 만한 양반이네.
“그건 그렇고. 저를 왜 보자고 하신 건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존 허가 물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타이밍이다.
“‘메디슨 포스터’로 맺어진 인연이잖습니까? 이번에도 같은 종목입니다.”
“……?”
“소장님의 원칙이 확률이라고 하시니 묻고 싶습니다. ‘메디슨 포스터’의 주가가 앞으로 하락할 확률은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음……. 확률이라.”
난 백 프로로 보고 있다.
물론, 미래를 알기 때문이다.
존 허 소장은 어떻게 생각할까?
“99프로죠.”
“……?!”
“‘메디슨 포스터’는 99프로 내려갈 겁니다.”
뭐야? 이 사람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한다고?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실적 하나 없는 회사가 너무 올랐으니까요. 제대혈은행이나 세포치료제 연구 같은 주 사업은 당장 수익을 낼 수 없습니다. 줄기세포라는 키워드 하나로 공모가보다 거의 10배 가까이 올랐는데, 당연히 내려가겠죠.”
“예외라는 것도 있을 수 있잖습니까?”
“그 예외가 사라진 상태죠.”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메디슨 포스터’를 견인하는 건 황운석 박사의 연구입니다. 줄기세포라는 게 하루 만에 뚝딱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미 복제 개를 통해서 성과를 보여 줬으니, 이렇다 할 성장 동력이 없죠. 이제부터는 기관이나 외국인이 차익을 실현하는 시간일 겁니다.”
“…….”
내 생각과 정확히 일치했다.
다른 점이라면, 난 미래를 알기에 가능했던 거고, 이 사람은 모르는데도 이런 추론을 이끌어 냈다는 거였다.
‘괜히 전설이 아니네…….’
감탄사가 튀어나올 뻔한 걸 참았다.
존 허. 대단한 사람이다.
“젊은 투자자분이 ‘메디슨 포스터’의 하락을 논하고 있는 걸 보니……. 대차 거래라도 할 생각인가 보군요.”
“그렇습니다.”
투자에 관해서는 그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었다.
난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저는 100프로 ‘메디슨 포스터’의 하락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투자금을 더 구하고 싶어서 허 소장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저한테 자금을 빌리고 싶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가능한 한 많이 빌리고 싶습니다.”
“음…….”
이제 두 번 만난 사이인데, 돈 빌려 주기 애매하겠지.
이럴 때 쓰려고 준비해 놓은 멘트가 있다.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말라고 했습니다.”
“……?”
“반대로 말하면 확실하다면 승부를 걸어야 하는 거죠. 전 이번에 승부를 걸 겁니다.”
아직 영화 ‘타짜’ 개봉 전이다.
이 명대사를 내가 먼저 써먹었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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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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