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99
098화
한 남자가 차가운 공기에 흠칫 몸을 떨며 눈을 떴다.
“후…….”
이주혁의 집 앞에서 돈 귀신들에게 납치된 서해결 검사였다.
찡-!
“윽!”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에 서해결 검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얼굴에서도 화끈한 고통이 느껴졌다.
손으로 더듬어 보려다, 팔이 의자에 묶여있다는 걸 깨달았다. 안경도 벗겨져 눈앞이 흐렸다.
‘내가 왜 여기에…….’
아직 멍한 머리에 눈을 꾹 감았다가 뜨니, 주변이 천천히 시야에 들어왔다.
눅눅하고 좁은 방. 무슨 타일 같은 게 깔린 바닥 위에 비닐이 펼쳐져 있었다.
서해결 검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죽일 생각인가……? 아니, 그럼 진작 죽였을 텐데. 뭐지? 인질?’
그렇다기엔 자신에게 큰 가치가 있다고 하기엔 어려웠다.
그때 서해결 검사의 머릿속에 납치되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거 놓……!
-퍼억!
욱신.
생각해보니 뒤통수를 맞았었다.
얼굴의 통증은 유리 파편에 베였기 때문이리라.
의자에 몸을 기댄 서해결 검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주혁 씨를 추적하던 도중 납치라…….’
이게 정말 우연일까?
혹시 이주혁이 그들을 사주한 건 아닐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미국에 간 이유도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기 위함일 거다.
그런데 마냥 그렇게 생각하기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이주혁 씨가 했다면 이렇게 대놓고 납치할 리는 없다.’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일단 탈출이 우선.
다행히 지금은 이 방 안에 아무도 없긴 하지만, 언제 그들이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서해결 검사의 눈에 작은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의 재킷이 보였다.
저 안에 핸드폰과 지갑을 넣어 놨었다.
그들이 옷을 뒤진 게 아니라면, 아마 바깥에 연락할 수 있지 않을까.
“끙…….”
덜컹.
서해결 검사가 일어나기 위해 몸에 힘을 줬지만 어림도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무슨 줄로 팔과 몸통을 두르고 의자 등받이 뒤로 손을 묶어 놓은 상태였다.
“흡.”
발로 의자의 아랫부분을 밟고 팔을 천천히 비틀자, 줄이 살짝 헐거워지며 팔다리가 살짝 움직였다.
반동을 주며 의자를 튕기니 앞으로 조금씩 이동할 수 있었다.
쿵. 쿵.
‘조금만 더…….’
얼굴이 시뻘개진 서해결 검사가 힘겹게 의자를 돌려 뒤로 묶인 손을 까딱였다.
손에 재킷이 걸릴랑 말랑 했다.
탁.
“됐다……!”
겨우 손가락 끝에 걸린 재킷을 부들부들 떨며 꽉 붙잡은 뒤, 손을 바꿔가며 감각으로 재킷의 주머니를 찾았다.
슬슬 손가락이 저릴 때쯤, 손가락을 스치고 무언가가 떨어졌다.
탁!
“이런.”
서해결 검사의 심장이 철렁 떨어졌다.
바닥에 깔린 비닐 위에 핸드폰이 처량하게 놓여 있었다.
이제 저 핸드폰을 손으로 집을 방법은 단 하나.
잠시 숨을 고르던 서해결 검사가 각도를 맞춘 뒤, 발을 박차 의자를 뒤로 넘겼다.
끼익-!
“후읍!”
쿵!
“끄윽…….”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서해결 검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밑에 깔린 손을 더듬어 핸드폰을 찾던 순간, 방의 문이 열렸다.
벌컥!
“뭐이야?”
“……!”
서해결 검사의 안색이 백짓장처럼 창백해졌다.
***
저벅.
나는 미간을 좁히고 걸어 나오는 아귀(餓鬼)라는 놈을 살폈다.
“하, 인상 한번 더럽네.”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놈이 건들거리며 인사했다.
“니가 그 소문의 이주혁이구나.”
머리는 머리띠로 싹 넘겼고, 넙데데한 얼굴 안에 쭉 찢어진 입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이라기보단 물고기와 닮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 몸은 짐승 같았다.
“허.”
축복받은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 2미터는 족히 될 법한 키에, 실전으로 극한까지 단련된 근육이 옷 틈으로 비쳐 보였다.
이거, 피지컬 하나는 괴물이네.
척 봐도 내 눈앞의 돈 귀신들과는 수준이 다른 놈이다.
놈이 거친 목소리로 낄낄댔다.
“삼합회랑 강남파 둘 다 몸 사리고 있으니 상관이 없다?”
“어. 그런데.”
“큭. 우리 삼합회를 고작 강남파 따위랑 같은 위치에 놓고 있는 기야?”
끼익.
묵직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놈에게서 살기가 느껴졌다.
피지컬이며, 살기며.
전생에서도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 라세흠 부장에게 물었다.
“부장님. 어때요?”
“보통 놈이 아니네.”
“마종석 위죠?”
“어.”
강남파 간부 중 대인 격투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외국 용병 출신 마종석 이사의 윗선이라.
마 이사도 때려잡았던 라세흠 부장이 이 정도로 경계할 정도면, 나도 상대하기 꽤 벅찬 놈이겠네.
“일단 기다려요. 돌발 행동하지 말고.”
놈이 어떤 수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지.
저렇게 우락부락하게 생겨서 갑자기 입에서 독침을 뱉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라세흠 부장을 보고도 여유로운 표정을 한 놈을 향해 혓바닥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래. 네가 저 안경잽이가 말한 아귀냐?”
“그렇게 불리긴 한다.”
“응. 그래 보인다. 싱싱해서 바로 아귀찜 안에 들어가도 될 것 같이 생겼어.”
“흐흐.”
안 그래도 길쭉한 놈의 입꼬리가 미소를 지으니 더 늘어났다.
이 정도면 징그러운 수준인데.
“내가 웬만하면 이런 말 안 하는데, 진짜 X같이 생겼네.”
“푸하하.”
놈은 아귀 같은 입을 쩍 벌리며 웃더니 책상을 탕 치며 의자에 앉았다.
“왜, 대화 좀 나누려고?”
“듣자 하이 100억이 있다던데.”
“말했잖아. 검사 넘기면 준다고.”
“아이지.”
슥.
아귀가 뻔뻔하게 손을 내밀었다.
“일단 100억부터 넘기라.”
“뭐?”
“그라믄 살려는 준다.”
“에이, X발. 양아치 같은 새끼.”
이거 아무래도 대화로 해결하긴 어렵겠는데?
“100억 안 주면, 팔다리 다 뜯어서 개밥으로 던져 주마.”
“어이가 없네, 개새끼가.”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라세흠 부장이 벌떡 일어났다.
에헤이, 거참. 아직 안 된다니까.
“부장님.”
라세흠 부장의 팔을 붙잡고 다시 앉혔다.
지금 이놈들과 붙어서 좋을 게 없다.
서해결 검사의 안전이 우선이니까.
잠자코 있던 안경이 아귀를 말렸다.
“아귀.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안 했니. 이주혁이 모가지만…….”
우웅.
안경의 품 안에서 진동이 들려왔다.
나는 책상 밑으로 라세흠 부장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부장님이 아귀. 내가 나머지.’
‘확인.’
안경은 문자를 보내는지 핸드폰을 꾹꾹 누른 뒤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뭐지? 윗선에서 지시가 떨어졌나?
“운이 좋구나 야. 위에서 오다가 떨어졌다.”
“뭔데.”
“돈만 받아도 된단다. 니 모가지는 굳이 필요 없다네?”
이제 와서 필요 없다고?
“아까는 주철수가 직접 의뢰한 거니 뭐니 하더니, 지금은 또 말을 바꾸네? 100억에 합의 본다고?”
“150.”
“하, 이 새끼들이.”
“검사 살리고 싶지 않니?”
“오케이. 100억.”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안경이 씩 입꼬리를 올리며 시간과 장소를 지정했다.
“내일 20시. 현천동 폐공장으로 오라.”
“현천동이면…. 섬유공장?”
저번 강남파 마약 사건 때 마약이 적발돼 문을 닫은 공장이었다.
“그래. 거기. 다른 사람이 개입하면 검사는 죽는다.”
이 새끼, 왜 주철수 쪽에서 소유하고 있는 땅에서 인질극을 하려는 거지?
설마 주철수를 팽해 버릴 생각인가? 아무리 주철수가 몸을 사리고 있어도 얘네가 날려 버릴 정도로 약해지진 않았을 텐데.
괜히 주철수가 아직 체포되지 않은 게 아니다.
뿌려 놓은 게 그만큼 많으니까 그런 거다.
“이제 가 보라. 아직 식사를 못 했거든.”
“부장님. 가시죠?”
“뭐? 이대로 간다고?”
라세흠 부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여기서 이놈들을 어떻게 다 조져 봤자 의미가 없거든.
마침 이놈들이 협상을 제안한 장소도 아주 마음에 들고 말이야.
드르륵-.
“내일 보자고.”
나는 대답도 듣지 않고 라세흠 부장과 가게를 나섰다.
아귀의 따가운 시선이 계속 뒤통수에 꽂혔다.
바깥으로 나오자 답답했는지 라세흠 부장이 날 툭 치며 물었다.
“뭐, 네가 물러날 때는 이유가 다 있겠지. 난 저놈이랑 붙을 수만 있으면 상관없다. 아, 그 검사님도 구해야 하고.”
나는 핸드폰을 꺼내 한 번호로 전화를 걸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부장님이랑 붙을 수 있게 할 겁니다.”
“흐흐. 기대되는구만.”
라세흠 부장의 소원대로, 아귀는 부장과 붙여 놓을 생각이다.
아마 부장님이 기대하는 일대일은 아니겠지만 말이야.
***
한 룸살롱 안.
“스읍…….”
담배 연기를 깊게 마신 남자가 재를 털었다.
최용달이 뒤를 닦아 주던 국회의원, 최철호였다.
“주 사장.”
“예. 의원님.”
최철호 의원은 한참을 담배만 피우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마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 될 것 같군.”
“…….”
그 말에 주철수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그게 무슨…….”
“알 만한 사람 아닌가.”
단호한 말에 주철수가 튀어나오려던 욕을 집어삼켰다.
‘이런 X발……!’
하지만 지금은 손 벌릴 수 있는 곳이 별로 남지 않았다.
애초에 얕게 교류하던 곳은 진작에 연락이 끊겼고, 그나마 거액의 로비를 하던 이들만 겨우 약속을 잡을 수 있는 상황.
주철수는 자존심을 누르고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의원님! 저 주철숩니다. 제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지 아시잖습니까.”
“음, 알지.”
고개를 끄덕인 최철호 의원이 담배로 주철수를 가리켰다.
“그래서 문제라는 거야. 주 사장이 그런 방식으로 올라왔으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라고.”
꾸욱.
주철수가 주먹을 꾹 쥐고 더욱 허리를 숙였다.
“의원님. 부탁드립니다. 딱 한 번만 구제해 주시면, 전부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겠습니다.”
“원래대로? 어떻게.”
“의원님의 그림자가 되겠습니다. 현금은 다 의원님한테 들어갈 것이고, 더러운 일은 강남파가 도맡아 하겠습니다.”
“자존심을 많이 내려놨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사실상 이제 대한민국에서 강남파 이름을 내걸고 뭔가를 하긴 불가능했다.
아예 싹 다 세탁해서 처음부터 시작하기엔 최소 몇 년이 걸린다.
그렇다면 최대한 빠르게 세력을 회복할 방법은 단 하나였다.
‘다른 세력의 기반을 통째로 집어삼킨다.’
원래 자기가 직접 해 먹는 것보단 남이 차려 놓은 밥상을 떠먹는 게 더 편한 법.
주철수는 최철호를 이용해 남의 밥상을 빼앗아 버릴 생각이었다.
‘최철호는 너무 커서 지금 상태론 소화하지 못해. 적당한 사업장을 찾아서 일단 자금을 불리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최철호 의원은 그런 주철수를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주 사장. 그동안 많이 벌어 놨지 않나?”
“예?”
“그냥 어디 조용한 데 들어가서 여생 살아. 감방에서 보내기 싫으면.”
“……조언 감사합니다.”
치익.
최철호 의원이 짧아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가 봐. 대화 즐거웠네, 주 사장.”
“건승하십쇼. 의원님.”
뒤돌아 나오려던 주철수를 최철호 의원이 불러세웠다.
“아, 주 사장.”
“……?”
“계속 주 사장 괴롭혔다던 그 업체 사장 있잖아. 이름이 뭐였지?”
빠득.
‘이런 X발놈이…….’
숨을 크게 들이쉰 주철수가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이주혁입니다.”
“이주혁. 그렇구만.”
“그럼, 가 보겠습니다.”
주철수는 분을 참으며 건물을 나왔다.
“이 X발 새끼가 진짜…….”
핸드폰을 꺼내 돈 귀신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주혁을 죽이라고 보낸 지가 언젠데, 아직도 연락이 없는 게 말이 된단 말인가.
뚜르르-.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뿌득.
이를 간 주철수가 타고 온 차에 올랐다.
위장한 번호판으로 추적을 피할 수 있게 만든 차였다.
“사장님. 얘기가 잘 안 풀리신 겁니까?”
운전석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호팀장, 배상훈이 뒤를 보며 물었다.
주철수는 피곤한 얼굴로 뒤로 기대며 손짓했다.
“가지.”
“예.”
그나마 가장 쓸 만한 놈이 배신자로 의심되는 상황이라니.
몇 달 전과 달라진 상황에 주철수는 손으로 얼굴을 짚었다.
“X발…….”
아무래도, 삼합회 쪽에 연락을 넣어야겠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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