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98
097화
비행기에서 내린 우리는 회사로 돌아가기 위해 이동했다.
“우재성 씨. 더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면세점에서 사실 거 없어요?”
“예, 중요한 건 다 챙겼습니다. 필요한 게 생기면 거기서 사겠습니다.”
“그럼 저한테 말씀하세요. 기본적인 건 다 지원해 드리거든요. 이런 직장 또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사면 됩니다.”
우재성이 면세점은 시선도 주지 않고 성큼성큼 검색대로 걸어갔다.
돈 많다 이거야? 보통 면세점 쇼핑은 못 참는데.
“먼저 가시게요?”
“예. 한국에 가면 들러야 할 곳이 있어서요. 하루만 시간을 주시죠.”
“그럽시다.”
우재성은 결국 나랑 같이 한국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이상한 말을 하더라.
-생각해 봤는데, 이주혁 씨의 방식대로라면 저한테 굳이 학위가 필요할 것 같진 않군요. 시간을 아끼는 게 좋겠습니다.
아마 칭찬의 뜻으로 하는 말일 거다.
어쨌든 우재성을 5년 동안 내 밑에서 굴릴 수 있게 됐다.
머나먼 미국까지 날아가서 갱이랑 전쟁을 벌인 보람이 있다는 거지.
“유나 씨, 가실까요? 혹시 뭐 기념품 같은 거 안 사가도 되겠어요?”
그 말에 임유나가 캐리어를 툭툭 두들겼다.
“이미 주혁 씨가 사 준 것들로만 가방이 꽉 찼어요. 이걸로도 충분해요.”
“그럼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요. 제 가게 음식이 그립네요.”
“저도 그렇습니다. 뜨끈-한 국밥에 김치 한 포기가 얼마나 그립던지……. 라면으로는 안 되죠.”
상상만 해도 벌써 군침이 싹 돌았다.
그때, 한국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용달파의 보스이자 SA흥신소를 담당하고 있는 최용달이었다.
최근 흥신소 본진을 서울로 옮기느라 바쁠 텐데, 왜 전화한 거지?
“무슨 일이에요?”
-어, 이 대표. 네 뒤를 캐던 검사 있잖아.
“아, 서해결 검사요?”
안 그래도 가서 만나려고 했는데, 무슨 일이지?
“그 양반은 왜요.”
-씁……. 그게, 네 집 앞에서 실종됐거든.
“예?”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소식 들려오던 사람이 갑자기 실종이라니.
-아무래도 상황이 조금 꼬일 것 같다.
“아, 그렇네. 나 조사하다 사라졌으니까 잘못 걸리면 골치 아프겠는데요. 혹시 뭐 들리는 소식 없어요?”
-음…….
“뭐야. 불안하게.”
-서해결 검사 동생이 경찰인데, 그 동생한테 널 조사하고 있다는 걸 말했나 봐.
“……이런.”
진짜 꼬여 버렸네.
이러면 누가 봐도 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
“일단 한국 들어가니까, 그때 다시 얘기합시다.”
내가 의심받는 건 괜찮다. 누명은 벗기면 되니까.
다만 가장 골치 아픈 건, 서해결 검사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경우다.
살인 사건에 엮여 버리면 진짜 빠져나가기 힘들어진다.
그러면, 주철수를 치는 일에도 제동이 걸리겠지.
최용달이 혀를 차며 물었다.
-누구 짓인지 예상이 좀 되나?
“뭐, 뻔하지.”
강남파도 쪼그라든 지금 시점. 우리 집 앞에서 검사를 납치할 만한 놈들은 딱 하나로 좁혀진다.
“그 연변 킬러 새끼들.”
-음…….
아무래도 슬슬 회복해서 싸돌아다니나 본데…….
다시 조져 놔야겠네.
***
‘마포구라.’
킬러들의 안주머니에 넣어 둔 추적기가 놈들의 위치를 알려 줬다.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라세흠 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이후로 움직임은 없었다더라. 바로 갈 거지?”
“당연하죠.”
“오케이. 운전해.”
자연스럽게 라세흠 부장이 조수석에 올랐다.
같이 간다고 한 적도 없는데?
“같이 가시게요?”
“허, 당연하지. 혼자 갈 생각이었어?”
갱들을 다져 놓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몸이 근질거리는 거야?
“뭐, 같이 가시죠.”
그래도 든든한 국밥 같은 라세흠 부장이 같이 가면 좋긴 하겠지.
“좋지.”
탁.
운전석에 타자 라세흠 부장이 손을 비비며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누구냐. 카람빗 두 자루 쓰던 놈. 그 놈은 좀 하는 것 같던데.”
“부장님이 나서면 금방 끝날 겁니다. 그리고 싸울 일도 크게 없을 거고.”
“뭐? 싸우러 가는 거 아냐?”
이 양반은 머릿속에 싸움밖에 없나.
분명히 처음 음식점에서 만났을 때까진 괜찮았던 것 같은데, 손맛 좀 보더니 군대 시절로 돌아가 버렸네.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음?”
“놈들은 주철수한테 독이 될 거라고.”
마침 주철수는 구석에 웅크리고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하지만 그건 의미가 없을 거다.
이 폭풍은 널 쓸어 버릴 때까지 지나가지 않을 예정이거든.
.
.
끼익-.
차를 세우고 내려 주변을 살폈다.
“여기냐?”
“예.”
내가 기억하는 차이나타운보다 더 낡고 낙후돼 보이는 동네.
뭐, 15년은 더 과거니까 당연하겠지.
전생에 몇 번 왔을 때 봤는지 눈에 익은 건물들이 몇 개 눈에 띈다.
“저쪽이죠?”
“그래.”
GPS에 찍혔던 놈들의 위치로 이동하기 위해 거리로 들어섰다.
양쪽의 가판대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의 시선들이 몰렸다.
아무래도 낯선 사람이라 그런가, 경계하는 느낌이 강했다.
라세흠 부장의 외모에 겁을 먹었는지 가게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사람도 보였다.
하긴, 나라도 저 얼굴을 마주치긴 싫을 거다.
“음. 좀 깊숙한 데 있는데?”
“이놈들의 거점인 건지, 일부러 으슥한 곳으로 끌어들이는 건지 모르겠네요.”
“일단 가 보면 알지 않겠냐? 저번에 총은 없었잖아? 꿀릴 거 없지.”
라세흠 부장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이쪽.”
위성 지도만 보고 길을 다 외운 건가.
괜히 교관이 아니었다는 듯, 라세흠 부장은 막힘 없이 어딘가로 향했다.
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며 조용히 뒤를 따라 걸었다.
“…….”
이곳 주민 중 우리를 노려보더니 어딘가로 달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저게 단순히 외부인에 대한 적대감에 의한 걸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보고하기 위해서일까…….
“음?”
라세흠 부장이 걸음을 멈췄다.
뭐야, 도착한 건가?
그렇다기엔 부장이 멈춘 곳은 한 음식점 앞이었다.
나름 고급 식당인 것 같은데, 어째 안에 사람이 없네.
“부장님. 여기에요?”
“그래. 난 으슥한 지하실이나 폐공장 같은 게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부장님이 GPS를 잘못 볼 리도 없고.”
“에이, 뭘 고민하고 있냐. 일단 들어가는 거지.”
라세흠 부장은 문을 활짝 열며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후.”
놈들이 내가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해결 검사를 죽일 거였으면 진작 죽였겠지.
나도 부장을 따라 들어섰다.
그때, 가게 안쪽에서 익숙한 실루엣들이 걸어나왔다.
“둘이 왔니?”
“어. 안경잽이야. 둘이 왔어.”
내가 손을 슥 들며 인사하자, 안경을 쓴 중년을 필두로 풍원한정식에 침입했던 킬러들이 다가왔다.
옆에서 라세흠 부장이 살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여기 맞네?”
“일단 기다려요.”
놈들을 노려보며 가만히 있으니, 안경과 벙거지를 눌러 쓴 놈 둘이 자리에 앉았다.
나머지는 뒤에 서서 건들거리는 게, 아무래도 이 둘 중 하나가 얘네들 리더인가 본데.
“…….”
실력으로 따지면 벙거지가 대가린데, 이놈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대신 그 옆자리에 앉은 안경이 말문을 텄다.
“우르르 몰리 올 줄 알았는데, 뭔 자신감으로 둘이 온 거니?”
“하나로도 충분한데, 혼자 오면 심심할까 봐 둘이 왔어.”
“그러니? 오귀야. 마실 것 좀 내오라.”
“알겠슴다.”
날 째려보던 대머리가 몸을 홱 돌렸다.
저놈이 나한테 턱을 얻어맞았던가?
“마실 건 됐고.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안경 중년이 잠깐 고민하더니, 정말 궁금하다는 투로 물었다.
“그런데, 그때 여장은 왜 했니?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야.”
“풉.”
옆을 홱 돌아보니, 라세흠 부장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근엄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젠장. 하필 부장한테 그 꼴을 보여서…….
“위장이었다. 그래서, 니들이 데려간 사람은 어딨어?”
“그 검사?”
“그래. 무사하긴 한 거냐?”
안경이 히죽 재수없는 미소를 지었다.
“무사 안 하다면 어쩔라고?”
“다 뒈지는 거지.”
나는 라세흠 부장에게 전수받은 전매특허, 살벌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때 니들을 놓쳐서 그냥 보내 준 것 같냐?”
내 말에 앞에 서 있던 염소수염이 발끈했다.
“이런 전갱이 지느러미 같은 새끼가 개나발을 부는구나. 眼鏡(안경) 성. 내 이 새끼를 다져 버리겠소.”
“다져지는 건 너고 이 새끼야. 전갱이? 전갱이 다져진 것 같이 생긴 새끼가 얻다 대고 지랄이야?”
실실 웃으면서 긁자, 염소수염이 품에서 손도끼를 꺼냈다.
일단 서열을 정리해야 대화가 잘 통하려나.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안경이 손을 들어 염소수염을 제지했다.
“사귀(四鬼)야, 아서라. 네 상대가 아이다.”
“뭐요? 그때는 방심해서 그런 거지, 내 본 실력이 아니었…….”
“아가리 닥치고 가만 있어라. 사귀야, 상황 판단이 안 되면 나대지를 마라.”
안경의 핀잔에 염소수염이 어두운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음. 그래도 안경이 말 안 듣는 놈들을 갈굴 위치는 되나 보네?
“안경 아재는 그래도 좀 대화할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그래. 니는 그 양반을 돌려받으러 왔겠지?”
“당연한 말을 하네. 아니면 내가 왜 여기 앉아 있겠어?”
안경 중년이 안경을 슥 올렸다.
“방식이 거칠었던 건 사과하지. 우리도 가진 패가 필요해 그런 거이니.”
“왜. 내 목숨이랑 교환하려고?”
“그래.”
탁.
안경이 손바닥으로 책상을 쳤다.
“니는 깔끔하게 목 내놓고, 그 검사는 니가 데려온 양반이 데려가면 된다.”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내 목을 내놓으라고?
뒈지는 건 한번으로 충분하다, 이 새끼들아.
“얼마 받았어?”
“뭐야?”
“주철수한테 얼마 받았냐고.”
계속 입을 놀리던 안경의 말이 뚝 끊겼다.
왜, 내가 그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나 봐?
안경은 조용히 내 말을 곱씹더니, 조용히 입을 뗐다.
“50.”
“50억? 내 목숨값이 그거밖에 안 돼?”
주철수 이 새끼, 대체 얼마나 날로 먹으려고 하는 거야?
날 죽이려면 이놈들 한 트럭을 데려와도 안 될 텐데 말이야.
“100억. 생각 있어?”
많은 내용이 생략된 말이었지만, 이 자리의 모두가 이해했을 거다.
“100억을 준다고? 돈이 있긴 하니?”
“왜, 통장이라도 보여 줘?”
“…….”
안경은 몇 초간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우리는 돈이 가장 중요하다. 보통 같았으면 그 제안에 넘어갔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하지만 이건 그리 쉽게 돌아설 건이 아이다.”
“왜지?”
대체 무슨 이유로 100억도 거절한다는 거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안경이 안경을 벗어 탁자 위에 올려놨다.
“주 사장이 회(會)에 직접 부탁한 건이다. 뒤통수를 치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단 말이지.”
“회? 설마, 삼합회 말이냐?”
그래, 연변 킬러들이 삼합회와 연관이 없을 리가.
돌이켜 보니 전생에도 주철수는 삼합회 지부가 있는 성남에 자주 왔다 갔다 했었다.
삼합회와 사업을 트려고 그러나 했었는데, 이미 이 시점부터 커넥션이 있었을 줄을 몰랐는데.
“어차피 지금 주철수는 경찰에게 쫓기는 상태야. 니들이 성공하든 말든 신경 쓰지 못한다는 거지.”
“…….”
“그리고 삼합회도 마찬가지. 그놈들도 몇 년 전 암매장 사건으로 성남 안에서만 숨죽이고 있고. 그러니까…….”
피식.
내 말을 듣던 돈 귀신 놈들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 새끼들이 사람 말하는 데 왜 웃고 그래?
탁자 위에 있던 안경을 다시 쓴 안경이 미소를 지었다.
“그것만 말하라. 목을 내놓고 갈 생각이 있나 없나.”
“당연히 없지, 이 새끼야. 애초에 검사는 여기 있지도 않잖아?”
있을 리가 없지.
이 교활한 놈들이 정말 정직하게 거래를 하겠어?
안경이 더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드르륵-.
“그럼 협상은 끝이구만. 나오라, 아귀(餓鬼).”
“음?”
갑자기 가게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라세흠 부장도 깜짝 놀란 눈치였다.
한 사람이 더 있는데 우리 둘 다 눈치채지 못했다고?
“…….”
아까까지만 해도 당당한 미소를 짓고 있던 라세흠 부장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근육들도 꿈틀거리는 게,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것만 같았다.
라세흠 부장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빨을 보이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전력을 다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생은 빌런이다
지은이 : 글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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