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egal Alien Cult RAW novel - Chapter 168
168 ? 어설픈 사교도 #4
정원은 무척 넓었다.
그리고 곳곳에 꽃과 분수대 조각상 같은 것들이 놓여 있어서 무척 눈이 즐거워진다.
정원에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대리석을 조각하고 있는 드워프들도 몇몇이 보였다.
“아냐, 이 모양이 아니야.”
뙤약볕에지지 않고 조각을 하고 있다니. 정말 예술가의 혼이 불타는 것 같은 모습이긴 했는데.
그런 쪽에 취향이나 안목이 없는 나로서는 저 조각상 하나에 얼마나 할까-하는 속물적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저택의 입구에 도착한 나.
3층 저택은 척 봐도 굉장히 웅장했다. 실내 경기장이 떠오를 정도로 박력도 넘치고.
이런 집에서 사는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루나와 나는 그 자그마한 2층 오두막도 매일 같이 청소하기 힘들어서 골골대는데.
하물며 이렇게 큰 집은 관리가 정말 잘 되지 않으면 여기저기 먼지가 쌓일 테지.
먼지가 쌓이면 벌레들이 꼬일지도 모르고.
벌레들이 꼬이면 녀석들을 잡아먹기 위해 무시무시한 거미들이 거미줄을 칠지도 모른다. 스벌 거미줄이라니. 그렇게 생각하니까 집 크기가 마냥 크다고 좋은 것만은 아닌 듯하다.
물론 이런 거대한 집에는 일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매일 같이 구석구석 청소해주겠지.
또각, 또각.
저렇게 하녀들도 있을 거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남작님의 고용인 시드니라고 합니다.”
금발을 뒤로 묶어 하얀 망 같은 것으로 감싸 정돈한 여성이 저택 본관 건물의 입구에 당도한 나를 마중해주었다. 시드니는 이름인가?
검은 천 바탕의 하녀복은 허벅지까지 오는 짧은 치마, 검은색 스타킹 그리고 검은색의 뾰족한 구두가 신겨져있다.
왜 전부 검지? 저승사자 같아서 좀 으스스하다.
물론 역으로 생각해보면 가면과 로브를 착용한 지금의 내 모습도 존나 괴한 같아서 무서울 것 같긴 했는데.
“….”
이 시드니라는 여성은 과연 귀족을 모시는 하녀답게 깡이 쎈 것인지 얼굴 표정에서 자그마한 감정조차 읽을 수가 없었다.
제법 미인이다만 이렇게 딱딱하고 차가워서야 조금 아깝다는 생각마저 든다. 오히려 그 편이 좋은 건가.
모르겠다.
아무튼 저택 앞에 놓이니까 내 머리가 방어기제를 펼치는 것인지 쓸데없는 생각만 주절주절 늘어나는 것 같았다. 솔직히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더위 먹었었나.
“치료사님, 따라오시죠.”
그리하여 나를 저택의 안쪽으로 안내하는 고용인 시드니.
나는 그녀의 검고 좁은 등판을 따라 저택의 안으로 들어섰다.
기이이이이.
멋대로 열린 거대한 입구. 그 안은 불을 켜놓지 않은 것인지 무척 어둡다. 저 안으로 발을 들여도 괜찮은 걸까 생각이 드는 수준.
고오오오오오-.
그 모습이 마치 이 거대한 저택이라는 짐승이 깊은 목구멍을 활짝 연 채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바깥은 이렇게나 뙤약볕으로 더운데. 저 안쪽의 어두컴컴한 실내에서는 차가운 한기마저 감도는 것 같고.
이래서야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어서. 남작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 내 주저함을 느꼈는지 시드니가 또각-하고 구두굽을 울리며 나를 돌아봤다.
그래서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마침내 내 모든 몸을 저택 안으로 집어넣었다.
기이이익. 쾅.
그 순간 멋대로 닫히는 저택의 문.
스벌, 뭐지?
마법 같은 건가?
세상에 자동으로 닫히는 문이 존재한다니. 존나 끔찍하고 무섭다. 어떻게 닫아주고 열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문이 멋대로 닫힐 수가 있는 거지?
“플뢰르 남작가의 선조는, 오랜 옛날 마법과 주술의 신을 섬기던 사제였다고 하죠. 그분이 지은 이 별장엔 그때의 마력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내 두려움을 눈치 챈 것인지 고용인 시드니가 몇 마디의 설명을 해왔다. 마법이라는 거구나. 정체를 알고 나니까 신비감이 적어져서 두려운 마음이 조금 사그라진다.
사실 생각해보면 자동문 따위야 현대를 살던 나는 질리도록 봤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무서울 게 하나도 없다.
이 어둡고, 음습한 지하 던전 같은 저택의 내부에 단지 위압감을 느껴 위축되어 있었던 것이겠지. 무척 넓고 어두컴컴한 동굴 같은 저택이니까.
또각, 또각.
그 넓은 대리석 바닥에는 여자의 구두굽 소리만이 퍼진다.
정원에는 몇몇 사람이 있었다만, 저택 내부에는 마치 나와 이 여성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공허하다.
이 넓은 저택 안에 나와 으스스한 이 여자 둘 뿐이라고?
그 사실이 어딘가 참을 수가 없어져서 나는 결국 입을 열고 질문했다.
“저희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겁니까?”
“모두 숨었습니다. 새벽에는 종종 멋대로 나오기도 하죠.”
“…그렇군요.”
대체 무엇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꽤 힘들다. 그래서 그냥 물어보는 것 대신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때 앞서 걷던 시드니가 한 마디 한다.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식사부터 하시죠. 식당으로 안내하겠습니다.”
* * *
식당은 저택의 1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복도를 지나 커다란 문을 손으로 밀어 열자, 기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제법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검은 커튼이 쳐져 암막처럼 만들어진 공간. 그리고 그 앞으로 보이는 길고 긴 테이블. 테이블에 쳐져 있는 식탁보는 의외로 하얗다.
다만 이 캄캄한 상황이 계속 되니까, 그 하얀색마저 약간의 신경증을 일으킬 정도로 괴상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앉아서 기다리시면, 남작님께서 곧 도착하실 겁니다.”
고용인 시드니의 말에 따라 기다란 테이블의 끝자락에 앉은 나. 곧 시드니는 내 목에다 어디선가 꺼낸 하얀 손수건 같은 것까지 걸어주었다.
“그럼 저는 실례.”
또각.
그것을 끝으로 구둣소리를 내며 어딘가로 모습을 감추는 시드니.
이제 이 괴상한 식당 자리에 남은 것은 나밖에 없다.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기 바빴다.
벽 여기저기 걸린 액자에는 가발을 쓴 것인지 기이한 롤빵 머리를 하고 있는 남자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남작의 별장이니까, 당연히 남작의 가족이나 선조 혹은 남작 자신인 걸까?
하지만 특이한 점은 그 눈동자에 전부 X자로 검은 칠이 칠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제법 으스스한 모습이다.
대체 뭐지, 스벌.
괜히 왔나.
지금이라도 볼일이 있다고 말하고 그냥 물러날까.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기이익-.
어딘가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큰 기척이 느껴졌다.
뚜벅, 뚜벅하고 단단한 밑창이 바닥을 밟는 멀끔한 발자국소리가 들리고.
이윽고 저번처럼 검은 옷을 몸에 칭칭 감고 있는 사내가 나타나, 내가 앉은 테이블의 먼 반대편의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반갑소. 나는 소도모라 의회의 일원이자, 도시 창립 마법사의 7대 후손 플뢰르 폰 파쇼네라고 하오.”
플뢰르 남작.
이 남자가 이 거대한 암전 저택의 주인이구나.
“본관은 점심은 소식을 하거든. 작은 새 고기로 만족하길 바라오.”
그가 자리를 잡고 앉아 목에 손수건을 두름과 동시, 시드니가 카트 같은 것을 끌고 나타나 나와 플뢰르 남작의 앞에 접시들을 놓아주기 시작한다.
내 몫으로 놓인 접시에는 내 주먹만큼 자그마한 새가 한 마리 통으로 구워져 있었다.
맛있게 보이긴 했는데. 양이 작다. 한 입 베어 물면 다 없어질 기분.
양보다는 질인건가. 이게 귀족들의 스타일인가.
달칵, 달칵-.
그 옆으로는 나이프와 포크까지 주어진다.
그냥 손으로 잡고 뜯어먹어도 될 것 같은데.
달그락, 스윽, 스윽-.
남작이 포크와 나이프로 우아한 식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나 역시 그 모습을 따라서 이 참새만큼 자그마한 새를 나이프로 썰어먹는 수밖에 없었다.
스벌 존나 불편하구만.
“제법 기품 있는 자세요. 혹시 고등 교육을 받으셨소? 귀족가의 자제라거나.”
가면이 벗겨지지 않게 존나 힘든 식사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더니 한 마디 하는 남작.
학생시절부터 돈까스를 썰며 단련해온 내 나이프질 솜씨에 제법 감탄한 모양이다.
나는 내가 사마리안이라는 걸 들키지 않게끔 대충 답했다.
“그냥, 뭐, 그렇습니다.”
“어찌 그렇게 얼굴을 숨기셨는지는 모르겠다만. 물어봐서는 안 되는 것이지 싶소. 정작 나도 내 얼굴을 가리고, 이 저택마저 꽁꽁 숨기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오.”
“….”
남작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이 식사 자리가 불편했다. 얼른 끝내고 집이나 가야지.
그래서 묻는다.
“일정이 있는 지라, 무례를 떠나서 직접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따님이 병을 앓고 있다고 하시던데?”
“바르고에게 들었나보오. 그렇소. 병을 앓고 있지. 무슨 병인지도 들었소?”
“가슴이 작아지는 병이라고….”
“그렇소. 앓은 지는 좀 됐지.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파쇼네 가문은 마법의 신을 대대로 섬겨왔소. 때문에 그분의 축복을 받아 보유한 마력이 많지. 그래서 파쇼네 가문의 여성들은 대체로 가슴이 크고.”
마력이 큰 것이랑 가슴이 큰 게 무슨 상관인지 나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엘프리데나 마녀 네메아 등. 기이한 마법 같은 걸 잘 사용하는 여자들의 가슴은 대체로 컸던 것 같다.
마나 주머니 같은 건가.
가슴이 마나 주머니라니. 내가 생각했는데 존나 웃겼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다행이구나.
“그래서, 클레멘토르 자작의 아들은, 내 딸의 가슴이 큰 줄로만 알고 있소.”
“그렇군요.”
“이건 정말 무척이나 심각한 문제지.”
대체 왜 심각한 문제인가 싶어서 머릿속으로 상황을 그려봤다.
만약 나와 루나가 첫날밤을 거치는 데, 루나가 가슴 사이에서 커다란 뽕을 두 개 빼낸다면 과연 화가 나고 어이가 없을 것 같긴 했다.
“문제가 크군요.”
“그대가 어떤 인물이든, 또 어떠한 방법을 쓰든 상관이 없소. 나는 어떻게 해서든 이번 혼례를 성사시켜야 하지. 그러니, 어떻게든 해 주시오. 답례는 기대해도 좋소.”
“불법적인 일이라도, 괜찮겠습니까?”
“불법적인 일이라면?”
식사를 멈추고 오히려 물어오는 남작. 나는 이마에서 눈가로 주르륵 땀이 흘러내리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물론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에 닦아낼 수는 없다.
그래서 그냥 참고 답한다.
“신전이나 관공서에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적인 치료 행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파쇼네 가문은, 아니. 나는 늘 소문과 손가락질에 시달려 왔소. 악마에게 영혼을 판 플뢰르,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플뢰르, 인간을 잡아먹는 플뢰르…. 마법이란, 종종 사술이나 지옥 악마들의 술수로 여겨지기도 하지. 그래서 소문을 끌고 다니고.”
스륵, 스륵-.
남자는 이해 못할 말을 중얼거리며 다시금 작은 새고기를 썰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포크로 찍어 어두운 베일 아래로 드러난 자신의 하얀 이빨로 씹어 먹는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소문이 아니고 진짜요. 우리 가문은 부흥을 위해 무슨 짓이든 했거든. 고로 그대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놀라지 않겠소.”
묘한 박력이 있는 남자였다. 이게 사람들의 머리 위에 서는 귀족이라는 것이구나.
“그럼 따님을 지금 좀 뵐 수 있겠습니까…?”
“이 저택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부 비밀로 할 수 있다고 맹세한다면. 그리고 무엇을 보더라도 놀라지 마시오.”
스륵.
다시금 멈추는 나이프.
곧 남작 플뢰르는 정말 엄중한 목소리로 나에게 경고를 했다.
“나는 그대를 죽이고 싶지 않소.”
그것으로 잠깐 정적이 흘렀다. 곧 나이프와 포크를 접시에 사브작 거리는 소리만이 조용하게 들릴 뿐.
나는 이렇게나 매서운 말을 하는 남자가. “당신 딸에게 가슴 마사지를 좀 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될까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시바, 역시 그냥 돌아갈까.
그때 자신의 검은 소매 속에서 무언가를 스윽 꺼내 탁-하고 탁자 위에 올려놓는 플뢰르.
달그락.
그것은 손바닥만 한 금속 막대기였다. 금빛으로 번쩍이는 금속 막대기.
시발, 골드바. 저거 골드바 아녀?
저런 게 정말 세상에 실존했을 줄이야. 저걸 팔면 루나의 오두막에 자그마한 마당 정도는 추가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딸을 잘 부탁하오.”
“까짓 거 한번 해 보죠.”
* * *
이 거대한 3층 정원에는, 마치 등대처럼 높게 솟은 첨탑 같은 공간이 있었다. 구불구불한 계단을 한동안 올라가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첨탑의 옥탑방.
마치 악독한 용이나 마왕에게 붙잡힌 공주들의 감옥으로 쓰일 법한 이 장소에, 남작의 하나 뿐인 외동딸 브리지테가 살고 있다고 한다.
남작이 자신의 딸을 학대하는 건가-그런 생각을 했는데.
“브리지테님은 높은 곳을 좋아하시죠.”
나를 안내하는 시드니의 말을 들어보니, 남작 영애가 스스로 이렇게 높은 곳을 선택해 자신의 방으로 삼은 듯하다.
덕분에 나는 존나 몇 개나 되는지 모를 계단을 올라가야 해서 힘들었다. 스벌, 로브랑 가면 따위를 당장에 벗어던지고 싶은 기분.
“후-.”
그렇게 어찌어찌 꼭대기까지 올라갔을 때. 꽃으로 화환이 만들어져 장식된 문 하나가 내 앞을 가로 막았다. 과연 소녀의 방답게 입구를 예쁘게 꾸며 놓은 것 같기는 하다.
또각.
그 문을 두드리기 전에 숨을 고르고 있던 나의 뒤로 한 발짝 물러서는 고용인 시드니.
“저는 이 앞에서 대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저 혼자만 들어가도 됩니까?”
건장한 남자 혼자 방에 들여보내도 되는 건가.
무슨 일이 터지면 어쩌지 싶었는데. 이 차가운 고용인은 내 질문에 대답도 안하고 그저 내 얼굴만을 멀뚱히 바라볼 뿐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사실 나도 이 여자가 방 안까지 따라오면 어쩌지 조금 걱정했었다. 스스로 빠져준다면 나야 편하다.
똑똑.
나는 그렇게 방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안으로부터 부스럭거리며 크게 이리저리 우당탕거리는 기척이 들린다.
누구세요?
목소리는 제법 명랑한 구석이 있었다. 병을 앓는 사람답지 않게 활기가 넘친다.
“브리지테 아가씨 맞습니까? 저는 그, 뭐냐. 병을 치료해드릴 치료사인데요.”
아, 또 저희 아버지가 쓸데없는 분을 부르셨나보네요. 필요 없으니까, 가세요. 제 병은 아무나 못 고쳐요.
이 시벌?
이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내 눈앞에 어른거리는 골드바.
그 놀라운 금빛 막대기는 내 입에서 생각도 않은 소리를 좔좔 나오게 했다.
“한번 진단이나 받아보시죠. 제가 이래 뵈도 실력이 꽤 좋습니다. 님프 가슴도 키운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님프? 아저씨 님프를 본 적 있어요?
문 안에서 제법 흥미를 느낀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보다 쓰벌, 아저씨라니. 존나 생각지도 못하게 한 대 얻어맞은 느낌.
존나 강적이다.
“님프 많이 봤습니다. 님프가 뭐 좋아하는 지도 알아요. 님프는 사탕을 좋아합니다.”
흐응, 님프는 사탕을 좋아하는 구나-.
덜컥.
그때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스르르 열렸다. 패러노이와 알고 지냈던 경험이 이 굳게 닫힌 문을 여는 데 나름대로 도움이 됐던 것이리라.
후-.
그래서 나는 내 로브와 가면을 다시 한 번 재대로 매만진 후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저택에는 스벌 거울이 하나도 없어서 내 모습을 정돈하는 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럼, 들어갑니다, 아가씨.”
그렇게 문고리에 손을 얹는 나는 천천히 그것을 밀고 제법 넓고 쾌적한 방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저기 발려진 고풍스러운 벽지, 같은 저택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을 만큼 환하게 빛이 들어오는 창가.
예쁘게 놓여 있는 인형들과 푹신한 침대까지. 내가 상상했던 귀족 영애의 방보다 더욱 화사하고 찬란해서 무척 눈이 부시다.
하지만 침대 위로는 마치 검은 커튼처럼 윤기가 흐르는 검은 빛의 생머리가 찰랑이고 있었다.
나는 정말 놀랐다.
만약 가면이 없었다면, 내 얼빠진 표정을 모두에게 보이고 말았겠지.
“아저씨.”
제법 앳된 얼굴이 나름 귀엽게 생긴 여자 아이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고양이를 닮은 눈매는 살짝 날카롭다.
“아저씨, 님프를 봤다는 게 진짜에요?”
[작품후기]제 전작들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실 저 미츄리는 노블 치고는 그리 장편을 쓰지 않습니닷….
그래도 이번 글은 뿌려 놓은 떡밥들, 회수해야 할 것들이 꽤 있기 때문에 제가 썼던 글 중에서는 가장 긴 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닷…
제법 이야기가 길어지더라도 모두들 끝까지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욧 ㅠㅠ… 독자님들이 안 읽어 주시면 미츄리 망합니닷….
히이익…
169회
어설픈 사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