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egal Alien Cult RAW novel - Chapter 171
171 ? 정원 넓히기 #1
가슴을 만진 자극이 너무 컸던 것인지, 침대 위로 축 늘어지는 브리지테.
“아읏, 응, 아앗…!”
짧게 경련을 반복하며 이리저리 몸을 가눌 줄 모르는 게 상당히 불안해 보인다. 호흡은 불안정하고, 초점은 크게 뒤흔들려 몹시 아픈 사람 같다.
똑, 똑-.
아가씨, 괜찮으신가요?
비명을 지른 브리지테가 신경 쓰였는지 바깥에서는 냉혹한 메이드가 문까지 두드렸다.
“저기, 브리지테 아가씨, 바깥에서 부르고 있으니까 일단 대답을 좀….”
그래서 남작의 딸 브리지테에게 손바닥을 내밀어 진정시키려던 때.
스스스슥.
그녀의 몸에서 까만 물 같은 것이 흘러내렸다.
마치 몸에 묻어 있던 검은 도료가 빗물에 쓸어내려가는 것처럼. 영애의 머리칼은 서서히 먹이 빠져 푸른빛을 보이기까지 한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지?
그래서 살짝 얼이 빠진 사람처럼 마음이 흔들리고 있던 순간에 쾅-하는 소리와 함께 내 등 뒤에 있던 문이 박살이 났다.
“아가씨, 대답이 없으셔서 확인하기 위해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시드니였다.
시드니가 제법 튼튼해 보이는 방문을 부수고 들어온 것.
저 저승사자 같은 메이드에게 문짝을 부술 정도의 완력이 있었을 줄이야. 나는 범죄 현장을 들킨 사람처럼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것과 다를 바 없었고.
방문을 따고 들어온 시드니 역시 이 상황이 어찌된 일인지 파악하기 위해 눈동자를 굴리는 듯했다.
그녀의 눈이 걷어 내려진 드레스, 살짝 드러난 젖가슴과 먹물을 찍 싼 채 헐떡이고 있는 브리지테를 향한다.
“치료사님,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그게, 여기에는 좀 사정이 있었는데요.”
“지금 저희 아가씨께 사정을 하셨단 말씀이십니까?”
“아뇨, 그 사정이 아니고. 여러 가지로 좀 복잡한 관계가….”
“아가씨와 관계까지 맺으셨다는 겁니까?”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내가 당황스러운 머리를 굴려가며 뭐라고 말 해봤자 거미줄에 빠져드는 나비꼴을 면하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언니, 언니…?”
바로 그 순간 바닥에 쓰러져 헐떡이고 있던 브리지테가 정신을 차린 것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내 머리통을 날려버릴 것처럼 추궁하던 시드니가, 브리지테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침대로 다가갔다.
침대보를 적신 축축한 검은 먹 같은 것에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것처럼 귀족의 영애를 부축하는 메이드.
과연 귀족의 고용인답게 프로 정신이 있구나.
“아가씨, 눈이….”
“내 눈? 내 눈이 엄청 시원해졌어. 치료사님이 눌러주셨거든. 눈이 맑아진 느낌도 들고….”
“그게 아니라, 눈이 푸른색으로….”
“내 눈이 푸른색…?”
브리지테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처럼 자신의 눈가를 매만졌다. 그에 검은 메이드복 아래에서 자그마한 손거울을 꺼내는 시드니.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주인인 브리지테의 얼굴 가까이 내밀어 주었다.
그 작은 손거울을 받아든 브리지테는 그 안을 들여 보며 커다랗게 눈을 떴다.
“뭐, 뭐야? 내 눈의 색이…. 머리색도 파랗게 변했잖아…? 어째서….”
그녀는 자신의 변화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입을 벌렸다. 거울 안을 이리저리 들여다 보던 그 눈은 이윽고 내 가면을 향한다.
그 푸른 눈동자가 마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라고 물어오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렇게 묻고 있는 것이겠지.
그런데 그 이유를 내가 알 수가 있나.
나는 애초에 사람 머리칼이 파란색이라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파란 머리칼도 있고, 분홍 머리칼도 있고 하는 것이다.
마나인지 뭔지 때문이라나.
“아가씨,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저 치료사가 해코지를 하지는 않았습니까?”
그때 시드니의 입에서 나온 질문에 나는 바짝 긴장하게 됐다. 그에 브리지테는 자신의 옷섬과 가슴 앞으로 손을 가리며 살짝 미간을 좁힌다.
“…딱히?”
“그렇군요.”
후, 스벌 살았다.
* * *
거대한 별장의 저택, 그 1층 로비의 응접실.
남작 플뢰르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온통 검은 베일과 천으로 얼굴과 몸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도무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그가 정말 심각하고 중요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 수가 있었다.
나는 이 침묵과 어색한 상황이 몹시도 어색했다. 내게 할 말이 있다고 불러냈으면서 말을 하지 않다니.
골드바고 뭐고 이제 그냥 집에 가고 싶다.
불안함과 긴장감에 다리를 떨고 싶었는데, 내 마음이 들통날까봐 가까스로 참고 있을 때 마침내 플뢰르가 깊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내 딸아이의 머리는 검었지.”
“그랬죠.”
“하지만 지금은 파랗고.”
“…그렇게 됐습니다.”
스윽.
남작 플뢰르는 멕시코 악사들의 모자처럼 챙이 커다란 모자를 벗었다. 물론 그럼에도 그의 얼굴은 검은 붕대같은 것이 칭칭 감겨 알아볼 수가 없다.
살짝 긴장하던 찰나.
남작이 내게 묻는다.
“지금 내 딸, 브리지테의 눈은 정말 푸른색이 맞소?”
“그게, 그렇게 되긴 했는데요….”
“눈은 나를 닮았던 모양인가.”
스륵, 스륵.
남작 플뢰르는 자신의 얼굴에 감긴 붕대를 천천히 풀었다. 눈 부분을 가리고 있던 천들이 떨어져 나가자, 곧 그의 푸른 눈동자가 세상에 드러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푸른 안광이라는 것에 더 가깝다.
“말 해보시오, 내 딸의 눈은 나와 닮았소?”
“어, 그게,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는데요. 그게 뭐냐….”
나는 선뜻 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붕대를 풀고 완전히 드러난 플뢰르의 얼굴은, 사실 얼굴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니었다.
푸른 안광이 번뜩이는 해골.
그것이 남작 플뢰르의 정체였다.
이 남자는 언데드다.
망자.
생을 탐하고, 산 자를 증오할 뿐인 마물 말이다. 세상에, 남작의 정체가 언데드였다니.
어째서 자신의 몸을 검은 천으로 칭칭 감고, 또 이 별장 자체에 암막이 잔뜩 깔려 있는 지 알 것만 같았다.
망자들은 본능적으로 햇볕을 싫어한다고 했었나.
“그대의 카르마가 흐트러지는 구려. 놀랍겠지. 나도 거울을 볼 때마다 놀라거든. 그래서, 거울을 다 치워버렸소.”
그런데 내가 아는 언데드와 이 남작은 제법 차이가 있었다. 일단 의식이 멀쩡해 보이고 제법 고풍스러운 화법까지 구사할 줄을 안다. 진짜 언데드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걸 굳이 물어볼 용기는 나에게 없었다.
“아무튼, 정말 내 눈을 닮았소? 내 딸, 브리지테가 날 닮았냐 묻고 있소.”
그런데 이 스벌, 존나 으스스한 해골 남작은 내게 자꾸만 자기 딸이 자신의 눈을 닮았냐고 물어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무서운 마음을 꾹 참고 해골의 얼굴을 바라봤다.
푸른 눈동자가 닮았냐고 묻는다면 닮긴 한 것 같다. 근데 스벌 이건 눈동자가 아니라 안광이잖아.
그래도 이건 완전히 답을 정해놓고 물어오는 질문이 확실했다. 그래서 나는 남작이 듣고 흡족해 할 만한 답을 해주기로 했다.
“…네, 좀, 닮긴 했는데요. 그래도 따님이 엄마를 더 많이 닮은 것 같네요.”
“그렇군. 브리지테의 외모는 사실, 머리칼이나 눈 색을 빼면 클라라와 아주 비슷하거든. 아무튼, 고생 많았소. 이것은 답례요.”
스륵.
자신의 치렁한 소매 안쪽에서 골드바를 꺼내 내 쪽에 내미는 해골 남작. 그 빛나는 금빛에 내 눈도 더욱 왕왕 크게 뜨였다.
답례로 약속했던 골드바. 시부럴, 저런 것이 정말 세상에 실존할 줄이야. 무척 가슴이 쿵쾅거려서 진정이 안 됐다.
한 편으로는 브리지테의 가슴병이 호전될지 어떨지 알 수가 없는데 이렇게 답례를 받아도 되나 싶기도 했다.
물론 해골 남작은 그런 것 따위야 이미 신경도 안 쓰는 느낌이었다.
하기야, 이렇게나 거대한 저택을 두 채나 소유한 남자니까. 듣기 좋은 말을 좀 해주면 이런 금괴 정도야 턱턱 내 줄 수 있는 일.
나는 어째서 높은 사람들 옆에는 아첨꾼들이 따라붙는 지 알 것 같았다.
아첨꾼이 벌이가 좋다.
혹시 남작의 기분을 더 좋게 만들만한 말이 뭐가 있을까 떠올려 봤는데.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고, 오히려 기분이 나빠지면 받았던 금괴마저 빼앗길 까봐 나는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아무튼 금괴다.
시부럴, 금괴.
진짜 쩐다.
손에 쥔 금괴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무겁고, 딱딱하고 빛나고 아무튼 존나 멋있다. 과연 어째서 사람들이 황금을 얻기 위해 고생하는 지 알 것만 같은 기분.
그렇게 금괴를 들여다 보고 있을 때 남작이 말했다.
“가면을 쓰고 있어도 알겠군. 금이 무척 좋은 모양이오.”
“금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물론 없지. 하지만, 그대의 경우에는 조금 느낌이 다른 것 같소. 역시 그대는 플루토의 신도가 확실하군. 플루토 신도들은 대체로 금을 좋아하지.”
“그, 그렇습니까?”
스륵.
남작은 긴 모자를 써서 다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그 무시무시한 해골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돼서 나로서는 안심이 든다.
남작이 말했다.
“나 플뢰르는 상아탑의 교수를 역임했을 정도의 마법사요. 강령술과 지옥 마법에 대해 누구보다도 일가견이 있다 자부할 수 있지. 그대는, 일찍이 내가 이 소도모라에서 만났던 사교도들의 우두머리와 닮았구려.”
“사교도들의 우두머리요?”
“밝혀진 바는 많이 없다만, 사교도들에게 대장이라고 불리는 남자였었지. 지금 내가 이러한 꼴을 하고 있는 것도, 또 내 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도 그 남자 덕분이고.”
대장.
대장인가-.
떠오를 듯 말 듯 하는 것이 있으면서도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교도의 회합장에 처음 갔었을 때 어둠 속의 구석진 곳에서 팔짱을 낀 채 폼 잡고 있었던 남자가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놈이 대장이라 하지 않았나?
시부럴, 소도모라에 잠입했던 사교도가 다 축출된 게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사교도 두목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달칵.
근데 곧 소매에서 하나 더 내밀어지는 또 다른 금괴를 보니까 그런 것이야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졌다.
“여기, 이건 답례와는 무관한 내 성의의 표시라오. 그대들의 대장에게, 지난날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고 잘 말해 주시오.”
약속이 뭘 말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내밀어질 금괴를 거절할 이유는 없어서 나는 그것을 품속에 하나 또 챙겼다.
다시금 느끼지만 금괴는 생각보다 차갑고 무거웠다.
묵직한 느낌.
그래서 좋았다.
* * *
“핫산, 어디 갔다가 이제 온 거야?”
루나의 오두막이 보일 때 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노을이 지고 있었다.
저 재미난 핑크색 머리칼을 보게 될 때에야, 나는 비로소 정말 내가 귀족의 저택을 빠져나와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걸 실감할 수가 있었다.
안도감도 들고. 한 편으로는 몸에 힘이 탁 풀리는 것도 같았다.
“핫산, 표정이 좋지 않은데. 무슨 일 있었어?”
내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언제나처럼 킁킁-하고 냄새까지 맡는 루나.
“땀 많이 흘렸나 보네!”
“날씨가 덥잖아.”
“맞아, 오늘 엄청 덥더라. 그래서, 핫산 오면 이거 주려고 했지. 짠-.”
루나는 그런 자신의 허리춤에서 가죽 물병을 하나 내게 내밀었다. 물? 비약? 뭔 지는 몰라도 마침 목이 말랐기에 그것을 받아들었을 때.
“오-.”
생각 이상으로 차가운 가죽 물병의 온도에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마치 얼음물처럼 서늘하고 차가운 것이 그 안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조차 않고 그것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 내용물의 식감은 곤약이나 젤리 같아서 밋밋하기 짝이 없었는데 차갑고 시원해서 맛있었다.
“이게 뭐냐? 시원해서 좋은데?”
“와일드링 비약! 어때? 괜찮지? 열심히 만들어서, 핫산한테 가장 먼저 주는 거야!”
“신기하네.”
루나가 며칠 비약 만든다고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였던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나 시원한 걸 또 만들 수 있었을 줄이야.
“팔면 꽤 돈이 될 것 같은데?”
“이건 파는 거 아냐. 우리끼리 마셔야지. 한 마리로 세 통 정도 만들었으니까, 올 여름은 나름 시원하게 보낼 수 있을 거야!”
“그렇구만.”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는 이 세상에서 여름을 나는 건 제법 지혜가 필요하다. 루나는 올해, 지하에서 얻은 와일드링을 통해 여름을 날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기 근처에, 나무도 좀 심고 채소도 가꾸면 그늘져서 서늘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끝내 주변을 둘러보며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루나. 루나는 이 오두막 주변으로 마당을 가꾸는 것이 당장의 목표라서 내게 종종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에 난 품속에 숨겨둔 금괴들의 묵직함을 다시 한 번 절절히 느꼈다.
내일은 금을 팔아서 부지를 더 넓혀 봐야겠다.
[작품후기]본능충실 님!!! aslejf 님!!! 쿠앤크아이스크림 님!!! 포테토서버 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닷…!!! 익명으로 원고료 쿠폰을 보내주신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닷…
제가 보내는 감사의 절을 잘 받으시길 바랍니닷…!!
댓글과 추천도 언제나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닷 ㅠㅠ….
172회
정원 넓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