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egal Alien Cult RAW novel - Chapter 251
251 ? 온유하고, 화를 내지 않으며 #2
엘프리데가 어디로 향했는지는 굳이 전해듣지 않아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 위로 치솟고 있는 불길을 보면, 녀석이 어디서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 지 알 것 같았으니까.
또 그런 엘프리데의 불길을 따라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 사이를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물동이를 붓는 소방대와 경비대원들이 내게 길을 알려주는 듯했다.
“소방대-! 불길을 제압해! 불을 진압해라! 마법을 퍼부어!”
“젠장, 이거 그냥 불이 아니야. 마나로 발화된 불이라고!”
“도시 중앙 쪽으로 번지고 있다! 그것만은 막아야 해!”
솨아아-.
지팡이 끝에서 뿜어지는 물대포. 물도 없는 곳에서 저만큼의 수둔을 구사할 줄이야. 수속성의 마법사로 나름의 경지에 올랐다고 봐도 되겠지.
그들의 노력 덕분인지 타올랐던 불길들은 하나 둘 제압되어가고 있다.
역시 부유층들이 사는 동문거리 답게 여러 인프라와 대책이 잘 구비되어 있는 모양이다.
만약 이곳이 나무 판자촌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서문이었다면, 경비대나 소방대가 출동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꽤 걸려 다 타고 난 뒤였겠지.
그럼 루나의 공방도 불탔을 거고, 우리는 거리에 나앉아야 했을 터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눈앞이 아찔해졌다. 어쩌면 유독한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일 수도 있고.
중요한 것은 엘프리데가 지금 도시 중앙 쪽으로 향하고 있는 듯했다는 것.
어째서 도시 중앙으로?
내가 여러 번 언급했던 바가 있다시피 도시 중앙에는 도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 관공서를 비롯해 신앙생활과 길드 등의 업무를 맡고 있는 신전들이 있는 곳인 것이다.
화가 나서 이것저것 불태우고 있는 엘프리데가 지금 도시 중앙으로 향하고 있다면, 녀석의 목적은 아마 이 도시 전체를 전소시키고 마비시켜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도시 중앙이 엘프리데로 인해 불타버린다?
어으, 쉣. 나에게 어떤 추궁이 벌어질지 정말 상상조차 안 된다.
걱정과 격정 그리고 여러 복합적인 감정에 내 아랫배와 다리는 마치 두둥실 떠오른 것 같았다.
“여기 물을 더-.”
“다들 대피시켜-.”
“쥬피테르님-.”
밤하늘 위로 타오르는 불꽃과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두 뭉뚱그려지고 현실감을 잃는다. 그런 그 사이를 달리고 있는 나는 흡사 고흐가 그려낸 그림의 안으로 들어와 버린 낙오자 같았다.
나는 그저 열심히 달리고 또 달릴 뿐.
마침내 도시 중앙에 도착 했을 때, 나는 엘프리데의 뒷모습을 겨우 발견할 수가 있었다.
녀석은 나와 마찬가지로 있는 힘껏 달리고 있었는데, 이미 그 몸에 걸쳐진 옷도 슬리퍼도 대부분 불타서 마치 부랑자와 같은 꼴이었다.
화륵, 화륵.
녀석의 걸음이 빠르게 옮겨질 때마다 그 발걸음 끝에서는 불길이 솟아오른다.
발자국 대신 불꽃을 남긴다니. 엘프리데에게 저런 강력한 기술이 있는 줄은 오늘 또 처음 알았다. 스벌, 별로 알고 싶지 않았는데.
때문에 녀석의 뒤를 바짝 쫓는 나는 그 불길들로 인해 죽을 맛이었다.
가뜩이나 더운 한 여름의 밤에 사방이 불타고 있으니 나의 이마에서는 긴장인지 더위 때문인지 땀이 비오듯 쏟아져 눈을 찔러 곤란할 정도로 말이다.
“야, 엘프리데! 멈추라고! 시발, 멈춰!”
“….”
내 외침을 들은 것인지 방금까지 멈추지 않고 마구 달리고 있던 엘프리데의 어깨가 조금은 떨린 듯했다.
물론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엘프리데는 내 외침에도 멈추지 않고 곧게 달려가, 어느 익숙한 구조물이 지어진 넓은 부지로 몸을 집어 던졌으니까.
그곳은 베누스의 신전이었다.
엘프리데가 불타는 몸을 이끌고 신전으로 들어간 것.
신전을 불태우려는 속셈인가?
이 세상에서 신전을 파괴하는 것만큼 모독적이고 끔찍한 행위가 어디 있을지 모르겠다.
엘프리데가 베누스 신전을 파괴하게 된다면, 여러모로 종잡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말 테지. 막아야 한다.
“으으-!”
그래서 나는 정말 더 이상 쥐어짤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걸음을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어째선지 엘프리데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오히려 계속해서 멀어진다. 저 녀석, 몸이 삐걱거리고 있었던 거 아닌가? 세계수의 낙인을 해주해서 컨디션이 점점 돌아오고 있는 건가?
발끝에 타오르는 불 때문에 부스터라도 걸린 건가?
모르겠다.
결국 녀석을 붙잡지 못한 나는 엘프리데가 베누스 신전의 정원을 불태우는 꼴을 볼 수밖에 없었다.
화륵, 타타닥, 타닥-.
루나와 종종 데이트를 할 때 즐겨 찾았던 베누스 신전의 공원이, 그 풀과 꽃들 그리고 짐승들이 메마른 화마에 삼켜져 불똥으로 튀어 오른다.
하늘 위를 까맣게 덮는 연기 그 사이로 엘프리데는 인공으로 만들어진 연못에 뛰어들기까지 한다.
치이이익-.
그것으로 엘프리데의 불꽃이 꺼지는가 싶었는데, 오히려 연못 자체가 굉장한 양의 수증기를 뿜어내며 빠르게 증발해버렸다.
나는 그런 연못 가까이 다가가 소리친다.
“야! 멈춰! 빨리 불 끄라고! 정말 다 불태울 샘이냐? 내가, 내가 내기 진 걸로 할 테니까! 빨리 좀 꺼 봐! 시발, 이대로 가다간 다 조져!”
“….”
그때서야 엘프리데가 나를 바라봤다. 녀석의 붉은 눈은 마치 타오르는 루비처럼 반짝이고 있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화를 내는 게 아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멈추지 않-, 다 타버릴-. 전부-거라고. 어서 너도-.”
화르르륵.
그런 엘프리데의 몸이 등유라도 부은 것처럼 불길에 감싸여 모습조차 사라지게 되어버렸다. 그 너머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린 것을 보니, 조금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엘프리데가 자신마저 불태울 정도로 자해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했는데, 나는 어쩌면 엘프리데가 지금 이 불길이라는 것 자체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마력이든 마법이든 폭주하는 힘을 제어하지 못해, 어쩌면 이 대륙의 성소라고 불리는 신전으로 찾아온 게 아닐까?
타닥, 타다닥-.
다만 엘프리데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점점 커져가는 불기둥, 너비와 높이를 번져 모든 것을 부숴 버릴 만큼 힘을 더하는 화마의 모습에 나는 생각하기를 멈췄다.
어찌 되었든 저 녀석을 막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떻게?
특수한 코팅을 몸에 두른 스턴트맨이라면 모를까, 나는 연못조차 증발시켜버릴 정도로 타오르고 있는 엘프리데를 막을 방도가 없었다.
“메테오!”
혹시 몰라서 주변의 돌멩이를 불꽃의 안으로 던져 버렸는데, 그 불기둥 주변에 다가가기도 전에 증발해버렸을 따름이었다.
돌이 증발할 정도로 활활 타오른다니. 그냥 불꽃이 아닌 건 눈치 채고 있었는데 이건 좀 선을 넘은 거 아닌가?
시부럴, 그럼 내가 저기 근처에 가면 정말 핫(Hot)산이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
대체 어쩌지.
스윽.
그런 망설임을 느끼고 있을 때 내 등 뒤에 기척 같은 것이 감지되었다. 고개를 돌리자, 팔짱을 낀 채 타오르는 불꽃을 냉담하게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키는 나보다 머리 하나 작다. 잿빛 로브를 두르고 있는 몸은 날렵하고 호리호리한 편. 그러나 깡마른 느낌이라기보다는, 극한까지 단련해서 벼려낸 장침(長針)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이 남자의 이름은 아마도 전광의 달토르였나 그랬을 것이다.
달토르가 말했다.
“파괴의 불꽃이 폭주한다. 이렇게 되면, 누구도 막을 수 없이 종말을 고할 테지. 이 도시는 이제 끝이다.”
“뭐?”
도시가 끝이 난다고?
나는 이 소도모라라는 도시에 대해 생각해봤다. 첫 인상은 냄새나고 무식하고 시끄러운 도시라서 낯설기 짝이 없었는데.
그간 이곳에서 많은 일들을 벌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나는 나름대로 이 복잡한 도시에 애정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직접 오두막을 짓고.
울타리를 세우고 마당의 정원을 가꾸기까지 했는데.
그게 모두 까만 잿더미만 남을 것이라 생각하니 화가 났다.
“무슨 짓이지? 불에 타 죽을 거다, 야만인.”
불꽃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는 내 모습을 봤는지 쯧-하고 혀를 차는 전광의 달토르.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앉아 도시가 불타는 걸 볼 수 없었던 나는, 그저 숨을 고르며 앞으로 전진할 따름이다.
화르륵.
그런 나의 얼굴을 향해 뻗어오는 불길이 매섭다.
그야말로 피부부터 그 아래의 내장까지 바싹 익는 느낌.
하지만 의외로 견디지 못할 것도 없었다. 비록 내가 더위와 열기에 쉽게 지치기는 했다만, 그것으로 병이 나거나 탈이 나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건강원의 아들로 뜨거운 열탕과 열기의 지옥에는 이미 익숙한 것이다.
더위를 잘 탈 뿐이지, 뜨거운 열기에 대한 내 피부의 저항력은 맨 손으로 밥그릇을 덮석덮석 짚는 식당 이모들 부럽지 않다.
스르륵.
그것을 증명하듯 앞으로 뻗은 나의 손이 불길을 가르며 나아간다.
“뭐? 파괴의 불꽃을 견디나-. 이런 일은 처음 보는 군. 황혼의 업화를 견디다니, 대체-.”
“좀 조용히 해 봐. 지금 딱 좋을 정도로 집중 중이니까.”
허파가 따끔따끔하고 가죽 옷은 내 몸에 눌러 붙는 느낌이다. 저 불기둥의 중심부는 이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뜨거울 테지. 그럼 나라고 하더라도 무사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녹스님-.”
『주변이 너무 밝아 밤의 갑옷》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망할.”
답이 없다.
후-.
하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후우-.”
나는 바짝바짝 말라가는 기도와 입으로 호흡을 골랐다.
입을 통해 들어온 열기가 온몸을 타고 손끝과 발끝 등의 신체 말단부로 퍼져가는 감각이 유난히 생생했다.
바깥에서 온 열기로 인해 내 몸이 세상에 뻗어 있는 공간과 기능들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뜨거운 열기, 지옥과도 같은 불길 속에서 ‘나’라는 존재 자체를 선명히 자각하고 있었다.
욱신, 욱신.
그러자 나의 몸을 잠식하는 것은 죽을 것 같은 열기도, 눈을 따갑게 만드는 매캐한 연기도 아닌 아랫배의 기묘한 통증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 명상을 하며 나름 익숙해진 바가 있는 이 느낌.
“후-.”
그것이 호흡을 통해 들어오는 열기와 합쳐져 온몸을 타고 흐르는 혈류들을 가속시키는 것 같다.
“저 불꽃 속에서 기를 갈무리하고 있군. 기력으로 신체를 강화해 열기를 버틴다고? 말도 안 돼. 호흡을 갈무리 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런 나의 등 뒤로 달토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처럼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는 게 들려온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열기에 버틸 수 없다. 그 이상 가지 마라. 영혼마저 소멸 될 거다, 야만인.”
저벅.
한 걸음 움직인다.
눈앞이 까마득해져버리고 만다. 계속되는 열기에 눈이 버틸 수 없었던 것이겠지. 하지만 그대로 멈추지 않고, 나는 한 걸음 더 내딛는다.
저벅-.
그러자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열기로 귀가 맛이 간 걸 수도, 아니면 내면으로 침전해버린 의식 때문일 수도 있겠다.
눈과 귀를 잃은 나의 의식은 점점 더 깊은 내면으로 빠진다.
뜨거운 불길의 강 속에 몸을 담그고 물줄기를 역행하는 연어와 같은 모습.
그것이 지금의 나다.
연어는 강을 거꾸로 오른다.
지금의 나도 뿜어지는 열기를 등지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 헤엄치듯 하고 있다.
이것은 그냥 감 같은 것이었다만, 지금 이 상황을 이겨내면 나는 한층 더 새로운 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연어들도 이러한 기분을 느낄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게 아닐까.
물론 연어들이 불가능한 일을 도전하는 것은 단순한 이유다.
그들은 그저 짝을 짓고, 새로운 생명을 낳기 위해 스스로의 몸을 불살라가는 것일 뿐. 허울 좋은 구도와 진리 같은 것을 그들이 생각할 리 없겠지.
종을 퍼뜨리고 생명을 퍼뜨린다는 단순한 이유.
하지만 그렇기에 그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가장 기본적이고도 쉬운 것이니 말이다.
생명은 생명을 낳고, 자신의 몸을 불살라 순환하는 것으로 세계를 유지한다. 그것이야 말로 가장 순수한 본능이자 규칙.
그것 이상 가는 진리도 규율도 없다.
죽어가는 것과 새로이 태어나는 새싹과도 같은, 결코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 맞닿아 만들어져 세계를 이루고, 더 나은 존재로의 진화를 만든다.
생명은 진화구나.
불길 속에 뜨거움을 견디지 못한 것인지, 나의 머리는 관계없는 사고들을 무자비로 얽혀내 복잡한 실타래 같은 것을 만들었다.
서로 이어지지 않는 생각들이 억지로 연결되어 만들어낸 생각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머리에 탄산을 끼얹은 것처럼 시원한 감각마저 일깨운다.
난생 처음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들, 기운이 아랫배로부터 온몸으로 끓어오르는 감각이 무척 신기하면서도 지금 이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양면으로 함께 존재한다.
사실 지금의 나는 그저 한 마디를 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다른 미사여구 따위야 아무래도 좋다.
나는, 엘프리데에게 한 마디 하기 위해 타들어가는 불길을 손으로 휘 젓는다.
다만 나의 손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 이 불길 속에서 엘프리데는 내게 잡히지 않는다.
아마도 한 걸음.
한 걸음 앞에 있겠지.
그러나 온몸의 힘을 쥐어짜내도 도무지 마지막 한 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이 열기의 장벽 너머에 엘프리데가 있다.
잘은 모르겠어도, 그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녀석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말했다. 손은 닿지 않아도 목소리는 닿을지 모르고-.
-어쩌면 이것이 녀석과 나의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니까.
“엘프리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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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회
온유하고, 화를 내지 않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