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egal Alien Cult RAW novel - Chapter 388
390 – 정글의 섬, 이데오페의 눈물 #2
“핫산, 이것도 깨 부숴줘! 내 힘으론 힘들어. 아, 내 이름은 파루루야.”
파루루라는 여자애가 나를 향해 작고 단단해 보이는 열매를 가져왔다.
호두처럼 생겼는데 그 크기가 주먹만큼 커다래서 과연 망치 같은 것 없이는 부수는 것이 힘들어 보인다.
물론 내게는 망치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손으로 잡고 힘을 주면 으드득-하고 단단한 껍질들이 박살이 날 뿐. 난 존나 천연 호두까기 인형인 것.
“와, 진짜 신기하다. 정말 맨 손으로 부수잖아!”
“이게 대륙의 남자인가? 대륙에서 온 남자들은 다 트롤처럼 힘이 강해?”
히히.
한참 들끓던 사춘기 시절에는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만약 내가 남자들이 희귀한 세상 같은 곳에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만약 나를 제외한 다른 남자들의 모종의 이유로 사라지게 된다면 남은 나는 어떤 취급을 받을까 생각했는데. 그 답이 여기있는 듯하다.
“핫산, 여기 이것도 먹어 봐! 바위 설탕을 굳혀서 만든 거야!”
“핫산, 아까부터 많이 먹었어! 이제 배불러! 내가 녹스 차일드 부족에서 몰래 훔쳐온 꿀 빵을 잔뜩 먹었거든!”
“아루루, 왜 네가 난리야? 내가 만든 것도 먹이게 해 줘!”
평범했던 내가 이데오페 섬에서는 인기 만점? ~인생 리셋으로부터 최선을 다한다~그런 요상하기 짝이 없는 제목도 이곳에서는 존나 실화인 것이다.
여기저기서 조잘거리는 목소리로 꺅꺅거리는 것이 정신이 없으면서도 무척 부끄럽고도 기분이 좋았다.
물론 이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엘프리데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은 영 좋지 못한 징조지만 말이다.
“쯧-.”
누군가 혀를 차고 있는 엘프리데에게 묻는다.
“흐응-, 너는 엘프라고 하는 구나. 너는 저 핫산이라는 애랑은 무슨 관계야? 대륙에서 왔으면, 다른 대륙인들도 핫산처럼 잘생겼어?”
그에 엘프리데는 정말 기가 찬다는 것처럼 파핫-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핫산이 잘 생겨? 너희들이 진짜 잘생긴 남자를 못 봤구나. 따지고 보면, 어제 핫산이 쓰러트린 그 남자가 더 잘생기지 않았어?”
엘프리데는 지금 침대 어딘가에 누워 요양중인 남자를 말하는 듯하다. 루나의 내연남으로 오해한 내가 한 방에 졸도시키고 말았지.
적당히 힘조절을 하긴 했기 때문에 당연히 죽지는 않았다. 해변에서 서핑보드를 탈 것처럼 잘생긴 용모가 조금 멍이 들고 부어오르긴 하겠지만….
그에 분홍머리 여자애들이 답한다.
“확실히 비르카스는 잘 생겼지. 하지만 얼굴만 잘 생겼잖아.”
“맞아! 얼굴만 잘 생기면 뭐해! 남자라면 사냥도 잘 하고, 힘도 좋고 무엇보다 영혼이 잘생겨야지.”
“맞아, 핫산처럼 영혼이 잘 생긴 남자는 정말 처음 봤어….”
영혼이 잘 생겼다니.
그런 말을 루나에게서 들었던 사실이 떠오른다. 내 겉모습은 비열한 도적 대장 같아서 무섭게 보이지만, 내 영혼은 루나가 만났던 그 누구보다 잘 생겼다고 종종 칭찬해주고는 했지.
나는 그것이 루나 나름의 배려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 분홍 머리 여자애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진짜 무슨 뭐 영혼이라는 것에도 용모가 있는 듯하다.
루나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구나.
“영혼이 잘생겼다니. 이해할 수 없어. 어이없네.”
다만 엘프리데에게는 이것이 무슨 질 나쁜 농담처럼 들리는 모양이다. 엘프리데는 그냥 내가 다른 여자들에게 둘러 싸여서 관심을 받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겠지.
그런 엘프리데에게 한 마디 하는 분홍 머리 여자애.
“너, 불을 다루는 실력은 뛰어난데. 영혼을 보는 법은 모르는 모양이구나? 엉터리 같은 주술사네.”
그에 엘프리데가 눈썹을 치켜 올린다.
“영혼을 본다고? 마나를 느낀다는 소리?”
“마나랑은 또 달라. 영혼을 보는 법을 배우면, 네 안에 깃든 네 스스로의 영혼도 마주할 수 있게 될 거고, 네 불꽃의 주술도 한층 더 진화할 수 있을 걸?”
“내 불꽃이 지금 이상으로 진화 한다고?”
“그래! 불꽃에 영혼을 불어 넣어서 은잠비처럼 다룰 수도 있을 걸! 가능성이 있는데 배우지 않는다니, 너무 아깝지 않아?”
“살아 움직이는 불꽃이라….”
분홍머리 여자애들이 하도 많아서 심기가 불편한 듯한 엘프리데였으나, 자신의 경지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것에는 나름 흥미가 있는 듯했다.
“그, 영혼이라는 거, 어떻게 보는데?”
“일단 마음의 눈을 떠야 해!”
“뭐야, 역시 뜬구름 잡는 소리잖아.”
“이게 어떻게 하는 거냐면-.”
쿵-!
여자애와 엘프리데가 무슨 진지한 이야기 같은 것을 나누려고 했던 그 순간. 나무 위에 매달려 있던 거대한 야자수라도 바닥에 떨어지는 것처럼 큰 땅울림이 일었다.
그와 동시에 바깥 여기저기서 괴상한 소음이 터져 나온다.
아르아아아앗-!
식량과 남자를 내놔!
바깥에서 들리는 높은 목소리에 방금까지만 해도 여유를 즐기고 있었던 얕은 나락의 부족민들이 바짝 긴장한 것처럼 고개를 낮춘다.
그리고는 저마다 방 구석구석에 놓여 있는 창이나 액막이 투구를 쓰고는 무장을 갖췄다.
“녹스 차일드 부족이에요! 놈들이 쳐들어왔어요!”
족장 가루루의 말에 나는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녹스 차일드 부족이면 루나로부터 심심할 때마다 들은 부족 이름이 아닌가?
가루루! 너희 부족이 남자 한 명을 숨기고 있는 거 다 알아! 빨리 먹을 거랑 포함해서 다 내 놔!
빨리 먹을 것을 내놓는 것이다! 그렇지 않겠다면, 무시무시한 꿀벌들의 분노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부우우웅-.
곧 나무집 주변으로 무슨 헬리콥터라도 날아다니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버럭 소리를 지르는 족장 가루루.
“꾸, 꿀벌 주술사다! 모두 창문을 막아! 놈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면 다 끝장이야!”
꿀벌 주술사는 뭐지.
다만 나는 어째서 가루루나 다른 부족민들이 허둥지둥 바리게이트 따위로 창문을 가리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있었다.
부우웅-.
붕붕-.
곧 내 머리통처럼 커다란 꿀벌들이 동그란 엉덩이를 흔들며 창문 여기저기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으니까.
마치 거대한 살인 드론의 공격이라도 받는 것 같아서 나는 몹시 당황했는데.
어딘가에서 이러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미간이 좁혀지고야 말았다.
꿀벌 전사들아, 타타리 부족의 재산과 먹거리, 사탕들을 남김없이 약탈하는 것이다!
스륵.
나는 카랑카랑하게 터져나오는 외침에 창문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 나의 행동에 깜짝 놀란 것처럼 떠는 가루루의 부족원들.
“위험해! 바시키르 꿀벌에 쏘이면 며칠은 아파! 심하면 죽을지도 모른다구!”
바시키르 꿀벌이라니.
그것은 꿀물의 님프 도리스가 부리고 있던 꿀벌 친구들의 이름이 아닌가?
그에 창문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나는 곧 그 아래에서 무어라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작은 녀석을 바라볼 수 있었다.
“패배자 가루루는 어서 항복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꿀벌들의 분노를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몸, 깊은 밤의 부족, 으뜸 전사 도리스는 정말로 무시무시한 꿀벌들을 다루는 것이다…!”
뭐여 스벌, 도리스 맞잖어.
나는 반가운 마음에 녀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야 도리스. 거기서 뭐 해! 나 핫산이야!”
“아앗-! 너는 집주인의 못 되어먹은 남자친구인 것이다…! 그리고 내게서 코레를 도둑질해 간 아주 나쁜 새끼인 것이다…!”
“….”
도리스는 님프 답게 분노가 많고 입이 험했다. 그리고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자신의 친구인 코레를 훔쳐간 검은 머리의 남자와 닮았기 때문이고-.
그 외에도 루나와 사이가 좋은 녀석은 아무래도 루나를 종종 속상하게 만드는 내가 영 못마땅한 눈치다.
“아주 순 나쁜 새끼인 것이다…!”
“이런 스벌.”
“스벌이라니…! 그런 벌은 키우지 않는 것이다! 아무튼 도둑놈, 대체 네가 왜 거기서 얼굴을 내미는 것이냐?”
“너야말로 거기서 뭐 해.”
“나는 깊은 밤 부족의 으뜸 전사, 도리스인 것이다…! 오늘이야말로 건방진 타타리 부족 놈들의 끄나풀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파멸시키고야 말 것인 것이다…! 저 녀석들이 내 꿀벌 통을 훔쳐간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 패러노이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녀석이 있었으면 두 배로 시끄럽고 두 배로 정신이 산만했겠지.
부우우웅-.
벌들이 더욱 날갯짓을 심하게 하며 창문과 문에 붙은 바리게이트들을 뜯어내기 시작하고.
그 안에서 숨어 오들오들 떨고 있던 가루루의 부족민들이 “꺄악-!”하고 비명을 내지르는 것을 보자 나는 문득 이 녀석들이 불쌍하다고 여겨졌다.
그래도 나를 융숭하게 대접해주고 먹을 것도 준 녀석들인데, 이대로 도리스의 꿀벌에 다 털리고 나면 이 녀석들은 먹을 것조차 남지 않아 올 겨울을 나기가 힘들겠지.
나는 어째서 도리스가 뭔 부족의 으뜸전사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가 열심히 벌통을 훔쳐 먹은 값을 치를 때가 온 것이닷…! 꿀 빵을 먹으려고 아껴두었던 벌꿀들인데…!”
녀석이 이 약소 부족을 약탈하고 못살게 괴롭히려 한다는 것 정도는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식사와 씻을 자리를 넘겨준 것에 감사를 표할 겸, 도리스를 설득해 약탈을 멈추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스륵-.
창문 바깥으로 풀쩍 몸을 날려 바닥에 착지를 하자 쿵-하는 소리와 함께 제법 먼지가 일어난다.
그와 동시에 도리스의 어깨 너머로 날개처럼 펼쳐져 있던 괴상한 액막이의 여자들이 잔뜩 긴장을 하듯 자세를 낮추고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내는 것이 보인다.
어제 밤에 나를 상대했던 가루루 부족민들과 다르게, 나를 포위하는 것부터 기이한 법진 따위를 벽에 그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제법 전투에 익숙한 사람들 같다.
루나의 말에 따르면 이데오페에는 어지간한 마법사 못지않게 강력한 의술사들이 존재한다고 그랬는데, 저들이 아마 그것과 가장 근접한 존재들이겠지.
저 녀석, 꽤 강해 보이는데?
보통 남자는 아냐. 키가 무슨 트롤처럼 크잖아. 대륙에서 온 남자인가?
살려서 포획해가자. 살아만 있으면 되니까, 반항하면 팔이나 다리 하나 정도는 부러뜨려도 돼. 반항하면 곤란하니까!
좋은 생각이야. 안에 있는 여자들은 소금 채석장으로 끌고 가서 일이나 시키자.
그리고 서로 나누는 대화들이 가루루의 부족민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살벌하기 짝이 없다. 녹스 차일드 부족이 이렇게나 무시무시한 놈들이었나?
나는 도리스를 향해 말했다.
“일단, 궁금한 게 있는데. 루나는 무사하냐?”
“그래! 이 몸 도리스가 옆에서 잘 챙겨주고 보살핀 것이다…! 도리스는 언제나 코레들의 친구이니까…!”
“그래, 그럼 됐어. 그럼 너와 내 사이니까 하는 말인데. 오늘은 그냥 일단 물러나 줄 수 없냐? 나도 저기 위 녀석들에게 신세를 좀 져서,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기는 좀 그런데.”
스륵-.
나는 등 뒤에 있는 몽둥이를 뽑아들었다.
그에 도리스는 오들오들 떨기 시작한다.
“그, 그럼 오늘은 물러나는 걸로….”
다만 녀석이 무어라 얘기하기 전에 뒤쪽에서 빽-하고 외침이 들린다.
“도리스 님, 저 남자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거에요…!
“저희도 가세할게요! 야, 너! 우리 도리스님이 얼마나 강력한 꿀벌 주술사인 줄 모르지! 울고불고 해도 소용없어! 얌전히 투항해!”
도리스 뒤에서 가면 쓴 여자애들은 싸울 의지가 가득한 듯했다.
족히 열 명은 넘는 병력. 바시키르 꿀벌이라는 강력한 킬링드론. 그것을 다루는 꿀물의 님프까지 있으니 과연 기세가 등등 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
그에 파르르 떨며 말을 덧붙이는 도리스.
“오늘은 그냥 돌아가는 것이다…! 저 녀석과는 싸워선 안 되는 것이다…! 모두, 모두 조용히 하는 것이다…!”
도리스는 거의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다.
저벅-.
내가 녀석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가자, 끝내 버티지 못한 것인지 도리스는 그대로 뒤를 돌아 도주해 버린다.
“모두, 모두 도, 도망치는 것이다-! 도망쳐야 하는 것이다…!”
부우우웅-.
꿀벌들의 여왕 도리스가 도주하자, 옅은 나락 부족의 집을 공격하고 있던 큼직한 꿀벌들도 곧 그 뒤를 따라 검은 안개 같은 것을 만들어내며 사방으로 비산한다.
“뭐야? 뭔데?”
“몰라!”
남아 있는 것은 도리스의 부하들로 보이는 여자애들 뿐.
큼지막한 액막이 가면을 각각 쓰고 있지만 그 아래로 녀석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지 훤히 보이는 듯하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 내 뒤에서 소리친다.
“지금이야! 던져! 핫산 님을 도와주자!”
그것은 창문이나 문을 나무로 틀어막고 있던 족장 가루루다. 그녀와 그 부족원들이 기묘한 항아리 같은 것을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
쨍그랑, 파각-.
“갸악-!”
“이, 비, 비겁한 년들아-! 돌 던지는 건 금지하기로 했잖아!”
“겍-!”
그것에 머리를 맞은 여자애들이 하나 둘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기절을 한 사람들을 빼면 녹스 차일드의 부족민들은 모두 도리스가 도망친 방향 그대로 도망쳐 상황이 간략하게 끝이 나고 말았다.
“우리가, 우리가 녹스 차일드의 약탈자들을 물리쳤어!”
“오늘은 축제다-! 일단 남아있는 녀석들, 가진 것 다 뺏어!”
기뻐하는 가루루와 그 부족민들.
나는 바닥에 쓰러져 파들파들 떨고 있는 녹스 차일드의 여자애, 그 얼굴에 씌워져 있는 가면을 벗겨냈다.
그러자 살짝 이마에 혹이 나 있는 맨 얼굴이 드러난다.
나이는 루나와 비슷한데, 분홍 머리를 포니테일처럼 하나로 묶으니 느낌이 또 새롭다.
“야, 너희 부족에 혹시 루나라고 있냐?”
“루, 루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 루나님은 우리 부족의 수호신이니까-!”
“수호신?”
“그, 그래! 루나님과 함께하는 녹스 차일드 부족은 언제나 승리할 거야! 타타리 부족 놈들에게 억압받던 나날도 이제 끝이거든!”
“아니 무슨…. 혹시 너희 부족까지 안내 해 줄 수 있냐?”
나는 이 섬과 루나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너, 가까이서 보니까, 영혼이 무척 맑고, 영롱하구나. 너 같은 영혼은 처음 보는데. 호, 혹시 여자 친구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