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egal Alien Cult RAW novel - Chapter 50
050 ? 소도모라의 샛별 핫산 #1
정신을 차리자 온통 새까만 풍경이 보였다. 뭐지? 나는 방금까지 루나와 침대 위에 있었을 텐데.
주변을 둘러보니 침대도 여관방도, 하물며 루나의 따뜻한 살결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고 그저 차갑고 어두운 어둠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다행히 하늘에 동그란 것이 떠서 은은하게 발광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 몸과 주변 풍경 정도는 어렴풋이 보였다.
찰랑-.
그 어둠속에서 나체로 존재하는 나. 그런 나의 발목에는 얕은 물인지 뭔지 모를 것이 잠겨 잔잔하게 흔들린다.
꿈인가? 꿈이라기엔 내 정신이 너무나도 맑다.
시바, 뭐지?
그렇게 이 뜻밖의 상황에 난감함을 느끼고 있던 그때.
어둠 속에서 스윽-하고 무언가가 나의 코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그것은 내가 묘사할 수 없는 무언가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을 형태라고 표현하는 게 좋을까? 구부러져 있으면서도 반듯하고, 말랑말랑하면서도 딱딱 해 보이는 모양새.
그리고 무척 난해하여 꿈틀거리는 것이 그야말로 괴물이 따로 없다. 하지만 무섭다기보단 시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하는 당황이 오히려 앞선다.
작은 밤.
작은 달.
작은 녹스.
접촉했구나.
경배해라.
찬미하라.
네 운명.
그것이 족히 열 개도 넘어 보이는 입을 동시에 열어 말했다. 곧 저마다 시끄럽게 떠들고 있던 언어들이 한데 뭉쳐 하나의 문장을 완성해낸다.
경배해라. 작은 존재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시바, 갑자기 뭘 경배하라는 거지? 뭘 줘?
그렇게 의아함을 느끼고 있던 나의 눈앞에, 보글보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두운 수면 위로 조그마한 단상 같은 것이 솟아났다.
그 위에 놓인 것은 세 개의 과일들. 각기 석류나 사과 포도 따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집.
어.
라.
고압적인 목소리에, 나는 가장 평범해 보이는 사과를 한 알 집어 들었다.
스윽-.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것처럼 서늘한 사과의 감촉이 느껴짐과 동시에 디링-하는 소리가 들렸다.
깊은 밤의 이슬을 맞은 홍옥》
『대지모신 가이아와 더불어 만물의 어머니로 불리는 태초의 밤 녹스. 하늘의 제왕 쥬피테르 조차 두려워하는 그녀가 누구에게도 주지 않고 몰래 가꿔온 사과다. 그녀만의 특별한 비법으로 가꾼 것이라고. 물론 누구도 맛 본적이 없기에 맛은 장담할 수 없다.』
『섭취 시 카르마를 소모하여 보유 중인 은총 밤의 장막》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완력의 수치 1을 소모하여 밤의 장막》을 밤의 망토》로 강화하시겠습니까?』
『주의 : 20퍼센트 확률로 야맹증》 발현.』
카르마를 소모하여 은총을 강화할 수 있다니. 이는 또 처음 보는 형식의 글자들이었다.
평소처럼 과업의 수치를 이용하여 무엇을 해라-라는 식이었으면 이제 그리 놀라울 것도 없을 것 같았는데.
이런 식으로 직접적으로 내 능력치 자체를 깎아 강화하는 종류의 것이 있었을 줄이야. 이건 좀 놀랍기도 하고, 또 주의라는 단어에 어딘가 오싹오싹하기도 하다.
뭘 주의하라는 걸까? 리스크?
먹어라.
받아들여라.
작은 존재.
그런 나의 눈앞에선 괴상하게 생긴 무언가가 내게 이 사과를 먹을 것을 계속해서 종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곧이곧대로 삼킬 만큼 내 정신이 혼미하진 않았다.
나는 단상 위에 사과를 조심스럽게 다시 내려놓은 뒤, 이번에는 그 옆에 잘 익다 못해 반쯤 터져 있는 석류를 집어 들었다. 석류 치고는 무슨 손난로라도 되는 양 따뜻한 느낌이다.
디링-.
태양 빛을 담뿍 받은 델포이 석류》
『델포이의 여사제들이 대신전의 정원에서 정성들여 가꾼 석류. 하지만 너무나도 익은 나머지 속이 보일 정도로 쩍 갈라져 버렸다. 석류는 보통 여성에게 좋은 과일이라 알려져 있지만 델포이 석류는 반대로 남성에게 효과가 좋다.』
『섭취 시 카르마를 소모하여 보유 중인 은총 어설픈 손재주》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체력의 수치 1을 소모하여 어설픈 손재주》를 따뜻한 손》으로 강화하시겠습니까?』
『주의 : 90퍼센트 확률로 모근 약화》 발현.』
이런 시발, 모근 약화라니!!! 진짜 이것만큼은 피해야 한다. 과학이 발달한 세계에서도 탈모는 영구적 불치병이나 마찬가지.
오죽하면 탈모를 근절시킨 과학자는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싸대기를 갈겨도 무죄라는 말을 할까.
아무튼 나는 더러운 것이라도 만진 것처럼 석류를 내려놓고 이제는 그 옆에 놓인 마지막 포도를 집어 들었다. 알알이 풍성하게 가득 들어 있는 자주 빛 포도였다.
디링-.
디아나의 은밀한 포도》
『철학과 정치의 도시 아르테네에서는 매년 질 좋은 포도들이 주렁주렁 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 가장 탐스럽고 보암직한 포도송이는 도시의 주인이자 지혜의 여신인 미네르바에게 헌상되어 진다고. 이것은 달의 여신 디아나가 그것을 훔쳐 몰래 먹으려던 것이다.』
『섭취 시 카르마를 소모하여 보유 중인 은총 어설픈 손재주》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민첩의 수치 1을 소모하여 어설픈 손재주》를 기민한 손놀림》로 강화하시겠습니까?』
『주의 : 80퍼센트 확률로 수전증》 발현.』
전체적, 종합적으로 보면 역시 내가 가진 은총을 강화하는 기회가 찾아온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언가 선뜻 선택하기도 어려웠다. 좀 더 친절한 설명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이게 끝입니까?‘
….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경배해라-어쩌구 저쩌구 시끄럽게 굴었던 존재가 지금은 또 모든 입을 다물고 있다.
어차피 기대도 안했다.
아무튼 글자로 유추해보자면 따뜻한 손》은 말 그대로 손바닥이 따뜻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고. 그 밑의 기민한 손놀림》 역시 손이 빨라지게 되는 것이리라 예상 된다.
도무지 봐도 뭔지 모르겠는 것은 사과를 만졌을 적에 떠오른 밤의 망토》 정도? 그래도 이것은 리스크의 발현 확률이 가장 낮다.
고민 되네 스벌. 꼭 하나 선택해야하나?
그리하여 나는 슬쩍 눈을 굴려 눈앞의 괴상하게 생긴 무언가를 쳐다봤다.
구물텅 구물텅.
….
아무리 봐도 존나게 이상하게 생겨서 이제 슬슬 소름이 끼쳐오려고 한다. 이런 괴물 같은 것이랑 계속 여기 있어야 하는 것도 무척 끔찍한 일인데.
이들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눈앞에 보이는 사과를 집어 들었다. 밤의 망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만 가장 리스크의 발현 확률이 적으니까, 일단 안전주의로 가자는 생각이 앞선 것.
녹스의 사과.
먹어라.
프로토게노이의 힘.
무어라 지껄이는 괴물을 신경 쓰며 나는 사과를 한 알 베어 물었다.
아삭-.
그러자 걱정했던 것과 달리 제법 상큼하고 단단한 과육이 입안에서 화악 퍼지며 머릿속을 뒤흔드는 듯했다. 결과적으로 무척 맛있어서 나는 그것을 한 입에 집어넣듯 마구 뱃속으로 쑤셔 넣었다.
또 와라.
작은 존재야.
* * *
눈을 뜨자 나무판자들이 촘촘히 쌓여 만들어진 천장과 황토색 벽지 따위가 보였다.
제법 익숙한 천장.
내가 묵게 된 여관 님프 날개의 막간 방이었다. 활짝 걷어진 창문으로는 햇살과 함께 지지배 지지배배-거리는 새소리들이 가득하다.
언제 아침이 됐지? 그보다 존나게 신기한 꿈이었다. 사과 먹는 꿈은 해몽이 뭐였더라.
내 아버지는 이따금씩 찾아오는 노인들에게 해몽도 하주고 사주팔자도 봐줬었는데, 나는 해몽이나 팔자나 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개소리 같아서 배울 엄두조차 내질 않았다.
그래서 모른다. 시바, 그냥 개꿈이었구나 하고 넘길 뿐.
교양시간에 배운 내용에 따르면 꿈은 그냥 무의식 발로라고 했으니, 과일을 먹고 싶었던 나의 심층 의식이 그런 걸 보여줬는지도 모를 일.
그래도 혹시 몰라 중얼거리게 된다.
“혼돈 만세….”
그러자 디링-하는 소리와 함께 내 눈앞으로 떠오르는 글자들.
『이름 : 하산 Lv. 9 8
완력 : 4 3
민첩 : 2
체력 : 3
과업 : 37
은총 : 혼돈의 축복》 어설픈 손재주》 밤의 망토》』
시바, 꿈이 아니라 진짜였나 보네.
1만큼 줄어든 완력의 수치. 그에 대한 영향인지 레벨 또한 1만큼 저하되어 있다. 그리고 새로 생겨난 밤의 망토》라는 항목에 인상을 찌푸릴 때였다.
밤의 망토》
『채광이 적은 어둠 속에서 은밀한 행동에 들키지 않을 확률을 보정해준다.』
오오-.
뭐야, 은총에 대한 내용 설명도 나온다. 그래서 다른 은총도 혹시 설명이 떠오르는 것인가 해서 바라봤는데, 딱히 나오는 것이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내 옆자리가 텅텅 비어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먼저 일어난 루나가 자리를 비운 걸까?
혼자 자기엔 넓은 더블베드의 침대가 유난히 쓸쓸하다. 루나는 어디 갔지. 밥 먹으러 갔나? 왜 나를 안 깨웠지?
온갖 생각에 빠져있을 때.
벌컥-.
내가 머무르고 있는 방의 문이 열리더니 제법 익숙한 분홍 머리 여자 아이가 내가 있는 방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 핫산, 일어났구나…!”
어딘가 몹시 부끄러운 듯 수줍게 말하는 루나. 제법 뽀얀 했던 그 얼굴은 나를 마주하자마자 터질 것처럼 붉게 물들었다.
물론 부끄러운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리니 온몸이 화끈거리고 쥬지가 다시금 딱딱해진다. 연인들은 매일 아침, 이렇게 부끄러운 것을 어떻게 참았을까?
아무튼 나는 이 어색하고 부끄러움 가득한 상황을 돌리기 위해 짐짓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어디 갔다 온 거냐? 없어진 줄 알았잖아.”
“하, 핫산 네가 너무 곤히 자고 있기에 깨우기가 그래서…. 잠깐, 바람 좀 쐬러 나갔다 왔어. 몸이 엄청 가벼운 거 있지? 무, 물론 다리 사이가 쓸리고 좀 아프긴 한데….”
루나는 그것으로 또 말을 멈췄다. 다리 사이가 아프다는 것에서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린 것이지 않을까.
“아, 아무튼 이거 받아.”
정신을 차린 것인지 내게 나무잔을 하나 내미는 루나.
그것을 받아들고 대체 뭔가 하고 들여 봤더니 그 안에는 금빛으로 반짝이는 음료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보리차? 아니, 그렇다기엔 조금 더 빛나고 달달한 냄새가 나는데.
“이게 뭐냐?”
“이거? 꿀물. 바시키르 꿀벌 집에서 조금 따 왔어. 핫산, 많이 피곤해 보여서….”
과연 꿀물이구나. 아무튼 목이 타기도 했고 가만히 있기도 뭐해서 그것을 벌컥벌컥 들이키자 상상이상으로 단 맛이 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입안이 저려올 만큼 강렬한 단맛에 내 몸에 반쯤 녹아내려 있던 잠기운과 피로도 싹 가시는 것 같다.
“맛 좋네.”
실제로 맛이 좋았다. 이 세상에서 단 맛이라는 것은 제법 귀한 사치품이니까. 이렇게 단 음식을 먹어본 게 언제였더라.
아무튼 정말 오랜만에 하는 당분 보충에 몸속에 활력이 돋는다.
“맛있다.”
“그, 그래? 다행이다. 아무튼, 벌써 해가 높이 떴어. 점심이야.”
벌써 점심시간이나 됐다고? 이렇게 깊은 잠에 빠졌던 적이 얼마 만이었더라. 원정을 다녀오고 불침번이니 뭐니 하는 것에 몸에 피로가 쌓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와 루나는 여관 1층으로 내려가 간단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소시지나 옥수수 죽 따위가 들어간 음식이라 그냥 저냥이었지만, 사실 맛 보다는 루나와의 어색한 침묵이 신경 쓰여서 음식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
그렇게 슥-하고 루나를 쳐다 본 나. 루나가 뜨거운 수프를 식히느라 후-후-하고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는 게 무척 야릇하게 보인다.
저 얇고 빛나는 입술과 내가 어제 입을 맞추었다는 걸까?
루나의 자그마한 입이 굵은 소시지를 물 적에는 주책스럽게도 나의 쥬지가 왕창왕창 팽창하게 돼 뻐근할 지경.
나는 어째서 많은 남자들이 여자 친구나 애인을 만드는 것에 노력하는 지 알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세상이 달라진 기분. 이 여관 안에 있는 남녀 간의 커플들은 모두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걸까?
그보다 루나와 나의 관계는 뭐지? 커플? 여자친구?
모르겠다.
아무튼 또 하고 싶다. 그런데 루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날 하루만 내게 허락해 준 것 같던데…. 그보다 순결 서약을 어기면 목숨이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혼자 안달이나서 우물쭈물 할 때였다.
“…핫산, 오늘은 뭐 할 거야?”
“오늘? 오늘….”
오늘 뭐하지. 오늘도 여관방에서 마사지 해 준다고 할까. 시바, 머릿속이 온통 그 생각으로만 가득 차서 정신이 없다!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던데. 그 이유가 뭔지 이제야 좀 이해가 간다.
후-.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생각과 숨을 고른 뒤 말했다.
“길드 가서 돈 받아야지.”
“나도 길드 가야 하는 데. 같이 가면 되겠다!”
[작품후기]후원쿠폰을 주신 랜서가신다 님!!! 포테토서버 님!!! circle0810 님!!! yayayeah 님!!! HMR클랜 님!!! Kadeom 님!!! 로롤히 님!!! kidonvg 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honor7 님!! 정말 감사합니다!!
또 많은 분들께서 원고료 쿠폰을 보내주셨어요. 이름이 안나와서 감사를 표할 수가 없지만 정말 감사하게 받겠습니닷…!!
또 추천과 코멘트를 달아주신 모두들 감사해요..!!
숨을 참아가며 4연참을 쓴 보람이 있어서 무척 좋네욧 ㅠㅠ…!!
51회
소도모라의 샛별 핫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