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29
61 버림받은 사냥개 (5)
젠트리 제약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사람들이 형체 없는 범인을 쫓는 사이, 설록진은 음지에서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설록진이 젠트리 제약의 사람들을 모두 처리한 이유가 제약 회사에서 개발하던 약물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묻어 놓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이의 관심을 받는 중이긴 했지만, ‘어차피 실효성이 없었던 약물’, ‘몰락한 중소 제약 회사에 숨겨져 있던 비밀’이라는 식으로 뉴스를 몇 번 터트리면 그 약물에 대한 기대는 실망으로, 실망은 곧 무관심으로 이어졌을 테니까.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설록진 같은 놈의 곁에서 삼 년쯤을 보내면 배우는 게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설록진에게는 더 거대한 계획이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 회사를 없애 버리기엔 아깝지 않았냐는 내 질문에 설록진이 말했다.
[아깝다고 생각했어?]
“예, 뭐. 만들어만 놓으면 어디든 쓸 수 있을 것 같은 약이잖아요.”
딱히 각성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도 설록진이라면 다른 쪽으로라도 써먹을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단 말이지.
[맞아.]
“예? 그 약물이 세상에 나오는 걸 막으려고 그 사람들을 죽인 거 아니었습니까?”
내 질문에 설록진이 말했다.
[아니, 내가 그쪽을 없애 버린 건 그쪽에서 협상을 거절했기 때문이야.]
“협상이요?”
[그래. 그런 위험한 약을 아무한테나 판다잖아.]
설록진은 내게 그들이 죽어야만 했던 이유를 천천히 말해 주었다.
젠트리 제약의 사장은 각성자들을 위해서 그 약물을 저렴하게 어디서든 구매할 수 있게 하려고 했다.
인식표에서의 자유.
그리고 각성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자유.
젠트리 제약 회사의 사장의 목표는 이타적이기 짝이 없었다. 차라리 그가 돈에 눈이 먼 인간이었다면 설록진과의 협상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는 너무나도 좋은 인간이었다.
그가 이 약물을 개발하게 된 것은 오로지 그녀의 딸 때문이었다. 그녀의 딸은 정신계 각성자였고, 정신계 각성자들이 으레 그렇듯이 평생을 다른 이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고 했다.
등급이 낮아 아카데미 입학이 거절되어 일반 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각성자라는 이유로 지독한 왕따를 당했다고.
약물을 개발한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다시는 자신의 딸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
하지만 그 목표에는 국회의 협조가 꼭 필요했다. 약물을 시장에 풀어놓는다고 하더라도 국회에서 관련된 법안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사람들은 인식표를 달고 다녀야 할 테고 그러면 약물로 얻으려고 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소용이 없게 될 테니까.
젠트리 제약 회사의 사장은 너무나도 순진했다. 평생 약만 만들어 온 과학자인 그녀는 세상 물정을 너무나도 몰랐다.
그래서 설록진을 직접 찾아가 자신의 약물을 설명하고, 그 약물이 불러올 여파를 설명하며 법안에 힘을 실어 달라는 말을 한 거겠지.
그 말이 자신의 목 위에 올가미를 거는 짓이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 회사는 망하게 되었지만, 저 기술은 사장되지 않을 거야. 마침 운이 좋게도 일찍 퇴근한 덕분에 살아남은 생존자가 있거든.]
그리고 그 생존자는, 김성득 의원의 아들이 운영하는 현무 제약에 스카우트될 예정이라고 했다. 현무 제약은 정부에 조건 없는 협력을 약속하겠지. 정확히 말하자면 정부가 아닌, 설록진에게.
이 건으로 김성득 의원과 설록진만 이득을 얻게 되었다.
가뜩이나 설록진만 보면 헤벌레 벌어지는 김성득 의원의 입이 이젠 쭈욱 찢어져 관자놀이까지 닿지 않을까.
‘으…….’
활짝 웃는 김성득 의원의 얼굴을 떠올린 나는 치를 떨었다.
“그나저나 현무 제약에서 그 약을 생산한다면, 어,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무한테나 그 약을 쓰진 않을 거라면서요.”
[정부는 그 약을 범죄자에게만 사용할 거야.]
설록진의 말로 확실해졌다. 약물이 일반인에게 유통되는 일은 없을 거다.
그 약물을 대중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일도, 정신계 각성자들이 인식표를 벗어던지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다.
자신의 딸의 자유를 꿈꿨던 한 어머니의 소망은 이렇게 무너져 버렸다.
자신의 재능을 증오해 차라리 ‘치료’라도 받고 싶다는, 이들의 간절한 소망 또한 권력자들의 욕심에 의해 짓밟혔다.
[그나저나 개를 돌보는 건 꽤 할 만한가 봐?]
설록진의 말이 나를 상념에서 꺼냈다.
“……아니요. 그러니까 빨리 좀 찾아 주세요, 그 조련사라는 사람이요.”
내 투덜거림에 설록진은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 그러니까 그 녀석을 잘 돌보고 있어. 그렇다고 너무…….]
“정은 주지 말고요?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나는 투덜거리면서 전화를 끊었다.
정이 들기는, 멍이 잔뜩 들기는 했네.
오늘 난 결국 놈을 씻기는 데에 성공했다.
나는 터진 입가를 혀로 꾹꾹 눌렀다. 놈의 반항이 생각보다 거셌다.
‘나를 해치지 말라고 했다면서.’
그래도 산산조각이 난 욕조며, 세면대를 보니 나름 나를 살살 친 건 맞았다. 그 살살 친 게 이 정도라서 문제지.
“으그그.”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씻기긴 했어도 여전히 녀석은 더러웠다. 머리에는 여전히 비듬과 기름때가 가득했고, 손톱 사이에 화석처럼 자리를 잡은 때는 빼지도 못했으며, 더러운 옷도 제대로 갈아입히지 못했다.
그래도 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여전히 한 다섯 번은 더 빡빡 씻기고 싶긴 하지만.
“야.”
나는 우울한 얼굴로 구석에 처박힌 녀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굴진 않아도 되거든? 너도 엉? 깨끗하게 씻어서 기분 좋지 않아?”
내 말에 녀석은 무릎 사이로 더 고개를 처박았다. 쩝, 뭐 저렇게 뭔가 커다란 걸 잃은 것처럼 행동할 필요가 있나. 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저 좋고 내 후각 좋으라고 하는 짓인데.
“뭐, 맛있는 거라도 줄까? 그거 뭐냐, 초코칩 줄까? 초코칩?”
내 말에 고개를 돌리는 놈을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며칠간 놈을 다루는 방법을 대충은 알게 된 것 같았다.
* * *
설록진이 말했던 건 일주일이었지만, 실제로 조련사라는 놈을 찾아온 건 보름이 지난 후였다.
나는 가만히 설록진을 노려보았다.
“미안해, 조금 바빴거든.”
확실히 젠트리 제약 건을 수습하느라 많이 바빠 보이기는 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설록진 뒤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새로 뽑은 조련사라는 놈은 어째 이놈을 맡기에는 영 부실해 보였다.
지난 보름간, 내가 했던 고생은 이루 다 말로 할 수가 없을 정도다.
일단 우리 집에는 멀쩡한 가구가 거의 남지 않았다. 거의 폐허 수준이 됐단 말이다. 그동안 놈과 크고 작은 실랑이를 겪으며 죄다 부서져 버리거나 망가져 버린 가구들을 보며 나는 피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이모님을 부르지 못해 내가 직접 집안일을 했던 경험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먹을 걸로 놈을 꼬시는 방법을 알아냈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통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먹을 걸로 꼬신 다음이 최악이었다.
숨겨 놓은 간식을 하루 만에 다 먹고 배탈이 나서 여기저기 토를 해 놓질 않나……. 우욱, 그 생각은 그만하자. 또 먹은 게 올라올 것 같으니까.
그래도 막상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이제야 좀 정이 붙……, 아니, 이제야 이 녀석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나는 손에 꼭 쥐고 있던 호루라기를 조련사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얘는 먹을 거에 약하고, 어, 씻는 걸 싫어하긴 하는데 욕조에 물을 받아 두고 입욕제를 뿌려 두고 오리배를 띄워 놓으면 물놀이한다고 좋아하거든? 그때 딱 씻기면 되고…….”
줄줄이 조련사에게 그런 말을 내뱉는 나를 설록진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정은 주지 않을 거라며?”
정을 줬다니?
“적절하게 케어했을 뿐입니다만.”
나는 당당했다.
설록진의 명령에 움찔거리며 조련사에게로 향하는 놈의 등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것으로 이 녀석과의 인연은 끝일 거라고.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 * *
그 녀석을 보내고 내가 겨우 엉망이 되었던 내 집안을 다시 꾸며 놨을 때였다. 나는 소파에 앉아 콜라를 홀짝이고 있었다.
내 전화가 울리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내 인생도 제법 살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보자마자 나는 얼굴을 구겼다.
설록진이 한밤중 걸어오는 전화는 늘 끔찍한 소식을 싣고 있기 마련이었으므로.
[정은 주지 말라고 했잖아, 이신아.]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그 말에 불길함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무슨 일입니까?”
설록진은 대답 대신 내게 어떤 주소를 내뱉었다.
나는 그 주소를 향해 달려갔다.
으슥한 곳에 있는 건물, 그리고 그곳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피 냄새. 마치 얼마 전 봤던 그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시체들의 틈에 서 있는 설록진의 얼굴은 서늘했다.
“무슨 일입니까?”
“개가 조련사를 또 죽여 버렸네.”
설록진이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이제 와 보니 그의 발밑에는 그놈이 짓밟힌 채 있었다.
설록진의 발끝이 그놈의 등을 누르고 있었다.
“이번에는 뭐가 문제였나, 그 이유를 물었는데…….”
설록진이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네가 퍽 마음에 들었나 봐. 이 바보 같은 놈이 제 조련사를 죽이면 너에게로 돌아갈 줄 안 모양이야.”
그 말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청 과장이 말해 봐.”
그제야 나는 이곳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설록진이 잡스러운 일을 시키는 흥신소의 주인, 청 과장이었다.
“청 과장이 이 녀석 주인이잖아.”
“주인?”
나는 그 말에 눈을 깜빡였다. 저 녀석의 주인은 설록진이 아니었던가. 설록진은 나한테 말했다.
“나는 개를 두 마리나 기를 생각은 없거든. 한 마리만으로도 벅차서.”
그 말에 어이가 없어져 입을 딱 벌렸다.
“저번에는 ‘내’ 개라고 했잖아요!”
“그랬나? 청 과장한테서 저 녀석을 빌린 지 너무 오래돼서 착각한 모양이야. 가끔 그럴 때 있잖아. 누군가한테 물건을 빌렸는데 돌려주는 걸 까먹고 너무 오래 가지고 있어서 마치 내 것처럼 느껴지는 거. 그랬던 것 같은데.”
천진난만하게 개소리를 늘어놓는 설록진을 바라보며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하긴, 지금 중요한 건 저 녀석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게 아니다. 이 개소리의 결론이 뭐냐 하는 거지.
“그래서 청 과장은 어떻게 생각해?”
청 과장은 나와 설록진, 그리고 설록진의 발밑에서 바르작거리고 있는 놈을 힐끗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요, 버릇이 나빠졌다면 버릇을 고쳐야 하지 않을까 싶긴 한데…….”
“누가? 누가 그 버릇을 고쳐야 할까?”
“그야,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젠장. 나 때문이라고 이게? 마치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설록진이 말을 이었다.
“너한테 가고 싶어서 조련사를 죽였다는데, 아무런 생각이 안 들어? 너무하네, 이신이. 너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데도 그렇게 짜증이나 난다는 표정을 짓고.”
“그냥 조련사를 죽이지 못하게 조건을 추가하면 안 되는 겁니까?”
그렇다면 내가 저 녀석을 떠맡을 이유도 없을 텐데.
“지금 저 녀석의 머리에는 수십 개의 상자가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 있어. 그 위에 자그마한 상자 하나를 얹을 때마다 저 녀석의 머리가 터져 버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지.”
“저번에는 간단하게 추가했잖아요.”
나를 해치지 말라는 명령은 간단하게 추가했으면서, 저건 다 변명 아닌가? 내 의심 섞인 눈빛에 설록진이 말했다.
“아니, 간단하지 않았어.”
저놈의 목숨을 걸고 나를 해치지 말라는 메시지를 심어 뒀다는 뜻이다.
“그다지 잘해 준 것도 없는데…….”
나는 그렇게 변명했지만, 녀석이 당하던 비인간적인 취급에 비하면 내가 해 준 취급이 좋았던 건 사실이겠지.
확실히 보름 만에 때깔이 꽤나 고와졌으니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정말로 나 때문에 조련사를 죽인 건가?
“그러게 내가 버릇이 나빠지니까 정을 주지 말라고 했잖아, 이신아.”
설록진의 말에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나는 설록진의 눈치를 봤다. 늘 이럴 때면, 설록진은 나를 호되게 혼냈으니까.
“네가 버릇을 망쳤으니, 네가 책임지도록 해.”
“어떻게요.”
“네가 앞으로 저 녀석의 관리자가 되도록 해. 그리고 돌려놔, 예전처럼.”
“하, 하지만…….”
나는 싫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행동에 책임을 지라는 설록진의 말을 거부할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놈의 관리인이 되었다.
제23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