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28
61 버림받은 사냥개 (4)
다음 날 일어난 나는 집안 꼴을 보며 욕을 집어삼켜야만 했다.
거실에서부터 부엌에, 욕실까지. 놈이 움직인 길을 따라 뚝뚝 떨어져 있는 핏자국에 나는 이마를 짚었다. 내가 자는 사이 그림자에서 나와 주변을 돌아다닌 건지, 주변이 엉망이었다.
“도대체가…….”
여기저기 말라붙어 있는 핏자국에, 헤집어진 살림살이까지. 살인 현장이나 다름없는 집안 꼴에 나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역시 어제 피곤하다고 그 녀석을 두고 그냥 잠들었던 건 최악의 선택이었다.
“하아…….”
나는 이모님에게 문자를 날렸다. 그 심약한 성격에 우리 집안 꼴을 보면 그대로 뒤로 넘어가실 테니. 이걸 혼자 치울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어쩔 수 없지.
문제는 곧 내 출근 시간이 다가온다는 거다.
“어디에 있어?”
나는 사방으로 녀석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어디로 숨은 건지 보이지 않았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후…….”
나는 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화를 내 봤자 몽땅 내 손해다. 그래, 짐승 같은 놈이잖아. 설록진한테 머리가 엉망으로 헤집어진 상태잖아. 그래, 이럴 수 있지. 내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 수…….
“당장 안 나왓?!”
하지만 엉망이 된 집안 꼴을 보는 순간 마인드 컨트롤은 처참하게 실패해 버리고 말았다.
나는 사방을 뒤적거리며 녀석이 들어갈 만한 공간을 살폈다.
“여기냐!”
그림자 진 공간을 발견할 때마다 그렇게 소리를 쳤지만, 당연하게도 녀석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사방을 돌아다니며 화를 내고 나니, 기운이 쭉 빠졌다.
‘그래, 이렇게 화를 내서 뭘 하냐.’
자리에 주저앉은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저 녀석이 이런 행동을 하는 건, 다 설록진 때문이다. 놈을 사람을 죽이는 살인 기계로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제대로 된 생활은 할 수 없게 머릿속을 망쳐 놨으니까.
그래도 적어도 말은 통하게 만들어 뒀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시계를 힐끗 바라보았다. 어느새 8시가 가까워진 시간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각한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지만, 출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니, 잠깐. 지금 이 상황에 출근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넘겼는데, 보통은 저런 걸 달고 출근 같은 걸 할 것 같지 않단 말이지.
일하다가 갑자기 저놈이 튀어나오면 어떡하냐고.
‘어머! 이신 씨! 이, 이신 씨 뒤에 뭔가 거뭇한 게 달려 있는데?’
‘예? 뭐가요? 전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히이이익!’
그렇게 사람들을 놀리고 다니면 재미는 있을 것 같은데…… 라는 건 역시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지?
아무리 설록진이 나를 괴롭히는 악취미를 가진 놈이라고 해도, 저런 걸 데리고 회사에 오라고 하진 않을 거야.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 했다.
[응, 무슨 일이야?]
나는 설록진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대충 녀석이 내 집안을 개판으로 만들었다는 것, 빌어먹게도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지금 그 녀석과 빌어먹을 놈의 숨바꼭질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
내 말에 설록진이 서늘하게 물었다.
[……호루라기를 불었는데도 네 말을 듣지 않았다고?]
아차차. 나한테 만능 아이템이 있다는 걸 잊었다.
“밤에 피리 불면 뱀 나온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안 썼어요.”
설록진이 무어라 더 묻기 전에 나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이놈을 달고 출근을 해야 하나 싶어서, 아니, 애초에 저런 놈을 데리고 어떻게 출근하냐고요.”
[흐음.]
나는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설록진의 숨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내가 말을 돌린 대로 넘어와 줬으면 좋겠는데. 다행히 설록진은 호루라기에 대해 따져대는 대신, 내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주었다.
[일주일 동안 휴가야.]
“잠, 잠깐. 일주일이요?”
휴가를 준다는 건 좋았지만, 문제는 기간이다. 저 녀석을 내게 맡겨 놓고 일주일이나 휴가를 준다는 건…….
“저놈을 일주일이나 데리고 있으란 말입니까?”
[한 달로 늘려 줄까?]
“……아니요.”
회사에서 아무리 내가 하는 일이 없어도 그렇지, 개를 돌보라며 일주일이나 빼 주다니. 나는 엉망이 된 집안 꼴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긴, 이 난장판을 수습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
[걱정하지 마. 조련사를 구하는 중이니까.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괜찮은 놈으로 골라 보는 중이야.]
말은 저렇게 하지만, 제대로 된 사람을 고를 리가 없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누구한테 저놈을 넘겨야 재미가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겠지.
원한다면 당장 아무나 잡아다가 저놈을 맡길 수 있으면서…….
[심심해도 좀만 참아.]
나는 엉망이 된 집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도저히 심심할 틈이 없을 것 같은데요.”
그것으로 통화는 끝이었다.
일주일이라는 휴가를 얻었지만, 도저히 기쁘지 않았다.
일단은 밥부터 먹을까.
다행히 냉장고에는 어제 이모님이 해 주시고 간 밥이 있었다. 간단하게 데워만 먹으면 된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밥그릇을 하나 더 꺼냈다. 예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놈이지만, 그래도 밥을 굶길 순 없지. 밥을 차린 나는 허공에 소리쳤다.
“나와! 밥 먹어라!”
어딘가에서 녀석이 나타났다.
“하아.”
그렇게 찾을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니. 수저도 없이 밥그릇에 고개를 처박는 놈을 보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더러운 손으로 밥을 떠먹는 걸 보니 식욕이 뚝뚝 떨어졌다.
놈은 식사를 끝내자마자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으!”
원수 같은 놈!
설록진은 내게 저 녀석에게 정을 주지 말라 경고했지만, 저 꼴을 보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조차 없었다. 정은 무슨! 당장 내다 버릴 정도로 밉기만 했으니까.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식사를 마친 나는 거실로 향했다.
“하아.”
쌓인 집안일을 보니, 집을 나가고 싶어졌다.
그래도 도망칠 수는 없다.
나는 거실에 있는 TV를 켰다. 뉴스를 들으며 청소를 할 셈이었다. 그렇게 뉴스를 들으며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핏자국을 닦을 때였다.
「속보 ‘젠트리 제약’ 본사 건물에서 대규모 살인 사건 발생」
TV에서 나오는 뉴스에 나는 어제 내가 본 건물에서 느꼈던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뉴스에서는 어제 내가 설록진과 함께 들렀던 건물이 나오고 있었다. 노란색의 경찰통제선이 쳐진 건물을 배경으로 아나운서가 담담히 뉴스를 내뱉었다.
젠트리 제약은 올해가 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하고 있던 그저 그런 제약 회사였다. 하지만 올해 충격적인 발표로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그곳에서 개발한 게 무려 각성자들의 능력을 일시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약물이었거든.
당연히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들썩거렸다.
여태까지 각성자의 능력을 막는 가장 대중화된 방법은 아티팩트를 대상자에게 착용시키는 것이었다.
다만 이 방법에는 단점이 꽤 많았다.
첫 번째로 아티팩트를 착용하는, 혹은 착용시켜야 하는 불편함.
범죄자들에게 아티팩트를 착용시키다가 부상당하는 경우도 꽤 많다고 들었다. 아티팩트를 착용하면 자신의 능력이 봉인되는 만큼, 범죄자들 쪽은 정말 필사적으로 아티팩트 착용을 피하려고 했으니까.
두 번째 단점은 바로 아티팩트 자체의 비용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각성자의 몸을 구속하고, 능력마저 차단하는 아티팩트가 비싸지 않을 리가.
내가 설록진을 만나기 전까지 목에 차고 다녔던 인식표는 능력을 막지 못했다. 능력의 사용을 감지하고 곧바로 주변 각범부에 내 위치를 알리는 역할이 전부였지.
설록진이 사람들에게 각성자들이 위험하다고 떠들어대지만, 실제로 그 위험한 각성자들에게 채웠던 목줄은 실효성이 없는 것들뿐이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젠트리 제약 회사에서 개발한 약은 달랐다. 한 번 주사하는 것만으로도 약 2개월 동안 능력을 차단할 수 있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고등급의 각성자에게는 소용이 없지만, C등급 이하의 각성자들의 재능은 거의 완전히 차단할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당장 떠올리는 건 당연히 교도소에 있을 범죄자들이다. 혹은 출소한 범죄자들. 그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단이 생겼다는 것에 기뻐했다.
대중은 각성자들이 이 약의 등장을 반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반만 맞는 소리였다. 실제로 이 약물이 악용될 여지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인식표를 차고 다니던 이들은 모두 이 약물의 등장을 반겼다.
왜냐?
헌터가 되지 못해 나처럼 인식표를 차고 다니던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재능이 족쇄나 다름없었거든.
어차피 헌터가 되지 못하는 이상, 각성자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능력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은 몇 없다. 정부에서 각성자들의 능력 사용을 엄중히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악용될 여지가 큰 정신계 각성자의 경우에는 모두에게 드러나는 곳에 인식표 착용이 강제되며, 실수로라도 능력을 쓰게 되는 날에는 곧바로 각범부에 끌려가 도대체 이때에는 왜 무슨 목적으로 능력을 썼냐고 추궁이나 당해야 했다. 실수로라도 마력을 움직이면 그 꼴을 당하는데, 차라리 2개월에 한 번씩 주사를 맞고 말지.
목에 전자 목찌를 차고 다니며 예비 범죄자 취급을 당할 건지, 아니면 주사를 맞을 건지를 물으면 주사를 맞으면 죽는 병이라도 지니고 있는 게 아니고서야 대부분 주사를 택할 거다.
인식표를 떼어 내기만 하더라도,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헌터가 되지 못한 각성자들에게는 저 약물의 개발 소식은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호재였다.
하지만 그 기대도 저 살인 사건으로 끝났다.
나는 걸레를 내려놓고 뉴스에 집중했다.
「범인은 아직 특정할 수 없지만, 현장에 남은 흔적과 범행의 잔혹성을 미루어 보아 각성자의 소행으로 추측되며…….」
아나운서의 말에 나는 작게 혀를 찼다.
도대체 범행의 잔혹성을 미루어 보아 각성자의 소행이라는 말은 왜 나오냔 말이냐. 각성자라고 모두 다 잔인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하긴, 뭐 억울해할 것도 없나. 이번 일은 확실히 각성자가 저지른 살인 사건이 맞으니까.
설록진이 저 회사에서 테러를 저지른 이유는 뻔하다.
저런 약이 상용화된다면, 그리고 법안이 바뀌어 인식표가 아닌 약을 맞는 것만으로도 각성자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기껏해서 쌓아 놓은 ‘각성자는 위험하다’는 생각을 뒤흔들 수 있으니.
각성자들의 희망을, 각성자를 이용해서 꺾어 놓는다니. 정말로 그놈은 악취미다.
어느새 내 옆에는 그놈이 앉아 있었다. 참을 수 없는 악취가 옆에서 솔솔 나서 모르는 척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녀석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른 건지 이놈은 과연 알고 있을까? 물론 이 녀석에게 멀쩡히 사고할 수 있는 지능 같은 게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뉴스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녀석은 마치, 자신의 일을 후회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왠지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 지능이 없어도 적어도 자신의 일을 싫어한다든가, 좋아한다든가 정도는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어제 저기서 했던 일. 하기 싫었냐?”
내 질문에 그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려 나를 또 한 번 빤히 바라봤을 뿐이다.
“뭐, 됐다.”
대답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말을 할 수 있는 상태인지도 모르고. 내 질문에 싫다는 대답이 돌아왔어도 마음이 찝찝했을 것 같기도 하고.
저 녀석을 구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저 녀석의 마음에 들어서 뭘 하겠나.
“그나저나 오늘은 좀 씻으면 안 될까? 코가 마비될 것 같은데.”
내 간절한 부탁에 녀석은 곧바로 그림자로 숨어 버렸다.
“젠장.”
나는 욕을 내뱉으며 걸레를 다시 손에 들었다.
제22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