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32
62 뒷수습 (2)
테이카 쿠퍼는 여전히 휴가 중이었다. 미국에 열린 게이트는 많았지만 ‘테이카 쿠퍼’가 처리해야 할 만큼 대단한 게이트는 몇 없었으므로. 게다가 그런 게이트에는 늘 대형길드의 이권이 얽혀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런 걸 처리하는 건 오승우의 몫이다, 테이카가 아니라.
게이트와 게이트 공략 사이에 빈 이 휴가 동안 테이카는 보통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하곤 했다. 말이 휴가지, 진짜 휴가를 보낸 적은 몇 없었다. 하지만 이번 휴가만은 예외였다.
매정하게도 떠나 버린 션을 생각하면서, 테이카는 소파에 누워 뒹굴고 있었다.
띵.
휴대폰에 울린 알람에 테이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승우가 관리하고 있는 그의 ‘공식’ 연락처와는 달리 이 연락처를 아는 이는 몇 없었으므로. 그리고 곧 그 몇 안 되는 사람에 들어가는 이를 떠올린 테이카는 황급히 휴대폰을 확인했다.
「라스베이거스 메이저&저스틴 호텔 카지노 지하에 마약이 대량으로 있어요. 처리 부탁 :D!」
무슨 소리야, 이게.
처음 문자의 내용을 확인했을 때, 테이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문자 뒤에 붙은 이모티콘을 보는 순간 진지함이 확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보낸 사람을 확인하는 순간, 테이카는 이 문자의 내용의 진위 여부를 가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미스터 오, 마약 같은 거 찾아 주면 정부에서 좋아하려나?”
테이카의 말에 오승우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꾸했다.
“싫어하진 않겠죠? 말로만 그러는 거긴 해도 늘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잖아요. 한 3209번째 선포라서 문제지.”
“라스베이거스 한 카지노 지하에 마약이 대량으로 있다는데? 우리 이거 신고하자.”
“예? 그게 무슨…….”
오승우는 황당한 얼굴로 테이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얼굴을 굳혔다.
“누구예요, 그거?”
“가 보자고, 여기.”
테이카는 재빨리 휴대폰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다. 오승우는 한숨을 내쉬며 셔츠 포켓에 쓰고 있던 안경을 집어넣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공을 본 강아지처럼 빛나고 있는 테이카의 눈을 보는 순간 말리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 *
그렇게 도착한 라스베이거스. 귀찮은 일은 모두 오승우에게 미뤄 둔 테이카는 실실 웃는 얼굴로 호텔로 향했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짙은 선글라스를 썼지만,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헌터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테이카에게로 향했다.
자신의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에도 테이카는 아랑곳없었다.
「나 라스베이거슨데, 어디에 있어요?」
테이카는 션에게 문자를 보냈지만, 문자를 읽었다는 표시조차 뜨지 않았다.
‘뭐야, 여기에 있다는 거 아닌가?’
테이카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이게 누구야.”
감히 누구도 테이카에게 다가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를 부를 수 있는 한 사람.
“……록우드?”
테이카는 선글라스를 벗고 자신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매력적인 구릿빛 피부에 고양이처럼 쑥 올라간 눈매. 그녀의 등장에 테이카의 눈매가 구겨졌다.
“당신이 여기에는 무슨 일이야?”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우리 젖비린내 나는 꼬맹이가 갑자기 이런 어른의 게임에 관심을 가졌을 리는 없고…….”
“어른의 게임이라는 게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는 도박이라면, 평생 모르는 게 낫지.”
테이카의 말에 니키의 이마에는 핏줄이 섰다.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는 도박이라니! 포커를 도박으로 생각하는 놈들이 문제지. 포커가 얼마나 아름다운 게임인지 알아? 서로의 심리를 읽고, 수 싸움을 해서 결국 승자가 모든 걸 갖는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게임이냔 말이야.”
“당신 포커 못 친다는 소문이 나한테까지 들리던데……. 그리고 심리 게임이 하고 싶은 거면, 그냥 마피아 게임이나 하라고. 여기에서 수십억을 태우지 말고.”
테이카의 정곡에 할 말이 없어진 니키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래서 여기에는 무슨 일이야.”
“제보를 받았거든, 이 카지노 지하에 어마어마한 양의 마약이 묻혀 있다고. 설마 그쪽이랑 연관이 된 건 아니겠지?”
테이카의 말에 니키는 입을 쩍 벌렸다.
“뭐라고?”
카지노 지하에 어마어마한 양의 마약이라니.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에서 태연히 도박을 즐기던 니키에게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아니, 하긴. 이상한 일은 아니지…….”
니키의 얼굴에는 순식간에 장난기가 사라졌다. 그녀 또한 이 일의 피해자가 되어 어쩌면 다시는 이 태양을 보지 못하는 꼴이 될 수도 있지 않았는가.
안 그래도 그녀 또한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터트리려고 이를 가는 중이었다. 문제는 그녀를 구한 남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거지만.
‘아니, 잠깐.’
니키가 입을 벌렸다.
“너한테 제보를 한 사람, 누구야. 너도 아는 사람이야?”
“대체 내 제보자한테는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 건데?”
“아니,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인가 해서.”
니키의 말에 테이카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내 제보자랑 아는 사이인 것 같다고?”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맞는다면, 아는 사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찐한 사이라고 말해야 맞지. 며칠 동안 같이 포커도 치고! 생사의 위기도 같이 넘긴 사이거든.”
“……무슨 일이 있었는데, 여기서?”
“어허, 맨입으로 가르쳐 줄 수야 없지.”
니키의 말에 테이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가 궁금한데?”
“제보자랑은 원래 아는 사이?”
“응, 잘 아는 사이.”
“어머!”
“당신이 아는 사람이 내 제보자라는 증거도 없는데, 뭘 그렇게 관심을 갖는 건데.”
테이카의 말에 니키는 자신이 아는 남자의 특징을 말했다. 쓸데없이 말을 잘하고, 눈웃음을 잘 치며, 자신의 마음을 아주 잘 읽었다고. 거기에 제법 전투도 잘하는 것 같았다고. 같이 다니는 친구들의 이야기까지 모두 들은 테이카는 직감했다.
‘션이잖아!’
결국 테이카의 제보자와 자신이 아는 사이인 것 같다는 니키의 직감이 맞았다.
테이카의 표정을 확인한 니키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랑 네가 아는 사이라는 거지?”
“……그래서 뭐.”
“아니, 안 그래도 이번 일에 대한 협조를 구하고 싶었거든. 이 일을 저지른 갱단이야 싹 쓸어버린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정확한 사정을 아는 건 그 사람뿐이니까.”
그렇게 말한 니키가 변명처럼 덧붙였다.
“이번 일을 저지른 사람 몇을 잡아 두긴 했는데, 입을 도통 열 생각도 안 하고 해서. 응, 아무래도 가장 확실한 건 그 사람을 만나 사정 청취를 듣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그러니까 굳이 굳이 그 제보자를 만나야겠다?”
“그래!”
이번 일을 저지른 범인들까지 잡아 뒀다면서, 굳이 제보자, 그러니까 션을 다시 만나고자 하는 이유는 뻔했다. 백 퍼센트 사심이다.
“그나저나 걔, 미국 헌터 쪽은 아예 모르는 모양이더라? 나를 못 알아보더라고.”
그 말에 테이카는 눈을 끔뻑였다.
무려 미국 길드 랭킹 2위 ‘블랙 코멧’의 길드 마스터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 놀라움도 잠깐이었다. 씩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은 테이카가 말했다.
“나는 알아보던데.”
그 말에 니키가 입을 쩍 벌렸다.
“어이없네. 너만큼은 아니어도 나도 꽤 유명하지 않나?”
니키의 말에 옆에 있던 리아가 말했다.
“응, 너 엄청 유명하지.”
“엄청 유명한데, 내 제보자는 못 알아봤네?”
테이카가 옆에서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 웃음기가 가득한 그 얼굴에 니키가 주먹을 꽉 쥐었다.
“하!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니키의 옆에서 리아가 중얼거렸다.
“이 세상은 충분히 이등도 기억하는데……, 진짜 기억하지 못하는 건…….”
하지만 리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같은 평범한 헌터이겠지.”
하지만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질러대는 두 사람은 옆에 있는 리아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더러운 세상…….”
리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 * *
노먼은 지친 얼굴로 비틀거리면서 청문회장을 나왔다. 그가 알고 있던 내용은 모두 쥐어짜이듯이 내뱉었지만,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이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냐고 자신에게 묻는 사람들에게 그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뿐이었다.
왜냐?
정말로 잘 몰랐으니까!
나중에 해답을 주겠다고 말했던 골든데이 용병대는 하루아침에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병원에는 수많은 CCTV가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그들이 나가는 모습이 찍히지 않았다.
덕분에 그들의 실종은 철저한 미스터리로 남았다.
문제는 그냥 미스터리로 끝내기엔 이 일에 걸린 것들이 많다는 거였다.
그래서 S급 게이트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앞으로 이곳에 있는 게이트를 공략해도 괜찮은 건지.
해결되어야 할 질문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들은 노먼 베이런에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했지만, 노먼 또한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참다못한 에이전시 한 명이 말했다.
“그들을 공개 수배해야 합니다! 뭐가 뒤가 구린 게 있으니까 이렇게 내뺀 게 분명하다고요!”
“마지막으로 그들과 접촉했던 게 누군지 아십니까?”
“그야, 테이카 쿠퍼와 에이전시 오지요…….”
갑자기 등장한 두 거물의 이름에 사람들의 얼굴이 굳었다.
솔티브레드 에이전시 소속 노먼 베이런은 그들의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패였지만, 그 두 사람은 그럴 수 없었으므로.
“큼, 큼. 그 두 사람도 아는 건 없을 게 분명합니다. 다 그 골든데이 용병대에게 속은 거지요. 그러니까 그 골든데이 용병대를 맡았던 에이전시인…….”
그러고 나서 다시 화살은 노먼에게 향했다.
이럴 때마다 노먼은 자신이 하는 일에 환멸을 느꼈다.
물론 능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결국 어떠한 배경을 가지고 있냐는 거다.
솔티브레드 에이전시는, 노먼을 버렸다. 그저 방패막이로 쓰기로 결심한 것처럼 그냥 청문회장에서 뼈까지 뜯기는 걸 방치했다. 그렇게 털리고 털리기를 며칠.
이미 이 직업에 대한 애정이 모두 털렸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일까지 겪으니 정말로 거지 같았다.
사실, 앞으로는 이 일을 더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소속 에이전시에서도 반쯤 버림을 받은 데다가, 이런 추문이 붙은 그를 믿어 줄 헌터가 또 있을까 싶었다.
‘애초에 그리 이 일에 애정이 있진 않았지만…….’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일에 애정이 있진 않았지만, 막상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힘이 쭉 빠졌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했는데. 노먼은 착잡한 표정으로 자신의 파일을 뒤적거렸다.
이제 이 파일이 필요한 일도 없겠지. 그때, 파일 사이에 삐죽 튀어나온 휴지 조각에 노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고 보니…….’
노먼은 그 계약서를 들고 변호사에게로 향했다.
휴지 계약서를 자세히 살펴보던 변호사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이, 이거 자세히 보셨습니까?”
“예? 뭐 더 자세히 볼 게 있습니까?”
“여기에 잘 보면, 에이전시가 아니라 당신! 노먼 베이런이라는 개인에게 이 돈을 위탁한다고 되어 있어서요.”
개인? 에이전시가 아니라? 그때에는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는데, 변호사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했다.
이건 솔티브레스 소속 에이전시인 노먼 베이런에게 돈을 위탁한다는 게 아니었다.
그냥 노먼 베이런에게 S급 게이트의 공략 대금을 모두 지급하겠다는 서류였다.
“그나저나 이 계약서 누가 쓴 겁니까? 거의 전문가급인데.”
“어…….”
노먼은 말을 아꼈다. 여기에서 함부로 말을 흘렸다가 또 곤란해지는 일이 생기는 건 사양이었으므로. 변호사는 노먼의 마음을 짐작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어쨌거나 당장 이 돈을 받으러 가시죠. S급이면 꽤 금액이 될 텐데.”
그 말을 듣고 노먼은 게이트 공략 대금을 지급하는 곳으로 향했다.
노먼은 직원에게 여러 가지 서류를 건넸다. 휴지 계약서에 잠깐 놀란 표정을 지었던 직원이었지만, 프로는 프로였다.
초조하게 다리를 떠는 노먼에게 곧 그의 인생을 뒤바꿀 말이 들려왔다.
“……28억입니다.”
그동안 느꼈던 서운함이 쏙 들어갔다. 떨리는 손으로 돈을 수령한 뒤, 노먼은 자신을 들들 볶던 에이전시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저! 때려치웁니다, 회사!”
제23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