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33
63 각범부 2팀 (1)
정호산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푸른색의 경찰 제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기만 했다.
‘정말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게 되었네.’
각범부에는 늘 사람이 부족하다고 말했던 도채희의 말대로, 각범부는 늘 상시로 각범부에 들어올 사람을 채용 중이었다.
그 채용에는 여러 가지 비리가 있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차마 A급 잠재력의 재능을 가진 정호산을, 그것도 현직 6성급 헌터였던 그를 떨어트릴 배짱까지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무사히 시험에 합격해 각범부 2팀 소속이 되었다.
첫 출근을 앞둔 정호산은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 안에서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언제나 등을 맡기고 싸울 수 있던 길드의 동료들과는 달리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믿을 수 없었다.
겉으로는 그들과 어울리는 척하면서도 정호산은 그들을 늘 의심하며 그중에 숨어 있을 나쁜 이들을 솎아 내야 했다.
정호산의 성격에는 맞지 않는 일이었지만, 해내야만 했다.
‘도채희 씨에 비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도채희는 자신이 이미 모난 돌이라고 말했다. 한 번 이미 깽판을 쳐 놨으니 위에 찍혔을 게 분명하고, 그러니 자신만의 노선을 걷겠다고.
자신이 어그로를 끄는 사이, 자신을 밟고서라도 그들의 신뢰를 사라고 말했다.
가슴이 조일 때마다 정호산은 강이신을 떠올렸다.
강이신이 그러한 선택을 하게 만든 이유를 떠올렸다.
거울 속 자신의 눈을 바라본 정호산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을 다잡은 뒤, 정호산은 문을 열었다.
* * *
“어, 어!”
방금 깎은 듯한 밤톨 머리에 거대한 덩치의 남자가 정호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저, 정호산 씨?”
“예에, 누구십니까?”
“아! 저는 김용원 순경이라고 합니다!”
아. 김용원. 도채희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나마 이곳에서 믿음직한 사람이라고. 원래는 도채희와 같은 팀의 팀원이었으나, 도채희가 팀장에서 해임된 이후 다른 팀으로 옮겨졌다던가.
“저는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그, 그야…….”
김용원은 정호산을 향해 목소리를 낮췄다.
“강이신 살인 사건의 주요 참고인이셨으니까요. 도채희 팀장님께서, 아니, 경위님께서 그 사건에 꽤 관심이 많으셔서 저도 알게 됐습니다!”
김용원의 말에 정호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도채희와도 그 사건으로 얼굴을 트게 되었으니. 그 도채희의 팀원이었던 김용원 또한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각범부에 있었을 때 김용원은 도채희에게는 든든한 같은 편이었다고 했지만, 도채희는 김용원 또한 완전히 신뢰하지는 말라고 말했다.
그녀가 진심으로 믿고 따르던 박철완에게 데인 후, 도채희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의심하게 됐다고 말하며 쓸쓸하게 웃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정호산은 동질감을 느꼈다.
자신 또한 강이신을 잃고 쓸쓸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으니.
하지만 그 감정에 매몰될 생각은 없다.
정호산은 상념을 털어 낸 뒤 웃는 얼굴로 김용원에게 말을 건넸다.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말 놓으세요, 저야 오늘 첫 출근인데…….”
“아, 아니! 그럴 수야 없죠. 계급이 같더라도, 어, 그쪽은, 어, 곧 승진하실 거고…….”
김용원은 덩치에 맞지 않게 소심한 성격인 것 같았다.
자신을 편히 대해 줬으면 싶었지만, 김용원의 말에 정호산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느 팀이십니까?”
“2팀입니다.”
“어! 저도입니다! 그럼 제가 안내해 드리면 되겠네요.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김용원의 안내에 따라 정호산은 걸음을 옮겼다.
“저번 탑 빌런 탈출 사건으로 인해서 3, 4팀의 인원들이 대부분 순직해서요. 그래서 각범부는 1, 2팀이 전부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김용원의 얼굴은 우울해 보였다. 하긴, 그때 사건은 각범부에게 피해가 아주 컸다. 그날 구치소에 있던 인원 대부분이 현장에서 사망했을 정도니까.
“팀이 달라서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얼굴은 아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렇게 되다니. 저에게 힘이 있었다면…….”
그렇게 우울하게 중얼거린 김용원이 곧 정호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정호산 씨는 대단한 헌터이시죠? 붉은개 소속이셨잖습니까!”
“대단하다고까지는…….”
“저처럼 정보처리계 재능이나 각성한 놈한테는 대단하게만 보이는걸요! 저도 그런 쪽의 재능을 가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몇 번이나 생각했습니다. 이 덩치가 아까운 놈이라는 말도 꽤 많이 들었거든요, 하하.”
그러고 보니 김용원과 정호산의 덩치 차이는 그다지 나지 않았다. 정호산이 미묘하게 더 크고, 더 강해 보일 뿐. 김용원도 누구에게 밀릴 만한 덩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구부정한 자세와 자신감 없어 보이는 태도 때문인가. 훨씬 작아 보이는 편이었다.
“하하, 괜히 우울한 이야기만 했네요. 아, 여기입니다.”
어느새 각범부 2팀이었다. 김용원이 문을 열어 주었다. 깍듯하게 고개를 숙인 정호산이 안으로 들어섰다.
“오.”
정호산의 등장에 제일 먼저 반응한 건, 팀장 자리에 앉아 있던 한 남자였다.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척 보기에도 험상궂다는 말이 나올 만큼 인상이 강했다.
그는 정호산을 바라보자마자 비뚤게 입꼬리를 올렸다.
“드디어 오셨구만, 우리 2팀의 대단하신 신입분이.”
그 비꼬는 듯한 말투에 정호산은 눈을 깜빡였다.
“아, 예. 안녕하십니까.”
팀장의 말과 정호산의 인사에 팀원들의 시선이 모두 정호산에게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 있는 2팀의 팀원 수는 총 여덟 명. 최근 일어났던 참사로 인해서 각범부의 인원은 전보다 더 줄어든 상태였다. 서울 전역에서 일어나는 각성자 범죄를 해결하느라 다들 얼굴빛이 나빴다.
팀장은 성큼성큼 정호산의 앞으로 걸어왔다.
“자, 인사해요. 여기는 그 대단하신 붉은개 길드를 때려치우고 이 각범부에 들어오신 신입. 정호산 씨.”
“안녕하십니까, 정호산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벌써 몇 번째 인사를 하는 건지. 하지만 정호산은 순순히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는 각범부 2팀 팀장, 송천길이고. 이쪽은 우리 팀원들이고. 각자 자기소개는 개인적인 시간에 하지. 다들 바쁘잖아, 안 그래?”
송천길 팀장의 말에 자리에서는 앓는 소리만 났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신입이 왔는데 지나칠 정도로 맥이 빠진 반응이었다.
붉은개 길드에서 있었던 것처럼 화려한 환영식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신입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라니.
송천길 팀장이 말했다.
“오늘은 첫 출근이니까, 간단하게 용원 씨한테 업무 배우고.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동 팀에 넣자고.”
송천길 팀장의 말에 그제야 각범부 2팀에서 조금 반응이 있었다.
대뜸 누군가 손을 들어 올렸다.
“왜?”
“저희 조에 넣어 주십쇼!”
“아니, 우리 조에 넣어야지. 너희 조는 네가 전위 맡으면 되지만, 우리 조는 죄다 후방지원들뿐이거든?”
“아니, 그쪽은 화력이 그만큼 되니까…….”
순식간에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과열되기 시작했다. 송천길 팀장은 그 모습을 보며 인상을 팍 썼다.
“다들 닥치지 못해?”
“하지만…….”
“이런 인재가 오셨는데, 어떤 조에 딱 묶어 둘 수가 있냐고. 그냥 이 친구는 그때그때 필요한 팀에 지원을 나가는 걸로 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정호산은 눈을 끔뻑거리기만 했다. 그 말에 반응한 건 김용원이었다.
“예에?”
“왜, 용원 씨. 불만 있나?”
송천길 팀장의 말에 김용원은 가만히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아,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걱정을 감출 수는 없었는지, 송천길 팀장의 눈치를 본 김용원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신입을 곧바로 그렇게 굴리는 건…….”
“우리 용원 씨가 언제부터 우리 신입 대변자가 되었나? 우리 신입은 왜 입을 꾹 닫고 있고, 그쪽만 입을 나불거리냐고.”
그 말에 정호산은 눈을 굴렸다. 김용원은 놀란 얼굴로 입을 딱 닫았다. 아직까지 이 팀이 돌아가는 분위기는 잘 모르겠지만, 김용원이 자신을 위해 나섰다가 괜한 욕을 들어먹은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정호산이 입을 열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르쳐 주시면 지도해 주시는 대로 잘해 보겠습니다.”
“흠, 본인이 괜찮다잖아.”
김용원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으로 정호산을 바라보았지만, 정호산은 그를 향해 눈웃음을 빙긋 지었다.
“그럼, 다들 할 거 해!”
송천길 팀장이 다시 자리에 앉자, 김용원은 툭툭 정호산을 쳤다. 그러더니 바깥을 향해 눈짓했다.
정호산은 가만히 김용원을 따라갔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김용원이 한숨을 쉬었다.
“방금 전에는요…….”
“예, 무슨 뜻인지 대충 알겠습니다. 저를 개같이 굴려 먹겠다는 뜻이었지요?”
“그걸 알면서 하겠다고 해요?”
“거절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다행히 제가 체력이라면 자신이 있습니다.”
“아무리 체력이 대단해도 말이에요, 호산 씨 사람이잖아요. 괴물 아니고요.”
김용원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도채희 팀장님 생각이 나서 그래요.”
그렇게 내뱉은 김용원이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도채희 팀장님 아시죠? 만나 봤을 텐데…….”
그 말에 정호산은 얼굴을 굳혔다. 도채희는 정호산에게 절대 자신을 향해 긍정적인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저 침묵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정호산을 보며 김용원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정호산 씨에게는 그리 좋은 인상이 남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도채희 팀장님 진짜 대단하신 분이거든요. 진짜 열심히 하셨는데…….”
“용원 씨는, 그분을 잘 아시는 모양입니다?”
정호산의 질문에 김용원은 붉어진 얼굴로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막 잘 안다고는 못하고요! 그냥, 그분이 현장을 뛰었을 적에 제가 어, 팬이라면 팬이었고요. 제가 경찰이 되기로 결심한 것도 다 도채희 팀장님 덕, 덕분이거든요.”
“그래요?”
“예. 그 꽤 유명한 사건 있는데. 도채희 팀장님께서, 어, 현장 뛰실 때. 은행 강도 사건을 제압하셨을 때가 있거든요. 그때, 제가 현장에 있었어요.”
아, 그런 식으로 이어진 인연인가.
“그때 저한테 도채희 팀장님은 영웅이었어요. 진짜, 딱 영화에서나 볼 법했던 영웅. 그래서 저도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말하는 김용원의 얼굴은 천진난만해 보였다.
“너무 뻔한 사연이죠? 하하, 그래도 진짜 저한테는 꿈이었어서. 근데 제가 가진 능력이 그에 맞지가 않아서요. 아, 저는 현장으로 가진 않아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정보처리계 쪽 재능이라서요?”
“네. 하하, 그래서 현장 부적격 판정을 받았어요. 차라리 일반 경찰 쪽으로 갔으면 현장을 뛸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정호산은 김용원을 바라보았다. 척 보기에도 느껴졌다. 그의 몸매는 열심히 갈고 닦은 티가 났다.
열심히 노력하고 또 노력한 타입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현장 부적격.’
각성자 범죄를 다루는 이쪽에서 중요한 건 결국 재능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제가 이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요! 열심히 도울게요!”
자신을 바라보며 그렇게 외치는 김용원에게 정호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같이 잘해 봅시다.”
각범부에서 보내는 첫날은, 그래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라고. 정호산은 생각했다.
제23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