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47
00047 #2 – 개복치 더 데스티네이션 =========================================================================
#2 – 개복치 더 데스티네이션(4)
교섭이 시작하며 흑백으로 물든 세계.
나는 마피아마냥 흉악한 면상의 남자와 가냘픈 아이를 앞두고 있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섭에서 승리해야 한다.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자리에서 애 아빠를 공략한다!
-1.57 : 분위기 보소ㅎㄷㄷ 무슨 도박판인줄
-줌벽 : 쓸데없이 멋져! 그래서 동경해버려!
-부두교졸개 : 느와르 영화 찍냐? ㅋㅋㅋ
취존 해주시죠!
저 아이를 위해서라면 난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어.
이제는 랜덤 대화문이 제시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랜덤 대화문]이 제시됩니다.』
『협박(근력30 이상) : 넌 감당할 수 없는 보물을 간직해왔지. 때가 되었다. 아이를 내놔라.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물론……. 네 생명도 포함해서 말이지.』
『협박(근력35 이상) : 순순히 아이와 옥수수를 교환하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옥수수가 어디 있냐고? 그렇군. 아직 네 이빨을 뽑지 않았지.』
『협박(근력25 이상) : 죽기 싫으면 아이를 넘겨!』
랜덤 대화문님?
분위기 타는 건 좋은데 교섭은 어디 갔죠?
어째 협박밖에 안 보이는 데 기분 탓인가요?
이러면 내가 깡패가 되잖아.
애 아빠 이전에 아이가 겁에 질려서 달아나겠다고.
용사 권유했는데 마왕 컨셉으로 가버리면 곤란하잖아.
‘자유발언 선택.’
왠지 모르게 이럴 거라는 예감은 들었지만 결과를 마주하니 씁쓸하군.
결국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선택지는 의지가 안 된다.
갤러리들도 평상시의 폭소모드에 돌입해버렸다고.
어쩔 수 없지.
스스로가 생각해도 못미덥지만 여기는 언변으로 어떻게든 하는 수밖에.
‘간단한 계약이다. 네 딸이 나와 함께 여행을 하면 네게 하루에 1골드씩 지급해주마.’
1골드 이거 의외로 거금이다.
게이머야 1골드가 최소 단위지, NPC들은 실버랑 쿠퍼도 쓴다.
1원짜리 1쿠퍼 100개면 1실버.
100원짜리 1실버 100개면 1골드이다.
덤으로 여긴 물가도 싸서 한 끼 식사는 쿠퍼로 떡을 친다.
하물며 하루 1골드라면 당연히 넘어올 수밖에 없지.
틀림없다.
이거라면 간단하게 교섭에서 이길 수 있다!
“받고 두 배 더.”
……무슨 포커 하세요?
계약금을 2배 단위로 늘리려고 드네.
‘콜.’
그럼 나야 땡큐지.
이게 무슨 진짜 포커 치는 것도 아니고.
배팅액을 내가 늘릴 이유가 없잖아.
계약금 2골드로 끝낼 수 있으면 여유 그 자체다.
포인트를 골드로 환전하면 1p가 1골드.
억 단위로 포인트가 쌓인 내게 2골드쯤은 별 것도 아니다.
그런데…….
역시나 순순히 넘어가주지는 않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노골적인 비웃음을 띤다.
“그럼 ‘내’ 계약은 끝났군. 다음은 아이의 계약이다. 일단은 이렇게 생겨먹었어도 한 아이의 아버지여서. 골드 몇 푼에 용사 같은 험한 일을 하게 둘 수는 없단 말이지.”
잘도 뻔뻔스레 말하네.
몸도 성치 않은 아이를 잡부마냥 부려먹으려 들었으면서.
불한당을 상대로는 랜덤 대화문에 의지할 것도 없다.
‘그건 아이가 결정해야 할 몫이다. 착각하지 마라. 네게 선택권은 없다.’
남자는 흉소를 짓더니 아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움찔하는 아이의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 남자는 위협적으로 물었다.
“후요. 너는 이 애비의 말을 따를 테냐. 아니면 저 건방진 지팡이를 따를 거냐.”
“후, 후요는 착한 아이에요.. 아빠 말 잘 들어요..”
“……라는데?”
저런 쓰레기 같은 녀석을 봤나.
제 아이를 협박하다니.
아버지로서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는 부류임이 틀림없다.
짧은 시간이나마 저 털보가 보인 언동으로 미루어보면 분명 폭력도 저질러왔을 것이다.
정신적인 폭력이건, 육체적인 폭력이건.
아이와 약자, 미소녀를 괴롭히는 녀석은 용서할 수 없다.
하물며 후요는 아이이자 약자이며 무엇보다도 미소녀이다.
저 녀석만큼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혼쭐을 내주자!
‘…….’
근데 어떻게 혼쭐을 내주지?
나, 아이템이고.
혼자서는 움직이지도 못하잖아.
랜덤마법에 걸기엔 실패확률이 엄청나다.
부작용이 발생하면 스스로도 마법을 통제할 수가 없다.
자칫 잘못했다간 후요가 다치게 된다.
특급스킬 [절대공포]의 효과로 위압감을 조성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건 기존에 느끼는 공포를 ‘비집고 들어가서 확장시키는’ 방식이니까.
일단 공포를 느껴야 효과가 발동한다.
저 털보처럼 공포를 느끼지 않는 대상에게는 효력이 발동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내 언변으로 저 녀석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기는 힘든데.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거친 화법밖에는 없다.
전음으로 털보만 겁박하더라도 저 비겁한 성정으로 미루어보면 분명 아이를 걸고넘어지겠지.
이 지팡이가 이런 말을 하는데~ 라거나.
아이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어서야 본말전도이다.
자력으로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면 변수에 의지하는 것도 방법이다.
내키지는 않지만 한번쯤은 랜덤 대화문에 의지해야 할 것 같다.
『[랜덤 대화문]이 제시됩니다.』
『제안(화술20 이상) : 네 속셈은 알고 있어.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딸을 이용하려는 거겠지. 아이를 끌어들이지 마라. 추악함은 어른들의 전유물이다.』
『선공(민첩15 이상) : (교활한 털보를 마법으로 응징한다.)』
『협박(근력30 이상) : 지금 딸을 놔준다면 여기서 끝내겠다. 허나 아니라면… 널 찾을 것이다. 찾아내서……. 죽여버릴 것이다.』
와.
다이스 게임 플레이한 12년 만에 처음으로 그럴싸한 대화문을 본 기분이다.
선공이나 협박은 둘째치더라도 제안 너무 근사하잖아.
바로 이거야. 진즉부터 이걸 원해왔다고.
정확하게 내 의도가 고스란히 반영된 대화문이다!
『‘제안(화술20 이상) : 네 속셈은 알고 있어.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딸을 이용하려는 거겠지. 아이를 끌어들이지 마라. 추악함은 어른들의 전유물이다.’를 선택하셨습니다.』
털보의 인상이 거칠게 일그러지며 추악하게 변했다.
비열한 악당 녀석.
드디어 본색을 드러낼 심산인가보지?
“싫다면. 어쩔 건데? 아이템 주제에.”
통렬하다!
이쪽의 약점을 농락하듯이 가지고 놀다니.
하이리치가 먹인 엿도 이것만큼 신랄하게 아프진 않았어!
-낭자아이 : 그냥 한 방 먹이면 안 됨?
-퐁삽 : 뭘 해도 어차피 이 패턴으로 돌아옴. 승부수 ㄱ
-알파고 : 상대의 교섭 진행 의사 0%.
과연.
만족을 모르는 괴물이라는 건가.
알파고가 보증할 정도라면 이건 틀림없다고 봐야겠지.
[돈]으로 교섭을 할 수 없는 유형의 상대라면…
결국은 [폭력]으로 승부를 내야만 한다.
방식이 구태여 털보를 두들겨 패는 것일 필요는 없다.
내가 널 죽일 수 있다.
이 사실만 자각시킬 수 있다면 뭐든 사용해도 된다.
…말이야 쉽지.
이거 난이도가 상당하다.
기본적으로 아이템이라 움직일 수도 없고.
역시 후요가 다치지 않도록 랜덤매직을 제하면 남는 수단이 없다.
무슨 마왕토벌 난이도 뺨치네.
그것도 [돈]을 쓰지 않을 때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후요. 사탕이 나왔던 위치는 기억하고 있겠지? 이번에는 반지다. 곧바로 손가락에 착용해라.’
랜덤마법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마법’에 해당한다.
덤으로 나는 게이머.
[포인트 상점]을 이용할 수 있지.
상점에서는 항마력을 높이는 장비아이템도 판매하고.
간단한 이야기이다.
내 마법공격력보다 높은 항마력을 지닌 반지를 후요가 장착한다면.
랜덤마법을 사용해도 후요가 다치는 일은 없다.
내 마법은 오직 털보만을 요격할 수 있게 된다.
『항마의 반지를 1,000,000p에 구매했습니다.』
후요가 반지를 장착하는 순간까지도 털보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 년이 뭘 하나, 건방진 눈으로 쳐다볼 뿐이다.
아이템이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털보의 착각을 교정해줄 차례이다.
‘랜덤마법 발동.’
『랜덤마법으로 [환영]이 선택되었습니다.』
환영이라면 분명… 이런 마법이었던가.
*환영
-실재하지 않는 환상을 만들어냅니다. 투입하는 마력과 마력을 다루는 조작술에 따라 환상의 규모와 정밀도가 결정됩니다. 훌륭한 바로크예술이 될 수도, 그로테스크한 현대예술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리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건 유감이지만 나쁘지도 않다.
『마법시전 성공체크를 실시합니다.』
『Roll : 13』
『마법성공률 12%에 미달! 마법시전에 실패합니다!』
부작용이 더해지면 마법의 위력은 한층 더 상승하니까.
보잘 것 없는 환영으로도 악몽을 선사할 수 있게 된다.
자, 나와라.
어떤 부작용이든 이 털보를 박살낼 수 있으면 충분하다!
『부작용 체크를 실시합니다.』
『Roll : 15』
『[부작용 No.15]의 효과로 시전중인 마법이 자아를 가지고 제멋대로 활개 치기 시작합니다. 충격에 주의해주십시오.』
부작용 15는 꽤나 인상 깊은 걸로 기억하는데.
대폭주를 일으키는 부작용14보다도 훨씬 더 굉장했었지.
독요정하고 부처가 이걸로 나온 거잖아.
…오우야.
나 지금 쟤 박살낼 환상을 떠올렸었잖아.
그게 자아를 가지고 활개 치면 대체 뭐가 나오는 건가.
-낭자아이 : 뭐야 이거. 갑자기 화면 까매짐
-졸라 : 방송사고인가?
-부두교졸개 : ㄴㄴ 라이브 표시는 제대로 뜨고 있음
갤러리의 말대로이다.
이거 그냥 시야 전체가 새까매졌다.
교섭 중이던 흑백세계가 갑자기 암흑으로 돌변했다.
그걸로 끝이면 다행이지.
느껴진다.
굉장히 불길한.
수천 회차에 걸친 플레이로도 불과 십여 차례밖에 마주치지 못한 존재감이.
…미리 말해두지만 난 그냥 전력으로 털보를 엿 먹이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결코 이런 사태를 원한 게 아니었다고.
미치지 않은 이상 이런 짓 저지를 리가 없잖아.
『긴급퀘스트 ‘악몽의 재림’이 발생했습니다.』
『어느 정신 나간 불량품 지팡이가 그 누구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초대형 사고를 일으켰습니다. 잘못된 환상마법으로 마왕을 구현하고 여기에 마왕의 자아를 불어넣은 것입니다. 봉인된 마왕만큼의 힘을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마이너 카피라도 마왕은 마왕. 위험성은 계측불가입니다. 도망치십시오. 결코 악몽과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
『성공 시 : 생존한다.』
『실패 시 : 사망한다.』
그렇다.
하필이면 나는 마왕을 떠올리고 있었다.
덤으로 그게 자아까지 갖게 되었다.
졸지에 대륙에 마왕(Minor Copy)가 탄생해버린 셈이다.
-낭자아이 : 개복치얔ㅋㅋㅋ 아이곸ㅋㅋㅋ
-졸라 : 님 좀 짱인듯;;;
-침략자 : 와. 존나 참신한 자살방법이네요.
-퐁삽 : 소름 끼친다. 셀프 트롤링 씹 오지는 각;
-묵제 : 마왕이라고!? 와 저게 저렇게도 되냐!?
뭐야 이게.
나 킹메이커냐.
셀레나에 이어서 이제 마왕 마이너 카피본도 만들었네.
도망치라니.
그런 게 될 리가 없잖아.
이거 마왕 복제본이라고.
이계관리청 국장과 대미궁의 악마군주보다 반 수 위의 존재. 지상최강에 한없이 가까운 절망의 대명사. 그 [마왕]의 마이너 카피란 말이다.
“네놈이로군.”
마왕(Copy)가 어둠 속에서 심홍색 눈동자를 번뜩였다.
억 소리가 절로 날 정도의 흉광이다.
천외천의 고수는 시선만으로도 사람을 죽인다더니 그 의미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마왕(Minor Copy)의 ‘마안 : 군림하는 자’가 발동합니다.』
『동급의 정신력으로 인한 제한적인 저항에 성공. 디버프 효과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전 스텟이 1/10으로 감소합니다.』
『상태이상 ‘십년의 노화’, ‘극심한 피로’, ‘살인적인 공포’, ‘상당한 자살충동’에 걸렸습니다.』
게임 속 캐릭터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일순간.
죽음의 문턱을 보았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절망에 사로잡혔다.
이조차도 반으로 감소된 디버프라는 사실이 더욱 소름끼쳤다.
단지 눈을 마주쳤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작고 나약한 존재들은 한 줌 먼지로 사그라지거나 심장이 멎고, 혹은 압도적인 공포로부터 달아나고자 스스로 죽음을 갈망하게 된다.
이것이 마왕.
이것이 초월자.
다이스 게임의 세계멸망 플래그 중 하나인 [마왕부활]이 달성되면 마주할 수 있는 악몽이다.
‘시발.’
터졌다.
‘씨발.’
기어이 터져버렸다.
‘개씨발.’
예상치도 못한 방식으로 개복치 게이지가 터져버리고 말았다.
기껏해야 한 두 시간 경과했거니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버그로 경과된 시간은 최소 일주일.
개복치 게이지를 최대치까지 가득히 채운 게 틀림없다.
최대급의 불운이 떡하니 내 앞에 나타나버리고 만 것이다.
============================ 작품 후기 ============================
설정> 마왕은 강력합니다.
설정2> 무진장 강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