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50
00050 #2 – 개복치 더 데스티네이션 =========================================================================
#2 – 개복치 더 데스티네이션(7)
이래저래 많은 얘기가 있었지만 결론은 이거다.
“그래서 뭘 한다고 했었지?”
‘몰라. 까먹음.’
한참을 둘이서 끙끙거리며 기억을 더듬어봤다.
‘알리샤가 예쁘다?’
“물론이다.”
‘후요도 예쁘지.’
“당연하다.”
맞는 말이라고 즉답하는 게 좀 웃기긴 하다만.
뭔가 이게 아닌데.
풀리지 않는 난제에 직면한 학자마냥 고뇌하고 있자니 보다 못한 갤러리들이 답을 냈다.
-낭자아이 : 엑스칼리버 구한다고 했었잖아.
-혐냉 : ㄴㄴ 대리님 만난다고 했음
-멍초 : 구라치네. 후요한테 고양이귀 머리띠 사준다고 했거든?
-묵제 : 그거 좋네. 그걸로 하자.
-츳키 : ㅇㅈ
단체로 사기치고 있네.
근데 나도 고양이 귀 머리띠는 마음에 든다.
그걸로 하자.
‘일단 마을로 이동하지. 후요에게 좋은 환경은 아니니까.’
“눈 좀 내리는 거야 상관없다. 내 아이를 얕보지 마라.”
‘…니 아이 존나 병약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어디의 드래곤 새끼, 헤츨링이랑 착각하고 있는 거냐. 여기 춥잖아. 아이템인 나도 으슬으슬한 기분이 든다고.’
집이 깡그리 날아간 덕분에 우리는 지금 야생의 추위에 노출되어있다.
여기, 기본적으로 대륙 북반구 끝자락이고.
섭씨로 따지자면 영하 10도도 충분히 될 것 같잖아.
서리 같은 거 맺히기 시작했는데 뭐가 안 춥다는 거야.
“용사의 혈통은 기후변화에 강한 내성을 지니고 있다.”
아. 상태이상 내성(中)을 말하는 거로군.
다이스 게임은 수태물질인 마나가 실재하는 세상이니까.
기의 작용이 어쩌구 하면서 추위면역을 가진다는 거다.
부럽네.
내친김에 나도 하나 사야겠다.
『특급 스킬 [상태이상 면역]을 10,000,000p에 구매했습니다.』
아이템이라고 추위를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방금 전에도 봤다시피 서리도 이는걸.
조금만 더 추위에 노출됐다간 꽁꽁 얼어붙을 거다.
내구도야 줄어드는 족족 다시 찬다지만 기분의 문제라고.
인간일 때보다는 둔감해도 감각은 남아있으니까.
“후요가 용사로 선택받았다고 했었지?”
‘그렇다.’
“그건 어느 신의 계시인가.”
이런. 대충 둘러대기에는 까다로운 질문을 해오는군.
적당히 아무 신이나 말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유감이지만 신이라는 게 아무거나 고르기가 섬뜩하다.
다이스 게임에는 [신]이라는 녀석들이 실재하거든.
함부로 언급했다간 [천벌]이니 [신벌] 같은 거 막 내려온다.
그걸로 끝나면 다행이게.
모든 신은 게이머의 원수다.
세계멸망 플래그 리스트에 [마신강림]과 [신위경쟁]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놈들은 마왕 다음으로 나오는 망할 자식들이다.
자신이 관장하는 개념과 제 규칙을 따르는 권속만을 살려두려고 후일 난리를 친다.
이건 누가 승리해도 뭣 같은 결과만 나온다.
가령 질서의 신이 승리하면 모든 생물체는 질서에 가장 적합한 정팔면체가 된다.
그래.
지금 생각하는 그 정팔면체가 맞다.
다이아몬드처럼 된다고.
당연히 생물체가 아니니까 게이머는 죽고 세계는 멸망한다.
게다가 이 녀석, 선신이다.
다른 신들도 누가 승리하든 다 이런 꼴이 된다.
인간을 위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세계 따위는 하나도 없다.
게이머들이 괜히 12년 동안이나 게임 클리어를 못해서 애를 먹는 게 아니란 말이지.
그렇게나 지독한 신들을 사칭하는 건 아무리 나라도 자신이 없다.
‘신의 뜻이 아니다.’
“뭐라고?”
‘나의 뜻이다.’
털보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얼굴을 구겼다.
“하. 신의 가호도 받지 않는 용사가 무슨 용사냐.”
간단한 메커니즘이다.
신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세계에 확장시키길 원한다.
그리고 마왕은 세계를 부수고 싶어 하는 비글 같은 녀석이지.
자기들의 놀이터를 빼앗기지 않고자 마왕을 처단한다.
이를 위한 인간계의 존재와의 계약이 바로 [용사계약]이다.
스티그마는 계약이 이루어졌음을 나타내는 상징.
털보의 손목에 남은 성흔만 해도 질서의 신의 상징이다.
질서를 지키고 준수하는 대가로 힘을 준다, 이런 시시한 계약이겠지.
이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계약인지는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다. 가령 100억을 줄 테니 무력은 사용하지 말고 세계 제일의 자산가를 꺾어라, 이런 거다.
용사의 힘이 아무리 대단해도 마왕에 미칠 수는 없지.
그러니 용사 전용장비가 있고 파티원이 필요하며 국가의 지원이 존재하는 거다.
그러고도 영구살해는 불가능해서 봉인밖에 못하지.
봉인에 실패하면 참혹하게 살해당하고 마왕군의 강력함을 알리는 상징물처럼 목만 장대에 효시된 채로 세계 일주나 할 거다.
신과 계약을 해도 그 정도이다.
그러니 신과 계약하지 않는 용사는 허울뿐인 종잇장이지.
털보는 그런 말을 하고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내가 누구더냐.
다이스 게임에 존재하는 최대의 변수 [게이머]가 아닌가.
‘내게는 신과는 다른 종류의 힘이 존재한다.’
“그게 뭐지?”
‘경험! 바로 이 세상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다.’
이제껏 얼마나 많은 용사를 보아왔고 그들의 파티원이 되었는가.
때로는 나 자신이 용사의 길을 걷기도 했었고.
다른 게이머들의 유명한 플레이 영상을 관람하기도 했다.
용사에 대한 이해도뿐만 아니라 관련된 모든 분기점을 숙지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노출시키지 않는 영업기밀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정보는 게이머와 갤러리들이 [하이퍼 넷]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즉, 내가 지닌 지식은 심지어 나 혼자만의 것도 아니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구체적으로는 뭘 할 수 있다는 거냐. 얼버무리지 마라.”
인성이 낙막한 녀석이네 진짜.
어쩔 수 없지.
조금 귀찮아도 간단히 일례를 들어줘야겠다.
‘투르비쳬 공국에는 [검은 달의 파편]이라는 키 아이템(Key Item). 핵심 공략 아이템이 있다. 마왕군이 지닌 전략병기의 일종으로 진정한 가치는 대륙 단위의 신기 수준. 전 대륙의 환경에 압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
“뭣…!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냐니.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신의 권능에 버금가는 막대한 경험과 방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다고. 단순한 허풍으로 내뱉은 무책임한 발언이 아니다.’
검은 달의 파편은 세트아이템이다.
파편 하나는 소유자의 마력을 강화하고 흑마법 경지를 상승시키는 데 불과하지.
모든 파편이 다 맞춰져서 [검은 달]이 완성되면?
대륙에 13번째 달이 떠오르며 1년 내내 해가 뜨지 않는다.
어둠이 세상을 좀먹고 온 천지가 데스필드(Death Field)로 오염된다.
그런 무시무시한 물건이라고 경솔하게 부술 수도 없지.
잘못 건드렸다간 파편에 깃든 경천동지할 마력이 대폭발을 일으키니까.
핵폭발이 우스울 정도로 굉장한 규모의 폭발이 나라 하나는 초토화시킨다.
‘보아하니 너와 네 아내가 무슨 수작을 부려서 봉인이라도 걸어놨겠지. 정황상 그걸 어딘가에 빼앗겼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 물건의 진가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넘겼을 터.’
“…….”
‘마왕군의 눈을 속이는 건 힘들고. 중립몬스터는 회수가 어렵지. 그렇다면 인간. 나아가 귀족이나 왕족. 그 중 귀족은 마왕군과 결탁할 가능성이 높으니 답은 나왔군.’
뭐, 이 정도야 간단한 추리라는 거다.
‘왕가의 보물창고에 검은 달의 파편을 숨겨두었구나!’
“대단하군. 현자 아사드에게도 이만한 현기를 느껴본 적은 극히 드물거늘. 놀라운 지혜와 직관력이다.”
‘얕보지 마라. 이 몸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하니까.’
능력치가 구린 건 주사위 때문이지.
딱히 내 잘못은 아니라고.
-낭자아이 : 그렇다고 컨트롤이 좋은 건 아니지만.
정곡을 찔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엔장.
『놀라운 직관력! 당신은 전대용사 슈바인드브가 감춘 비보의 행방을 단숨에 간파해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훌륭하게 입증한 결과, 통찰이 1 상승했습니다.』
이번만큼은 주사위나 스킬에 의지하지 않고 자력으로 활동했지.
덕분에 시스템이 능력치를 상승시켰다.
개인의 순수한 능력에 의한 위기상황 돌파나 활약 같은 건 대부분 능력치 상승과 직결된다.
즈베늄을 쓰러뜨린 건 전적으로 절대공포(特) 덕분이었고.
이번 회차에서 순수하게 내 능력만을 선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거다. 아무리 개복치 게이머라고 해도 수천 회차를 거치면 이렇게나 대단해지니. 새삼 게이머의 사기성에 만족을 느꼈다.
잠깐.
그런데 뭐가 올랐다고? 내 시트지에 통찰 없잖아.
『종족 특성으로 인해 능력치가 변화합니다.』
『통찰이 마법성공률로 변경됩니다.』
『마법성공률이 1% 상승했습니다.』
헉. 마법성공률이 올라가다니.
이거 이렇게 올릴 수 있는 거였어!?
뭔가 엄청난 걸 깨달아버린 기분이다.
이거.
앞으로도 통찰력만 선보이면 부작용 걱정 없이 완벽한 아이템으로 거듭날 수 있는 거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레 돌파구를 발견한 기분이다.
“거기까지 눈치 챘다면 말할 수밖에 없겠군. 네 추정대로 파편은 적당한 아이템의 부품으로 속여 왕가에 넘겼다. 보물창고에 출입할 자격을 얻는다면 물품을 회수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쉬운 일은 아니겠군.’
“그걸 회수해서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파편을 얻으려면 국왕파와 커넥션을 확보하고 그들의 비밀스러운 임무 수행에 협조해야 할 거다.”
역시나 전대용사답게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방법을 신속하게 찾아내는군.
털보 녀석, 의외로 장기 파티원으로 써먹을 수 있겠다.
나름 개과천선하고 후요도 잘 챙길 것 같고.
무거운 나를 거뜬하게 짊어지는 것도 얘 정도나 가능하지.
이 녀석의 근력수치는 셀레나보다 높을 게 틀림없다.
임시주인이면 능력치도 볼 수 있다만 얘 일단 남자니까.
매력과 필요성을 떠나서 그냥 싫다.
이놈의 시트지 따위 알고 싶지 않아.
뭐 여차하면 마왕과 조우해도 10초는 전력투구할 수 있을 테고.
이번 회차는 운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묘하게 헷갈린다.
‘일단 왕궁을 목표로 이동하자고.’
보물창고라고 하니 생각났는데 말이지.
그거.
벌써 털었잖아.
셀레나 파티로 보물창고 안의 비밀창고까지 신나게 털었고.
셀레나가 갖고 있는 차원배낭과 차원주머니만 뒤지면 나올 거다.
합류만 하면 만사형통이니 가뿐하게 해결되겠네.
『마왕(Minor Copy)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게이머의 악명이 상승합니다.』
……근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운이 없다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싶은 건 알겠는데.
너무 뜬금없잖아.
마왕 사라진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무슨 짓 한 거냐.
게다가 마왕이 악행 저지른 거랑 나랑 뭔 상관이야.
『인연퀘스트 ‘마왕의 함정’이 발생했습니다.』
『마왕(Minor Copy)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당신을 살려두었지만 직접 대면한 존재를 죽이지 못했다는 사실에 격노하고 있습니다. 그는 분한 마음을 달래고자 악행을 저지를 때마다 당신의 존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악명의 상승을 막기 위해서는 시급히 마왕(Minor Copy)를 해치우거나 누명을 해소해야 합니다.』
『성공 시 : 칭호 ‘연합군 결전병기’습득. 누명으로 인한 악명 대폭 감소.』
『실패 시 : 칭호 ‘마왕군 결전병기’습득. 누명으로 인한 악명 대폭 상승.』
와.
이제는 뭐 아무것도 안 해도 악명이 알아서 오르겠네.
기한도 없는 거 보니 악명이 일정수치 이상 상승하면 자동실패하나보다.
마왕(Minor Copy)이잖아.
작정하고 깽판치고 있다고.
뭐 해보기도 전에 그냥 다 차버리겠네.
……이 퀘스트를 깨는 건 꿈도 꾸지 않는 게 좋겠다.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이건 절대로 못 깬다.
왠지 나도 모르게 사망플래그를 밟고 있는 것 같은데.
언제는 안 밟고 다녔냐만 이렇게나 감당이 안 될 정도는 아니었다고. 이러다 한 방에 훅 가는 건 아닐까. 점점 후환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설정> 개복치 게이머의 마법성공률은 자력으로 자신의 통찰수치 이상의 직관력과 지혜를 보일 때마다 1씩 상승합니다.
설정2> 개복치 게이머는 멍청합니다. 작가는 이 소설이 완결나기 전까지 마법성공률이 35%에 도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랍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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