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00
99화. 작은 눈덩이 (3)
손에 든 서류를 훑어보는 안경남.
그의 입에서 믿지 못할 집계 결과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토끼 312장, 사슴 421장…….”
1위가 모은 가죽의 수가 발표되기 무섭게 술렁임도 퍼져 나갔다.
“며, 몇 장?”
“농담이지?”
술렁임은 조금씩 커져 늑대 집계를 발표할 때 절정에 달했다.
“늑대… 142장.”
“……?!”
“늑대가 142장?”
여기기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이를 조용히 시킬 수 있었음에도 안경남은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그 역시 발표하면서도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친놈이군.’
이번 퀘스트에 동원된 인원은 토끼가 80명, 사슴 35명, 늑대 20명이었다.
그들에게 인당 지급된 가죽을 모두 합산해 보면 토끼 가죽 4,000장, 사슴 가죽 700장, 늑대 가죽 200장이다.
그런데 이 중 1위 혼자서 사슴 421장에 늑대가 142장이란다.
혀를 내두르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지옥 훈련소에서 회수된 가죽까지 생각한다면… 이건 한 놈이 독식한 수준이군.’
모은 가죽 비율을 보면 상위 포인트 가죽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건 누가 봐도 포인트 벌이가 안 되는 토끼는 버리고 사슴과 늑대만 열심히 노린 게 분명했다.
물론 토끼 가죽도 312장이면 결코 적은 게 아니었다.
당장 2위인 군터와 비교해도 백여 장 넘게 차이가 났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집계된 게 이걸로 끝이 아니란 거였다.
여전히 경악하고 있는 기수들에게 마지막 폭탄이 떨어졌다.
“곰 가죽 9장… 마지막으로 호랑이 가죽 1장.”
기수들의 술렁임은 곰 가죽과 호랑이 가죽이란 소리에 쏙- 들어갔다.
너무도 큰 충격이 말조차 잊게 만든 거다.
‘뭐, 뭔 가죽?’
‘곰? 거기다 호랑이?’
‘맙… 소사.’
모두의 사고가 마비되었다.
가죽 모으기 퀘스트가 막 시작했을 때야,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로 곰이며 호랑이며 자신이 잡아 보겠다고 호기롭게 외쳤지.
하지만 열흘간 맞이한 지옥 같은 밤으로 인해 그런 패기는 진즉에 사라진 상태였다.
‘그걸… 잡았다고?’
밤이 되면 찾아오는 곰과 호랑이는 기수들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사신이자 항거할 수 없는 공포였다.
그런데 그런 사신들이 잡혔단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저렇게나 많이.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기수들의 눈빛이 멍하니 풀렸다.
그렇게 한동안 마비되었던 기수들의 사고는 곧 이어진 포인트 집계에 풀려났다.
또 다른 놀람 덕분에 말이다.
“총획득 포인트, 19,017,000.”
상상도 못 할 액수가 튀어나오자 이제는 기수들의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처, 천구백만!”
“켁?!”
이건 뭐, 2위와 단위 자체가 다르다.
애초에 1,900만… 아니, 2,000만에 가까운 포인트를 개인 모을 수나 있긴 한 건가?
하지만 그들 모두가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이 있었으니.
누군가가 이를 일깨워 줬다.
“자, 잠깐… 일, 일, 일등이면 포인트가 두 배잖아?!”
“헉?!”
그제야 1위 특전을 떠올린 사람들.
그들 중 누군가 빠르게 계산을 끝마치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되면 총… 38,034,000포인트.”
비록 작은 중얼거림이었지만, 이를 듣지 못한 이는 없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의 포인트에 모두의 입이 떡 벌어졌다.
* * *
가죽 모으기 퀘스트의 최종 집계와 순위 발표가 끝나고.
열흘간 굳게 닫혀 있던 동물의 숲 입구가 드디어 활짝 개방됐다.
그 속에서 흐느적거리는 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자, 자고 싶어.”
“난… 씻고 싶다.”
“배고파…….”
오랜 긴장과 놀람의 연속.
그리고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가 들자 열흘간 누적된 피로가 몰아쳤다.
아무렴 기수들이 연신 앓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대다수의 기수가 서둘러 자리를 떴지만, 여전히 동물의 숲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이들도 꽤 존재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
그들 대부분이 이번 퀘스트에서 별다른 소득을 올리지 못한 자들이었다.
당장 내일 먹을 식량조차 구하지 못한 기수.
그런 이들이 기다리는 사람이 누구일지는 뻔했다.
‘3,800만 포인트나 있으니… 조금은 빌려줄 수 있겠지?’
‘하루치 식량을 살 정도라면… 아니, 1만 포인트 정도만!’
도태된 이들에게 무려 3,800만 포인트를 가진 뽀삐는 마지막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 그들은 목이 빠져라 뽀삐가 어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왜 안 나오지?”
시간이 흘러 10분, 30분, 1시간.
아무리 기다려도 뽀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 * *
수많은 이들이 목 빠지게 기다리는 주인공, 뽀삐.
그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오히려 동물의 숲 중심, 호랑이의 구역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옆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아린이 함께하고 있었다.
타닥-.
한참을 달려, 마침내 호랑이의 영역에 도착한 두 사람.
그곳에는 이미 먼저 도착하여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아 주는 이가 있었으니.
“아이고, 귀하신 분들께서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유리가 쾌활한 목소리로 팔을 활짝 벌려 두 사람을 환영했다.
하지만 환영 인사는 매우 짧았다.
바로 본론으로 넘어간 그가 굳은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내 포인트는? 무사하지?”
딱딱하게 굳은 그 얼굴에서 ‘내 포인트에 수작질을 부렸다간 가만두지 않겠다!’라는 굳은 의지가 엿보였다.
이는 얼굴로 하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아르르르-.
앞에서 미친개가 이빨을 드러냈음에도 아린과 뽀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되레 의기양양하게 나왔다.
“아앙? 지금 우리 협박하는 거야?”
“배고프다?”
“그런 거야?”
“배고프다?”
그들이 내뱉은 단 몇 마디에 유리의 얼굴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미친개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아이고, 협박이라뇨. 무슨 그런 무서운 말씀을! 그냥 저는 제 포인트가…….”
“네 포인트?”
“…우리의 포인트가 무사한지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
유리가 유들유들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연신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쳇… 비약 건만 아니었어도 이런 불상사는 안 생기는 건데.’
그레타에게 비약을 받기로 했건만, 그녀에게 갑작스럽게 장기 임무가 배정되면서 상황이 꼬이고 말았다.
그 꼬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유리가 찾은 이들이 바로 뽀삐와 아린이었다.
두 사람을 찾아갈 때만 해도 유리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옆으로 보나, 누워서 보나, 어딜 어떻게 봐도 이번 퀘스트의 1위는 무조건 나다.’
그렇다면 뽀삐와 아린이 2위, 3위가 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세상사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그들보다 더 많은 포인트를 모은 이가 나타나지 말란 법은 없었다.
그래서 유리는 자신의 사정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둘에게 제안했다.
[어차피 2위, 3위를 해봤자 추가로 50%, 30%를 먹는 건데…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 포인트에 니들 포인트도 묻고 60%씩 더 받아 가지 않을래?]거기에 자신을 대신해 가죽 정산 작업까지 해 주는 조건으로 말이다.
이는 뽀삐와 아린은 물론 유리에게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두 사람은 2, 3위에게 지급되는 추가 포인트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얻고.
유리는 뽀삐와 아린의 도움도 받고, 거기다 그들의 포인트로 불로소득을 올릴 수 있으니까.
유리가 생각하기에 하등 거절할 이유가 없는 완벽한 제안이었다.
그런데 웬걸.
‘싫어. 귀찮아.’
‘배고프다.’
뽀삐와 아린, 둘 모두가 유리의 제안을 거절해 버렸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이에 혹시 자신이 부른 수수료가 너무 낮은가 싶었던 유리는 피눈물을 머금고 60%를 70%로 올려 2차 제안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거절했다.
별로 아쉽지 않다는 듯 말이다.
이에 유리는 깨달았다.
‘…세상에서 욕심 없는 것들이 제일 무서워.’
아니, 정정.
‘귀신이 1등.’
그다음이 욕심 없는 것들이었다.
욕심 없는 것들은 어떻게 해야 구슬릴 수 있을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유리가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두 사람이 역으로 제안해 왔다.
수수료는 그냥 60%를 유지하는 대신 유리가 한 가지를 해 주길 바란다고.
‘뭘 원하는데?’
‘우리한테 집 좀 구해 줘.’
‘집? 아직도 거처를 못 구한 거야? 그럼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데?’
‘노숙.’
‘한 달 동안?’
‘응, 아니면 눈에 띄는 동굴에 들어가서 자곤 했는데… 가끔 짐승들이 튀어나오더라고. 으으.’
‘…어쩐지, 볼 때마다 이상한 털을 잔뜩 붙이고 나타나더니. 그런데 왜 그걸 왜 나한테 해 달라고 하는 건데?’
‘너라면 깐깐하게…….’
‘깐깐?’
‘…아니, 꼼꼼하게 잘 구해 줄 거 같아서. 싫으면 거절해, 우리도 거절하면 되니까.’
‘어허, 싫다니요! 그 무슨 섭섭한 소리를! 내 거처 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깐깐하게 구해 줄 테니, 딱 기다려!’
솔직히 아린과 뽀삐의 제안은 유리의 입장에서도 딱히 나쁠 게 없었다.
아니, 좋았다.
자신이 2차로 제안한 건 수수료 70%.
그런데 60%에다가 집까지만 구해 주면 된단다.
‘뽀삐와 아린이 가진 건 곰 가죽 6장.’
그걸 포인트로 환산하면 300만이고, 거기서 다시 10%면 30만 포인트다.
거처를 구해 주는 조건으로 30만 포인트도 아끼고, 덩달아 자신이 원하는 바도 이룰 수 있는데 유리가 거절할 이유가 있겠는가.
하여 지금은 이렇게…….
“그래, 우리의 포인트지, 아직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아직은 우리 포인트죠! 하하하!”
갑을 관계가 역전되고 말았다.
자신의 포인트를 돌려받기 전까지는 아양을 떨 수밖에 없는 유리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제… 아니, 우리 포인트는 어디에?”
유리가 굽신거리는 것을 즐길 만큼 즐긴 아린.
여기서 더 놀리면 유리가 어떻게 돌변할지 대충 예상하였기에 그녀는 적당히 선을 지켰다.
그러면서 품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 유리에게 건넸다.
“받아.”
“…이게 뭡니까?”
“우리 포인트.”
“이 종이 쪼가리가? 허허, 이게 어디서 장난질을…….”
“그 많은 포인트를 어떻게 들고 갈 거냐고, 그거 가지고 은행 가면 거기서 포인트 내줄 거라던데? 그 안경 쓴 흑검병이?”
“…진짜였어?”
유리는 잽싸게 종이를 낚아챘다.
이 증서를 가져간 사람한테 포인트를 지급하라는 내용 따윈 대충 넘기고.
그의 두 눈은 종이에 적힌 숫자 단위를 차근차근 읽어 나갔다.
“일, 십, 백, 천…….”
그리고 마침내.
“…백만, 천만…….”
천만 단위의 숫자를 본 유리의 손이 흥분과 감격으로 바들바들 떨려 왔다.
‘이, 이게 내 포인트.’
바람 불면 날아갈까.
세게 쥐면 찢어질까.
혹여 땀에 젖어 글자가 지워지는 거는 아닐까.
안절부절, 조심스럽게 종이를 쥔 유리의 손이 덜덜거렸다.
이를 본 아린이 물어 왔다.
“너 왜 그래? 내가 대신 가지고 있어 줄까?
“무, 물럿거라! 우리 포인트님에게서 떨어져라, 이 악마야!”
“…이게.”
짜게 식은 아린의 시선에도 유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초조한 얼굴로 움찔거렸다.
“은행… 은행으로 가야 해.”
이대로 이 종이를 들고 있다가는 자신이 심장마비로 먼저 죽을 듯싶었다.
그리고 어서 빨리 영롱한 내 포인트님을 영접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 간절한 마음을 품고 유리가 달려 나갔다.
“아, 아앗! 같이 가!”
“배, 배고프다!”
그리고 그런 유리의 뒤를 뽀삐와 아린이 황급히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