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45
144화. 납치된 공주님 (4)
질서 정연하게 모인 49기들은 담당 흑검병의 발표에 눈을 끔뻑였다.
‘공주 구하기?’
‘무슨 퀘스트인 거지?’
의문이 한가득하였지만, 이를 표출하는 이는 없었다.
기다리면 알아서 설명해 줄 것이었으니까.
그 기대에 부응하듯 단발의 여성 흑검병이 본격적으로 퀘스트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너희 모두 마왕에게 납치된 공주에 관한 동화를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거다. 공주를 구하러 가는 용사의 이야기 말이지.”
들어 보았든, 동화책에서 보았든.
마왕 혹은 드래곤에게 납치된 공주를 구하러 가는 용사나 왕자의 이야기는 흔하디흔한 설정이었다.
이번 퀘스트는 바로 그 흔한 설정에서 따온 것이었다.
까닥-.
단발의 흑검병이 고갯짓하니 수하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49기에게 열쇠를 나눠 주었다.
그렇게 모두에게 열쇠가 돌아가고 이게 무엇인가 싶을 때.
단발 흑검병의 설명이 다시 이어졌다.
“너희의 역할은 용사다. 그리고 너희가 데려온 지인이 공주님이지.”
그 말에 테레시아는 조금 해괴한 표정을 지었다.
‘유리가… 공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유리를 상상한 테레시아는 흠칫하고 말았다.
상상 속 유리의 모습이 의외로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테레시아는 재빨리 잡스러운 생각을 다급히 털어 내고 흑검병의 설명에 집중했다.
“지금 너희의 공주님은 마왕성에 감금되어 있으며 그들의 팔다리에는 파마의 성능이 있는 수갑이 채워져 있다. 그 수갑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바로 너희에게 나눠 준 것들이다.”
이에 49기는 자신들의 손에 들린 열쇠를 흘낏거렸다.
“이 퀘스트를 깨는 방법은 간단하다. 마왕성에 들어가 공주를 구해 이곳, 시작 지점으로 돌아와라. 공주를 구해 오는 기수에게는 50만 포인트가 지급된다.”
만약 50기라면 그쯤에서 동요했을 거다.
단순히 공주를 데려오는 것만으로도 50만 포인트라니.
난이도에 비해 보상이 꽤 넉넉하지 않은가.
하지만 49기는 달랐다.
그들은 분명 저것 말고도 다른 무언가가 더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단발 흑검병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리고 퀘스트를 깨는 또 다른 방법은…….”
그럼 그렇지 하는 눈빛을 한 49기를 보고 단발 흑검병은 미소 지었다.
“마왕을 잡으면 된다. 마왕을 잡으면 그 즉시 모든 공주가 풀려나고, 그에 따라 49기 전원에게 75만 포인트가 지급될 거다. 아, 덤으로 마왕의 보물도 얻게 되겠지.”
이에 새하얀 머리를 가진 소녀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마왕의 보물이 무엇입니까?”
그 질문에 단발 흑검병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덤덤한 목소리로 답을 줬다.
“힘의 결정.”
간단한 말이었지만, 그로 인한 파장은 컸다.
“힘의 결정?”
“진짜 그 힘의 결정?”
지금까지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던 49기 사이에 웅성거림이 퍼져 나갔다.
그리고 이를 신경 쓰지도 않는지 단발 흑검병은 품에서 시계를 꺼내 확인 후 외쳤다.
“현 시간부로 공주 구하기 퀘스트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퀘스트 종료는 지금으로부터 24시간 뒤인 오전 10시 12분까지! 자, 그럼 열심히 분발하여 너희의 공주님들을 구해 와라, 용사님들.”
퀘스트의 시작을 알린 단발 흑검병은 49기를 향해 미소를 보이고는 그대로 떠나갔다.
그렇게 흑검병들은 떠나갔지만, 남은 49기들은 바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저 서로서로 눈치를 보고 있을 뿐.
그 순간이었다.
“자, 여기 주목해 봐, 주목!”
좌중의 이목을 잡아끄는 목소리가 있었다.
작은 키로 양손을 붕붕 흔들며 어떻게든 사람들을 시선을 잡아끌려고 노력하는 백발 소녀, 율리아 싱.
그런 노력이 통했음일까 49기 전원이 율리아를 바라보았다.
이에 그녀가 동기들을 향해 살짝 웃어 보였다.
“다들 이번 퀘스트는 조금 다르다는 걸 알고 있지?”
그 물음에 49기는 침묵으로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흑검병이 해 준 설명대로라면 이번 퀘스트는 지금까지 겪어 왔던 퀘스트와 조금 성질이 달랐다.
바로 경쟁이란 요소가 빠진 것.
이를 알고 있기에 49기는 흑검병들이 떠났음에도 곧장 움직이지 않고 서로의 눈치를 봤던 거다.
대체 이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몰랐기에.
그리고 또 그러한 분위기를 눈치챈 율리아가 대표로 상황을 정리하고자 나선 거였다.
조금 전까지 단발 흑검병이 있던 자리에 똑같이 선 율리아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 퀘스트는 우리끼리 경쟁할 필요가 없어. 그저 공주를 구해 오기만 해도 한 사람당 50만 포인트가 돌아가는 거지. 먼저 구해 온다고 더 많은 포인트를 주는 것도 아니고, 늦게 왔다고 불이익을 주는 것도 아니고, 모두 공평하게! 하지만 요람은 경쟁이란 요소를 빼는 대신 다른 걸 집어넣었어. 그건…….”
“협동.”
“그래, 맞아. 테레시아.”
율리아가 테레시아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그러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마왕을 잡으면 공주를 구하는 것보다 1.5배 많은 포인트를 벌 수 있어. 하지만 마왕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닐 거야. 우리가 모두 힘을 합쳐야지 잡을 수 있는 존재겠지. 예를 들면…….”
잠시 말끝을 흐린 율리아의 얼굴이 무표정해졌다.
“흑검병 조장급의 인물일 거야. 그것도 별다른 제약이 없는.”
“흐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흑검병 조장급.
최소 공인 5단에서 6단급의 실력자가 별다른 제약도 없이 날뛴다면 49기 개개인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율리아의 눈동자 속 은색 고리가 잠시 빛을 발하다가 사라졌다.
“내 분석대로라면, 우리 49기 69명 전원이 협력한다는 가정하에 공인 6단 급에게 승리할 확률은 27.13%야. 공인 5단급에게 승리할 확률은 99.99%고.”
승리의 확률을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언급한 율리아.
만약 다른 사람이 그리 말했다면 허무맹랑한 개소리라고 비웃었을지 몰랐지만, 이를 언급한 이가 율리아였기에 모두가 귀담아들었다.
아니, 귀담아듣는 수준을 넘어 모두가 높은 수준으로 그 수치를 신뢰하고 있었다.
율리아의 분석이라면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에.
“이 퀘스트의 진정한 목적이 동기간의 협동을 끌어내는 거라면, 요람은 우리의 전력에 맞춰 공인 5단급 마왕을 배치했을 거야. 그래야지, 우리가 시도라도 해 볼 테니까.”
율리아가 이리저리 돌려 말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녀가 결국 ‘우리 협력해서 마왕을 잡자!’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거기에 동조하는 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굳이?”
“굳이라니?”
처음으로 49기 사이에서 나온 반대 의견.
짙은 금발에 갈색 눈동자.
제리 비였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율리아를 향해 어깨를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잖아. 굳이 힘들게 왜 마왕을 잡아야 하는 건데? 그냥 쉽게 공주만 구해 와서 50만 포인트를 손에 넣으면 되는 거잖아. 왜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로 가려는 거냐?”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그만한 보상이 따르니까.”
“그래, 보상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아까 우리 단발 누나가 그랬잖아? 마왕을 잡으면 그 보물… 힘의 결정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그건 어떻게 할 건데?”
여기저기서 제리의 말에 수긍하는 듯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이에 힘입어 제리가 속사포처럼 다음 말을 쏟아 냈다.
“뭐, 율리아 네 말대로 협력해서 마왕을 잡으면 포인트도 더 많이 벌고 좋긴 하겠네. 하지만 힘의 결정이 문제 아닌가? 아무리 요람이라고 해도 그 귀한 걸 69개나 뿌릴 거 같지는 않은데? 끽해야 한두 개 아니겠어?”
“아마도 그렇겠지.”
“그럼 네 말처럼 우리가 마왕을 잡는다고 해도 결국 또 힘의 결정 때문에 싸워야 할 건데… 굳이 그 짓거리를 할 바에는 그냥 공주만 구출해 와서 50만 포인트 받고 끝내는 게 속 편하고 낫겠네.”
제리의 말은 구구절절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마왕을 잡고 포인트가 늘어나는 것은 곁다리 보상일 뿐.
진짜배기 보상은 힘의 결정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다시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
물론 율리아는 이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었다.
“경매를 열 거야.”
“경매?”
“힘의 결정 정도면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넘쳐 나겠지. 그러니 파랑새를 통해서 모든 기수에게 연락을 돌려 경매를 열어 볼게. 그렇게 힘의 결정이 팔리면 그 포인트를 49기 전원에게 배당할 생각이야.”
힘의 결정을 팔아 모두가 공평하게 이득을 보자.
이는 파랑새를 운영하는 율리아였기에 할 수 있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그 제안은 49기에게 제대로 먹혀들었다.
“괜찮은데?”
“나쁘지 않네.”
다수가 율리아의 의견에 동조하는 의사를 보였다.
그 속에서 제리는 율리아를 향해 슬쩍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에 율리아는 살포시 미소 지었다.
‘하여간 눈치는.’
제리는 일부러 반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판을 깔아 준 거였다.
자신이 49기의 의견을 더 쉽게 조율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덕분에 전체적인 분위기가 완벽히 긍정적으로 물들었을 때.
율리아는 동기를 보며 물었다.
“난 우리 49기가 힘을 모아 마왕을 잡았으면 하는데… 반대하는 사람?”
그리고 그 질문에 목소리를 낸 49기는 없었다.
* * *
철그럭 철그럭-.
양손과 양발에서 울리는 쇠사슬 부딪히는 소리에 유리는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쯧, 이거 진짜 거슬리네.”
수갑을 연결한 쇠사슬의 길이는 30㎝ 남짓.
하여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과한 움직임은 어려웠다.
특히 걸을 때마다 보폭이 제한당한다는 건 너무도 신경에 거슬리는 일이었다.
당장에라도 사슬을 끊고 벗어 던지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대체 이건 정체가 뭔데 마나를 흐트러뜨리는 거지?’
그를 구속한 수갑과 족쇄는 마나가 모이는 것도, 마나를 움직이는 것도 방해하고 있었다.
거기다 단단하긴 어찌나 단단하던지 검으로 몇 번을 내려쳐도 흠집 하나 가지 않았다.
내려치는 데 사용한 검이 자신의 백강철검이었는데도 말이다.
철그럭- 철그럭-.
일찌감치 쇠사슬을 끊는 걸 포기한 유리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사슬 부딪히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쇠사슬을 달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시야에 잡혀 들었다.
바로 자신처럼 코코에게 납치 아닌 납치를 당한 뒤, 흑검병들에게 붙들려 성으로 끌려온 이들이었다.
그렇게 유리가 도착하고 나서 30분 정도가 흘렀을 즘.
“모두 집합!”
모일 사람은 전부 모인 것인지 흑검병이 나타나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붙잡혀 온 지인들의 역할이 공주라는 것과.
그들을 구하러 49기의 용사들이 올 거라는 것.
마왕의 존재와 퀘스트 보상 등등.
49기가 들은 걸 그들도 똑같이 전해 들은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흑검병은 큰 목소리로 한 가지를 경고했다.
“자유롭게 있어도 좋으나 저 붉은 선 안쪽으로는 들어가지 마라. 거긴 마왕의 영역이니까.”
그 말을 남긴 흑검병이 떠나가자 유리는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직사각형의 격실을 정확히 반으로 나눈 붉은 선.
선을 기준으로 좌측은 출입문과 공주들이 머무르는 공간이 있었으며.
우측으로는 해골이 덕지덕지 붙은, 딱 봐도 마왕이 앉을 것 같은 의자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이에 유리는 혀를 내둘렀다.
‘예전부터 느낀 건데 흑검병들 이런 퀘스트 설정에 은근히 충실하단 말이지.’
그리고 마왕이 납치해 왔다는 설정을 지키려는 것인지 흑검병들은 마왕과 공주를 한 방에 집어넣었다.
유리는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다가 이내 다시 신중한 눈이 되어 붉은 선 안쪽을 훑었다.
‘마왕의 영역이라.’
조금 전 설명에 의하면 퀘스트를 깨는 방법은 공주를 구하는 것과 마왕을 잡는 것, 두 가지였다.
그런데 마왕의 영역 밖.
그것도 문 쪽에 공주들을 방치한다는 건 용사들이 공주를 데려가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공주를 데려갈 사람은 데려가고, 덤빌 사람은 덤벼라, 이거군. 경쟁 대신 협력을 요구한다라…….’
팔짱을 낀 유리는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이게 49기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한 퀘스트라면, 코코 씨가 마왕은 아닐 거다.’
코코의 움직임에 자신은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수갑을 차야 했다.
공인 6단의 그레타와 싸울 때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코코가 그레타 위건보다 약할 리는 당연히 없었고.
또한 그녀가 마왕이라면 49기가 아무리 협력한들 이 퀘스트에서 마왕을 잡는다는 선택지는 절대 고를 수 없을 거다.
아마도 코코의 역할은 딱 납치까지였을 터.
‘그럼 대충 공인 5단급이나 6단급…….’
신중한 얼굴로 자연스럽게 상황을 분석하던 유리는 흠칫거렸다.
‘아니, 잠깐… 내가 이럴 필요 없잖아?’
이래서 습관이 무서운 거라고.
이걸 또 분석하고 있었다니.
유리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퀘스트는 그가 열심히 분석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퀘스트도 아닐뿐더러 그저 테레시아가 오길 기다렸다가 같이 나가면 되는 거잖은가.
다시 말해 이건…….
‘꿀 빨 수 있다는 거지!’
푹 쉬다가 테레시아가 받을 50만 포인트의 절반을 얻어 갈 수 있는, 아주아주 흡족한 상황.
팔다리에서 철그렁거리는 쇠사슬이 좀 거추장스럽기는 하지만, 몇 시간 후에 생길 25만 포인트를 생각하면 이 정도 불편쯤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서서 움직이는 게 불편한 거지 누우면 딱히 불편할 것도 없었다.
‘비도 오고 꿀꿀했는데, 오랜만에 낮잠이나 때려 볼까?’
테레시아가 자신을 데리러 올 때까지 남은 건 앞으로 몇 시간 정도.
그리고 이는 유리에게 실로 오랜만에 생긴 여유였다.
팍팍한 요람 생활에 언제 또 이런 시간이 올까 싶은 그는 이 여유를 만끽하고자 했다.
하여 유리는 총총걸음으로 구석진 자리로 찾아들어서는 냅다 드러누웠다.
그러고는 곧장 꿈나라로 향하려는 찰나.
“어라? 이게 누구신가, 올빼미 군이지 않은가!”
자신의 여유를 방해한 변태 같은 목소리에 유리의 얼굴이 썩어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