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46
145화. 공주가 마왕성을 탈출해 용사를 구하러 가는 이야기 (1)
말투와 목소리.
그리고 자신을 ‘올빼미 군’이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누구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에 울컥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유리는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다.
상대가 알은척을 해 왔다고 곧장 자신도 알은척을 하면 그건 하수나 다름없었다.
벽을 바라보고 누웠던 유리는 살짝 움직여 벽에 더욱더 바짝 붙었다.
마치 깊이 잠든 상태에서 뒤척이다가 움직인 것 같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연기였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여기서 ‘아, 깊이 잠든 모양이구나’하고 넘어갔을지 몰랐다.
하지만 상대는 정신세계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하, 이런 곳에서 올빼미 군을 만나다니, 한동안 심심하지는 않겠어!”
“…….”
“올빼미 군은 누구의 지인으로 참여했는가? 나야 당연히 우리 자기의 지인으로 왔네만!”
“…….”
“흠… 올빼미 군은 역시 테레시아 양의 지인이겠지? 저번에 보니 둘 사이가 제법 가까워 보이던데?”
괴츠 뢰턴은 유리가 자든 말든 그 뒤에 주저앉아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조잘거리는 소리가 커질수록 유리의 관자놀이 혈관이 볼록하게 치솟았다.
그럼에도 그는 또 한 번 참았다.
무시하면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그러나…….
“이보게 올빼미 군, 내가 좀 심심한데 나와 같이 좀 놀아 주지 않겠나? 오랜만에 만났는데 우리 얼굴 좀 보고 이야기를 나눕세.”
“…….”
“올빼미 군? 안 자는 거 다 아네만?”
“…….”
“일어나게 올빼미 군!”
계속해서 칭얼거리는 목소리에 결국 참다못한 유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하하, 이거 왜 이러는가. 나는 우리 올빼미 군 뒤통수만 봐도 딱 알 수 있다네!”
…얼마나 자주 봤다고 우리래, 이 새끼가.
당장에라도 일어나 면상을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유리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참았다.
“전 그런 사람 모릅니다. 가세요.”
“흐음…….”
유리의 완강한 부정에 야릇한 미소를 머금은 괴츠.
그가 쪼그려 앉은 자세 그대로 조금씩 조금씩 유리에게 접근했다.
그렇게 유리의 뒤에 바짝 붙은 괴츠는 양손을 고이 모아 속삭였다.
“정말 안 일어날 생각인가? 그럼 나도 그대 옆에 누울 거라네. 유리 홀랜드 군? 후훗.”
“뜨앗쒸!”
귓가에 전해진 뜨뜻한 숨결에 유리가 팔딱팔딱 경기를 일으키며 거리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캬약!”
그러고는 하악질을 날리며 언제 뽑아 든 것인지 모를 검을 휘둘렀다.
그 검 끝이 괴츠를 향한 것은 당연지사.
거친 욕설은 덤이었다.
“뒈져 이 변태 새꺄!”
훙-!
“하하, 역시 올빼미 군이지 않은가!”
“닥치고 뒈져, 감히 신성한 나의 고막에 더러운 숨결을 불어넣다니!”
훙-!
“하하하하핳!”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살기 짙은 공격에도 괴츠는 그저 해맑게 웃으며 요리조리 몸을 날렸다.
“뒈져!”
“핳핳핳!”
그들의 드잡이질 덕분에 반경 몇 미터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렇게 한참이나 실랑이한 두 사람.
먼저 포기를 선언한 것은 유리였다.
자신이 아무리 난리를 쳐 봤자 변태를 기쁘게 할 뿐이란 것을 알아차린 그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검을 집어넣었다.
“하 진짜, 눈치 좀 챙기지? 딱 봐도 말 걸지 말라는 걸 못 느꼈냐!”
“당연히 눈치채고 있었네만?”
“……?”
“심심해서 깨운 걸세.”
“…미친놈인가.”
아, 미친놈 맞지.
미친놈과 정상적인 대화를 하려 한 자신도 정신 나간 놈이었다.
‘저번에 거래할 때는 그래도 좀 정상적인 듯싶었는데.’
그런데 오늘은 어째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는 걸까.
유리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구석으로 향했다.
이에 괴츠는 아쉽다는 눈빛을 해 보였다.
“더 안 하는 겐가?”
“안 해. 움직이면 배고파.”
“쩝.”
“나 잘 거야. 말 걸지 마.”
유리는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다시 누우려 했다.
이렇게 흘러가는 1분 1초가 너무도 아까웠기 때문이다.
몇 시간 남지 않은 여유를 어서 즐겨야 했다.
하지만 유리는 잠들지 못했다.
이번에는 격실의 문이 열리며 나타난 존재가 그의 낮잠을 방해한 것이다.
끼익- 쿵-.
활짝 열린 문 너머로 등장한 한 사내.
190㎝는 되어 보이는 큰 키와 우락부락한 근육.
적발, 적안, 거기에 무심하면서도 사나워 보이는 인상까지.
외적인 모습만으로도 강한 위압감을 풍기는 사내의 등장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던 공주들의 시선이 쏠렸고.
그들 모두가 같은 것을 떠올렸다.
‘마왕이네.’
‘마왕이야.’
‘저 흑검병이 마왕이군.’
격실로 들어선 그는 너무도 마왕이란 호칭에 걸맞은 분위기를 폴폴 풍겼다.
그렇게 드디어 나타난 마왕에 좌중은 침묵하며 그의 모습을 좇았다.
저벅저벅-.
숨 막힐 듯한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마왕은 당당하게 격실을 가로질렀고 유리 역시 그를 자세히 살폈다.
한 손에는 거검을.
다른 한 손에는 은은한 붉은빛을 내뿜는 램프를 든 그는 붉은 선을 넘어 마왕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해골로 장식된 의자를 차지하고 앉았다.
의자의 한쪽 팔걸이에는 거검이 기대어졌고.
다른 쪽 팔걸이에는 램프를 걸어 놓은 채 턱을 괸 그 자세는 실로 마왕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진짜 흑검병들… 퀘스트 설정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지키네.’
혀를 내두르던 유리의 시선이 붉은빛의 램프에 닿았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등불 램프라고 여겼던 것 안에 든 게 등불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등불 대신 램프를 차지하고 있는 것.
그건 다름 아닌 은은하게 붉은빛을 발하는 적색의 보석이었다.
마치 루비처럼 보이지만, 자체적으로 빛을 내뿜는 특이한 광물.
난생처음 보는 물건에 유리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저게 뭐지?’
그때 그의 옆에서 흥미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오, 저렇게 큰 힘의 결정은 처음 보는군.”
이에 유리의 시선이 돌아갔다.
“저게 힘의 결정이라고?”
“응? 올빼미 군, 자네, 힘의 결정 처음 보는 겐가?”
“어. 근데 저게 큰 거야?”
“내가 본 결정은 전부 엄지손톱만 한 크기였다네. 한데 저건 그 세 배는 되어 보이는군.”
“그런 거야?”
“그런 거라네.”
“근데 힘의 결정이 뭐야?”
“…….”
“왜 그렇게 봐?”
“…힘의 결정이 뭔지도 몰랐나?”
“어.”
“그런데 방금은 아는 것처럼 말했잖은가.”
“그러면 안 돼? 그래서 저게 뭔데? 비싸?”
흑검병이 설명하길 마왕을 잡으면 마왕의 보물인 힘의 결정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다들 놀라기에 유리는 그냥 좋은 건가 보다 하고 넘어갔더랬다.
어차피 자신의 퀘스트가 아니었기에 신경을 끈 것이다.
하지만 은은하게 빛을 뿌리는 보석의 등장에 그의 호기심이 다시금 슬그머니 머리를 치켜들었다.
덩달아 탐욕도 말이다.
이를 모르는 괴츠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풀어냈다.
“비싸냐고? 당연히 비싸네. 더군다나 저 정도 크기의 결정이라면 아무리 돈이 많이 있어도 구하기 힘들지.”
“오호? 그래? 저걸 어디가 쓰는데?”
“먹네.”
“…저걸?”
빛나는 돌을 먹는다는 소리에 유리의 눈이 대번에 뚱해졌다.
마치 이 새끼가 날 놀리나 싶은 눈빛.
거기에 슬그머니 다시 검 자루로 올라가는 유리의 손을 보고 괴츠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왜 그댈 놀리겠나? 힘의 결정은 분명 먹는 거라네.”
조금은 진심이 느껴지는 말투에 유리가 검에서 손을 뗐다.
“정말 저걸 먹는다고? 씹다가 이빨 다 나갈 거 같은데?”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네. 입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릴 테니. 마치 사탕처럼 말일세.”
“꼭 먹어 본 것처럼 말한다?”
“어렵사리 구해서 한 개 먹어 보긴 했지. 저것보다 훨씬 작았던 결정인데도 효과는 끝내줬었고.”
그때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는 괴츠를 보고 유리의 호기심이 더욱 강해졌다.
“그래서 대체 저거 정체가 뭔데?”
“흐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 주는 게 좋으려나… 자연이 빚어낸 특수 비약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비약?”
비약이란 소리에 유리의 눈이 과하게 반짝였다.
“그렇네, 자네 호박석을 알고 있나?”
“나무 진액이 굳어 만들어진 보석이잖아?”
“저것도 그것과 비슷한 거라네. 마나를 품은 나무가 진액을 흘리고, 그것이 오랜 시간 정화 과정을 거쳐 가며 굳은 게 바로 저 결정이지. 결정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저처럼 붉은 계통을 힘의 결정이라 칭한다네.”
괴츠가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었지만, 유리가 궁금한 건 하나였다.
“저거 약빨 좋아? 마나 얼마나 늘어나는데?”
과연 어느 정도의 약빨이 있냐는 것.
그 질문에 괴츠는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마나는 늘지 않네.”
유리의 얼굴에 실망이 스쳤다.
하지만 이어진 설명에 그런 실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힘의 결정은 인간이 타고난 육체 능력치를 늘려 주네.”
“……?”
“음… 예를 들면 이런 걸세. 평생을 단련해도 100㎏밖에 들지 못할 사람이 힘의 결정을 먹게 되면 110㎏, 120㎏ 무게를 들 수 있게 되는 거지.”
“……?!”
“거기다가 현재의 능력치도 늘려 주기에 힘의 결정 하나면 수년간 신체를 단련한 효과를 보기도 한다네. 심지어 그게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영구적인 증가지.”
육체 단련을 한 효과를 주는 것도 모자라 육체의 성장 한계치마저 늘려 주는 비약이라니.
그 말도 안 되는 효능에 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진 건 당연했다.
“그런 게… 가능하다고?”
“물론 어떤 육체적 능력이 결정에 영향을 받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네. 어떤 이는 근력 크게 늘고, 누군가는 체력, 혹 정력이 느는 일도 있지! 아무튼, 사람마다 약빨 받는 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힘의 결정이 지닌 효능은 입증된 사실이네. 부작용도 없고.”
“맙소사.”
유리는 경악했다.
괴츠의 설명대로라면 저건 그야말로 보물 중의 보물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세상에 저런 게 있었다고?”
“워낙 희귀 품목이다 보니 나름 한 지역에서 방귀 좀 뀐다는 집안에서 물량이 풀리는 족족 싹 쓸어 간다네. 소문이 나기도 전에 말이지. 그러니 일반적인 서민은 구경은커녕 소문으로도 접하기도 쉽지 않을 걸세.”
“…치사한 것들.”
저 좋은 걸 자기들만 알고 야금야금 먹어 왔단 거지?
그리고 어쩌면 힘 있는 이들이 독식해 온 것들이 저것뿐만이 아닐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특별한 것들.
아마 오랜 시간 그것들을 독식해 왔을 것이다.
‘이러니 길바닥 출신들이 이름 있는 가문에 상대가 안 되지… 지들끼리만 좋은 걸 처먹고 공유하니까.’
없는 놈들은 도태되고.
있는 놈들은 더욱 강해지고.
참으로 불공평한 세상이 아닌가.
…라고, 몇 달 전의 유리였다면 그리 불평하고 욕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내가 있는 곳은 요람이지.’
그 어떤 곳보다 불평등이 판을 치고.
그 어떤 불공평함도 당연시되는 곳.
또한, 강자 독식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있어 최고의 낙원.
그러니 유리는 불평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자신이 그 불공평함의 특혜를 누려야 할 차례였으니까.
그리 생각하는 유리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그리고 우연히 미소를 본 괴츠의 어깨가 흠칫거렸다.
움찔-.
“이, 이보게 올빼미 군?”
“왜.”
“…자네, 눈깔이 왜 그러나?”
“내 눈깔이 뭐?”
“정상이 아니네만?”
“무슨 소리야. 난 지금 지극히 멀쩡한 상태인데.”
“…아닌 거 같네만?”
입은 연신 웃고 있음에도 유리의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저 멀리 의자에 놓인 힘의 결정에서 잠시도 떨어질 줄을 몰랐다.
심지어 말을 하는 내내 단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다.
특히 저 번들거리는 저 눈빛을 봐라.
그건 누가 봐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변태 괴츠마저 유리에게서 슬금슬금 멀어지게 할 정도로.
* * *
요람에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단합이란 것을 이룬 49기.
그런 그들이 처음으로 할 일은 앞으로의 진로를 찾는 거였다.
언제나 그랬듯 흑검병들은 이번에도 퀘스트의 핵심 정보는 알려 주지 않았다.
마왕성에서 공주를 구하라고 했으면서 정작 마왕성이 어디 있는지는 알려 주지 않고 떠난 것이다.
그리고 이를 해결한 것은 49기의 두뇌라 할 수 있는 율리아 싱이었다.
[간단하네, 갈림길 중 지인 진입로를 타고 올라가면 되는 거잖아?]자신들 데려온 지인들, 즉, 공주들은 그 길로 들어섰다가 납치당했다.
그렇다면 그 길의 끝에 공주들이 납치된 장소가 나오든, 혹은 마왕성이 나오든 하리라.
그런 율리아의 해답에 따라 49기는 자신들이 들어왔던 길을 되돌아 나온 뒤, 지인 진입로로 들어섰다.
저벅저벅-.
한데 뭉쳐 숲길을 빠른 속도로 걸어가는 49기.
그 선두 무리에 속한 테레시아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퀘스트를 시작했는데도 싸우지 않는다는 건… 이렇게나 어색한 느낌이구나.’
그간 퀘스트가 시작됨과 동시에 서로를 노리고 공격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하여 이렇게 다 같이, 그것도 평화롭게 움직인다는 게 실로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이는 비단 테레시아뿐만이 아니었다.
49기 모두가 현재의 분위기가 어색한 것은 마찬가지.
‘그래서인지 다들 조용하…….’
고요한 침묵에 테레시아가 옅은 미소를 지으려던 찰나.
그녀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본능이 경종을 울린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사사사삭-.
사방에서 검은 그림자가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