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74
173화. 상생 (3)
유리를 바라보는 요한의 눈에는 당황, 황당, 놀람, 어이없음 등의 감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환장하겠군.’
요한이 요람에 도착한 건 점심 무렵이었다.
이후 그는 늦은 밤 유리를 찾아갈 생각으로 나무 위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난데없이 찾아온 골족 늙은이를 보고 눈을 끔뻑였다.
‘세경 워커? 꽁술이? 허… 저 자식도 많이 늙었군.’
오랜만에 보는 친구의 등장에 놀랐던 것도 잠시.
그는 세경이 광성극화술을 펼치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그 흥미로움은 유리의 돈오로 옮겨 갔다.
‘…쇳덩이 두들기는 걸 보고 돈오에 들었다고?’
아무리 깨달음이 언제 어디서 찾아들지 모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쇳덩이를 두들기는 걸 보고 깨달음을 얻다니.
유리가 종잡을 수 없는 놈인 걸 알고는 있었지만, 깨달음을 얻는 방식도 참 종잡을 수 없는 놈이었다.
그러하던 생각은 유리의 애검 흰둥이가 변하는 것을 보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뭣이?’
부스럭-!
요한이 벌떡 몸을 일으키니 나뭇가지가 요란스럽게 흔들렸다.
‘마, 마검?!’
강검과 연검까지 봤을 때는 자신이 없는 사이 유리가 열심히 한 거 같아 살짝 대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화검을 보았을 때는 ‘제법이군’이란 생각이 들었고.
유리가 마검을 펼치니 모든 감상이 사라지고 경악만이 자리했다.
그러다 마침내 유리가 성검을 펼치니.
요한은 더 이상 나무 위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츠팟!
‘터무니없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여 오죽했으면 그가 남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데 모습을 드러내겠는가.
‘허……?’
유리의 곁에 선 요한.
그의 눈에 자리했던 놀람과 당황의 감정들이 하나로 압축되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두려움’이란 감정이었다.
‘이 나이에 성검… 성의 경지라니.’
자신이 유리에게 내준 숙제는 1년이 지나기 전에 마검을 완성하라는 것.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유리는… 이 녀석은 또 한 번 자신의 상상을 넘어서는 짓을 저질렀다.
‘고작 4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닌 거냐.’
강검조차 모르던 놈이 4개월 만에 성검을 만들다니.
자신이 아는 내에서 이런 무식한 성장 속도를 보인 이는 없었다.
‘어쩌면 그 검주조차…….’
그 정도로 유리의 성장 속도는 비정상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비정상적인 성장에는 필연적으로 부작용이 따를 터였다.
바로 지금처럼.
“끄으윽-.”
홍인(紅人)이 되어 신음을 흘리는 유리의 기괴한 모습.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몰려드는 대기의 마나에 요한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녀석아… 정도란 게 있는 거다.’
준비된 것에 비해 유리가 얻은 깨달음은 너무 과했다.
마체술에 입문한 지 아직 2년도 되지 않았으면서 턱없이 모자란 마나로 성검을 펼치려고 했으니 멀쩡한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리라.
거기다 안 그래도 영혼과 육체, 기운의 조화가 어긋났던 녀석이다.
지금에야 겨우 그 조화를 어느 정도 맞췄었는데…….
‘과한 깨달음으로 인해 그 균형이 틀어졌고 마나 고갈이 온 거다.’
이에 요한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유리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일단 유리의 상태를 살피려는 조치였다.
그리고.
“흡?!”
요한의 눈이 휘둥그레 변했다.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는 그의 동공.
기어코 요한에게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이, 이, 이 정신 나간 새끼가?!”
요한은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단번에 깨달았다.
현재 유리의 상태는 단순히 과한 깨달음으로 인해 균형이 틀어진 정도가 아니었다.
‘마나 핵이… 붕괴하고 있다!’
다급해진 요한은 재빨리 자신의 마나를 유리에게 부여해 줬다.
동시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놈의 새끼 대체 어떻게 성검을 펼친 게야?!’
붕괴하는 마나 핵의 크기로 짐작하건대 유리가 보유한 마나양은 절대 성검을 펼칠 수준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마검을 몇 초쯤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잘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
성검이 발현된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에 요한은 깨달았다.
‘대기의 마나를 흡수한 건… 이 녀석이 마나 핵을 살리고자 발버둥을 친 거였구나!’
성검이 발현되는 과정에서 턱없이 부족한 마나를 핵의 근간에서 뽑아 썼다.
물론 무의식에서 일어난 일이었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식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그러다 결국 핵이 깨져 버린 게지!’
그 와중에 유리의 무의식은 마나 핵을 복구하고자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인 것이리라.
이 녀석의 마나 감응력과 흡수력은 자신조차 감탄한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것 가지고 될 턱이 있나!’
처음 핵을 만드는 것과 깨진 핵을 이어 붙여 복원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더욱이 성장한 마나 핵이 깨졌는데 그걸 복원한다?
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런 짓을 할 바에 그냥 새롭게 마나 핵을 만들어 키우는 쪽이 손쉽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다만 문제는 유리가 있는 곳이 요람이라는 거였다.
잃은 마나 핵은 언젠가는 복구할 가능성이 있지만…….
‘요람은 마나 핵을 잃은 놈이 버텨 낼 정도로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지.’
물론 그것도 마나 핵이 깨지는 충격에서 멀쩡히 살아남았을 때의 이야기다.
마나 핵이 깨지는 충격으로 백치가 되는 이도 있었으며.
육체에 손상을 입어 목숨을 잃는 사람도 발생하니까.
하여 요한은 선택해야만 했다.
이대로 유리의 마나 핵이 깨지는 충격을 완화하여 목숨만 살리고, 요람에서 데리고 나가서 새로운 마나 핵을 만들거나.
아니면 지금 어떻게 해서든 유리의 마나 핵을 복구하거나.
그 앞에 놓인 두 가지의 선택지.
그리고 요한의 결정은 신속했다.
‘복구한다.’
지난 4개월여간 요람에서 유리의 성장을 보면 그를 이곳에 잔류시키는 것이 옳았다.
결심이 섰고, 이어진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요한은 유리의 등에 대고 마나를 불어 넣었다.
‘벌써 반절 정도나 붕괴됐다.’
더 지체할 틈이 없었다.
유리의 몸속으로 침투한 요한의 마나가 깨져 나간 마나 핵의 조각을 그러모았다.
그리고 요한은 자신의 마나를 접착제 삼아 깨진 조각들을 이어 붙였다.
한 조각, 한 조각.
정성스럽게 복구되는 유리의 마나 핵.
그렇게 약 70%가 복원되었을 즘.
즈극-.
복원되었던 마나 핵이 다시금 무너졌다.
이에 요한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내 마나의 순도로도… 역부족이란 말이냐?’
요한의 마나 순도는 90%.
그런데 그런 그의 마나가 유리의 마나 핵을 이어 붙이지 못한 채 겉돌고 있었다.
마치 이물질처럼 여겨지며 이어 붙인 부분이 툭툭- 떨어지고 있는 거다.
‘이 녀석,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몸뚱이인 게야!’
마나를 담는 그릇이자 기관인 마나 핵이니 담기는 마나보다 순도가 높은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90%인 자신의 마나보다 순도가 높을 줄이야.
‘이대로는 실패한다…….’
더 높은 순도의 마나를 때려 붓지 않는 한, 유리의 마나 핵을 살릴 수 없을 것이다.
그리 안타까운 심정이 든 순간.
‘가만… 더 높은 순도?’
무언가를 떠올린 요한.
그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여 유리의 목 언저리를 훑었다.
그러자 하나의 목걸이가 손가락에 걸려 나왔다.
요한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 가지고 있었구나!’
투명한 수정 속, 찰랑거리는 진녹색의 액체.
바로 유리의 보물 1호 엘릭서였다.
‘이거라면…….’
이 엘릭서를 자신이 먹고 마나의 순도를 높인다면, 그걸로 유리의 마나 핵을 복구할 가능성도 있을 거다.
아니, 어지간해서는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만일 실패한다면?’
유리 녀석의 마나 핵 순도가 또다시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면?
엘릭서를 복용했음에도 마나 핵을 복구할 정도의 순도를 얻지 못한다면?
유리의 마나 핵은 깨지고, 엘릭서는 엘릭서대로 날리는 상황이 될 거다.
“흠…….”
엘릭서를 손에 쥔 요한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고민을 끝냈다.
그는 손에 힘을 주었다.
팅-.
목걸이가 끊기고.
슥-.
요한의 손가락이 가볍게 움직이니 수정의 윗부분이 예리하게 잘려 나갔다.
그는 수정 안에서 찰랑이는 액체를 보고 작게 중얼거렸다.
“실패하면… 꽤나 시달리겠어.”
마나 핵은 살리지도 못했으면서 엘릭서만 꿀꺽했다고.
아마 자신이 관짝에 들어가는 날까지 유리 녀석이 지랄을 해 대겠지.
그런 상황이 눈에 훤히 그려지니 의욕이 샘솟았다.
“그럴 수야 없지!”
유리 녀석에게 들볶이는 상황은 절대로 만들지 않겠다.
그리 다짐하며 요한은 엘릭서를 삼켰다.
꼴깍-.
진녹색의 액체가 달큰한 풀 향기를 남기며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그리고.
츠츠츠-.
요한의 몸에서 희뿌연 휘광이 흘러나왔다.
빛에 감싸인 그는 제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감탄했다.
‘과연 엘릭서로구나!’
엘릭서가 몸에 퍼지기 무섭게 그가 평생을 모아 온 마나가 정제되기 시작했다.
불순물에 가까운 혼탁한 기운이 몸 밖으로 배출되고 있었다.
요한의 몸에서 뿜어지는 희뿌연 휘광의 정체가 바로 그 혼탁한 기운이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요한의 마나가 기존의 7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평생 동안 모아 온 마나의 30%가 날아가 버린 상황.
그럼에도 요한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활력이 돌았다.
마치 새로 태어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감상을 하기에는 시간에 여유가 있지 않았다.
그는 곧장 유리의 등에 두 손을 대고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후우우웅-.
유리와 요한을 중심으로 마나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그리고 그 속에서 치열한 사투가 이어졌으니.
톡- 톡-.
이마에서 흐른 땀이 턱에 맺혔다.
연신 땀을 흘리는 요한.
하지만 그의 얼굴은 조금 전보다 밝았다.
‘붙는구나!’
아까는 아무리 붙여도 툭툭 떨어지던 마나 핵이 이제는 제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다만…….
‘이… 염병할 새끼! 게걸스럽게도 빨아먹네?!
유리의 마나 핵은 단순히 복구 수준으로 끝날 생각이 없는지 요한의 마나를 탐욕스럽게 갈구했다.
동시에 몸집을 조금씩 키워 나가는 게 아닌가.
마나를 빼앗기고 있는 상황임에도 요한은 오히려 웃었다.
‘오냐! 내 엘릭서값이라 생각하마! 이번 한 번뿐이니 어디 가져갈 만큼 가져가 봐라!’
고작 어린애 주먹만 한 마나 핵이 가져가면 얼마나 가져갈까.
그런 생각으로 더욱더 맹렬하게 마나를 밀어 넣어 주기 시작한 요한.
고오오오-.
유리와 요한에게서 거대한 기운이 일렁였고.
어느 순간부터 요한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너무 많지 않냐?’
유리의 마나 핵이 복구되며 빨아 먹은 마나가 자신의 전체 마나의 10%에 달했다.
문제는 아직 유리의 마나 핵이 덜 복원되었다는 점이었다.
고오오오-.
이후로도 더 시간이 흘러.
유리에게 20%의 마나를 더 빼앗긴 요한.
그에게서 여유는 사라지고 당혹만이 남았다.
‘이 새끼는 마나 핵마저 제 주인을 닮았구나!’
주는 족족 거절도 안 하고 날름날름 받아 처먹는 것도 모자라, 더 달라고 대놓고 손을 내미는 꼬락서니가, 정말이지 주인을 쏙 빼닮아 있었다.
‘이 거지 같은 놈아… 적당히 처먹어라!’
요한은 자신이 괜한 짓을 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이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툭툭-.
유리의 전신에 툭툭 불거졌던 혈관이 정상적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스으으-.
두 사람을 중심으로 요동치던 기운이 서서히 가라앉을 즘.
붉디붉었던 유리의 피부 역시 제 색을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슥-.
요한이 등에서 손을 떼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앞으로 고꾸라지는 유리.
턱-.
곧장 요한이 유리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기절한 채 대롱대롱 흔들리는 유리를 든 요한이 세경에게 고개를 돌렸다.
곧 그에게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니.
“오랜만이구나.”
“너…….”
이미 진즉에 요한을 알아본 세경은 크게 동요했다.
그런 그를 향해 요한이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봐서 하는 말이다만, 너…….”
“……?”
“…꿍쳐 둔 술 좀 있냐?”
그 말에 세경은 정신을 되찾고 폭탄 발사기를 찾았다.
저 빌어먹을 낯짝을 당장에라도 날려 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아무래도 오늘은 술이 좀 필요할 듯싶은데, 허허허…….”
갑자기 터져 나온 요한의 너털웃음이 묘하게 세경의 가슴을 울렸기 때문이다.
“허허… 허허허허허!”
너무도 공허하고 허탈한 심정이 절절히 묻어 나오는 웃음소리였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짜증스러운 얼굴로 변한 요한이 손에 든 유리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에라이, 빌어먹을 새끼!”
털썩-.
흙바닥에 대자로 널브러진 유리는 너무도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고롱고롱-.
“저, 저……!”
유리의 기분 좋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다시 혈압이 치솟자, 요한이 열심히 목뒤를 문질렀다.
‘저 망할 새끼!’
조금 전 유리 녀석이 가져간 마나는 총 30%.
그것도 엘릭서로 정제된 마나의 30%였다.
요한이 평생에 걸쳐 모은 마나를 100%라 친다면, 이번에 빼앗긴 마나가 전체의 21%라는 소리다.
‘…엘릭서의 대가를 꽤 비싸게 치렀구나.’
절반으로 텅 비어 버린 자신의 마나 핵.
“꽁술아, 술 좀 다오.”
그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건 술뿐이리라.
* * *
한편, 갑자기 난입한 노인을 보고 놀라 움직이려던 테레시아, 아린, 뽀삐.
그들은 정체불명의 노인이 유리를 해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멈추어 섰다.
그리고 마침내 노인에 의해 유리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오자 안도했다.
그와 함께 노인의 정체에 관해 의문이 치솟았다.
“누구지?”
“옷 입은 걸 보니 흑검병은 아닌 거 같은데요? 요람 관계자인가? 저 폭탄마 할아버지처럼?”
“배고프다?”
세 사람이 너도 나도 의견을 나눌 때.
이미 노인을 본 적이 있던 군터에게서 그 정체가 흘러나왔다.
“요한… 레드너.”
군터의 중얼거림은 작지만, 모두의 귀에 또렷이 전달됐다.
이에 세 사람의 시선이 쪼르르 군터에게 향하니.
“누구……?”
“요한 레드너?”
“배고프다?”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리고 여기에 그 사람이 왜 있을까 싶어, 쉽사리 요한의 정체를 떠올리지 못했던 이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세 사람은 요한의 정체를 깨닫고 동시에 소리쳤다.
“부절검?!”
“부, 부절검 요한 레드너?!”
“배고프다?!”
놀란 이들의 고개가 우르르 돌아가니.
그들의 두 눈에 세경에게 연신 술을 달라고 징징거리는 요한의 모습이 한가득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