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36
335화. 세 번째 (2)
검주가 철검을 쥔 순간.
그에게서도 무형의 기세가 일어나 요한의 기운을 맞아 주었다.
검주와 요한.
두 사람의 기운이 순식간에 허공에서 맞붙고.
콰릉-!
마치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울리며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 충격파는 설원의 눈을 순식간에 날려 버렸다.
그 반경이 족히 수백 미터.
그렇게 갈색의 속살을 드러낸 대지 위에서 요한과 검주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그 와중에도 두 사람이 만들어 낸 무형의 기운은 계속해서 격렬히 맞붙는 중이었고.
그에 따라 끊임없이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파팡- 쾅-!
쉼 없이 울리는 대지와 요동치는 대기.
무시무시한 광풍이 몰아치며 침엽수들이 꺾일 듯 휘청였다.
놀라운 건 그 모든 게 두 사람이 검조차 뽑지 않고 만들어 낸 결과라는 점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스르릉-.
요한이 먼저 검을 뽑아 들었고.
슥-.
검주 역시 지면에 꽂혀 있던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둘의 기세가 순식간에 사그라지며 쉼 없이 몰아치던 충격파와 광풍이 사라졌다.
언제 격렬했냐는 듯 고요해진 사위.
하지만 그것이 태풍이 몰아치기 전의 고요임을 고든은 물론 유리 역시 모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곧이어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했으니.
그 처음은 가벼운 휘두름이었다.
요한과 검주의 검이 동시에 움직였다.
다만 그 둘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5m가 넘는 간격을 두고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를 뿐.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무것도 없는 두 사람 사이의 공간에서 금속성이 터져 나왔다.
슈카앙-!
검과 검이 맞붙는 듯한 소리.
첫 한 번은 길게 울렸고.
카가가가가강-!
이후 횟수를 셈할 수 없을 만큼 소리가 폭증했다.
그에 따라 두 사람의 검은 물론이요, 검을 휘두르는 팔까지 잔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여전히 뒷짐을 진 검주와 무표정한 요한.
평온한 표정으로 검을 휘두르는 두 사람을 지켜본 유리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환장하겠군.’
요한과 검주가 휘두르는 검.
그 하나하나가 바로 아신검이었다.
자신은 단 한 번을 막아 내는 것만으로도 녹초가 되어야 했던 아신검을 저 둘은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연달아 휘두르고 있었다.
저 검로에 담긴 무궁한 변화를 읽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은데, 저들은 대체 어떻게 저리 검을 휘두를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기회다.’
유리는 눈을 부릅뜨고 검주와 요한의 공방을 좇았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검의 궤적을 놓치지 않기 위해.
또한, 그들이 내보이는 검의 묘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엄청난 집중력을 유지하는 유리의 이마에 식은땀이 흥건히 맺혀 갔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무언가 달라져 일렁이는 유리의 기세에 고든은 혀를 내둘렀다.
‘허?’
검주는 물론이거니와 그에 맞서는 요한의 검술은 일반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쌓아 온 무의 깊이와 다룰 수 있는 묘리의 수는 아득한 수준.
하여 검주와 요한이 보여 주고 있는 공방은 공인 9단급이라고 해도 쉬이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걸 이제 겨우 아신검의 묘리에 닿은 듯한 녀석이 좇으려 하고 있으니 가소롭기 짝이 없었는데…….
‘…이 녀석도 괴물이로구나.’
유리는 현재 그가 가진 것보다 까마득한 차원의 것을 느리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깨우쳐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러니 요한 저놈이 이 아이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것일 테지.’
공인 7단급, 혹은 공인 8단급의 실력자를 이곳에 데려와도.
또한 그 실력자들이 하나를 보고 열을 깨닫는 수준의 천재라 하여도 요한과 검주의 싸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을 터.
‘저기서 무언가를 얻어 가기에는 쌓은 격이 다르다.’
그렇기에 그 격차를 무시하고 눈앞의 저 가공할 싸움을 이해하는 유리란 녀석이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담을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담으려 했다가는 아직 단단히 굳지 않은 그릇이 깨져 나갈 터.
그런 결말을 바라고 요한이 유리를 이곳으로 불러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를 깨달은 순간 고든의 뇌리에 스친 기억.
‘그러고 보니… 보호하는 게 아닌, 보살펴 달라고 하였던가.’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넘어갔건만 지금에 와 생각해 보니 어쩌면 요한은 이런 상황을 예상하였던 것 같다.
하여 보호하며 돌봐 달라는 의미에서 유리를 ‘보살펴’ 달라고 말하였으리라.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말로 농간하는 짓거리는 똑같구나.’
피식 웃은 고든이 슬쩍 기운을 풀어냈다.
그리고 유리의 일렁이는 기운을 보듬어 그가 충격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집중에서 깨어나도록 유도했다.
“아…….”
그런 고든의 보살핌 덕분에 무사히 집중에서 깨어난 유리.
약간 몽롱한 눈빛인 그의 코에서 한 줄기 핏물이 흘러내렸고.
그제야 유리는 자신이 너무 무리하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귓속으로 흘러든 한 줄기 목소리.
“때가 되면 자연히 이해가 될 터이니, 지금은 그저 보아라.”
어딘가 모르게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음성에 유리는 코피를 훔치고 다시금 앞을 응시했다.
‘욕심을 버리자.’
지금 자신이 할 일은 저 말도 안 되는 싸움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이 아닌, 그저 보고 기억하는 거였다.
언제 어디서든 머릿속에서 꺼내 볼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말이다.
그렇게 유리는 순식간에 기운을 정돈하고 저 멀리서 벌어지는 싸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의 빠른 변화에 고든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연신 휘둘러지던 검주와 요한의 아신검 사이로 묘한 빛이 일렁였다.
‘저건……?’
아신검의 검로 사이사이에 뒤섞여 들기 시작한 지독한 예기.
이를 유심히 본 순간 유리의 뇌리로 끔찍한 공포가 아로새겨졌다.
‘베인다!’
아신검이 사방을 포위당해 숨통을 조여 오는 공포였다면.
저 묘한 빛을 띤 지독한 예기는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절대의 검기.
마치 신의 단죄처럼 느껴지는 그 무언가.
그러나 현재 유리의 경지로는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유리의 표정이 창백해진 찰나.
스륵-.
다시금 유리의 전신을 푸릇하고 포근한 기운이 다독였다.
“깊이 보지 말거라. 마음이 베일 수도 있으니.”
귓가에 울리는 고든의 목소리에 유리는 단서를 얻었다.
‘아, 설마……!’
그날.
요한이 아신검을 보여 준 날.
유리는 요한에게 물었었다.
[그럼, 공인 9단은? 공인 7단이 감각을, 공인 8단이 검을 단련한 끝에 닿을 수 있다면… 공인 9단은 무얼 단련해야 하는 건데?]공인 7단에서는 감각을 단련한 끝에 절대의 영역을.
공인 8단은 검의 길을 단련한 끝에 아신검을.
그렇다면 공인 9단은 무얼 단련한 끝에, 어떤 걸 손에 넣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물음에 요한이 씨익 웃으며 짧게 답했다.
[마음(心).]공인 9단은 마음을 단련하는 경지.
그 끝에 닿을 수 있는 건, 아류라는 딱지를 뗀…….
“신검(神劍).”
진짜 신의 검이었다.
이를 깨달은 유리는 고든의 조언을 받아들여 시각적 정보의 분석을 줄였다.
늘 그래 왔듯이 보고 의미를 파헤치는 것이 아닌, 그저 단순히 ‘보고 기억’하는 정도에 그친 것.
그러자 뇌의 부담감이 확연히 줄어들었고, 덕분에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것 역시 볼 수 있게 되었다.
‘맙소사…….’
검주와 요한.
둘은 싸움이 시작된 이래 단 한 걸음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주변은 어마어마한 수의 검흔으로 지면이 난도질 된 상태였다.
그것도 족히 십수 미터는 됨직한 깊이로 말이다.
이에 유리가 넋을 놓고 그 흔적을 눈에 담을 때.
“이제부터는 정말로 정신 바짝 차리고 내 옆에서 절대 멀어지지 말거라.”
살짝 경직된 고든의 목소리를 들은 유리는 의아해했다.
‘이 사람이…….’
다른 그 누구도 아닌 흑검병단의 단장이.
그것도 요람이 배출한 첫 번째 명인이라 명성이 자자한 고든 크라우덴이.
‘긴장했다고?’
단지 싸움을 구경하고 있을 뿐이건만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 유리의 의문 섞인 눈빛을 읽은 것일까.
고든이 쓴웃음을 베어 물며 말했다.
“명인이라는 이름으로 묶였다고 전부 똑같은 명인인 것은 아니다.”
고든의 시선이 요한의 옆모습을 좇았다.
“명인 중 명인이라 불리며, 이미 진즉 세계 최강의 자리를 꿰찼어도 이상함이 없을 세기의 천재와.”
그의 시선이 이번에는 검주에게 향했다.
“그러한 천재에게 번번이 좌절을 안겨 준 명인 위의 초인이라 불리는 괴물.”
고든이 언제든지 출수할 수 있도록 검 자루에 손을 올렸다.
“저 두 존재야말로 현 인류의 정점이다.”
그런 고든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검주와 요한의 공방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갑자기 찾아든 고요 속.
“…….”
유리는 긴장된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 * *
첫 대화 이후 수십 분에 걸쳐 오로지 검만을 휘둘렀던 요한과 검주.
그러다 오랜만에 찾아든 적막 속에 검주가 입을 열었다.
“이쯤이면 충분히 어울려 준 듯싶은데?”
그 말에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하오.”
지금까지 요한과 검주가 나눈 수준 높은 공방.
이는 그저 어느 한 사람을 위한 ‘보여 주기’였을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를 원한 건 요한이었고, 그 의도를 알아차린 검주가 어울려 준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끝이었다.
‘네놈을 위한 가르침은 이게 마지막이다.’
요한은 멀리 떨어진 유리의 시선을 의식하며 검을 들었다.
‘지금부터는 그저 지켜보거라.’
그와 함께 요한의 발밑에서 새하얀 구름이 뭉클뭉클 피어오르기 시작했으니.
‘이 요한 레드너의 일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것을 기필코 증명해 낼 터이니!
‘그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거라!’
요한이 검주를 향해 검을 겨눔과 동시에.
크워워어어어-!
뭉클뭉클 피어올랐던 새하얀 구름이 거대한 용으로 변해 포효를 내질렀다.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 검주를 노려보는 운룡.
이를 등진 요한이 나직이 말했다.
“슬슬 몸도 풀린 것 같으니, 제대로 엉켜 봅시다.”
그 말에 검주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저 요한을 가만히 바라볼 뿐.
그러다가 검주의 입꼬리가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올라가며 호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흐릿한 미소.
그다음에는 완연한 미소.
그 뒤로도 입꼬리가 귀에 닿을 듯 올라가고.
그러다 마침내.
“하하하!”
살기로 물들어 버린 미소.
“흐하, 흐하하하!”
연신 웃음을 터뜨리는 검주의 검은 눈동자는 기이한 빛으로 번들거렸다.
그런 그의 분위기는 완전히 돌변해 있었으니.
평소에는 언뜻 보면 학자라 여겨질 정도로 조용하고 이성적인 분위기였던 검주.
하지만 지금 그가 내보이는 모습은 다가올 전투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한 명의 광전사였다.
“그 말을… 실로 오래 기다렸도다!”
즐거움으로 가득한 외침과 함께 검주의 등 뒤로 거대한 날개 한 쌍이 펼쳐졌다.
스확-!
붉디붉은 적색의 피막으로 이뤄진 날개.
그것이 크게 한 번 펄럭이고.
훙-.
강한 돌풍이 불며 거대한 그림자가 하늘로 치솟았다.
이에 유리의 고개가 절로 하늘로 향한 건 당연지사.
‘아…….’
유리의 시선이 닿은 곳.
거기에는 붉고 거대한 드래곤 한 마리가 태양을 등지고 떠 있었다.
그리고 그 드래곤의 머리 위에 검주가 서 있었으니.
‘저게 바로… 검주의 화신!’
과거 요한에게 들었었다.
[검주의 화신은 붉은 화염을 품은 레드 드래곤이지.]라이먼트 대륙 전설 속, 힘과 파괴를 상징하는 괴물.
그것이 검주의 화신이라던 요한.
유리의 두 눈에 담긴 레드 드래곤의 형상은 그 설명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에 유리가 홀린 듯 검주의 화신을 바라보고 있을 때.
‘…뭐지?’
유리는 레드 드래곤의 형상이 마치 태양 속으로 녹아드는 듯한 착각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금세 레드 드래곤이 태양에 녹아든 것이 아닌, 태양처럼 밝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더 정확히는 레드 드래곤의 주둥이 앞에 생겨난 불덩이가 급격히 커지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크기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 종국에는 흡사 하늘에 태양이 2개 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거대한 화염.
그건 과거 자신을 지하에 처박았던 백검병단장의 초승달은 우습게 여겨질 정도의 크기였으며.
또한, 이토록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기운을 줄줄 흘려 대고 있었다.
꿀꺽-.
괜히 타들어 가는 목에 유리가 마른침을 삼킨 순간.
‘어?’
그의 머릿속으로 과거 검주의 화신을 언급하며 요한이 덧붙였던 설명이 자연스레 흘렀다.
[전설에 의하면 레드 드래곤의 불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고 한다.]엄습하는 불안감.
“아? 어?”
크게 치뜬 눈동자.
“이 미친?!”
그러다 결국 터져 나온 경악성이 신호였을까.
스광-!
레드 드래곤이 머금었던 거대한 화염을 토해 냈다.
지상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