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337
336화. 세 번째 (3)
가공할 기세로 떨어져 내리는 거대한 불기둥을 보며 고든이 기함을 토해 냈다.
“허! 시작부터 저걸?!”
그는 즉시 검을 뽑아 들고 유리의 앞을 막아 섰다.
혹시 모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사이 붉은 불길이 요한과 백운룡의 머리 위를 덮쳤다.
물론 그렇다고 불길에 요한이 당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츠팟-!
불길이 덮치기 직전, 하얀 백운룡이 요한을 감싸고 그대로 자취를 감췄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새파란 뇌전뿐.
그렇게 목표가 사라지고, 레드 드래곤의 화염이 요한이 서 있던 곳에 내리꽂혔다.
콰가가가강–!
붉은빛이 번쩍이고, 엄청난 폭음과 함께 대지가 진동했다.
그리고 곧 어마어마한 폭발의 여파가 유리가 있는 곳까지 밀려들었다.
강한 바람에 흩날린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뒤엉켰지만, 유리는 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의 신경은 온통 레드 드래곤의 화염이 휩쓴 자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맙소사?!’
화염이 휩쓸었다?
아니, 저건 휩쓸었다는 표현보다는 증발시켰다는 표현이 옳았다.
레드 드래곤의 불기둥이 훑고 지나간 자리.
그곳은 작은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모든 게 사라진 상태였다.
지면엔 그 깊이조차 확인되지 않을 정도의 구덩이가 파였고.
화염이 잠시 스친 침엽수림은 무엇이 존재하였는지 그 흔적조차 알아볼 수 없게 말끔히 말소되었다.
그 경악스러운 위력에 놀란 유리의 입은 좀처럼 다물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곧 이상함을 깨달았다.
“열기가… 없어?”
저토록 어마어마한 화력이 모든 것을 증발시켰다면 응당 그에 따른 열기가 느껴져야 할 터.
그런데 밀려든 바람은 물론이거니와 그 어디에서도 열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유리의 중얼거림을 들었음일까.
고든이 답을 주었다.
“저 화염은 진짜 불이 아니다.”
“…진짜 불이 아니라고요?”
“그래. 허나, 화력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힘이지.”
진짜 불길은 견뎌 내면 그만.
그러나 검주의 화신이 내뿜는 화염은 견딜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저 불길은 닿는 모든 걸 파괴하는 검주의 심상이다.”
다시 말해 저 화염은 검주가 만들어 낸 파괴적 심상의 구현체라는 뜻.
화신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때문에 저 심상에 살짝 스치기라도 하는 순간, 평범한 인간은 영혼조차 남기지 못하고 분쇄될 거다.”
그런 고든의 설명에 유리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
회색의 하늘을 배경 삼아 붉고 하얀 두 개의 형상이 떠 있었다.
조금 전 지상에서 사라진 요한과 백운룡이 검주와 레드 드래곤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쿠르르릉-!
먹구름 사이로 하얀 뇌광이 번뜩인 순간.
콰강-!
요한과 검주의 두 화신이 격돌했다.
* * *
쿠르르릉-!
천둥이 울려 퍼진 후.
거대한 폭풍이 몰려들어 몽파르체 호수에 격랑을 일으켰으니.
끼익- 끼이이익-!
튼튼하게 고정해 둔 수십 척의 흑선 사이에서 마찰음이 들려왔다.
일반인은 쉬이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휘청이는 흑선.
하지만 그 위에 자리한 기수들은 흔들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흑선의 한쪽 난간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목을 쭉 빼고 한곳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중이었는데.
“저건……?”
“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기수는 물론 흑검병들마저 넋을 놓고 바라보는 방향.
그곳은 바로 요람의 하늘이었다.
거기에는.
콰릉- 콰강!
청광과 적광이 쉼 없이 번쩍이고 있었다.
* * *
적색의 드래곤과 백색의 용이 쉼 없이 맞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육안으로는 감히 좇을 수조차 없을 정도의 빠름.
드래곤과 용이 한 번씩 나타났다 사라진 자리에는 적색의 화염과 푸른 뇌전이 번뜩였으며.
그때마다 하늘이 갈라지고 공간이 일그러졌다.
또한, 그러한 전투의 여파는 지상으로도 고스란히 이어졌으니.
콰그그긍-.
하늘에서 쏟아지는 지독한 힘의 파편들.
그것이 떨어진 지상의 숲과 대지가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물론 유리와 고든이라고 안전하지는 않았다.
“흡!”
콰즉-.
짧게 기합을 내지른 고든이 검을 휘둘러 무형의 힘을 쳐 냈다.
그리고 그 무형의 기운이 인근 숲을 순식간에 지워 내는 것을 본 유리는 앞서 ‘고작 싸움 구경’이라 칭한 자신의 못난 주둥이가 심히 부끄러워졌다.
‘이건… 사람과 사람의 싸움이 아니다.’
저 말도 안 되는 힘의 충돌이 어찌 한낱 인간의 싸움이란 말인가.
저건 신들의 싸움이라 칭하여도 결코 모자람이 없었다.
‘심상과 심상의 충돌… 이라고?’
고든의 설명에 따르면 요한과 검주의 화신들이 서로를 향해 날려 대는 공격 하나하나가 심상의 집약체라고 하였다.
‘이게 진정한 화신의 위력.’
성검?
절대 감각의 영역?
아신검과 신검?
공인의 단계에서 차근차근 쌓아 올린 모든 경지의 결과물은 화신이란 이름 앞에서 모두 무용지물로 변했다.
화신의 공격은 그 하나하나가 심상을 품고 있으며.
그 위력은 신검의 위력을 훌쩍 웃돌았다.
‘명인 중의 명인, 명인 위의 초인…….’
유리는 미궁에서 싸웠던 그 명인이 자신을 상대로 전력을 다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명인이 전력 다한다고 한들…….’
과연 저 두 사람에 비할 수 있을까?
그 물음에 유리는 단호히 아니라고 답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게 순간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백운룡의 모습을 좇으며.
유리는 며칠 전 요한과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 * *
요한의 계약 종료 선언에 유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잠시 요한을 바라보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계약 종료라…….”
살짝 흐려진 유리의 말끝.
의외로 그의 목소리에는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의문을 표할 뿐.
“갑자기 왜?”
“갑자기는 무슨. 시작이 있으면 당연히 끝도 있는 게다. 네놈은 이 계약이 언제까지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거냐?”
“글쎄. 그건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다만… 이렇게 끝날 거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어서 당황스럽기는 하네.”
“당황은 무슨, 오히려 홀가분한 거겠지. 프흐흐.”
웃음을 흘리는 요한을 향해 유리가 물었다.
“뭐, 좋아. 계약은 종료될 수 있다 쳐도 한 가지 이해 안 가는 게 있는데 말야.”
“뭐가, 또?”
“계약을 끝내려면 계약 조건이 완벽히 이행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연히 그렇지.”
“그럼 내 몸뚱이를 고치는 건 잘되었다고 해도… 영감의 마류는? 영감이 원하는 건 마류의 완성 아니었어?”
“이 몸이 바란 건 마류의 완성이 아니라 네놈을 통해 연구와 검증을 계속해 나가는 거였다만?”
“그게 그 소리잖아.”
“뭐, 부정하지는 않으마. 맞는 말이지.”
“그런데 왜?”
유리는 묻고 있었다.
자신의 계약 조건은 완료되었지만, 아직 당신의 조건은 완료되지 않았으니 이 계약은 끝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런 유리의 물음에 요한은 피식 웃었다.
“애새끼, 지난 3년 동안 네놈만 열심히 산 줄 아는 게야? 나는 뭐 놀았을 거 같으냐?”
요한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무언가를 눈치챈 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그의 놀람을 즐기는 듯 요한의 미소가 짙어지고.
“숙제를 받아 간 놈이 3년 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니… 어쩌겠냐?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야지.”
“그럼… 설마?”
“계약 조건은 걱정 마라. 마류는 이미 완성되었으니.”
자신감 넘치는 확언에 유리의 눈은 더욱 커졌다.
요한이 마류를 완성했다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또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잠깐, 마류가 완성되었다는 건… 그 말은?!’
그의 머릿속에 요한이 자신을 찾아와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는 뭘 어떻게냐. 그냥 나도 요람에 볼일이 있어서 들렀다가 네놈이 나타난 걸 알게 된 거지.]요람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던 요한.
그리고 마류의 완성.
이 두 가지 조건이 맞물리자 한가지 결론이 내려졌다.
이에 유리가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검주한테… 도전하려는 거야?”
나직한 유리의 물음에 요한은 덤덤하게 답했다.
“그래, 이미 날까지 정해 두었다.”
“…언제?”
“오는 15일. 장소는 이 요람이다.”
“며칠 남지도 않았네?”
“20년을 끌었는데 더는 길게 끌 이유가 없지 않으냐?”
“…….”
유리는 입을 다물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요한이 마류를 만들고, 자신과 계약을 맺어 그것을 완성시켜 온 이유.
그 모든 게 전부 검주를 향한 세 번째 도전을 위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언젠가는 요한이 세 번째 도전을 이어 갈 것이라고,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지만…….
“꼭… 그게 지금이어야 해? 조금… 나중에 할 수도 있는 거잖아?”
어째서인지 그 질문을 자연스레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
말없이 유리를 바라보던 요한.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나중은… 너무 늦는다.”
“어째서?”
“검주에게 두 번을 도전하였고, 두 번을 살아남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살아남았을 뿐인 게다. 설마 내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을 성싶으냐?”
유리의 시선이 자연스레 요한의 오른 다리로 향했다.
이에 요한이 피식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 다리뿐만이 아니다. 두 번의 도전에서 죽음 직전에 겨우 살아 나왔고… 그때 얻은 내상은 나를 좀먹어 갔다.”
“…….”
“삐걱거리기 시작한 육신은 나이를 먹어 가며 더더욱 망가져 갈 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는 약해지나… 그 괴물은 아니다.”
검주는 노쇠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강해졌다.
“시간은 나와 검주의 격차를 더욱 벌리는 악조건인 게야. 그나마 그때, 네 엘릭서를 먹은 덕분에 이 정도나마 시간을 번 게지.”
“…….”
“그리고…….”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어떤 애새끼가 워낙 무서워야지.
요한은 그 말까지는 내뱉지 않았다.
너에게 추월당할까 싶어.
혹은 네놈에게 기회를 빼앗길까 싶어 서둘렀다고.
그 말을 어찌할까.
하여 말끝을 흐린 요한은 대신 속으로 유리에게 외쳤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남이 검주를 꺾는 걸 구경하는 게 아니다. 내 손으로 검주를 꺾는 것이지!’
그건 요한을 부절검이라 불리게 만든 정체성이자, 그의 자존심이었다.
* * *
유리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일렁이던 요한의 눈동자.
난생처음 보는 요한의 열의에 유리는 더는 도전을 만류할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응원하고자 했다.
‘영감탱이……!’
이번에는 검주를 꺾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던 요한의 눈빛.
그 평생의 염원이 이뤄지기를.
유리는 진심으로 응원했다.
‘빌빌거리지 말고 제대로 한 방 먹여 주라고!’
* * *
휘몰아쳐 밀려드는 검주의 심상을 향해 요한은 식은땀을 흘리며 검을 휘둘렀다.
‘허? 아주 미쳐 날뛰는구나!’
세 번째 싸움.
이는 앞선 첫 번째와 두 번째 도전 때와는 전투 양상이 달랐다.
그 두 싸움은 천천히, 그리고 서서히 전력을 끌어올리는 양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싸움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전력에 가까운 힘을 내고 있었다.
‘오히려 내게는… 나쁘지 않은 일이구나.’
검주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길게 시간을 끌면 끌수록 망가진 몸이 버텨 내지 못할 요한에게는 짧고 빠르게 결착을 내는 것이 유리했다.
‘설마… 검주는 그걸 알고 이리 싸움을 걸어오는 것인가?’
어쩌면 요한은 자신의 가정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분명 그러하리라.
‘저 전투에 미친 괴물이라면… 그 방식이 이 싸움을 가장 즐겁게 맛보는 것이라 생각했겠지.’
느긋하게 즐기는 식사도 좋지만, 뜨거울 때, 식기 전에 먹어야 맛있는 음식도 있는 법이다.
검주에게 지금의 요한이 바로 그러한 음식일 터.
이를 깨달은 요한은 피식 웃었다.
‘오냐, 그래! 어디 삼킬 수 있다면 삼켜 봐라!’
과연 검주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자신이 지펴 온, 이 용광로와 같은 열기를?
자꾸만 치밀어 터지려는 열기를 억누르며 요한은 침착하게 기회를 엿보았다.
‘아직… 아직은 아니다.’
참지 못하고 지금 터뜨린다면 모든 게 수포로 변한다.
그렇기에 기다려야 하는 거다.
검주가 자신을 입속에 넣는 순간을!
‘기회는 단 한 번뿐.’
그렇게 요한이 호시탐탐 기다리던 그때.
고오오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이 전해졌다.
그건 요한이 그토록 기다리던 기회가 오고 있다는 신호.
그러다 마침내 그 기회가 성큼 코앞까지 다가왔으니.
라이더가(家) 비전 마체술.
군림(君臨).
온 세상이 요한을 집어삼킬 듯 달려들기 시작했다.
검주가 존재하는 공간.
혹은 그의 의식이 닿는 모든 공간이 요한을 적대시하며 물어뜯기 시작한 거다.
‘검주가 군림을 펼친 순간… 그는 잠시나마 신(神)이 된다!’
검주의 공간 자체가 파괴의 심상을 머금고 요한을 압박하며 붙들고 늘어졌다.
또한, 그뿐만이 아니었다.
쿠그그그-.
어마어마한 심상이 검주를 중심으로 몰려들었고.
곧 그의 머리 위에 거대한 화염을 구현해 냈으니.
지금까지 검주가 만들어 낸 그 어떠한 화염보다도 강렬한 태양.
그것이 군림에 잠시나마 몸이 묶인 요한을 향해 거침없이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그가 태양에 삼켜지기 직전.
‘드디어!’
그 찰나야말로, 요한이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두 번째 패배 이후, 20년의 세월 동안 갈망해 마지않던.
‘드디어어어어어어어어!’
평생의 염원을 실현할 최적의 순간이었다.
레드너가(家) 비전 마체술.
마류 최종식.
합(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