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로크바에 의해 소환된 열아홉 마리의 몹은 자석처럼 탱커들에게 달라붙었다. 잡몹 담당 팀의 탱커인 일반인과 적혈구가 즉각 어그로를 끌어 도발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사이좋게 몹을 나누어 맡는 동안, 담당 딜러인 바바리안 색시, 서모너 독재, 나이트 기사, 힘 팔라인 김팔라 그리고 아쳐 고독한이 달려들어 차례대로 일점사했다.
집중되는 공격에 몹은 하나둘씩 경쾌한 비명을 내지르며 빠르게 녹아 갔다.
잡몹 팀에 속한 다크 템플러 누리 역시 본분을 위해 부지런히 수치 감소 필드를 깔아, 딜러들의 공격을 보조했다.
앵두군과 무니가 일반인과 적혈구의 피를 전반적으로 담당하는 동안, 바드인 파파와 미리내 또한 눈치껏 버프를 덧씌웠다. 빠른 상황 정리를 위해 매지션들도 기꺼이 거들었다.
5파티에 속한 매지션들은 이따금 잡몹이 있는 위치로 광역기 스펠을 한 번씩 시전했다. 붉은 메테오가 곳곳에 떨어지고 칼바람이 사납게 휘몰아치니, 주민과 해골 병사, 해골 궁수의 HP가 느릿하게 줄어갔다.
물론, 맵 자체가 마법 방어에 특화된 곳이라 기대보다 위력적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매지션의 공격은 충분한 도움이라, 잡몹 처리 속도에 더욱더 불이 붙었다. 열아홉이었던 몹의 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한 자릿수로 줄어들어 갔다.
“아직은 별문제 없이 순조롭네요.”
로크바를 향해 일섬신월과 비검을 날리고 물러선 레온은 정리되어 가는 주변을 살피며 안도했다. 근처에서 스킬 쿨타임을 힐끔거리고 있던 마제스티도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람 님 덕분에 보스 피도 자연 회복 없이 잘 깎이고 있고, 지원 토벌 팀 덕분에 소환도 걱정 없고. 이렇게만 진행된다면 클리어는 확실하죠.”
“예상보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토벌 팀이 버텨줄까 모르겠네요. 프루츠맨한테 지원 요청해 놓을 걸 그랬나 봐요. 말만 잘하면 OK 했을 수도 있는데.”
“에이, 레온 님. 그렇게 프루츠맨 겪어 놓고도 몰라요? 태양이랑 척지고 있어도 프루츠맨도 박쥐 태생이라, 언제 뒤통수칠지 모르는 놈이에요. 토벌 팀이야 인원도 충분하고, 금방 지칠 양반들도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요~”
“흠. 그렇겠죠?”
“그것보다는 50% 아래 떨어졌을 때 나올 회복 패턴이나 걱정하는 게 나을 듯요. 아마 최대치 회복 아니면 횟수 증가일 것 같은데, 그거 때문에 시간 더 잡아먹을걸요?”
상상만 해도 토가 나온다며, 잔뜩 인상 쓴 마제스티가 다시 달려 나갔다. 로크바의 회복을 자연스럽게 상상한 레온 역시 오만상을 찌푸렸다. 알고 있는 패턴이라지만, 힘들게 깎아 놓은 HP가 다시 차오를 때의 그 느낌이란…….
“곧 70%대 진입!”
말없이 공격만 하기에는 심심했는지 또치가 혼잣말처럼 외쳤다.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다들 본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타인의 발랄한 목소리를 통해 듣는 정보는 또 색다른 느낌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모두가 중얼거리며 환호했다. 의도치 않은 사기 증진에 불탄 시선들이 이제 막 82%가 된 로크바의 HP 게이지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로크바의 HP가 1%씩 닳을 때마다 유난스레 기합을 내뱉기도 했다.
“어, 혼령화다!”
로크바가 허공으로 손을 뻗는 걸 확인한 누군가가 당황해 외쳤다. 패턴을 확인한 플레이어들 역시 야유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일부는 괜한 공포심에 고독한이 있는 곳에서 몇 발자국 더 떨어지기도 했다.
이윽고 허공에서 쏟아진 검은 구슬비가 플레이어들을 강타했다. 제각각 줄어드는 파티원들의 HP 게이지를 주시하며, 전체 회복 스펠을 외우던 리디안은 순간 덜컥거리며 멈췄다.
검은 구슬비를 얻어맞은 찰나 어쩐지 손끝의 감각이 무뎌진 듯, 굳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검게 물들어 가는 두 손을 목격하고 나서야 자신이 혼령화에 걸렸다는 걸 깨달았다.
“헐. 리디안 님 혼령화 걸렸다.”
그를 가장 먼저 목격한 파피루스가 당혹스럽게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 놀라 모두가 고개 돌려 바라봤지만, 리디안은 이미 의지를 잃은 뒤였다.
“악! 악악! 아퍼!”
이렇다 할 공격기술이 전혀 없는 세인트가 할 수 있는 건, 무기를 이용한 단일 타격이었다.
때마침 리디안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다람은 뜻하지 않게 ‘스카디’로 두들겨 맞았다. 사정없이 머리를 때리는 야무진 손길에 비명을 지른 다람은 재빨리 슬립 필드를 시전했다.
극적으로 정지한 리디안을 바라보며 다람이 아픈 몸을 부르르 떠는 사이, 다른 한쪽에서도 혼령화에 걸린 아군으로 인해 한바탕 난리가 난 상태였다.
“으아! 불꽃심장 님 스펠 들어온다.!”
“살려 줘요!”
보스를 가운데 둔 메인 탱커와 딜러들 사이에서도 새된 비명이 들려왔다. 매지션인 불꽃심장도 혼령화에 걸려 사방팔방으로 광역기를 때려 박고 있었다. 아우성이 판치는 상황 속에서도 신사는 침착하게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1파티 리디안, 5파티 불꽃심장, 2파티 오토마타, 7파티 색시, 3파티 백검, 이노센트! 8파티 독재, 4파티 꼬마!”
신사의 중계에 인드라와 누리가 재빨리 이동하며 필드를 깔았다.
때마침 오토마타가 근처에 있어, 다람이 미리 그를 막았다. 도도의 소환수에게 돌진해 공격하던 오토마타 때문에 도도는 놀란 눈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소환수들이 오토마타를 몹으로 인식해 공격했기 때문이다.
다람에 의해 오토마타가 얌전해진 사이, 개복치를 공격하던 색시, 마제스티를 공격하던 이노센트, 벨벳루즈를 공격하던 독재, 크라이그를 공격하던 꼬마 그리고 여기저기 광역기를 날리던 불꽃심장이 차례대로 수면 필드에 걸려 침묵하기 시작했다.
“와, 뭐야. 방금 여덟 명 걸린 거?”
“아까 일곱 명이었는데? 인원 랜덤인가?”
“미치겠다. 리디안 님 스카디 쥐고 다람 님 향해 있는 거 봐.”
“저건 사심 100%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후. 플레이어들이 저마다 수군거리며 혀를 내둘렀다. 메테오를 비롯한 여러 광역기에 두들겨 맞은 ONE 길드원들도 십 년 감수했다며 조마조마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웬만해서는 잘 놀라지 않는 레온조차 불꽃심장의 마법 공격에 한순간 500 아래로 떨어진 HP를 상기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힐러들 역시 메인 힐러인 리디안이 멈춰버림과 동시에 빗발친 아군 공격에 무척 놀라 있었다. 캐티스는 하마터면 당황해 발음이 꼬일 뻔했다며 땀 맺힌 이마를 쓸었다.
“확실히 여기선 스카디 힐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네요.”
매번 리디안과 함께 이동되느라 텀 차이를 못 느꼈던 페페도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와. 심장 님 딜 진짜, 장난 아니네요? 대인전 대미지가 생각보다 진짜……. 아이템 세팅부터 괴수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수면 상태에 빠진 불꽃심장을 보며, 맥스비가 대단하다며 중얼거렸다. 눈썰미 좋은 맥스비는 불꽃심장의 스펠에 반 피 아래로 닳은 플레이어들을 두루 목격한 상태였다. 그 감탄에 근처에 있던 테세우스가 으쓱거리며 맞장구쳤다.
“그쵸? 심장 삼촌이 진짜 컨트롤만 완벽했으면 하이 랭커 물리 딜러들도 다 씹어 삼켰을걸요?”
“심장 님 템 옵션. 거의 다 공격력 증가죠?”
맥스비의 은근한 물음에 테세우스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아마도요?”
“돈 엄청 많이 들어갔을 텐데 대단하시네요. 말이 나와서 묻는 얘긴데, 혹시 심장 님 어떤 일 하시는지……?”
“아? 저번에 듣기로는 어디 작은 회사 운영한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아마 맥스비 님 알고 있는 소문이 맞을걸요? 낮에 종일 부주 돌리다가 가끔 접해서 현질 하는 게 소소한 취미셨대요.”
“역시 그렇죠? 저 정도로 풀 옵션 뽑으려면 일반인 현질로는 택도 없어서… 내심 궁금했거든요.”
테세우스와 맥스비가 불꽃심장의 아이템에 대해 잡담하는 사이, 근처에 있던 버베나는 침묵한 아군들을 불안하게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이거 혹시 패턴 때마다 점점 한 명씩 늘어나는 거 아니야?”
찝찝한 목소리에 가까이 있던 매지션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끔찍한 추측이지만 일리가 없지는 않았다. 겁 많은 벨벳루즈는 단박에 울상을 지었다. 가볍게 잡담을 하던 맥스비도 곧장 심각한 표정이 되어 미간을 모았다.
“그러면 문제가 심각해지는데. 혼령화 패턴이 전체 공격이라, 꽤 자주 쓸 텐데. 계속 이렇게 한 명씩 증가하고, 시간이 더 길어지면… 우리만 더 힘들어질 거야.”
“필드 까는 다템이 혼령화에 걸리면 더 답이 없는 거고.”
버베나가 툭 던진 한마디에, 여럿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테세우스가 가장 먼저 바라본 이는 메인 비격수들과 함께 있는 다람이었다. 고독한처럼 다람도 상대하기 까다로운지라. 일부의 걱정 많은 사람들이 쉽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혹시 모르니까 다람 님도 좀… 격리해 놔야 할 것 같은데요?”
“흠. 떨어트린다고 커버가 될까? 인드라 님이랑 누리 님 둘이 동시에 필드 깔아도 지능 스탯이……. 저항력 때문에 잘 안 걸릴 것 같은데?”
“와. 다람 님 돌아다니면서 필드 깔 거 생각하니까 고독한 님만큼이나 무섭네.”
“이상성욕자 길드는 진짜 인간 흉기만 모아 놓은 듯.”
다람의 배신. 그거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여태껏 생각 못 한 상황을 떠올린 플레이어들이 너도 나도 입을 모아 다람을 격리할 것을 제안했다.
상태 이상 저항력이 빵빵한 리디안까지 걸린 만큼, 혼령화가 상태 이상 저항 수치에 영향받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 레온과 마제스티도 찜찜한 눈빛으로 다람을 쳐다봤다.
결국, 다람은 비격 무리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다람은 시무룩한 얼굴로 따로 구석에 서, 사람들을 원망스레 쳐다봤다. 일반인을 사이에 두고 다람과 고독한이 외진 곳에 좌우로 격리된 모습은 조금 웃기기도 했다.
* * *
지속 시간인 1분 30초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혼령화에서 풀려난 리디안은 갑작스레 밝아진 시야에 어리둥절해 두리번거렸다.
검은 구슬비를 맞으며, 자신의 손끝이 검게 물들어 가는 걸 본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그 뒤로 기억이 없었다. 마치 잠깐 졸다 깨어난 느낌이었다.
“리디안 님 나쁘다! 스카디로 내 머리 막 때리고! 나 완전 상처받았어!”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입이 심심했던 다람이 기다렸다는 듯, 리디안을 향해 크게 투덜거렸다. 제 이름이 호명되자 리디안은 깜짝 놀라 다람을 쳐다봤다. ‘스카디’를 이용한 구타 장면을 봤던 사람들은 숨죽여 웃기 바빴다.
기억 없는 리디안이 당황해하는 사이에도 다람은 자기 머리를 사정없이 때렸다며 한참이나 징징거렸다. 볼썽사나운 투정에 듣다 못 한 고독한이 뛰어가 한 대 후려치고 나서야, 다람은 조용해졌다.
“보스 피 78%!”
흥이 난 또치의 외침에 플레이어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나 로크바는 약 올리기라도 하듯, 곧장 사념을 생성해 냈다. 저 멀리 열두 시 방향으로 오브젝트 형상이 나타나자 로크바의 공격력이 대폭 증가하였다.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전체 공격이 좀 더 날카로워지자, 플레이어들은 질색하며 야유했다.
“열두 시 방향! 오브젝트 팀 이동!”
내키지 않는 레온의 외침에 섀도우 헌터 3인방이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로크바를 향해 채찍을 휘두르던 작약은 재빨리 토토리아의 손을 붙잡아 세웠다.
“언니, 저랑 교대해요.”
걱정 가득한 작약의 눈빛에도 토토리아는 시원스레 거절했다. 괜찮으니 보스나 치고 있으라는 토토리아의 웃음에도 작약은 불편한 표정을 필 수 없었다.
오브젝트 팀에 배정된 섀도우 헌터 3인방은 극 크리티컬 세팅이었다. 페이지나 토토리아는 하이 랭커라 당연했고, 삼촌은 한때 하이 랭커였던 데다 순위로만 따지면 110위권이었다. 더욱이 채찍 종결 아이템인 ‘난나의 뿌리’까지 들고 있어 당연한 배정이었다.
아이템 세팅이 그들보다는 좀 딸리긴 해도, 작약 역시 얼마든지 교대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러나 토토리아가 한사코 괜찮다며 거절한 탓에, 작약은 레이드 내내 미안한 눈으로 흘끔거려야 했다.
오브젝트 팀이 사념 처리에 여념이 없는 동안 로크바는 주특기인 양 혼령 폭탄 전체 공격과 디버프 패턴을 난사했다. 공격력이 상승한 상태라, 혼령 폭탄에 플레이어들의 전체 HP가 반 이상 쭉쭉 닳기 시작했다.
스카디 힐러가 있어 웬만하면 죽지는 않겠지만, 이따금 HP가 1천 아래로 떨어진 것을 본 플레이어들은 반사적으로 괴성을 질러 댔다. 당장 몸에 닿는 고통보다 HP 게이지의 시각적인 아슬아슬함이 그들의 흥분을 부추겼다.
리디안 역시 순간순간 크게 깎이는 HP 게이지에 깜짝 놀라 숨을 삼키기 일쑤였다.
공격력 증가의 위력이 엄청나다는 걸 실감하고 있어, 오브젝트 팀이 서둘러 처리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처리와 동시에 그들이 사망한다는 걸 알고 있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우리 곧 죽어요~”
좀 더 시간이 지나, 오브젝트 파괴를 코앞에 두고 삼촌이 재치 있게 외쳤다. 웃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두가 난감한 표정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얼마 안 가 로크바의 사념, 오브젝트가 펑 하고 터졌다.
뒤따른 붉은 안개 이펙트와 함께 섀도우 헌터 3인방은 또다시 시체가 되어 나타났다. 연신 흘끔거리던 작약은 토토리아의 사망을 보자 그렁그렁 울먹이고 있었다.
메인 힐러진에서 잠시 빠져나간 캐티스가 서둘러 그들을 수습했다.
자연스럽게 되살아나는 그들을 보면서도 리디안은 어리바리한 페이지가 조금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수룩한 표정을 보아하니, 아마 삼촌이나 토토리아 때문에 마지못해서 하겠다고 남은 모양인데. 죽음을 즐기는 듯한 두 사람과는 달리, 페이지는 좀 꺼림칙해하는 느낌이 컸던 탓에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노센트도 같은 마음인지, 페이지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연신 한숨을 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