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별님반】
길드 가입 이후, 우래귀는 새로운 환경에도 잘 적응했다.
레기온 길드원들이 워낙 잘 챙겨 준 것도 있지만, 애초부터 우래귀 본인이 전투 길드 성향인 점도 컸다. 여전히 겁은 많았지만 그래도 사냥하는 걸 좋아했고, 이전보다는 많이 성장해 가디언 역할을 똑 부러지게 수행하고 있었다.
“도도 님이 헤른이랑 우래귀 님이랑 대기업 사람들 데리고 쩔 해주고 있는데. 분위기 좋은 모양이더라. 대기업 사람들도 도도 님 좋게 보고 있어서 문제없고. 괴자 님이랑 오토 님도 사냥 욕심 생겼는지 ANG 길드 사람들이랑 같이 다니더라.”
소식에 빠른 이노센트가 즐거운 듯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대로, 최근 도도는 점차 사교적인 성향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간 친구였던 사이에 의해 억눌려 있기도 했고, 본성은 착한 사람이라. 그 선행에 이미지가 금세 바뀐 상태였다.
헤른, 우래귀와 전처럼 함께 다니지 못해 아쉬워하던 리디안은 몹시 안도했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찾아가 잠깐이라도 들여다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쪽 파티 상황도 만만치 않아 짬이 나질 않았다.
지하 도시 사냥 3일 차.
레벨 업 파티는 이제 거의 지하 도시에서 살다시피하고 있었다. 아침 일곱 시나 여덟 시부터 시작해, 보통 밤 여덟 시나 아홉 시가 돼야 사냥이 끝났다.
지난번 리디안이 73레벨 달성을 위해 니다벨리르 사원에서 폐관 수련을 했던 것처럼 잠자는 시간 빼고는 종일 던전에 틀어박혀 사냥만 하는 셈이었다.
“이러다 주민이랑 친구 먹겠어요.”
다가오는 푸르스름하고 기괴한 생명체를 향해 인드라가 비척비척 손을 흔들었다. 아포칼립스 크리쳐 같은 소름 끼치는 외양에 공포물이라며 투덜거리더니, 이제는 일상물이 됐다며 한숨 쉬기 바빴다. 리디안도 이제 주민 몹이 익숙해지는 단계라, 영혼 없는 웃음을 흘렸다.
긴장감 가득했던 초반의 공포도 한때였다. 다들 어찌나 사냥을 잘하는지, 뭘 어떻게 해도 궁지에 몰리는 일이 없어 이제는 태평했다.
“저기 마법사 와요.”
깐깐한 신사 역시 이렇게까지 사냥이 루즈해질 줄은 몰랐는지 목소리에 군기가 없었다.
신속하게 해골 마법사를 끌어당기는 백검의 노력이 무색하게, 딜러들은 다소 귀찮은 얼굴로 움직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플레이가 성의 없는 건 아니었다.
해골 마법사는 빠른 처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 발견 즉시 각자 가능한 최고의 공격기를 시전해야 했다. 운 좋게 ‘스나이핑 샷’을 아껴 두고 있던 신사와 스타일리쉬가 동시에 스킬을 날렸다.
초록빛을 두른 큼지막한 화살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 누리끼리한 두개골을 관통했다. 물질적인 형태가 아니라 금방 사라졌지만, 스킬 두 발로 인해 마법사의 HP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일반 공격으로 HP 계산을 하던 레온이 이노센트와 눈짓했다. 눈치 있게 알아들은 이노센트가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사용했고, 레온이 뒤따라 일도양단을 날렸다.
순식간에 연달아 터진 고레벨 공격 스킬에 마법사는 별 힘도 못 써보고 바로 죽어버렸다.
리젠 타임이 길어 여덟 시 공터에 있는 동안은 보기도 힘든 몹인데, 나오자마자 픽 쓰러져 죽어버리니 허무할 지경이었다. 동시에 붙들고 있던 몹들의 처리도 끝나자, 잠시 평화가 찾아왔다.
순간 고요해진 풍경에 너 나 할 것 없이 털썩 주저앉아 지루함을 표출했다.
“이거 잡고 좀 쉬었다가 할까요?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서 그런지, 지치네요.”
보다 못한 마제스티가 그리 제안했지만, 버베나가 도끼눈을 치켜떴다.
“안 돼요. 얼마 안 남았단 말이야.”
“벌써 일곱 시인데요? 님, 우리 던전 들어온 지 열두 시간 넘은 건 아시죠?”
“아직 그거밖에 안 됐어요?”
“…폐인력 인정합니다.”
“한 시간만 더 집중하고 밥 먹으러 가요.”
욕심 생긴 버베나가 더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레온도 지쳐 있는 터라 어쩔 수 없었다. 결국, 크라이그의 절충안에 오늘의 사냥 시간이 합의됐다.
“리디 생각보다 잘 버티네? 폐관 수련 경험 덕분인가?”
몇 번의 무리를 청소한 뒤 공터 리젠 타임 조절을 위해 한 바퀴 도는 찰나, 이노센트가 기특하다는 듯 리디안을 쳐다봤다. 오랜 사냥에 내성이 없어 힘들어할 줄 알았던 리디안이 힘든 기색 없이 잘 따라오니 기특한 것이었다.
“그러게. 오히려 썩을 대로 썩은 인드라 님이 힘들어하고 있으니…….”
이젠 제법 친해져 농담을 나누는 사이가 될 정도라, 마제스티는 축 늘어져 징징거리는 인드라를 향해 핀잔했다. 뒤따라 닿는 핀잔에도 여전히 힘들다고 칭얼대는 인드라의 모습에 리디안은 재미있다는 웃음을 흘렸다.
“그나저나 페페 님도 잘 버티네요. 애초부터 장시간 사냥하던 분이 아니라 좀 걱정했는데.”
게임 시절, 페페와 자주 사냥한 레온도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의 말대로 페페는 일반 폐인들처럼 장시간 붙들고 플레이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리디안도 달라진 페페의 모습이 다소 신기했다. 버베나도 옛 생각에 재잘거렸다.
“맞어. 페페 님 길어야 두 시간? 그 정도만 사냥하고 끝내던 분이라 진짜 아쉬웠는데.”
“진짜 딱 깔끔하게 마무리하시는 성격이라 편하긴 편했지.”
“난 좀 더 같이 하고 싶었는데.”
페페는 민망함에 뒤통수를 긁적였다.
“뭐, 그땐 출근도 해야 했고. 저도 나름대로 체력 관리를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었죠.”
“그에 비해 크라이그 님은 종일 사냥터에 사는 분이라 진짜 무서웠죠.”
힐끔 크라이그를 바라본 캐티스가 짙은 웃음을 머금었다. 갑작스러운 폐인 목격담에 마제스티와 이노센트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런데도 부끄러워하긴커녕 심드렁한 크라이그의 표정에 모두가 역시, 하며 혀를 내둘렀다.
“자자, 좀 더 힘내고 푹 쉬러 갑시다!”
가벼운 농담으로 밝아진 분위기를 이용해 레온이 긍정적인 숨을 불어넣었다. 신기하게도 죽어가던 인드라가 다시 살아났다.
때마침 대여섯 마리가 뭉쳐 있는 몹 무리가 나타났고, 웃고 떠들던 파티원들도 다시금 진지해졌다.
리디안도 좀 더 힘을 내 스펠을 외웠다. 몸은 지치지만, 그에 따라 눈에 띄게 올라가는 경험치를 바라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 * *
저녁 여덟 시가 넘어서, 리디안은 74레벨을 달성했다. 레벨 업 이펙트 존재감이 워낙 뚜렷해, 사냥에 몰두하던 파티원들은 리디안의 몸 주위에서 생겨난 바람 줄기 이펙트를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모두가 화색이 되어 축하했다.
“오, 리디안 님 업했다. 축하요!”
“점점 고렙 힐러에 가까워지네요.”
“75까지는 해야죠?”
“스타일까지 80 찍으면 리디 님도 75 되지 않을까요?”
“그냥 사냥터에서 같이 살자고 하세요.”
“아무튼, 축하드려요~!”
장난기 가득한 말들이 쉼 없이 뻗어 나왔다. 부끄럽게 웃은 리디안은 감사하다고 연신 꾸벅 고개 숙였다.
플레이어 정보
이름 : 리디안 / 길드 : 레기온
레벨 : 74 / 직업 : 세인트 / 보조 직업 : 재단사
HP : 3200 / MP : 4660
조금씩 숫자가 변해 가는 정보 창을 보는 것도 뿌듯한 일이었다. 레벨로만 따지자면, 이제 겨우 일반 랭커 반열에 든 셈이지만, 아직 사냥 일정이 한참 남은 터라 리디안은 곧장 75에 눈독을 들였다.
물론, 레벨 업이 힘든 노르드 월드 특성상 레벨이 오를수록 다음 단계까지 거의 두 배, 세 배 이상을 해야 했기에 당장은 아득했다.
오늘 한 것처럼 최소 8~9일 더 매달리면 가능하지 않을까? 리디안이 막연한 희망 회로를 돌리는 사이, 파티원들은 더 흥이 올라 있었다.
“오늘도 끝나고 저녁 콜? 리디안 님 레벨 업했으니 축하 파티하시죠?”
버베나의 제안에 모두가 흔쾌히 끄덕였다. 어제 79가 된 백검과 맥스비가 왜 자기들은 그런 거 없었냐고 따져 물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 끝나가는 분위기라 해이해질 법도 한데, 레온과 버베나의 업이 코앞인지라 다들 독기가 올라있었다. 크라이그도 반드시 80 레벨을 찍어야 하므로 무서운 집중력을 보였다.
집에 갈 때 빼고는 장난 하나 안 치는 요즘 모습이, 리디안에겐 신기할 뿐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크라이그는 원래부터 그런 이미지라 신경 쓰는 건 리디안 혼자였다.
“하. 진짜 내가 어릴 때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
어느 게임을 하든, 폐인들의 주된 말버릇이었다. 이노센트가 자신의 과거를 한탄하자 다시금 분위기가 가벼워졌다. 다들 웃으며 가볍게 넘어갔지만, 가만있을 백검이 아니었다.
“네 머리로는 힘들지 않았을까?”
해골 병사를 패고 있던 이노센트가 웃으며 백검을 바라봤다. 백검은 섬뜩함을 느꼈다. 순간 실수했음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이노센트는 곧장 몸을 돌려 백검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허공에서 교묘하게 뒤바뀐 팔 동작에 백검은 팔꿈치로 옆구리로 얻어맞곤 비틀거렸다.
여태 조용히 있던 시우는 진짜 피케이 모드로 백검의 HP가 떨어지는 광경에 바들바들 떨었다. 레기온 사람들은 이 광경이 익숙한지, 이모탈이 아무렇지 않게 곧장 HP를 채웠다.
잘못했다고, 살려 달라는 백검의 비명을 끝으로, 오늘의 사냥이 무사히 끝났다.
리디안은 74가 된 자신의 레벨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었다.
* * *
“오늘도 하얗게 불태웠다.”
사냥을 마치고 미드가르드로 돌아온 직후, 기운이 쏙 빠진 파피루스가 본인의 하루를 칭찬했다. 표정은 영 아니었지만 말이다.
“헤른, 71됐나 봐요.”
도도와 연락 중이던 시우가 리디안을 향해 말했다. 벌써요? 되물은 리디안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타 길드와의 연합과 지하 도시 80 파티의 영향이었다. 이런저런 시너지 효과로 길드 내 저레벨 무리도 레벨 업에 상당히 자극받은 상태였는데, 헤른이 특히 그랬다.
그야, 도도와 함께 하니 당연히 빠르겠지만 헤른도 정말 보통 집중력이 아니었다.
언뜻 듣기로는 다른 게임에서도 상당한 폐인이었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배시시 웃은 리디안은 인벤토리에 보관 중인 ‘우르의 주목나무 활’을 떠올렸다.
“주목나무 활은 그냥 갖고 있다가 헤른한테 줘야겠어요. 엄청 좋아하겠죠?”
“그럼요. 진짜 좋아할 거예요.”
“안 그래도 전에 저한테 부럽다고 해서…….”
지하 도시 리트라이에서 미로를 함께한 사이라 그런지, 아니면 비슷한 또래에 비슷한 내성적 성향이라 그런지. 시우는 리디안을 대함에 있어 꽤 자연스럽고 편해 보였다. 다만 리디안과 편하게 대화를 나눌 때마다 종종 누군가의 시선이 닿긴 했지만, 시우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어, 뭐야. 오늘 발할라에 사람 많네.”
늘 그랬듯 발할라의 아침으로 들어섰지만, 내부에 가득한 플레이어의 모습에 앞서 있던 버베나가 멈칫했다. 마침 자리를 찾지 못해 도로 나가던 플레이어가 넌지시 알려 줬다.
“여기 오늘 어떤 친목 길드가 정모 한다고 만석이래요.”
“아, 그래요? 감사요.”
쿨하게 나간 그를 따라, 리디안의 파티원들도 우르르 발길을 돌렸다. 주점이 발할라의 아침만 있는 것도 아니고, 갈 곳이야 많았기에 여러 후보가 거론됐다.
그중 맥스비의 추천으로 일행은 ‘요정의 유혹’이라는 주점으로 향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적당히 큰 규모의 2층 주점이었다. 다행히 요정의 유혹은 몹시 한산한 풍경이었다. 스타일리쉬는 내부를 돌아다니는 종업원 NPC를 보며 입을 틀어막았다.
“워후, 간판값 하네요.”
NPC들 외모야, 그래픽과 판타지가 조화롭게 섞여 대체로 높은 퀄리티를 자랑하는 건 당연했다. 대신 의상은 전체적으로 조금 보수적인 편이었는데, 특이하게도 이곳 종업원의 의상은 다소 파격적이었다.
그 노출 있는 복장 때문인지, 1층에 앉은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빤했다.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슬그머니 맥스비를 향했다.
주점을 추천한 맥스비는 한참이나 진땀을 흘리며 아니라고 부정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믿어 주지 않았다.
버베나와 이노센트의 경멸 섞인 시선이 조금 이어졌지만, 다행히 주점을 다시 나가는 일은 없었다. 또 다른 주점을 찾아가기 귀찮다는 것을 이유로, 리디안의 파티는 2층으로 올라갔다.
“호드라 님 사냥 엄청 잘한다던데?”
지하 도시 레이드 이후, ONE 길드는 ANG 길드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느낀 상태였다. 신사는 아직 엉덩이춤의 충격이 가시지 않아 꺼리는 눈치였지만 말이다.
그 외 레온이나 버베나는 오다가다 ANG 길드를 마주치면 먼저 반갑게 인사하고 있었다. 다른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서로의 소식에 밝아 이런 자리가 있을 때마다 항상 호드라의 얘기가 빠지질 않았다.
“크라이그가 종결 창 싸게 팔았다면서? 그때 강화 7강 성공하고, 다음날에 큰맘 먹고 질렀다가 8강 됐다더라. 그래서 사람들이랑 같이 사냥 다니시는데, 칭찬이 자자해.”
“에이, 호드라 님이야 컨은 예전부터 유명했잖아요. 베누스랑 싸운 일화도 있고.”
결투장 전이 있던 날, ‘단단’과 ‘스카디’를 교환하러 가기 직전에 크라이그가 호드라에게 창을 판 것을 알아, 리디안이 슬쩍 크라이그를 바라봤다. 본인이 챙겨 준 것도 아닌데, 리디안은 크라이그가 호드라에게 호의를 표한 게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그날 진짜 운 좋았어요. 테세우스 님도 현자 8강 성공했다면서요.”
“어휴, 그 새X. 하나뿐인 종결 템을 겁도 없이 질러서 조마조마했어요.”
“모르핀 님은 주목나무 8강 실패했죠?”
“아직도 울어요, 그래서.”
“근데 무너스키 그 양반. 거인 그림자 10강 만들고 싶어서 안달 났던데. 호드라 님 소식에 엄청 배 아파하고 있겠네.”
“그치. 그동안 창 나오면 무조건 자기가 사서. 창은 당연히 자기 템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그러게 그 아재는 왜 태양이랑 손을 잡아서.”
“왜 잡았겠어.”
혀를 차는 스타일리쉬에게 투덜거린 버베나가 힐끔 레온을 쳐다봤다. 조용히 식사 중이던 레온은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 숙였다. 태양 연합 얘기가 나올 때면 레온은 항시 죄인이 되곤 했다. 그리고 늘 버베나의 탄식으로 끝이 났다.
“옛날부터 게임 레벨 높다고 그렇게 나대더니……. 넌 진짜 사람들한테 잘해야 해.”
얼핏 보기엔 분위기가 굳어질 만한 언행이었다. 그러나 레온, 버베나 남매의 이런 대화는 일상이었고, 리디안도 이에 꽤 익숙해진 상태였다.
어째 날이 갈수록 본의 아니게 레온의 험담이나 비밀을 알게 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