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각 팀이 좌우로 나뉘어 입장하자, 리디안도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비로소 보스 구역에 발을 디딘 순간, 멀리서는 지형물에 의해 보이지 않았던 벽면의 풍경에 리디안의 눈이 커다래졌다.
중앙 제단에서부터 길게 뻗은 쇠사슬이 커다란 짐승들을 휘감은 채였다. 신기하게도 그 짐승은 어두운 파란색의 털과 붉은색의 털을 가진 거대 늑대였다. 일반 몹인 바르그도 충분히 컸는데, 스콜과 하티는 그 두 배는 더 되어 보였다.
더불어 각각 한쪽 눈이 푹 꺼져 있는 걸 보니, 박회장에게 들은 대로 외눈이 맞는 듯했다.
리디안은 ‘죽사막’의 네임드 몹인 ‘스콜의 오른눈’과 ‘하티의 오른눈’을 떠올렸다. 그 짜증 나던 것들이 스콜과 하티의 진짜 눈이라 생각하니 조금 징그럽기도 했다.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 비선공 몬스터인지 스콜과 하티는 플레이어들의 발소리에도 곤히 잠들어 있었다. 계속 신기해하는 리디안을 향해 뒤에 있던 파파가 설명했다.
“여기서 둘 중 하나라도 건드리면 사슬 깨지면서 날뛴다?”
겁주듯 두 손을 들어 왁, 하고 놀라게 하는 파파 때문에 리디안이 화들짝 놀라 움찔거렸다. 고만고만하게 비슷한 키에 남매처럼 재잘거리는 모습에, 쭉 지켜보던 팔라딘 드리머가 옅은 웃음을 머금었다. 워낙 리디안이 게임 때 이미지와 너무 달라, 사실 신기한 것도 있었다.
“야, 칼릭아. 밖에 나가서 눈알 하나 잡아 와라. 저기 늑대들 눈알 달아 주게.”
잡몹 팀의 워로드 벤딩이가 뜬금없이 낄낄 웃으며 말했다. 생뚱맞은 발언에 다들 의아해 갸웃했다. 몇 초 지나 뒤늦게 그 말을 이해한 사람들이 피식, 하고 싱겁게 웃었다.
40대 후반인 벤딩이는 구수한 웃음을 흘리며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좀 의외인 건, 다람과의 관계성이었다. 지나치게 말이 많아 누구에게나 핍박받을 줄 알았던 다람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벤딩이는 푼수 같은 다람을 다정하게 받아 줬다.
두 사람이 지나치게 수다스러워진 건, 게임 시절의 ‘마녀의 무덤 자유 PK 사건’을 다람이 언급하면서부터였다. 주말 새벽에 일어난 그 사건은 ‘베누스’가 C 구역의 일반 플레이어들을 재미로 학살함으로써 번진 미니 길드전이었다.
두 사람 다 일반 플레이어를 돕고 베누스를 몰아내려는 생각으로 마주쳤지만, 그 당시엔 서로 데면데면했던지라 어색함에 제대로 된 협공도 못 해봄은 물론, 같은 편에 마땅한 딜러가 없음에 흥미를 잃은 다람이 먼저 맵을 떠났었다. 이후의 이야기를 듣게 된 다람은 크게 흥분한 상태였다.
“아니, 벤딩이 님. 잠깐만요. 그래서 그때 그냥 갔어요? 진짜요? 난 더 계실 줄 알았는데? 지원군도 없었다고요? 와, 나도 그냥 다시 들어갈걸! 베누스 새X 뒤로 따라 들어온 쿠렉 놈은요? 햄스터 그것도 자꾸 깔짝거려서 짜증이던데. 다 잡았어요?”
“다람 님 다시 오실 줄 알고 기다리긴 했는데, 마냥 기다리기 뭐해서 나도 그냥 나갔지요. 새벽이라 도와주러 오는 사람도 더 없었고. 대신 쿠렉은 꼼수로 잡았는데, 내가 햄스터랑은 템 차이가 좀 나서…….”
“아, 아깝다! 햄스터도 발랐어야 했는데! 그 못된 X! 아, 그냥 디버프라도 하면서 가지고 놀걸! 그랬으면 햄스터 잡아서 무한 뺑뺑이 돌렸을 텐데. 아쉽네요, 그쵸? 그때 벤딩이 님이랑 저랑 팀 먹고 돌았으면 무적인데. 그쵸, 그쵸?”
“그러게요. 왜 그땐 서로 어색하게 눈치만 봤나 몰라요.”
물리 팀과 마법 팀이 좌우로 나뉘어 자리를 잡는 동안에도 다람과 벤딩이는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게임 시절 둘만의 인연이 있어서 그러는 건지는 몰라도, 벤딩이는 다람의 수다가 싫지 않은지 열심히 경청하며 혼란 없이 대답하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신기하다며 몰래 중얼거리기도 했다. 앞으로 다람과 같이 움직여야 하는 판국이라, 리디안은 강제로 다람의 목소리를 감상하며 주변에 집중했다.
그리고 시작하기 전, 한 번 더 패턴을 상기했다.
동굴의 패턴은 크게 설치물인 오브젝트, 일반 몹인 바르그, 보스 몹인 스콜과 하티의 패턴으로 나뉘었다.
ONE 길드가 사전에 확인한 바로는 오브젝트 패턴 중 기둥 패턴이 기존과 크게 달라졌다고 했다.
기존에는 지면의 석순 중 하나가 랜덤하게 기둥으로 자랐고, 일정 시간 안에 그것을 파괴하기만 하면 됐었다. 만약 제한 시간 내에 파괴하지 못하면 모든 플레이어의 HP가 50% 깎였다.
그러나 현재는 두 개가 랜덤으로 자라며 제한 시간 내에 파괴하지 못하면 전원 사망이었다.
기존과 비교하면 무시무시한 변수였다. 다행히 자라나는 순간, 가까이 있는 딜러들이 모두 붙어 협공하면 바로 파괴되기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제단의 제물 패턴은 아직 확인된 것이 없다고 했다. 제물 패턴을 경험하기도 전에 기둥 패턴으로 전멸했기에 맛도 못 봤다고 레온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래서 일단은 제물 팀이 기존 패턴대로 따르기로 했다.
일반 몹인 바르그의 패턴은 총 세 개다.
공격 중인 플레이어 중 한 명과 위치 교환, 이동 속도 감소와 암흑 디버프. 그리고 HP 10% 미만이 되면 자폭한다.
자폭 시 가까이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50%의 고정 대미지를 주기에 잡을 때는 반드시 HP의 잔량을 주의해야 하는 번거로운 몹이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바르그는 변수 패턴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보스인 스콜과 하티의 패턴은 두 마리가 같은 대신, 종류가 다양했다.
첫 번째로 자체 버프인 하울링. 보스 구역에 남아 있는 바르그의 수가 많을수록 보스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증가한다.
두 번째는 그림자 떼. 범위가 지정된 전체 공격으로 상태 이상 출혈이 동반되는데, 현재 변수로 해제할 수 없다고 한다.
다행히 5분이 지나면 풀리고, 중첩은 되지 않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세 번째는 디버프. 랜덤 디버프로, 기존에는 일부 플레이어만 걸렸으나 지금은 범위 내 모든 플레이어가 걸린다. 리디안이 여신의 영역으로 이동 팀에 배정된 결정적 이유였다.
네 번째는 봉인인데, 달라진 것 없이 기존처럼 일부 플레이어에게 표식을 새겨 스펠과 스킬 사용을 제한한다.
다섯 번째로는 정화. 레이드 보스 중에서는 조금 특이하게 스콜과 하티가 서로에게 적용된 디버프를 모두 해제해 버린다.
특별한 발동 조건이나 거리 제한 없이, 전체 디버프를 지우다 보니 다크 템플러들이 가장 싫어하는 보스였다.
다행히 이 여기 기존과 다른 점은 없다고 했다.
여섯 번째는 융합이다. 좌우 끝에 사슬에 묶여 있던 스콜과 하티가 움직여 특정 거리 내에 닿으면 강제로 융합을 하는데, ‘멈추지 않는 탐욕’이라는 이름을 가진 새로운 개체가 된다.
당연하게도, 융합된 보스는 공격력과 패턴 면에서 더욱 강해지기에 두 마리가 서로 가까워지지 않게 거리를 두는 게 관건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패턴은 위치 교환이다. 이 패턴은 일반 몹인 바르그가 사용하는 것과 똑같다. 근접한 딜러와 자리를 바꾸는데, 보스의 경우 이따금 대미지가 높은 플레이어를 노리는 것 같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위치 교환은 자칫하면 보스들이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게 문제였다. 가까이 붙는 근거리 딜러는 문제 되지 않으나, 거리를 두고 떨어져 공격하는 아쳐나 레인저, 서모너와 매지션의 경우 주의가 필요했다.
보통은 두 마리의 융합을 막기 위해, 스콜과 하티를 가능한 한 각각의 벽에 붙여서 잡는 편이었다. 일종의 적정 거리 두기 캠페인이었다.
게임 때는 융합 없이 클리어하는 게 정석이었고, 재수 없게 보스들이 융합할 경우 플레이어들의 ‘똥컨’으로 인정돼 파티 분위기가 험악하게 가라앉는 게 일상이었다.
안타깝게도 ONE 길드는 전체 디버프 패턴에서 대응하지 못하고 당황하다, 스콜과 하티의 융합에 대파당했다고 한다.
거기서 조금 더 버텼으면 융합 후의 패턴도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새로운 보스인 ‘멈추지 않는 탐욕’의 첫 공격에 순식간에 전멸하고 만 것이다.
“다들 위치 잡고 준비하세요!”
신사의 목소리가 동굴 내에 쩌렁쩌렁 울렸다. 기다렸다는 듯 바드와 세인트들이 버프를 돌렸다. 물리 팀 측에서는 오토마타와 앵두군이, 마법 팀 측에서는 파피루스와 추장이, 가운데 이동 팀과 잡몹, 제물 팀에서는 파파와 페페가 도맡았다.
바드 중에서 신스펠을 배운 파피루스와 파파는 각 진영을 빙 둘러 골고루 버프를 돌렸다. 특히 파피루스의 ‘마력이 깃든 축복’은 MP 회복률이 더 빨라 없어서는 안 될 스펠이었다.
덕분에 중간중간 주기적으로 사방을 뛰어다녀야 하는 두 바드의 표정은 조금 핼쑥해 보였다.
자리에서 몸을 풀고 있던 잡몹 팀과 제물 팀도 이동 팀 주위를 감싸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보스를 건드림과 동시에 사방 곳곳에서 ‘바르그’가 출몰하기 때문이었다.
모든 버프가 완벽하게 끝나자, 주위를 둘러본 신사가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잠시 내려앉은 고요함에 모두가 숨죽인 채 집중했다. 곧 크게 심호흡한 신사가 손날을 허공 아래로 손날을 내려침과 동시에 큰 목소리로 시작을 알렸다.
“수호자의 신념!”
“신성한 광휘!”
가디언 일반인과 팔라딘 관우가 각각 단일 어그로 스킬을 사용해 보스 몹들을 건드렸다.
강렬한 이펙트에 자지러지게 포효한 스콜과 하티가 앞발을 휘두르며 일어섰다. 두 짐승이 금빛의 안광을 번뜩이며 사정없이 몸을 흔들어 대자 굵은 쇠사슬도 단박에 끊어졌다.
금방이라도 사방을 뛰어다니며 폭주할 기세였지만, 탱커들의 도발에 막혀 애꿎은 지면만 발톱으로 꾹 짓누를 뿐이었다.
딜러들이 무기를 겨누고 다크 템플러인 하츠와 인드라가 빠르게 디버프 필드를 까는 동안, 리디안은 보스 두 마리의 압도적인 등장에 사로잡혀 멍하니 끔뻑거렸다.
워낙 리얼한 모습에 다른 이들의 반응도 잠깐은 비슷했다. 그러나 게임 때 익히 봐온 풍경이라, 그들은 금세 적응해 본분에 충실했다.
각 팀의 딜러들이 공격을 시도한 순간에도 리디안은 진짜 짐승을 마주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광기에 젖은 안광이나 이가 드러난 주둥이 사이에서 혓바닥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침. 그리고 허공을 찢을 듯 날카로운 발톱까지. 무엇하나 생생하지 않은 게 없었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왕왕 질러대는 울부짖음에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죽사막’이나 지하 도시 등에서는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미미르를 만나면서 각인된 옅은 공포감과 현실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리디안은 역동적인 늑대의 움직임에 홀려, 몇 초 동안이나 눈을 떼지 못했다.
“전방 바르그 출현!”
포푸리의 용맹한 목소리에 리디안이 재깍 정신 차렸다. 사위로 순식간에 지면 위로 솟아난 바르그들이 작은 군집을 이루어 으르렁대고 있었다.
어림잡아 대략 스무 마리 정도였다. 제법 많아 보였지만, 여타 보스 레이드의 평균 숫자였기에 위화감은 없었다.
탱커들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곧장 어그로를 끌었다. 제일 먼저 포푸리가 ‘신의 사슬’을 사용해 최대한의 범위를 묶었다. 무섭게 달려드는 바르그들의 공격에 포푸리의 HP가 정신없이 요동쳤다.
그러나 리디안의 ‘여신의 손길’과 괴자의 ‘초월자의 손길’ 덕분에 포푸리는 빠르게 회복됐다. 두 사람의 회복량이 많다 보니, 적당히 텀을 두고 스펠을 시전하는 것만으로도 포푸리는 안정적인 HP를 유지할 수 있었다.
페페와 드림드림은 바르그들의 공격과 함께 찾아오는 암흑과 이동 속도 감소 디버프를 분주히 해제했다. 이동 팀의 탱커인 팔라딘 드리머는 포푸리의 범위 밖을 뛰어다니며 흩어지는 바르그를 붙잡았다.
메인 탱커인 포푸리가 힐을 받아 버티는 동안 이동 팀과 잡몹 팀, 제물 팀의 딜러들은 드리머에게 붙은 바르그부터 처치했다. 이노센트, 호드라, 샤봉, 칼릭, 박회장, 벤딩이, 와츠, 벨벳루즈, 마프로의 스킬이 무섭도록 쏟아지자 바르그들은 눈 녹듯 사라져갔다.
자유의 몸이 된 드리머는 곧장 다음 범위로 이동해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드림드림이 그 뒤에 따라붙어 힐을 보조했고 딜러들도 반으로 나뉘어 가운데를 지키거나 드리머를 따라갔다.
중앙이 얼추 정리되자, 물리 팀과 마법 팀에서 보조 탱커를 맡던 물리학자와 백검이 기다렸다는 듯 자연스레 드리머에게 바르그를 넘겼다. 보스 쪽 탱커와 딜러들은 보스를 상대하느라, 바르그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드리머를 따라간 딜러들이 보스 구역에 퍼진 바르그들을 빠르게 처리했다. 완벽하게 마무리되자, 그들은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포푸리에게 붙은 바르그에 집중했다.
몹이 줄어들수록 포푸리와 세인트들의 사정은 여유로워졌다.
첫 번째 잡몹 타임이 끝났음에 리디안이 잠시 안도했다. 그러나 쉴 틈도 없이 근처 지면에서 소환의 기미가 보였다. 잡몹 출현이 잦다는 말은 있었으나, 설마 이 정도로 리젠이 빠른 줄 몰랐던 리디안의 눈이 빙글빙글 돌았다.
마찬가지로 드리머와 딜러들 역시, 반복될 패턴에 진땀을 뺐다. 다시 잡몹 처리 패턴이 반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