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멈추지 않는 탐욕’ 이 깨어났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보스는 사납게 포효하며 꼬리를 휘둘렀다. 검은 기운을 두른 두툼한 꼬리 짓이 허공을 가로지르자, 칼바람이 일어나 플레이어들을 덮쳤다. 무서운 속도로 깎이는 HP에 리디안을 비롯한 힐러들이 서둘러 전체 회복 스펠을 외웠다.
보스에게 가까이 붙은 메인 탱커 4인은 사전 브리핑에서 정한 대로 동서남북 방향으로 자리 잡아 순서대로 어그로를 맡았다. 보스가 안전하게 고정되자 다크 템플러인 하츠와 인드라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딜러들도 서둘러 각자 최적의 위치를 찾아가 공격을 개시했다.
“우선 게임 때처럼 진행하고 이상 있을 시 바로 공지하겠습니다! 그리고 스콜, 하티 디버프가 영역 내 전체 적용으로 바뀐 만큼 2차 보스 디버프도 똑같을 확률이 높으니 주의해 주세요!”
스콜과 하티가 사용하던 디버프 패턴이 기존에는 일부에게만 적용된 것처럼 기존 2차 보스의 디버프 역시 일부에게만 적용되는 대신 지속 시간이 더 길었다.
하지만 현재 스콜과 하티의 디버프가 범위 내 전체 적용으로 바뀌었으니, 2차 보스의 디버프도 똑같이 변했을 확률이 높았다.
“차라리 이게 훨씬 낫겠네요. 2차 보스는 물리, 마법 구별도 없고. 리디안 님도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하지 않아도 되니까.”
체념한 듯한 레온은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마제스티도 동의하는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녀의 무덤 보스가 그랬듯, 어느 게임이든 합체한 보스가 더 세기 마련이다. 그걸 생각하니 앞으로 겪을 고생에 눈물이 났다. 레온은 한숨만 푹푹 쉬는 마제스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위로했다.
“스카디 힐러 리디안 님이랑 초손 힐러 괴자 님 있으니 괜찮을 거예요, 아마……. 일단 힘내요.”
두 길드 마스터가 울고 웃으며 돌진하는 사이, 리디안은 살짝 긴장한 얼굴로 2차 보스의 패턴을 상기했다.
기본적으로 기존과 패턴은 똑같으나, 일부가 강화되고 몇 가지가 더 추가됐다고 했다. 두 보스가 융합하며 새로 추가된 패턴은 구속과 마킹, 포식이다. 구속은 최소 5인 이상을 그림자로 묶어 이동 불가 상태로 만든다. 구속당한 플레이어는 1분 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되, 스펠과 스킬 사용은 가능하다.
얼핏 보기엔 별거 아닌 상태 이상 패턴이지만, 기존에도 세인트의 ‘신성한 축복’으로도 해제할 수 없었던 특징이 있다. 당연히 이 상태에서 오브젝트 패턴과 겹치면 난감한 상태를 맞이할 수 있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마킹은 2차 보스의 범위 공격으로 패턴 표시가 없어 오로지 감으로 피해야 한다. 몸에 검은 그림자가 달라붙으면 마킹 상태인데, 마킹이 되면 플레이어의 HP와 MP 회복률이 상대적으로 느려진다.
게임 시절에는 물약 사용으로 의미 없는 패턴이었고 심지어 ‘신성한 축복’으로 해제까지 가능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자칫 해제 불가 변수라도 생기면 생사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포식은 마킹과 연계된 패턴으로 마킹된 플레이어의 HP를 반이나 흡수해서 자신의 HP를 소량 회복한다. 마킹 지속 시간에 따라 최대 다섯 번까지 흡수하는데, 겉보기엔 악질적이지만 실질적으로 회복되는 수치가 크지 않아, 기존에는 흡수되는 플레이어의 HP 타격에 더 의미를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리디안이 주시해야 할 건 기존 패턴인 디버프였다. 스콜과 하티가 디버프 전 벽에 올라타 예고한 것과 달리. 2차 보스는 입에서 검은 물질을 토해 내 플레이어에게 디버프를 적용한다.
전조 증상이 짧아 순간적으로 직접 캐치해야 하는 컨트롤이 필요한데, 다행히 토하기 직전 어깨를 들썩거리며 표현한다고 하니 주시만 잘한다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 듯했다.
어찌 됐든 급히 뛰어다니던 전과는 달리, 여신의 영역 사용이 한결 쉬워진 상황이라 리디안의 마음은 더 편했다.
“누구 말마따나 차라리 잘됐죠. 딜이랑 힐 동시에 모여서 집중하면 그만이니까.”
“그러게요. 우리도 이제 안 돌아다녀도 되고.”
괴자와 파파의 중얼거림에 듣고 있던 사람들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찬찬히 생각해 보면 좋은 점이 더 많다고, 다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다람처럼 너무 긍정적인 건 눈살을 받을 만한 일이었다.
“딜러분들 스킬 아끼지 말고 팍팍 넣어 주세요!”
뜻하지 않은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신사가 딜러들을 재촉했다. 융합 변수라고 해도 HP가 바닥에 이르렀을 때일 거라고, 적어도 그리 생각했었기에 더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와, 게임 때도 합체 버전은 빈사 상태에서나 상대했는데, 50%나 남은 상태에서 합체 버전 치는 건 또 처음이네.”
“예전에 어떤 팀이 70% 남기고 융합시킨 적 있지 않아요?”
“아, 그거 따거 있던 팀임. 당연히 따거 때문에 융합함.”
“와우. 역시 그 양반은 개노답이네.”
“커뮤 잘 찾아보면 따거한테 쌍욕 박은 그때 멤버 글. 아직 그대로 있을걸요?”
“저 예전에 그 새X랑 신전 가본 적 있는데. 딜찍누 광신도라 대화도 안 통해요, 진짜.”
“근데 생각보다 피 잘 빠지는 것 같네요? 시작하자마자 벌써 47%네?”
“합체한다고 방어력이 더 높아지는 거지 같은 설정은 아니라서요.”
샤봉으로부터 시작된 수다에 한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깐깐한 신사의 눈빛이 종종 닿았으나, 수다스러운 와중에도 다들 본분에 충실했다.
유한 분위기에 패턴만 까다로울 뿐, 보스는 별거 아니라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보스는 보스인지, 스콜과 하티 때보다 빈번해지는 패턴에 다들 인상을 쓰기 시작했다.
가장 많이 사용한 패턴은 위치 교환이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마법 딜러들을 상대로 말이다.
이제는 벽에 붙지 않아도 되기에 멀리 떨어져 공격하던 매지션과 서모너들은 툭하면 바뀌는 자리에 짜증을 토로했다. 그렇다고 보스에게 가까이 붙자니, 보스의 잦은 근접 공격에 불필요하게 맞을 이유가 없었다. 그만큼 힐러들의 부담이 가중되니 말이다.
“아, 진짜!”
“짜증 나는데, 그냥 붙을까요?”
“헐. 시우 님 버틸 수 있겠어요? 지금 저보다 방어력 낮으실 텐데?”
“휴, 이거 진짜 힘드네.”
잠깐 방심하면 보스가 있던 가운데로 강제 이동 당하니, 순간 대미지가 높은 버베나와 신스펠 매지션인 시우, 테세우스, 맥스비는 매번 분노를 표출해야했다.
보스의 위치 교환을 고려해서, 마법 딜러들이 일부러 탱커인 관우 근처에 자리 잡았으나, 너무 빈번하다 보니 이번엔 가까이에서 보스를 상대하던 물리 팀 딜러들이 헛방을 치고 있었다.
자꾸 당하는 스킬 캔슬에 약 오른 이터널리스트가 마법 딜러 쪽을 향해 호소했다.
“아, 마딜님들! 그냥 붙어서 치면 안 돼요? 교환 너무 싫은데. 원래 기존에도 이거 땜에 다 붙어서 쳤잖아요. 지금이야 MP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만, 그래도 힐 넉넉하니까 버틸 수 있지 않아요?”
“우리도 그러고 싶긴 한데…….”
그에 맥스비가 슬쩍 힐러들의 눈치를 살폈다. 방어력 약한 마법 딜러들이 쓸데없는 근접 공격에 HP가 더 빠질 테니, 그들의 의견도 수렴해야 했다.
다행히 이모탈과 캐티스가 잠시 속닥이더니 괜찮다며 동의했다. 관대한 허락에 저마다 안도한 마법 딜러들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냥 몸 사리지 말고 다 모여서 쳐요. 죽으면 부활 받으면 되지.”
버베나의 시원스러운 발언에 뒤따르던 마법 딜러들의 표정이 잠시 흔들렸다. 특히 죽음이 익숙하지 않은 노르드연합의 이케와 청풍명월의 베라는 잠시 긴장한 얼굴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도 했다. 그들은 힐러들이 유능해서 죽을 일 없을 거라는 테세우스의 말에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와. 어그로 무시하는 거 은근 짜증 나네?”
벌써 두 차례나 단일 도발 스킬인 신성한 광휘에 실패한 백검이 황당하게 중얼거렸다. 늑대 동굴의 2차 보스는 탱커의 어그로를 30% 확률로 무시하는 특성이 있었다.
비단 백검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간간이 스킬이 먹히지 않아 일반인과 관우, 물리학자의 입도 분주했다.
잡몹 팀의 탱커인 포푸리와 드리머도 바쁘긴 여전했다. 그들은 징글징글하게 생겨나는 바르그들을 최대한 끌어모아 메인 팀의 공격 환경을 보조했다.
다행스럽게도 모든 인원이 한 공간에 모인 덕분에 멀리서 생겨난 바르그가 알아서 찾아오고 있으니, 포푸리와 드리머도 한결 편하다는 얼굴이었다. 비로소 진짜 레이드 분위기가 나는 듯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리디안은 직접 겪는 봉인 패턴에 점차 얼굴을 실룩였다.
[봉인 상태입니다. 60초 동안 스펠, 스킬 사용이 불가합니다.]잊을 만하면 수시로 뜨는 메시지에 리디안은 깜짝깜짝 놀라고 있었다. 쏟아지는 전체 공격과 패턴에 여신의 손길을 외우려 하면 꼭 세 번 중에 한 번은 봉인에 걸려 바보가 됐다.
봉인은 신성한 축복으로 해제가 불가하고, 심지어 마법 딜러들까지 보스 근처에 붙은 상태라, 불안해진 리디안은 입술을 깨물며 주변을 둘러봤다. 힐러들이 수시로 서로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어 아직은 괜찮겠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빨리 봉인이 풀리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리디안의 귀로 늑대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하울링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사이렌처럼 따라 우는 바르그르들의 긴 울음에 리디안은 서둘러 잡몹 팀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잡몹 팀이 분발한 덕분에 남는 바르그의 수는 여전히 열 마리 이내였다. 최소 단계의 증폭이 적용되어 몰래 안도했지만, 하울링 이후 곧장 이어진 전체 공격 ‘증오의 발톱’을 맞아 보니 또 아니었다.
리디안은 한순간 60% 이상 깎인 자신의 HP에 놀라 뻐끔거렸다. 이 경악스러운 대미지를 3분 동안 감내해야 한다니…….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도 구겨진 표정으로 신음하는 사이, 이번에는 천장에서 종유석이 흔들렸다.
곧 떨어질 거라는 신사의 신호에 리디안은 황급히 발밑을 살폈다. 재수 없게도 제 그림자보다 커다란 흔적이 보였다.
리디안은 소스라치게 놀라 이동했다. 살벌하게 지면에 박힌 종유석을 바라보며 조마조마한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보스의 뒤로 검은 그림자가 높이 치솟았다.
“그림자 떼 패턴이요!”
퍼붓는 패턴에 정신이 없어 혼이 쏙 빠질 정도였다. 마치 ‘죽사막’을 연상케 하는 빈번한 패턴 딜레이에 문득, 융합하기 전인 스콜과 하티가 귀엽게 느껴졌다.
물론, 리디안은 스콜과 하티의 패턴 간격을 직접 경험하지 않아 확실하진 않지만… 물리 팀과 마법 팀도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는 걸 보니, 확실히 이전 보스가 더 양반인 듯했다.
리디안은 중앙에서 잡몹을 상대하며 지루해하던 자신의 과거를 깊이 반성했다.
잠시 후 봉인의 지속 시간이 끝나자, 리디안은 서둘러 여신의 손길을 외우며 합류했다. 물밀듯 쏟아진 패턴에 정신없던 힐러들은 스카디 힐이 돌아오자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HP 폭에 크게 안도했다. 다행이라고, 이제 좀 살만하겠다고 무니가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여유도 잠시뿐이었다. 정신없이 굴던 보스가 이번에는 컹컹 짤막하게 짖기 시작했다. 정확히 세 번 울린 짖음에 신사가 크게 외쳤다.
“정화 패턴이요!”
바드 파피루스가 한숨 쉬며 제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아 개짜증 패턴.”
“이건 기존이랑 똑같을 것 같은데요?”
“하긴. 기존이 너무 최대치 조건이긴 했지. 플레이어 버프까지 해제했으니.”
“저는 개인적으로 강화된 정화가 제일 X같은 것 같아요.”
무뚝뚝한 추장의 중얼거림에 몇 명이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전부터 약간 입이 험했던 세인트였는데, 정색한 얼굴로 저리 말하니 더 진실성이 짙어 보였다. 가까이 있던 규호도 동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보스는 허공으로 뛰어올라, 한 바퀴 빙그르르 회전해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곤 버릇처럼 몸을 푸르르 털었다.
[멈추지 않는 탐욕 에게 걸린 해로운 효과가 모두 제거됩니다.] [플레이어 전원에게 걸린 이로운 효과가 모두 제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