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295
295화
“별로 안 유명한 일반 랭커가 반 이상이라 그런가. 겉보기에 너무 허접해 보이는데요.”
슬쩍 태양 연합의 60인 파티를 살핀 인드라가 못마땅하게 평가했다. 물론 보이는 것만 따지자면 그런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리디안도 차마 부정할 순 없었다.
그러나 핑크푸크는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좀 부족해 보여도 다들 침공전을 대비해 완전히 무장한 상태였다.
실제로는 대다수가 장비 성능이 평소보다 더 높아진 상태라 전투에 있어 걱정할 건 없었다.
“어쨌든 입 다물고 얌전히 싸워주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워요.”
어느새 나타난 버베나가 넌지시 중얼거렸다. 항상 버베나를 따라다니는 파피루스도 맞는 말이라며 맞장구쳤다. 곧 곳곳에서 묘한 긍정이 흘러나왔다.
“하긴. 입 안 털고 가만히 있는 게 어디야.”
도와주는 사람들을 두고 할 말은 아니지만. 워낙 그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보니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반응이었다. 어쩐지 그동안의 관계를 돌이켜보게 만드는 발언에 리디안은 작은 안타까움을 담아 태양 연합을 바라봤다.
뭐, 어쨌든. 버베나의 말마따나 그들도 용맹하게 싸워주고 있으니 잘된 일이었다.
그에 혼자 뿌듯해하던 중, 이트 옆에서 버프를 돌리던 보리알과 눈이 마주쳤다. 거리가 꽤 됐음에도 보리알이 살짝 웃는 게 보였다.
전장에서 한눈팔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마침 상황도 정리되던 참이라 리디안도 헤헤, 하고 웃었다. 그러자 보리알은 별안간 허공을 두드렸다.
[보리알 : 여기 분위기 너무 구려요. 여기 있기 싫어.]대뜸 떠오른 메시지를 멍하니 쳐다보던 리디안은 풉, 하고 웃어버렸다. 곧장 찡그리며 고개를 흔드는 걸 보니 대강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리디안은 대화 한마디 없는 태양 연합의 분위기를 살피며 쓰게 웃었다.
저런 걸 보면 레기온과 ONE 길드의 연합이 얼마나 사이좋은지, 새삼 실감 나는 부분이었다.
* * *
플레이어 군단은 신사의 지휘 아래 계속해서 진군했다.
몬스터가 몰릴 것을 우려해 빠른 이동은 자제했지만 어느덧 성벽과 더 가까워진 상태였다.
예상대로 도시와 근접해질수록 도시 상공으로 더 많은 개체가 확인됐다. 허공을 노닐던 몬스터들은 플레이어를 보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날아왔다.
“자자. 다들 힘냅시다!”
백검의 목소리에 의기투합하며, 원거리가 선제공격을 개시했다. 그에 따라 딜러들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 대기하던 때였다.
저 멀리 무리를 지어 날아오는 뇌조 사이에서 유독 이질적인 것이 하나 있었다. 리디안은 다른 비행체들과는 현저히 느린 속도에 의아하며 유심히 ‘그것’을 살폈다.
까만 점 같은 ‘그것’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커다란 눈알과 박쥐같은 날개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리디안은 익히 알고 있는 그것의 이름을 어처구니없이 중얼거렸다.
“하티의 오른눈……?”
불현듯 죽사막에서의 악몽이 떠올랐다.
“눈! 하티 오른눈! 두 시 방향!”
곳곳에서도 사색이 된 얼굴로 소리 질렀다. 죽사막 좀 다녀본 사람이라면 너 나 할 것 없이 쌍욕부터 중얼거렸다.
“시X! 저게 어딜 봐서 ‘새’냐고!”
누군가 성난 얼굴로 씩씩거렸다. 하지만 조금 전 땅벌의 출현으로 카테고리가 넓어졌으니, 날아다니는 오른눈이 출몰한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다만 하티의 오른눈은 현재의 플레이어들에게 있어 최악 중의 최악의 몹이라는 게 문제였다.
하이 랭커가 치를 떠는 것처럼, 중고레벨 플레이어들 쪽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가득했다. 패턴을 잘 아는 몇몇은 벌써 겁에 질려 슬그머니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저걸 어떻게 잡느냐며 말이다.
점점 어수선해지는 분위기를 정리한 건 신사였다.
“당황하지 마세요! 오른눈 디버프 시야 정해져 있고, 현재 맵 넓습니다. 교대해서 잡을 파티도 충분하고요. 공격 가능한 원거리는 핑크푸크 님, 맥스비 님, 테세우스 님 기준으로 세 팀으로 나누고 범위 지정해서 교대하세요. 힐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MP 흡수된 힐러는 바로 빠지고, 바로 교대 팀 힐러 투입하세요.”
오른눈의 MP 흡수 범위가 무한적이지 않다는 것. 그리고 흡수 디버프를 연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또 죽사막 레이드와는 달리 이동 범위와 인원의 여유가 많다는 환경 요소에서 기인한 작전이었다.
작전에 대한 설명이 뒤따르자 뒤늦게 이해한 플레이어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테세우스 님 파티가 독수리 메인으로 마크. 핑크푸크 님 파티가 오른눈 선공해 주시고 맥스비 님 파티의 원거리랑 비격수분들이 테세우스 님 파티 지원하면서 교대 대기 하세요.”
오른눈이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핑크푸크의 파티가 뛰어나갔다. 남은 인원은 날아오는 독수리를 상대했고, 맥스비의 파티는 교대 타임을 곁눈질했다.
“뇌조 다 잡으면 중고레벨분들도 오른눈 지원 사격 바랍니다!”
그에 뇌조를 잡던 중고레벨 쪽에서 짤막한 대화가 오갔다.
박회장은 빠르게 인원을 선별해 핑크푸크의 파티로 지원 팀을 보냈다. 하이 랭커만큼 큰 대미지는 아니어도, 자잘하게 박히는 대미지가 수십에 이르자 변화가 눈에 보였다.
[하티의 오른눈이 플레이어의 MP를 흡수합니다.]순식간에 HP를 20% 정도 겨우 줄여놓기 무섭게, 오른눈이 플레이어들의 MP를 흡수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신사의 말대로 흡수 디버프에도 한계 범위라는 게 있었다. 전체를 집어삼킬 것 같았던 흡수 디버프는 딱 신사가 예상한 지점까지만 닿았다.
덕분에 가장 가까이 붙었던 핑크푸크 파티의 MP만 바닥났다. 그에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마조마 지켜보던 맥스비의 파티가 부리나케 뛰어갔다.
교대와 함께 돌아온 선발대. 핑크푸크의 파티는 적정 거리에 대기하며 없어진 MP를 회복해 갔다. 그러기를 네다섯 차례나 반복했다. 본래라면 한 번의 교대로 끝날 일이었으나 침공전으로 강화된 네임드의 체력과 방어력은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다수가 우려했던 것치고는 긴박하지 않았다. 본래 오른눈의 공격력 자체가 하잘것없어 가능한 일이었다.
애초부터 오른눈은 디버프에 특화한 몬스터였고 마침 주위엔 플레이어를 방해하는 몬스터가 없었다. 덤으로 후방에 즐비하게 대기 중인 중고레벨 플레이어의 지원이 더해지니……
아직은 운이 좋은 셈이었다.
박회장의 팀이 맡고 있던 독수리와 뇌조 무리도 정리됐다.
짧은 시간 사이에 카운트가 부쩍 늘어났지만 하이 랭커들은 울상이었다.
“아, 싫다. 오른눈이 너무 싫다…….”
“하티 오른눈 나왔으니, 저기 어딘가에 스콜 오른눈도 있겠네요.”
“에이. 쌍으로 안 나온 게 어디예요.”
누군가 안도하며 중얼거렸다. 리디안은 반사적으로 요툰하임 도시를 바라봤다. 저 어딘가에 있을 또 하나의 오른눈. 그리고 미확인 네임드들을 떠올리니 눈앞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잠깐만. 지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아?”
다시 조금씩 전진하려던 순간이었다. 맨 앞에서 맥스비와 떠들던 버베나가 눈을 찌푸리며 두리번거렸다. 잠시 조용해 달라는 버베나의 강압적인 요구에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얼떨결에 귀 기울인 리디안도 소리에 집중했다. 그러자 어디선가 희미한 새 울음이 들려왔다. 삐이익― 낮게 울던 신속의 독수리보다는 음색이 더 높고 날카로웠다.
언젠가 한 번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 고개를 갸웃하던 다람이 손가락을 튕기며 내며 외쳤다.
“구릉지 닭둘기 소리다!”
그 말을 들으니 기억이 더욱 선명해졌다. 정확히는 ‘엘시아 구릉지’의 보스 ‘흐레스벨그’였다. 리디안은 그것을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헉, 소리를 냈다.
“흐레스벨그면 요툰하임 보스라고 하지 않았어요?”
흐레스벨그는 저레벨 맵에서 푸킨, 굴린캄비와 더불어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비둘기 삼대장이라 불렸다.
우습게도 흐레스벨그는 은청색 독수리에 가까운 맹금류에도 불구하고 지면에서의 움직임이 굼떠 ‘파란 닭둘기’라는 이명이 있었다.
그 닭둘기가 현재 파란 하늘을 유영하듯 노닐고 있었다.
“뭐예요? 분명 흐레스벨그 외곽에 떴다면서요. 그럼 성문 안쪽에 있어야 하지 않아요? 저게 왜 벌써 밖에 나와 있어?”
사전 정보와 다른 위치에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술렁였다.
“아직 우리 발견 못하고 계속 저러는 거 보면 다행히 시야는 좁은 것 같은데. 이동 범위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넓은 게 아닐까 싶네요. 진짜 독수리처럼요.”
유심히 주시하던 크라이그가 의견을 내놓았다. 길드 마스터들도 같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모두가 웅성거리는 가운데 풍월주가 먼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에 리디안은 마른침을 삼켰다.
일반 몬스터와 네임드가 눈에 띄지 않는 평야에서 보스를 단독으로 조우한 건 큰 행운이다. 거기에 마침 방해물도 없었다. 오로지 보스 하나만 신경 쓰며 싸울 수 있을 테니, 패턴을 확인할 절호의 기회였다.
“환경적 조건 나쁘지 않으니 이대로 돌격해 보는 게…….”
“맞아요. 언제 또 이렇게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하이 랭커들은 전부 찬성?”
“일반 플레이어들은 어쩌죠? 따라와 준 건 고마운데, 저분들한테는 너무 위험할 듯.”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일 있나. 바로 귀환시켜야죠. 안 그래요?”
결정을 요구하는 곁눈질이 오가자 레온이 뒤를 돌아봤다. 보스의 등장으로 지레 겁먹은 플레이어들이 아웅다웅 난리였다. 레온은 잠시 고민했다.
길드원들이 말이 옳았다. 아무리 70레벨 이상에 장비가 뒷받침해 준다 해도, 일반 플레이어들은 보스전 보조 전투원으로 부합하지 않았다. 이대로 자리에 있다간 휘말려 사망할 확률이 높았다.
무리하게 그들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 여기서 돌려보내는 게 현명하다. 신사와 마제스티. 그리고 다른 길드 마스터들도 같은 의견이라는 걸 확인한 레온은 심호흡하며 외쳤다.
“예상치 못한 보스의 등장으로 요툰하임 진군을 일시적으로 중단합니다. 하이 랭커 파티가 먼저 보스의 패턴을 확인할 예정이니, 나머지 분들은 안전을 위해 미드가르드로 귀환을 부탁드립니다. 무리한 요청에도 여기까지 함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레온은 웅성거리는 플레이어들을 향해 짧게 고개 숙였다. 플레이어들은 벙찐 눈으로 끔뻑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도시에 입성하지도 못하고 귀환한다는 게 조금 허무했지만, 별수 없었다. 전투 길드원들이 자신들을 배려해 주는데 어찌 화를 내겠는가.
“하긴. 보스가 떴으면 하이 랭커가 먼저 간 보는 게 낫지. 우린 아마 도움도 안 될 테고.”
“그럼 우린 미드가르드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나요?”
신사는 긍정과 함께 즉시 귀환을 유도했다. 자신들 때문에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지 플레이어들은 빠릿빠릿했다.
그러나 모두가 귀환하기도 전에, 공교롭게도 흐레스벨그의 시선이 플레이어들에게 닿고 말았다.
우르르 몰려 있는 플레이어들을 목격한 흐레스벨그는 하늘이 찢어질 듯한 괴성을 질렀다. 더 난폭해진 위협음에 귀환을 준비하던 플레이어들이 하얗게 질려 돌아봤다.
“빨리 귀환하세요! 맥스비, 테세우스 파티 앞으로! 핑크푸크 님 파티는 후방 엄호!”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보스 몬스터 때문에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리디안은 파티원들의 뒤를 쫓으며 다가오는 흐레스벨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은청색 아름다운 깃털은 기억 속 그대로인데. 왜인지 크기는 전보다 더 크고 늠름해진 기분이었다. 지면을 덮은 거대한 그림자만 봐도 실물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갈 정도였다.
한층 더 가까워진 흐레스벨그는 날카로운 금안으로 플레이어들을 훑어봤다. 그러곤 귀를 찌르는 울음과 함께 제자리에서 힘차게 날갯짓했다. 그에 생겨난 거센 강풍에 몇몇 사람들이 뒤로 나자빠졌다. 리디안 또한 몸을 가누지 못하며 당황했다.
‘뭔가 이상해!’
리디안은 의아한 얼굴로 흐레스벨그를 쳐다봤다.
원래대로라면 플레이어를 인식하고 바로 땅으로 내려와야 했다. 그 후에 날개와 뒷발을 이용해 공격해야 하는데. 지금의 흐레스벨그는 하늘에서 내려올 생각을 않았다.
“뭐야, 저거 왜 안 내려와?”
“일단 공격해 보죠. 파이어 에로우!”
스타일리쉬가 먼저 스킬을 사용했다. 타오르는 붉은 화살은 흐레스벨그의 몸통을 정확하게 명중했다.
작은 타격에도 흐레스벨그가 울부짖으며 두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에 촘촘한 깃털들이 심상치 않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힐! 힐!”
“손길 준비!”
신사와 페페가 비슷하게 외치는 순간, 흐레스벨그의 날개에서 푸른 깃털이 화살처럼 쏘아져 날아들었다. 광범위한 공격이었고 맞은 사람들 모두 HP가 급속도로 줄기 시작했다.
“여신의 손길!”
놀란 리디안도 미친 듯이 힐을 외웠다. 그러나 깃털 공격은 멈출 기세가 안 보였다.
오랫동안 이어지는 공격에 힐러들은 혼비백산했다. 자꾸만 줄어드는 MP가 불안해진 규호는 애타게 신사를 찾았다.
하지만 신사는 일단 버티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아악! 나 죽네, 나 죽어!”
길어지는 공격 속에서 다람이 괴성을 지르며 도망쳤다. 다람은 HP가 겨우 2천 초반대라 깃털 비 공격 두어 번에 금세 한 자릿수가 되곤 했다.
특히나 다람의 사정을 잘 알아, 주시하고 있던 리디안은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눈치 빠른 페페, 괴자, 이모탈 등이 텀을 두고 번갈아 손길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자꾸 보이는 한 자릿수 HP는 리디안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숭고한 방패!”
보다 못한 아퀴나스가 나섰다.
그가 사용한 건 지하 도시 레이드로 얻은 가디언의 신스킬이었다. 대상 하나를 지정해 1분 동안 대상이 받는 모든 대미지를 대신 받는 효과라, 다람을 보호하기엔 딱이었다.
“오! 이거 뭐야!? 대박, 대박! 바퀴… 아니, 아니. 아퀴나스 님 최고!”
잠깐 실언할 뻔했지만, 다람은 제 몸을 감싼 푸른 장벽에 방글거리며 후다닥 아퀴나스의 뒤로 숨었다.
리디안을 포함한 힐러들의 표정이 편안해졌으나, 당사자인 아퀴나스는 그렇지 못했다. 대상의 대미지를 대신 흡수하는 만큼 아퀴나스가 받는 고통이 더 늘어나는 셈이라 아퀴나스는 잔뜩 찌푸린 표정이었다.
긴 쿨타임 때문에 정말 위급할 시에만 이트를 위해 사용할 생각이었는데. 어이없게도 얄미운 다람을 위해 사용해 버린 것이다.
그게 스스로도 어이없어 아퀴나스는 제 뒤로 숨은 다람을 보며 헛웃음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