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356
356화
【황금 산맥으로 가는 지름길】
레온은 음울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지난번에 이은 일방적인 사과였지만 다가오는 느낌은 달랐다. 선물을 건네며 웃으며 가볍게 넘어갔던 맨 처음의 대면과는 달리, 오늘의 사과는 무겁고 책임감 있었다.
과거를 부끄럽게 여기며 진심으로 반성하는 마음이 비로소 사이에게 닿았다. 그러나 사이는 착잡했다.
레온의 무지성 행동들로 인해 피해받았던 것들과 그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 골 깊은 감정이 사과 한두 번에 이렇게 쉽게 풀려도 되는 건지에 대한 의문.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기껏해야 게임일 뿐인 과거에 혼자 예민하게 구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건지 말이다.
“아. 모르겠다.”
뒤섞인 혼란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사이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힘 빠진 사이의 표정에 레온과 ONE 길드원들이 놀라 서로를 쳐다봤다.
평소 같았으면 또 빈정거리면서 구시렁거릴 위인이었기 때문이다. 낯선 모습에 바짝 긴장한 레온이 조심스럽게 사이를 불렀다.
“사이 님……?”
“아… 됐어요. 마음대로 하세요. 이제 신경 안 써요.”
영혼 없이 뱉은 사이는 그대로 돌아서 갈 길을 갔다. 손에 땀을 쥐며 지켜보던 사람들이나 당사자인 레온이나 당혹스러운 얼굴로 서로의 눈치를 봤다.
그러던 중, 사이를 가장 오래 알고 지낸 도도가 옅게 웃으며 레온의 등을 두드려 줬다. 그 시선을 읽었는지, 넋 나가 있던 레온의 얼굴이 서서히 밝아졌다.
“뭔지는 몰라도 저쪽은 이제 잘 해결될 것 같네.”
근처에서 지켜보던 마제스티가 자기 일인 양 뿌듯하게 고개를 주억댔다. 어느새 근처로 몰린 길드원들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리디안 또한 환히 웃었다.
“다행이에요. 레온 님 진심이 통한 거겠죠?”
“글쎄요……. 그렇다고 하기엔 레온이 저지른 만행이 너무 커서……. 그래도 사이 태도 보니까, 레온이 변하려는 거. 그거 하나는 인정해 준 것 같네요.”
다소 회의적이었지만 크라이그도 변화를 인정했다. 아마 앞으로는 레온을 빈정거릴 일이 없을 거라며 말이다.
한편 프리피케 출신 길드원들은 드디어 사이가 철이 들은 것 같다며 두 팔 벌려 기뻐하고 있었다. 감동의 바다에서도 크라이그는 심드렁한 채 고개 돌렸다.
“이후로는 둘이 알아서 잘하겠죠. 우린 그만 가요.”
매몰찬 말이지만 크라이그의 말이 옳았다. 도도는 중간에서 서로의 감정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여기서 누가 또 끼어드는 것보단 오히려 이 흐름이 나을 수도 있었다. 도도 역시 머리로는 그걸 알아 아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정말 다들 고생했습니다. 내일 오전 중으로 이후 일정 관련해서 전체 메시지 드릴 테니 돌아가서 푹 쉬세요.”
마제스티도 홀가분한 얼굴로 길드원들에게 귀가를 독촉했다. 리디안은 다소 아쉽게 거리를 바라봤다. 거리의 분위기가 꽤 좋아 조금 더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리에 계속 남아있는다면, 자신이 사람들의 원치 않는 관심을 끌고, 부담스러운 질문을 부추기게 될 것도 분명했다.
아직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었기에 리디안은 깔끔하게 돌아섰다.
“고생 많았어요.”
“내일 봐요!”
마지막 사망자들이 돌아오고 나서야 본격적인 귀가 행렬이 이어졌다. 알프하임 참여자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사망자들에게 위로를 건네며 도란도란 길을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들려오는 칭찬 속에서 리디안은 새삼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을 확인했다.
[시구르드의 인장]시구르드의 인장은 금으로 된 재질에 넓적한 표면을 가진 반지였다. 그저 막연히 도장일 줄 알았는데. 반지의 형태인 것에 리디안은 신기해했다.
동시에 시구르드와 브륀힐드가 정말 연인일까, 라는 사소한 궁금증도 생겼다. 물론 그걸 확인하려면 내일 진입할 지름길에서 관련된 흔적을 찾아야겠지만 말이다.
갑작스러운 수상한 퀘스트가 썩 달가운 건 아니지만. 브륀힐드와 얽힌 시구르드라는 인물의 존재는 새 여정의 흥미를 이끌기 충분했다.
* * *
침공 3일 차. 무스펠하임이 우연히 클리어된 상황에서 알프하임까지 클리어되고 말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첫날, 클리어한 요툰하임까지 합치면 벌써 세 개의 도시를 해치운 셈이다.
그러나 밝혀진 진실이나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플레이어의 도시 점령은 그다지 좋은 현상이 아니다. 그 때문에 간부들은 클리어를 지양하며 토벌을 중단하려 했다.
하지만 새롭게 얻은 정보와 헤임달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보스 처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여 플레이어들은 현재 도시 클리어의 최종 단계인 결계석 작동만 막고 있는 상태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함에 전투 길드가 전전긍긍하는 한편. 미드가르드에 남은 일반 플레이어들 사이에선 전투 길드에 대한 신뢰가 증가했다. 전투 길드가 보인 위험한 도전과 결과는 과정이 어쨌든, 지켜보는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다 줄 수밖에 없었다.
“와. 오늘도 아침부터 움직이는 거야?”
3일 차인 이른 아침부터 광장으로 구경꾼이 몰렸다. 사람들은 하나둘 모여드는 전투 길드원들을 보며 온갖 말을 쏟아냈다. 이제 막 도착한 리디안은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호의적인 시선과 반응에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신뢰도가 증가한 만큼, 기대치가 높아지면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또 만에 하나 실패했을 경우, 돌아오는 결과는 무척이나 살벌할 것이다. 이노센트는 그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한숨 쉬었다.
“파티 유지해서 진입은 하이 랭커 파티만…….”
새벽 댓바람부터 나온 간부들은 파프니르 계곡의 맵 환경을 고려해 계획을 짜는 중이었다. 아직 내부 상태를 몰라 대인원이 한꺼번에 진입할 수 있는지도 미지수였다.
그래서 오랫동안 의견을 나눴고 최종적으로 하이 랭커 파티만 먼저 움직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나머지 일반 랭커 파티는 내부 동선 규모가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다시 합류하기로 했다.
“길마님들! 그럼 알프하임에 남은 일반 몹. 우리가 가서 처리해도 될까요?”
출발을 진행하려던 때. 박회장이 손을 들어 물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요청에 간부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박회장은 슬쩍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니… 다른 게 아니라. 아무래도 몹들이 아이템을 떨구잖아요? 사람들이 그걸 파밍하고 싶어 해서요. 일반 몹이라 엄청나게 좋은 템이 나오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어중간한 장비들 바꾸기엔 쏠쏠해 보이더라고요.”
“굳이요?”
“뭐, 앞으로 전투가 얼마나 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제 알프하임에서 브륀힐드 잡으면서 스펙의 한계를 느낀 사람이 많더라고요. 다른 길드 분들은 몰라도, 특히 저희 대기업분들은 그랬어요.”
반문했던 풍월주가 수긍했다. 소수 정예인 청풍명월이나 노르드연합에선 체감할 수 없지만, 일반 랭커 비율이 높고 스펙이 어중간한 대기업에선 당연했다.
길드 자체적으로 레이드를 자주 돌아야 길드원들의 장비 업그레이드가 쉬운데. 게임 시절 레이드는 주요 전투 길드들만이 누리던, 그야말로 공공연한 ‘그들만의 리그’였다. 당시 친목 길드에 불과했던 대기업으로선 사실상 레이드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런 문제가 있었군요.”
비교적 중소 규모로 길드를 키워본 마제스티가 공감해 줬다. 다른 길드 마스터들도 그 고뇌를 알아 박회장의 의견에 고민했다.
“괜찮을까요? 일반 몬스터가 다 죽으면 텅텅 비는 건데. 어제 프루츠맨 사건처럼 또 그렇게 되면…….”
핑크푸크가 조심스럽게 말을 얹었다.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닌 박회장이었다. 이 일의 중요함을 잘 알고 있고, 대기업은 박회장과 뚱이만으로도 통제가 잘 되는 길드였다. 더욱이 대기업 일반 랭커와 함께 움직이는 플레이어 중엔 주요 전투 길드 소속원도 있었다. 개념 없는 과일박스와는 비교도 안 될, 아주 듬직한 구성원들이었다.
“혹시 모를 전투를 대비한다면 괜찮을 것 같아요. 저희 길드에도 아직 장비가 충분치 못한 분들이 많고, 현재 2파티나 3파티에 속해있거든요.”
“우리도… 헤른 님이나 우래귀 님 같은 중고레벨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분들도 자체적으로 스펙 업 하길 희망하고 있고요. 다 잡고 성문만 제대로 지킨다면 문제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대장군과 마제스티가 먼저 찬성했다. 다른 간부들도 그 말에 수긍하며 차례대로 찬성을 뜻했다. 걱정하던 핑크푸크까지 끄덕이며 물러나자 박회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2파티, 3파티는 알프하임 잔류 몹을 처리하죠. 그사이 1파티인 저희가 파프니르 계곡으로 가서 퀘스트를 확인하고요. 퀘스트는 확인 후, 지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뚱이 님께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라고 전달할게요.”
그리하여 이번엔 사전 협의 된 토벌과 동시에 지독한 산행이 시작됐다.
* * *
일반 랭커 파티가 알프하임으로 출발한 후. 하이 랭커 팀은 정비를 마치고 한 시간 뒤에 파프니르의 계곡으로 향했다.
이전과는 달리, 60인이 한꺼번에 들어선 계곡은 처음보다 비좁고 답답했다. 그 복작복작한 분위기에서 중간 지점에 이르자 하나둘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맵으로 변했다면서 오르막길은 왜 그대로지?”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친 것보단 낫지 않습니까? 이곳이야말로 두 세계가 적당히 섞인 새로운…….”
중립 지지자인 아퀴나스의 의견에 사람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태양 연합 길드원, 심지어 무법자 길드원까지 가차 없었다. 그 사정을 모르는 리디안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느려지는 현상에 좋아했다.
“꼴찌가 많아서 다행이에요.”
“저질 체력이 많다는 뜻이죠.”
보리알이 정정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미 친한 사람들끼리는 내가 너보다 낫다며 장난을 치는 중이었다. 이 와중에 누가 먼저 정상에 도착하나, 내기하는 바보들도 꽤 있었다.
“곧 신규 맵에 들어갈 텐데. 무섭지도 않은 건가?”
어이없다는 보리알의 반응에 먹구름이 히히 웃으며 끼어들었다.
“바보들끼리 내기하기 딱 좋은 환경이잖아요. 내기는 못 참죠.”
“역시 내가 더 낫군.”
고만고만하게 따라오던 다람이 휙 지나쳐 먹구름을 비웃었다. 얄밉게 실룩거리는 안면에 먹구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씩씩거린 먹구름이 놓칠세라 다람을 뒤쫓아 갔고, 이후로 두 사람은 유치하게 투덕거렸다. 올라가면서 하도 싸우는 통에 결국, 중간에서 고독한과 보리알이 둘을 쥐어패는 것으로 유치한 승부는 중단됐다.
잠깐의 소란과 짧은 휴식 후, 파티는 비로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었다. 파티는 곧장 계곡의 비밀 입구로 향했고 정체불명의 돌문 앞에 멈춰 섰다.
“그럼 순서대로…….”
잔뜩 긴장한 백검이 탱커들과 함께 먼저 돌문으로 다가섰다. 거친 표면으로 손을 뻗으니 그제야 퀘스트 아이템이 반응했다.
[시구르드의 인장으로 최초 봉인이 해제됩니다.] [수상한 지름길을 개방합니다.] [황금 산맥으로 가는 지름길] [진입 조건 : 시구르드의 인장 필요 1 / 1]짤막한 안내와 함께 거친 마찰음이 울렸다. 표면에 묶인 쇠사슬이 풀리며 사라지자, 굳게 닫혀 있던 돌문이 좌우로 열렸다. 흙먼지가 뿌옇게 휘몰아친 후 나타난 건 어두컴컴한 입구였다.
“뭐야. 포탈 없이 그냥 바로 이어진 건가?”
찌푸린 백검이 슬쩍 한 발을 쑥 내밀어 걸쳤다. 그러자 까만 내부에서 붉은빛이 도깨비불처럼 화르륵 피어올랐다. 화들짝 놀란 백검이 다시 뒤로 물러서자 빛 역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리둥절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번에도 풍월주가 겁 없이 나섰다. 풍월주는 불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람들이 바로 기겁했지만, 다시 피어오른 불빛 너머로 똑같은 빛의 행렬이 이어졌다.
불은 내부의 모습을 환히 밝혀주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그것이 길 안내를 하는 등불 역할임을 알게 됐다.
“와. 엄청 넓은데? 이 정도면 다 데리고 와도 되겠어.”
내부가 완전히 밝아진 후, 경계 너머를 둘러본 백검이 휘파람을 불었다. 선두에 있던 리디안도 사람들의 어깨너머로 보인 풍경에 감탄했다. 비밀 입구, 동굴이라 여겼던 그곳은 잘 다듬어진 공터에 가까웠다. 너비도 넓어 토벌팀 전체가 대열을 맞춰 걸어도 문제없을 듯했다.
[황금 산맥으로 가는 지름길 / PK 불가 / 스펠, 스킬 사용 불가]무엇보다 내부가 안전하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까마득하게 이어진 긴 통로가 당최 어디까지 이어진 건지 알 수 없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우리가 먼저 들어가서 끝까지 탐색해 보고. 출구 나오면 2,3 파티에 연락하죠.”
적어도 몬스터와의 전투는 없을 테니, 안도한 신사가 앞섰다. 바깥에서 웅성거리던 인원들은 버베나의 손짓에 따라 차례차례 줄을 맞춰 안으로 진입했다. 길은 하나였기에 이후론 정체 없이 쭉 걸었다.
그러나 통로는 생각보다 길었고 플레이어들은 이십 분 넘게 걸어야 했다. 동굴 특유의 음습함, 낮은 천장과 꽉 막힌 환경이 오래 이어지자 사람들의 말수도 줄었다.
끝도 없는 통로에서 점차 지쳐갈 때쯤, 선두를 걷는 간부들의 시야로 저 멀리 밝은 빛이 나타났다. 출구를 직감한 백검이 헐레벌떡 뛰어가자 뒤따르던 일행의 걸음도 빨라졌다. 리디안 역시 종종걸음으로 출구를 빠져나갔다.
눈부신 태양 빛에 찌푸린 눈을 다시 떴을 때, 리디안의 시야에 들어온 건 형형색색의 만개한 꽃밭이었다. 황금 산맥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기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아름다운 꽃동산에 모두가 홀려 넋을 놓고 바라볼 무렵, 허공으로 맵 정보가 떴다.
[영웅 시구르드의 무덤 / PK 불가 / 스펠, 스킬 사용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