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365
365화
“헐. 여기 장난 아닌데?”
파라디스 아일랜드의 해변 거리. 정확히는 섬 전체의 외곽을 빙 두른 둘레길이었다.
둘레길엔 일정 구간마다 차나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카페와 수상한 음료를 파는 펍이 존재했다. 마침 리디안 일행이 당도한 곳이 카페와 펍이 몰린 포인트라,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건, 주변을 아우르는 풍광이었다.
“와. 진짜 눈으로만 보자면 현실이랑 구별이 안 될 정도네.”
그대로 멈춰 선 마제스티가 연신 감탄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얕은 파도 풀과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모래사장 너머로 잘 포장된 도로가 나있었는데. 도로마다 방문 욕구를 자극하는 멋들어진 상점이 가득했다. 미드가르드 중심가의 작은 찻집들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었다.
“음료는 당연히 그냥저냥인데. 뷰랑 분위기가 쩔어서 친목 길드 애들이 벌써 점거 중이래요.”
벌써 소식을 물고 온 테세우스가 촉새처럼 속닥였다.
어쩐지 느껴지는 시선 속에 약간 노골적인 감정이 섞였다 싶더라니. 리디안은 저 멀리 보이는 별님반 패거리를 의식하곤 시선을 돌려버렸다.
“야. 저거 해변. 들어갈 수 있는 거야?”
얕은 파도 풀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람이 고독한을 콕콕 찔러 물었다. 그러나 대다수가 발만 담근 채였고 물가에 들어선 라인도 제한적으로 보였다. 결정적으로 사람들의 표정 또한 심드렁했다.
“저 표시 선까지밖에 못 들어간대요. 그마저도 무조건 발목까지 오는 깊이고. 물 느낌도 미지근하대요. 제대로 된 수영 같은 거 하려면 리조트로 가야 한다네요?”
정보 수집원 테세우스가 신속하게 안내했다. 그에 사람들의 얼굴에 실망이 피어올랐다.
“상술 쩌네. 제대로 느끼고 싶으면 돈 내고 리조트 가라, 이거네. 그럼 리조트 숙박해야 할 테고. 숙박하다 보면 거기 편해져서 미드가르드로 안 올 거고. 머리 잘 굴렸네.”
“그래도 충분히 잘해 놨다. 여기 앉아서 멍만 때려도 충분할 것 같은데?”
“그쵸. 그리고 현실이랑 너무 똑같아서 사람들이 향수 느낄 만해요. 나도 이제 쉴 땐 여기로 올 듯…….”
이터널리스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이제 탐섬의 시대는 갔다면서 말이다.
새 콘텐츠의 등장을 반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착잡한 고민을 하며 하나둘씩 해변에 앉아 자리 잡았다.
스무 명에 가까운 대인원이, 전투복을 입은 채 쪼르르 앉은 광경은 꽤 우스꽝스러웠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곁눈질하며 쿡쿡 웃었다.
그러나 리디안은 그런 것도 모르고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봤다. 찝찝하니 뭐니 해도,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기엔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이러다 진짜 이곳에 녹아들면 어쩌지…….’
불현듯 떠오른 걱정에 마음이 뒤숭숭해질 무렵.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행복이 빙긋 웃었다.
“얘기 들었어. 괜찮아?”
갑작스러운 물음에 리디안은 갸웃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알아들었다. 행복은 헤임달이 퀘스트를 이용해 리디안을 유도한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리디안은 멋쩍게 웃어 보였다.
“네! 괜찮아요. 처음부터 이상했던 거고, 말도 안 되는 거였어요. 솔직히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기분이긴 한데. 그래도 저도 혜택 봤으니까 나쁘지 않아요. 게다가 결국 헤임달은 눈을 빼앗지도 못했고. 저는 덕분에 스카디도 두 번이나 얻었고, 강화도 잘 됐고, 귀걸이도 얻어서 사람들한테 도움이 됐잖아요. 그러니 결과적으로 좋은 일인 거죠!”
무척이나 긍정적인 대답이었다. 행복, 이노센트, 자토는 그런 리디안을 말없이 토닥토닥 격려했다.
물론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아주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건 아니기에. 리디안은 씁쓸한 웃음을 삼켰다.
사실 마음 같아선 헤임달의 수작질로 얻은 것들을 죄다 내다 버리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레벨 업이나 진행에 있어 스카디와 귀걸이가 없으면 파티에 큰 지장이 갈 것이다.
리디안은 미래를 위해 불끈 주먹 쥐었다.
“자존심 상해도, 저는 이 아이템들. 계속 쓸 거예요!”
흥, 하면서 애먼 하늘을 노려본 모습에 세 사람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좋은 마음가짐이라며 말이다.
그러나 뒤편에서 듣고 있던 괴자는 그 말에 놀라 펄쩍 뛰었다.
“아니, 당연하죠! 그거 진짜 헤임달한테 절하면서 써야 해요! 지금 아이템 사라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요!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쓰세요!”
농담 반, 진심 반이 섞인 괴자의 목소리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부담스러운 걱정의 시선보단 확실히 나았다. 리디안은 가벼운 마음이 되어 함께 실소를 흘렸다.
그때 리조트 웨딩홀에 머물고 있던 자유 길드가 해변에 나타났다. 대장군의 등장에 주변이 술렁이며 들떴지만, 정작 본인은 대단히 정신없어 보였다.
옹기종기 해변에 모여 앉은 무리를 본 자유 길드가 재빨리 달려왔다. 백검은 울상이 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장군 님. 무슨 일 있어요? 왜들 그리 똥 씹은 표정이에요?”
그에 소소가 한숨을 지으며 대답했다.
“결혼식이요. 조건이 있더라고요.”
모두의 시선이 블루벨과 실버린에게 향했다. 웨딩홀의 결혼이 그저 이벤트성에 불과할 줄 알았던 리디안도 마찬가지였다.
실버린은 벌써 망했다며 푸념했다.
“조건이 세 가지나 돼요. 호감도 충족, 의상, 결혼반지 퀘스트. 심지어 퀘스트는 퀘 받고 하루 안에 해결해야 하나 봐요.”
실버린이 나열한 조건 목록에 사람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의상이나 결혼반지 퀘스트는 그렇다 쳐도. 호감도 충족은 그간 잊힐 뻔했던… 아니, 잊힌 것과 다름없던 호감도 수치의 비밀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 이슈를 알아 실버린이 찬찬히 설명했다.
“일단 신청자. 그러니까 결혼하려는 커플의 호감도가 각각 90. 풀인 상태에서 결혼 접수가 가능하고요. 접수되면 제한이 풀리는데, 이걸 100까지 올려서 맥스로 만들어야 해요. NPC 말로는 종일 붙어 있고 파티도 항상 맺고 있어야 한다고……. 아무튼, 100까지 올려야 다음 단계로 진행이 되는데.”
실버린은 다시 무거운 한숨을 뱉었다. 지쳤다는 표정에 이번엔 블루벨이 나섰다.
“간략 설명문으로는 다음이 의상 구비 단계인데. 의상은 특정 아이템으로 지정되어 있대요. 근데 그게 예전에 웨딩 패키지로 나왔던 아바타 있잖아요. 무조건 그거여야만 한대요.”
대충 희고 검은 드레스와 정장 종류면 될 줄 알았다며, 블루벨이 낭패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플레이어들도 황당해했다.
“미친 거 아니야? 그 패키지 엄청 옛날에 나온 거라 물량이 많지 않을 텐데? 보통 이런 거 나올 때, 의상도 새로 나오지 않나?”
“음. 별님반에 문의하면 한 세트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요?”
“남자 옷은 찾기 힘들걸……. 그때 가격도 비쌌고, 결정적으로 턱시도 디자인이 너무 별로여서 드레스 쪽이 월등히 많이 팔린 걸로 알고 있거든.”
“근데 그 드레스도 그 이후에 의류 재활용 이벤트 어쩌고 하면서 많이 증발하지 않았어요? 그때 아바타 NPC한테 갖다주면 인첸트 스톤으로 교환해 준 거 같기도?”
“어, 맞아. 그때 한창 강화 전성기 시절에 스톤이 너무 귀해서. 내 친구도 눈물을 머금고 아바타 처분했더랬지.”
“아바타 담당자 새끼가 다음 시즌에 업그레이드 웨딩 내놓을 거라고 입 턴 것도 문제였죠. 그래놓고 갑자기 무슨 캐릭터랑 컬래버 한다고 이상한 아바타 가져 와서…….”
이제는 구하기도 어려운 옛 아이템에 대한 이야기가 어느새 먼 과거로 흘렀으나, 문제는 확실했다.
정말 언급된 그 아바타로만 결혼할 수 있다면, 다음 단계 진행이 어려울 거라는 것이다.
그때 리디안과 호드라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
수줍은 두 사람의 음성에 사람들이 고개 돌렸다. 두 사람은 민망하게 웃으며 말했다.
“드레스는 저한테 있어요…….”
“턱시도는 저한테…….”
짧은 정적 후에 곳곳에서 아, 하는 짧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리디안, 호드라. 두 사람을 바라보던 괴자는 그럴 만도 하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리디안 님은 옛날부터 아바타 수집하는 취미로 게임 했다고 하셨죠? 그럼 그때 남캐일 때 샀던 턱시도가……?”
리디안은 살짝 창피해진 얼굴로 끄덕였다. 괴자의 말대로 당시 샀던 웨딩 턱시도는 현재 웨딩드레스가 되어 인벤토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호드라 님은 뭐…….”
호드라는 성별 변화가 없으니 턱시도를 그대로 가지고 있을 것이다. 괴자는 호드라의 특수한 수집욕을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단박에 이해하곤 끄덕이다 어색한 분위기에 서둘러 환호했다.
실버린은 리디안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웃었지만. 블루벨은 수줍게 웃는 호드라의 모습에 착잡해 할 뿐이었다.
“음. 그럼 옷 문제는 해결됐고. 호감도는 뭐 일단 올라야 하는 거니 기다릴 수밖에 없고. 마지막으로 반지 퀘스트만 진행하면 되네요. 퀘스트가 뭔데요?”
“니플헤임, 나스 평야 보스. 눈꽃 여왕 잡기요. 그걸 잡아야 재료가 나오고 그 재료로 반지를 만들 수 있다네요.”
니플헤임. 모두가 아는 대로 80레벨 이상의 필드다. 입장 레벨 제한이 사라졌으니 들어가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일반 몬스터도 아닌 보스 몬스터를 현재의 플레이어들이 잡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아. 결혼… 참 어렵네요.”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우래귀가 의미 모를 한숨을 지었다.
“아니, 뭐 그렇게 까다롭대요? 의도만 보자면 80레벨 이하는 결혼하지 말라는 소린데?”
“결혼 혜택은 없어요?”
보통 대다수 게임에서 결혼 시스템은 플레이어 커플에게 이로운 효과를 제공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부 게임에선 본연의 목적보다, 결혼 효과를 노리고 형식상인 결혼을 진행하기도 한다.
노르드 월드라고 다를 건 없어 보였기에, 헤른이 눈을 빛냈다. 그러나 블루벨, 실버린 커플은 손을 내저었다.
“공개 정보가 적어서 아직 모르겠어요. 최소 한 단계는 더 진행해 봐야 더 자세한 정보가 나올 것 같아요.”
“혹시 상대방한테 순간이동 하기. 이런 효과 아닐까요? 이건 어느 게임을 하든 결혼식 정석 버픈데.”
게임 좀 해본 괴자가 헤른처럼 눈을 빛냈다. 꼭 오토마타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커플 간 순간이동은 사냥터 활동에 있어 몹시 유용했기 때문이다.
백검과 이노센트도 그 말에 혹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같았다.
“진짜면 이건 무조건 하는 게 좋은 건데? 뭐, 물약 셔틀 같은 건 못하겠지만. 그래도 잘만 활용하면…….”
“저… 혹시 무조건 남녀만 가능한 거예요?”
수줍은 호드라의 질문에 대장군이 친절히 답변했다.
“제가 흑도랑 신청 넣어봤는데. 딱히 성별 제한은 없는 것 같았어요.”
대장군의 말에 테세우스는 대박, 이라며 감탄했고 이터널리스트가 신난 얼굴로 파파에게 달려갔다.
“야, 파파. 나랑 결혼할래?”
“봐서.”
표정으로 질색하면서도 파파는 여지를 남겼다. 리디안은 그런 그 두 사람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웃었다.
“일단 다들 성급하게 하시진 말고. 저희 하는 거 보고 그때 결정하세요. 괜히 무턱대고 했다가 이상한 제한 걸리면… 좀 그렇잖아요.”
블루벨이 민망하게 웃으며 흥분한 플레이어들을 진정시켰다. 그의 말대로 결혼이라는 커다란 결정을 덜컥하기엔 무리수가 많은 상황이었다.
“만약 커플 간 순간이동이 가능하다 한다면. 퀘스트 할 때, 다 같이 하면 좋겠지만. 혹시 모르니 진짜 커플이 먼저 해서 결과 보고 하는 게 낫지.”
“음. 그리고… 내가 이런 말 하면 다들 싫어하겠지만…….”
백검에 이어 이모탈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아무리 게임이었고, 지금은 환경이 다른 세계라지만… 결혼의 의미를 너무 쉽게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네요. 아니, 그냥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니까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마시고요.”
민망하게 웃는 이모탈의 말에 떠들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이모탈은 자기가 괜히 오지랖을 부렸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백번 생각해도 이모탈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마제스티와 아퀴나스는 옳은 말씀 하셨다며 이모탈을 향해 박수쳤다. 그 분위기가 더 민망해진 이모탈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자유 길드분들도 왔으니, 이제 리조트 쪽으로 이동해 볼까요? ONE 길드도 기다리는 거 아니야?”
그 물음에 마제스티가 아차, 했다. 몇 분 전, 레온의 메시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맞네. ONE 길드가 카지노 같이 가보자고 기다리고 있대요. 펍에 간 사람들 불러서 바로 이동하죠!”
카지노. 어감부터가 좀 부도덕해 보이고 불법적인 이미지가 박힌 곳이었다. 고지식한 불꽃심장은 그런 곳엔 함부로 발붙이는 거 아니라며 인상 썼다. 보통 게임에서 카지노는 열에 아홉, 재화 회수용 오락성에 불과해 더더욱 그랬다.
“어차피 지금 정보 나온 거 보니까 그다지 좋은 곳이 아닌 건 맞아요. 근데 나중에 문제 될 거 생각하면 차라리 지금 가서 파악해 놓는 게 대비하기도 쉽죠.”
마제스티가 불꽃심장을 달랬다. 불편해 보이던 불꽃심장도 그 얘길 듣더니 곧장 수긍했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정해진 다음 목적지에 일부 플레이어들이 은근한 기대를 품었다.
“와, 카지노. 처음 가보는 곳…….”
그래봤자 현실과 다르겠지만. 그래도 미지의 세계라 리디안의 눈에 흥미가 가득했다. 그런 리디안에게로 실버린이 총총 다가와 웃었다.
“리디안 님. 아까 의상 빌려주신다고 해서 너무 감사해요. 나중에 제대로 답례할게요.”
“앗. 아니에요. 별것도 아닌데요, 뭘.”
붙임성 있는 실버린의 미소에 리디안이 부끄러워했다.
실버린은 예전, 요정의 미로 때 처음 본 플레이어였다. 그 후로는 간간이 인사만 하던 사이지만, 리디안은 실버린의 티끌 없는 미소가 참 좋았다.
당시 태양 길드 소속이었음에도 실버린은 편견 없이 모두에게 온화했고, 그 성격은 지금도 핑크푸크에게 인사할 정도로 변함없었다.
“나중에 니플헤임 갈 때, 리디안 님이랑 같이 갔으면 좋겠어요.”
작게 속삭이는 실버린의 말에 리디안도 매우 좋아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반응에 놀라기도 했다.
사실, 이전까지는 익숙한 사람들과 파티 하는 게 편했다. 그러나 지금은 새롭고 낯선 사람과 어울리는 게 크게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많이 알고 싶은 기분이었다.
리디안은 예전과 많이 변한 자신의 모습이 몹시 신기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