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59
59화
“몇 퍼?!”
팔다리가 한 짝씩 떨어져 나간 푸른색 드라우그가 그르륵 신음했다. 날카로운 무기에 어깨를 뚫리고 분노해 딱딱 턱을 덜컥거렸지만, 다시금 꽂힌 이노센트의 주먹질에 머리를 관통당했다.
썩은 몸을 가진 좀비 설정으로 인해 이음새 약한 드라우그의 머리는 그대로 철퍽 땅에 떨어져 짓눌렸다. 꽤 리얼하게 분쇄된 드라우그의 머리통을 목격한 리디안의 영혼도 함께 분쇄됐다.
“7… 75퍼요!”
전방에서는 딜러들이 매섭게 날아다녔고, 후방에서는 마법이 펑펑 쏘아지고 있었다.
연신 회복 스펠을 사용하면서도 리디안은 이노센트의 물음에 악을 쓰듯 외쳤다. 만족스럽지 않은 리디안의 대답에 이노센트의 주먹에 더 힘이 들어갔다.
현재 리디안이 있는 곳은 좀비 던전인 ‘니다벨리르 사원’이었다.
‘드라우그 병사’라는 좀비 몹이 활개 치는 끔찍한 맵은 열 명의 레기온 길드원에 의해 초토화가 되고 있었다.
아무리 사람 없는 맵이라 하더라도 던전인 터라 비좁을 수밖에 없는데, 번거롭게 떼 파티가 맵을 휘젓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노센트와 테세우스의 호들갑 때문이었다.
리디안은 죽은 모래사막 레이드가 끝난 다음 날인 어제부터 ‘스카디’를 들기 위해 고정 파티와 던전에 처박혀 폐관 수련 중이었다.
물론 중간중간 휴식도 하고 귀가해 잠도 잤다. 그러나 던전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로 리디안의 파티는 열렙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정오쯤, 경험치 게이지가 60%를 넘어가자 길드 내에 소문이 났는지 이노센트가 몹시 관심을 보였고, 덩달아 테세우스까지 끼어들었다. 리디안이 73레벨이 되어 ‘스카디’를 착용하는 그 결정적인 순간을 함께 하고 싶다며 말이다.
지난번에 빌렸던 아이템을 돌려주려 리디안을 찾던 행복과 그를 따라온 자토 역시 이노센트의 분위기에 휘말려 참여하게 되었고 파티는 순식간에 떼 파티가 되었다.
크라이그는 정신없는 대환장 파티가 몹시 싫은 눈치였지만, 정작 리디안 본인이 좋아하는 눈치라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 4명이 추가되어 2개의 파티가 동맹을 맺고 던전을 정복하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의외로 사냥 속도도 빠르고 안전하기까지 해서 크라이그의 불만은 쑥 가라앉았다. 사실 던전 보스도 잡을 화력이지만, 그건 또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 일반 몹만 노리고 있었다.
플레이는 대체로 안정적이었다. 바로 전날 레이드의 영향이 큰 탓이겠지만. 어찌 됐든 파티는 던전을 싹쓸이하는 수준이었다.
다만, 리디안의 경험치가 70%를 넘은 시점에서 이노센트가 자꾸 꼬치꼬치 캐묻고 있어서 크라이그는 조금 귀찮았다. 그러나 리디안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 질의응답 상황이 퍽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좁은 던전 구조에 인원도 많아 정신 사나울 법도 한데 리디안은 생각보다 차분하게 스펠을 제어하고 있었다. 바로 어제 45인 파티에 섞여 ‘신축’을 돌리고 눈치 보며 힐을 하다 보니 아홉 명 정도는 거뜬해진 것이다.
게다가 던전 자체도 어제의 레이드에 비하면 순한 편이었다. 사막처럼 패턴을 피해 도망 다닐 일도 없고 즉사 수준의 트랩도 없으니 당연했다. 드라우그의 비주얼이 좀 역겹다는 걸 제외하면, 너무 쉬워 긴장감도 들지 않았다. 그 사실에 문득 허탈한 느낌이 들기도 해, 리디안은 한동안 영혼 없이 웃었다.
그리고 반복된 시간이 지나갔다. 바깥은 어느새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지만 리디안의 파티는 끝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몇 퍼?!”
“93퍼요!”
“몇 퍼?”
“95퍼요!”
“몇 퍼?!”
“97퍼요!”
주기적인 시간 단위로 질문과 대답이 반복됐다.
숫자가 100에 가까워질수록 흥분의 도가니였다. 마지막으로 리디안이 “99퍼요!”라고 외친 순간, 크라이그와 적혈구, 행복을 제외한 모두가 환호하며 사방팔방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1프로가 남았다는 소식에 자토는 눈에 불을 켜고 몹을 찾으러 다녔다. 몇 주 전만 해도 좀비가 너무 무섭다고 엉엉 울던 자토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좀비를 극복할 정도로 넘치는 언니의 사랑에, 리디안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73레벨이 되었습니다.]평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던, 레벨 업 메시지가 눈앞에 번쩍였다. 리디안은 그대로 멈춰 바보처럼 입을 벌렸다.
레벨 업을 하면 몸 주위로 바람 줄기 비슷한 이펙트가 생기기 때문에 모두가 알아보고 크게 환호했다. 던전 한복판인데도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빨리! 빨리, 빨리!”
모두가 그 자리에 멈춰 한마음 한뜻이 되어 재촉했다. 모두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리디안은 설레는 마음으로 인벤토리를 열어 스카디의 영광을 선택, 그리고 장착했다. 들고 있던 볼품없는 무기가 사라지고, 금빛의 화려한 셉터가 손에 쥐어졌다.
다소 푸른빛의 어두운 던전 내부 환경 때문인지 금색 스카디의 영광이 유난히 반짝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 찬란함에 자토와 행복이 너무 예쁘다며 칭찬했다. 이노센트 역시 제대로 장착한 모습이 잘 어울린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빨리! 빨리! 힐, 힐 해봐요, 리디안 님!”
신이나 꺅꺅거리는 여자들 사이에 불쑥 끼어든 테세우스가 어린애처럼 칭얼거렸다. 적혈구와 크라이그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에 아이쿠가 “잠깐만요!”하고 외치더니 어딘가로 달려갔다. 잠시 코너를 돌아 사라지는가 싶던 그는 이내 잔뜩 HP가 깎인 채 뛰어왔다.
빠르게 상황을 이해한 테세우스가 즉각 마법을 날려 따라오는 드라우그를 처리했다. 그새 잔뜩 두들겨 맞고 온 아이쿠는 히죽 웃으며 리디안 앞에 당당하게 섰다.
보통이었다면 여신의 손길 세 번은 써야 할 HP였다. 모두가 기대 어린 눈으로 리디안을 바라봤고, 리디안은 다소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헤실헤실 미소 지으며 스펠을 외웠다.
“여신의 손길.”
떨어져 있던 아이쿠의 HP는 한순간에 가득 찼다. 참 바람직한 테스트였다.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환호하기 시작했다.
“이야, 회복력 100%의 위엄!”
“오, 축하해요. 리디안 님.”
“역시 리디안 님! 완전 멋져요! 아놔, 이거 스샷이나 영상이라도 찍어야 하는데!”
“이제 하츠 님 골드 정리하는 것만 기다리면 되겠네? 아직 거래 안 했죠?”
“이야, 진짜 이건 자랑감이다. 내가 다 울컥하네.”
“전 친구한테 자랑해야겠어요! 느이 길드엔 스카디 힐러 없지~ 하면서!”
감사하다고 연신 고개 숙이면서도 혼자 신나서 방방 뛰는 아이쿠의 모습에 리디안은 땀을 뻘뻘 흘렸다. 그런 아이쿠를 제지한 건 크라이그였다.
“쓸데없이 귀찮아질 수도 있으니까, 적당히 눈치 챙겨.”
아이쿠의 얼굴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이노센트와 적혈구도 같은 의견이었다. 리디안도 내심 그게 걱정됐기에 미안한 웃음을 내비쳤다.
실제로 레이드가 끝난 다음 날,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편지가 몇 통 왔다. 전부 ‘스카디’를 팔아 달라거나, 다른 아이템으로 교환하자는, 그런 내용이었다.
신기하게도 대부분 처음 보는 아이디라 당황한 리디안은 마침 옆에 있던 크라이그에게 물었고, 그 결과 대다수가 소위 전문 장사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며 리디안을 찔러본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드롭 목록이 너무 화려하니까 건너 건너 소문 퍼진 건 이해해. 그래, 누가 뭘 먹었는지 그런 거 파악하는 거 솔직히 어려운 일은 아니지. 인맥 조금만 활용하면 다 나오니까. 근데, 이 쓰레기 같은 장사꾼 새끼들은 진짜 답이 없어. 상대가 누구든 간에 무조건 치고 들어와서 사람 기분 나쁘게 한다니까?”
사실 리디안만 장사꾼들의 접촉을 겪은 건 아니었다. 득템한 다른 랭커들도 장사꾼으로 추정되는 사람들로부터 몇 통의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격노한 이노센트의 이글거림에 다들 움찔 몸을 떨었다. 그를 진정시키고 분위기를 바꾼 건 자토였다.
“아무튼, 너무 예쁘다! 축하해, 리디. 이제 리디랑 다니면 힐은 든든하겠어.”
“그러게. 너무 잘 어울린다.”
행복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적혈구와 노네임, 파파도 이제 어딜 가도 든든하겠다며 신이 나있었다.
혼자 조용히, 비교적 차분한 태도를 보이던 크라이그는 그런 그들의 반응에 흠, 하며 고민했다.
“그럼 이제 사냥터 난이도를 더 올려야 하나……”
그 중얼거림을 들은 파파는 크라이그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봤다.
“업도 다 했으니까 이제 마을 가서 놀아요, 우리!”
테세우스가 꼬리를 흔들며 제안했다. 크라이그도 이런 날은 당연히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곧장 나가자고 손짓했다.
* * *
지긋지긋한 던전을 빠져나온 일행은 당연한 듯, 미드가르드의 주점으로 향했다.
놀자고 했지만 사실 노르드 월드에 놀 곳이라곤 없었다. 사냥하는 게 아니면 마을에 모여 수다를 떨거나, 보조 직업 작업을 하거나……. 여가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상당히 한정적이었다.
당연히 오늘은 기념비적인 날이라, 리디안과 일행은 이른 저녁과 함께 수다 떠는 것을 선택했다.
“아, 그러고 보니…….”
주점에 옹기종기 앉아 떠드는 사이, 레벨 업과 ‘스카디’ 장착에 기분 좋아진 리디안은 반사적으로 헤른을 떠올렸다. 좋은 소식이니, 헤른에게도 알려 주고 싶었다. 헤른이야 뭐, 어디 가서 함부로 떠벌릴 사람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생각난 김에 안부도 물을 겸, 리디안은 기쁜 마음으로 친구 목록을 열었다. 그러다 눈에 보인 헤른의 레벨이 65인 것에 잠시 멈칫했다. 분명 마지막으로 얼굴을 봤을 때 헤른의 레벨은 55였다.
‘와, 언제 이렇게 레벨을 올렸지? 열렙한다더니 진짜 열렙하는 모양이네? 이러다 나 앞질러 가는 거 아니야?’
웃으며 땀을 흘린 리디안은 일단 헤른에게 보낼 메시지를 작성했다.
[리디안 : 헤른, 잘 지내? 갑자기 생각나서 안부 차 연락해 봤어. 65레벨 축하해!]왠지 지금도 열렙 중일 것 같아, 간략하게만 전송한 리디안은 별생각 없이 창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길드 사람들의 대화에 끼려는데. 예상외로 빠른 답장이 왔다.
[헤른 : 누나!ㅠㅠㅠ 헐 누나아!]몹시도 격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잠시 아이쿠인가 착각할 정도로 캐릭터가 헷갈렸다. 금방 또다시 알림이 울렸다.
[헤른 : 누나! 나이스 타이밍! 저 좀 살려 주세요ㅠㅠ!]다급한 텍스트에 리디안은 더욱더 당황했다.
[리디안 : 왜? 무슨 일 있어?] [헤른 : 죽을 것 같아요. 사냥하는데 토할 거 같아요. 길마가 며칠 전부터 놔주질 않아요. 살려 주세요…ㅈㅂ…….] [리디안 : 진짜? 되게 스파르타하다;;] [헤른 : 오늘은 진짜 쉬고 싶은데ㅠㅠ 도망칠 수가 없어요ㅠㅠ] [헤른 : 누나가 좀 도와주면 안 돼요?] [리디안 : 엥? 내가? 어떻게?] [헤른 : 지금 니플헤임으로 와줘요! 누나 만나는 핑계 삼게!]리디안은 흠칫 놀라 눈을 깜빡였다.
[리디안 : 나 지금 길드 사람들이랑 같이 있는데?;;] [헤른 : 그럼 다 같이 와요! 저야 더 좋죠!] [리디안 : 이렇게 갑자기?]물론, 언젠가 헤른이 니플헤임에 놀러 오라며 손을 흔들고 간 적은 있었다. 하지만 어제부터 내내 자신을 도와준 길드원들이 있는 자리인지라, 리디안은 땀을 뻘뻘 흘렸다.
[리디안 : 미안 지금은 좀 힘들어ㅠㅠ] [헤른 : ㅇ아ㄴ대여누나제바ㅠㅠ발리와두세어ㅜ]정말 다급한 모양인지 오타가 가득했다.
리디안은 진심이 느껴지는 텍스트에 혼란스러워했다. 그리고 어렵게 고민했다. 다 같이 오라고 했으니 괜찮지 않을까? 힐끔 바라보니 이노센트와 눈이 마주쳤다.
왜 그러냐는 이노센트의 물음에 리디안은 머뭇거리다 사정을 설명했다. 상황을 전해 들은 이노센트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진짜? 그 학생, 아직도 거기서 살아 있어? 와, 생각보다 잘 버티네.”
다행히 이노센트는 헤른의 소식을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단순히 반가워하는 수준이 아니라, 굉장히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음. 파릇파릇한 새싹이 착취당하고 있는데, 그런 거라면 도와줘야지. 그나저나 도도 의외로 열렙파네? 기본 폐인 속성이라 그런가? 신규 길원 관리 하나는 철저하네. 좋아, 합격.”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오른 이노센트가 음흉한 웃음을 머금었다.
“어쨌든 그냥 가서 관광하는 척하면 되는 거잖아?”
“그렇겠죠……?”
“좋아! 보라 언니! 자토! 리디! 우리끼리 니플헤임으로 놀러 가자!”
벌떡 일어나 외친 그녀의 모습에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던 남자들이 갸웃했다. “무슨 말이야, 갑자기?” 되묻는 적혈구를 제치고 테세우스가 번쩍 손을 들었다.
“누님! 저도요! 저도, 저도! 꼭 가고 싶습니다!”
“오, 그럼 저도! 누님, 저도!”
그 열렬한 반응에 아이쿠까지 합세했지만, 이노센트는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탐탁지 않은 눈으로 그들을 흘겨보던 이노센트가 결국,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안 돼. 우리 길드 남자들은 너무 위협적이야.”
도통 알 수 없는 소리에 적혈구와 크라이그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노센트는 찡긋 웃어 보였다.
“초대받아 놀러 가는 거니까. 최대한 무해하게, 우호적으로 보일 생각이야.”
남편인 백검에게 대강의 길드 분위기를 전해 들어 이노센트는 현재 상황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적혈구나 크라이그도 간부급이고 눈치가 빠른 편이기에 그 의도를 알아채고 곧장 눈살을 찌푸렸다.
“잠깐. 그럼 너도 빠져야지. 아무리 봐도 여기서 네가 제일 위협적인데?”
적혈구의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이노센트는 씁, 소리 내며 적혈구를 째릿 노려봤다. 서슬 퍼런 눈빛에 적혈구는 흠흠 헛기침을 뱉으며 시선을 돌렸다.
결국 기 싸움에서 밀린 적혈구는 마음대로 하라며 손을 휘저었다. 크라이그 역시 굳이 따라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 끄덕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토와 행복이 니플헤임 구경이라는 말에 큰 흥미를 보였고, 리디안은 헤른을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맑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