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39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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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야 말 약속의 빛을 저희에게 비춰주소서
주저 없이 제 가슴을 태우게 하고
오직 당신의 모습만을 느끼게 할
그 아름다운 빛을 밝혀주소서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년(晩年)에 쓴 소네트 중 일부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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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라 채석장의 석수반장 마우리지오 네그리는 툭, 돌멩이를 던지듯 물었다.
“(딱보니 알겠구려. 선생이 데려온 저 사람. 조각가 아니요?)”
“음?”
옥빛의 특이한 전통복을 차려 입은 노인이 마우리지오 네그리를 돌아보았다.
그을린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네그리는 대리석 루나 중에서도 순백색, 그것 중에서도 최상급을 바라보는 눈이 아주 살벌했다.
대리석을 한입에 잡아먹고 싶어하는 것처럼 이글이글거리는 것부터 움찔움찔거리는 오른손까지···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딱보니 알겠는감? 저렇게 어리게 생겼는데?)”
“(한국인들은 죄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게 생겼잖소. 척하면 척이지. 그리고 저 손, 망치를 쥐고 싶어서 움찔움찔 거리는 게 이 마우리지오 네그리 눈은 못 피해가지.)”
마우리지오 네그리가 생각할때 욕망은 재채기와 동일선상에 있었다. 참으려고 노력해봤자 결국은 삐쭉 튀어나와버리는 게 욕망이었다.
아마 저 조각가의 손에 망치가 들려있었다면 냅다 대리석을 향해 휘둘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나저나 오랜만이구만. 마우리지오 네그리가 새삼스럽다는 얼굴로 불타오르는 시선의 주인, 강석을 바라봤다. 저렇게 돌 자체를 욕망하는 조각가를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요즘 조각계에는 조각가 대신 철학자과 달변가들만이 남은 줄 알았더니만···저런 사람도 아직 남아있었나. 마우리지오 네그리가 늙고 노후한 눈동자로 강석을 바라보다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관자놀이 밑부터 턱을 죄다 덮은 짧은 수염을 손바닥으로 쓸어본 마우리지오 네그리가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돌려 양선구를 바라봤다.
“(그래서 선생. 저 조각가에게 루나043A를 팔아줬으면 해서 나에게 오늘 만남을 청한 거였수?)”
마우리지오 네그리는 걸쭉한 이탈리아어를 내뱉으며 양선구를 바라봤다. 그러나 대답보다 빠르게 마우리지오 네그리가 재차 입을 열었다.
“(아니지. 선생이 카라라에 갑자기 들른다길래 내가 먼저 말해준 거잖어. 내가 이 시기에 루나043A를 채굴하겠다고 언질을 준 것도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이 시기에 딱 맞춰왔지? 운이 좋은 건가?)”
마우리지오 네그리가 자신이 방금 파낸 대리석, 루나043A를 바라봤다. 루나043A가 저 루나 중에서도 순백색, 그것도 최상등급의 대리석을 지칭하는 고유번호였다.
정식 고유번호는 CARRARA-10-24-RUNA043A.
예전에는 골라갈 정도로 많은 양이 적재되어있었다지만 그것은 이미 옛말이 되버린지 오래였다.
문화와 예술이 번성하며 루나 대리석은 많은 이들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사용되었다. 건축에도 쓰이고 조각에도 쓰이고 매일 같이 산을 울려가며 루나를 채굴한 결과. 점점 카라라산 최상등급 품질의 루나는 바닥을 드러내었다. 자연에는 결코 영원한 것이 없다는 걸 잊은 대가였다.
루나 대리석이 수백년에 걸쳐서 자연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에 비해 채굴하는 속도는 수천년을 거덜낼 지경이었으니···사람들은 루나 대리석의 남은 양을 보석과 같이 대했다.
그러면서 생겨난 것이 바로 고유번호였다.
대리석 루나 중에서도 순백색, 그것도 최상등급의 품질에만 고유번호가 붙는다. 돌을 파낼 때마다 사라져가는 개체수를 관리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저렇게 파내어 붙어진 루나043A은 돌이 쪼개질때마다 루나043A-1, 루나043A-2 등으로 고유번호가 길어지게 되는 원리였다.
어찌되었든 고유번호가 붙을 정도로 철저하게 관리되는 최상등급의 루나 대리석이 채굴될 때에 딱 맞춰 연락한 양선구가 마우리지오 네그리는 신기했다.
그때.
양선구가 삐딱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아남. 저 아이가 이탈리아에서 작업을 해야하는데 그 김에 카라라에 좀 방문하고 싶다길래 데리고 간다했더니 자네가 갑자기 루나 대리석을 볼 수도 있겠다며 나에게 주저리 떤 게 다지.)”
“(주저리?)”
익숙하지 않은 단어에 마우리지오 네그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양선구의 시선은 마우리지오 네그리를 지나쳐 강석에게 닿아있었다.
“(뭐···운이라면 짐작가는 게 있긴 하지.)”
예술의 신이 저 아이를 이곳으로 이 시기에 인도한 것일 수도 있지. 양선구가 허무맹랑한 제 의견을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짐작가는 거?)”
“(됐어. 흘려들으세.)”
“(뭐, 선생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마우리지오 네그리가 양선구를 향해 사용하는 호칭은 언제나 선생, 이었다.
십수년간 카라라산 석재를 후한 값을 치루고 가준 양선구에게 바치는 일종의 예의였다. 어릴 때부터 채석장을 뒹굴며 폐부 깊숙이 먼지쌓인 인생을 살아온 마우리지오 네그리가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 어린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루나043A인가 뭔가하는 저 대리석을 석이 저녀석한테 팔 건감, 말 건감?)”
“(흐음···)”
마우리지오 네그리가 양선구의 말에 얼굴에 꽉 찬 주름을 마른 세수하듯 한손으로 쓸었다. 굳은살 가득한 손으로 시원하게 싹싹 얼굴을 비빈 마우리지오 네그리는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조각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거울처럼 빛을 반사하는 이 눈부신 하얀 산에서 강석은 당당하게 루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팔고 말고가 아니라 안 팔면 망치로 다 때려부술 기세인데······’
활화산 같은 사내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마우리지오 네그리가 골몰했다. 이번에 채굴한 루나043A는 일부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경매를 치뤄 판매하는 것으로 이미 결정이 된 상태였다.
애초에 다듬어지기 전 루나를 보는 것도 귀해진 마당에 좋은 구경하라고 선생을 부른 것이었지만···마우리지오 네그리가 관자놀이를 긁적거리며 생각했다.
“(뭐, 상관없나?)”
선생이란 존칭을 써갈만큼 양선구를 예우하는 마우리지오 네그리였기에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경매를 치뤄 판매하는 것이고···경매는 결국 제일 비싼 값을 부르는 사람이 가지는 법이었다. 경매야 카라라 채석장 이름으로 이루어지니 초대권 두장 추가하는 건 석수반장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마우리지오 네그리가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상황을 설명했다.
루나043A은 사전에 경매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상황이고, 그걸 취소할 수는 없으니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 초대장을 주겠다.
양선구는 납득했다.
그리고 양선구는 설렁설렁 한복을 휘날리며 걸어가 강석이 충분히 루나043A를 감상하는 걸 기다렸다가 이 내용을 동일하게 전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강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우리지오 네그리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이것 그대로 경매대에 올리는 게 맞소?)”
“(······어? 네, 맞···습니다?)”
“(그럼 됐소.)”
만족하오.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강석을 바라보며 마우리지오 네그리가 고개를 기울였다.
강석의 이탈리아어가 듣기에 특이한 탓이었다. 오래된 옛스러운 말투에 제 아버지의 아버지한테서나 들어봤었던 것 같은 악센트, 고전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클래식한 단어 선택에 순간 마우리지오 네그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귀족?
이탈리아에서 사라져가는 그 개념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귀족적인 말투였다.
꿈꾸는 눈동자.
열망어린 시선.
진짜배기 조각가.
한국인 특유의 동안.
그리고 이탈리아 노귀족의 말투.
짜집기가 하나도 안 되는 특징들을 죄다 붙여놓은 조각가를 바라보며 마우리지오 네그리는 생각했다.
아부지. 이번 세대에도 걱정은 없겠소. 네그리가 속으로 중얼걸렸다.
저 조각가는 분명 엄청난 큰손이 될 거다.
이 판에서 먼지나게 굴러본 마우리지오 네그리의 직감은 언제나 틀리는 법이 없었기에, 네그리는 기분 좋게 활짝 웃었다.
* * * *
그 날 밤.
빛한점없는 어둠이 틀어찬 산등성이 아래.
카라라 채석장 밑에 직원들이 하숙하는 숙소가 환한 호롱불을 내뿜었다.
“(거기 더 깊숙하게 박어!)”
“(심지가 굵게 들어가야 이게 바로 선다니까!)”
“(다들 기다리시니까 서둘러라! 뭐하냐! 때려!)”
서커스단이 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거대한 천막을 세우기 위해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녔다. 오늘밤에 열릴 루나대리석 비밀경매를 위해서였다.
CARRARA-10-24-RUNA043A.
4월 3일에 터널 같이 깊숙하게 파여진 산 속에서 꺼내져 와서 043이라는 번호가 붙은 루나인 만큼 4월 3일 안에 사고 싶다는 큰손들의 의견에 따라 사람들은 다급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비밀 경매에 초대받게 된 양선구와 강석은 구석진 곳에서 천막이 세워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런 비밀 경매가 있었다니···이거 섭섭한데?”
양선구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강석에게 닿았다.
솔직히 10년 넘게 카라라 채석장 석수반장 마우리지오 네그리와 거래를 터온 양선구 입장에선 서운할 만도 하다. 조각가, 그것도 직접 돌을 다루는 조각가에게 최상등급 품질의 돌은 무척이나 중요했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고,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지만 명필이 명붓을 잡으면 더욱 날아다닐 것이고 장인이 좋은 도구를 쓰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테크놀로지의 시대가 아니겠는가.
특히나 강석은 양선구라는 브로커를 통해서 돌을 인도받는 자였기에 더더욱 이 서운함에 공감이 갔다.
양선구 선생님에게 좋은 돌이 가야 나에게도 좋은 돌이 온다. 강석은 진지한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거대한 그림자가 양선구와 강석의 위로 드리워졌다. 마우리지오 네그리였다.
“(대충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예상이 가는데 선생, 선생이 지른 돈이라면 원래 이 비밀 경매에 초대받고도 남았을 거요. 초대를 받지 않은 건 순전히 선생이 워낙 전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는 인물이라 연락이 잘 안되서 그렇소.)”
한 번 연락이 안 되면 모를까. 세번, 네번, 반복되서 연락이 안 되다보면 연락하는 입장에서 포기하기 마련이었다.
양선구가 부채를 선선히 흔들며 생각했다.
그것도 맞는 소리 같았다.
돌을 수집했지만 몇십년은 후학양성에 힘쓰랴, 작품활동을 하랴, 바브게 살아왔으니까. 양선구가 대답없이 부채를 천천히 흔들고 있으려니까 마우리지오 네그리가 관자놀이를 긁적거리며 앞을 가리켰다.
“(뭐, 됐소. 천막이 세워졌으니 이제 갑시다.)”
마우리지오 네그리는 그 말을 하면서 양선구를 스쳐 강석을 바라보았다. 마우리지오 네그리가 뒷말을 덧붙였다.
“(조각가.)”
오늘의 구매자가 누구인지를 꿰뚫는 발언이었다.
조각가.
그 짧은 단어가 주는 울림에 강석이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언제 들어도 제 영혼이 반응하는 것 같은 단어였다.
전생에도, 이번 생에도, 운명처럼 이끌리는 단어였다.
전생에 석공의 유모에게 대리석 가루가 섞인 우유를 받아먹으며 자랐을 때부터 제 영혼에 돌이 흘러든 게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운명이 이끄는 대로 강석이 발을 내디뎠다.
“(가지.)”
나를 부르는 돌이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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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은 천천히 걸음을 움직였다. 천막이 세워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각 사방에 설치된 문을 통해서 사람들이 입장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입장하는 게 보였다.
이길 수 있을까.
강석은 매와 같은 눈으로 사람들을 살펴봤다.
당당함이 그림자부터 느껴지는 것이 주머니가 딱 봐도 두둑할 것 같았다.
강석은 그런 사람들을 살피며 천천히 걸음을 늦췄다.
그런 강석보다 자연스럽게 양선구가 제일 빠르게 입장하고, 그 뒤를 마우리지오 네그리가 뒤따라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강석은 천막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제일 비싼 값을 부르는 경매에서 바닥을 드러내지 않고 이기는 방법. 있는가. 강석이 머릿속에서 방법을 떠올리며 고심하다 한 걸음을 내디뎠다.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십수명의 눈동자가 제 쪽으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잠깐 생가한다는 것이 본의 아니게 마지막 입장이 된 모양이었다.
큼. 숨을 고르며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강석은 느꼈다.
짤막하게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 움직이던 동공이 커졌다 좁아졌다. 짧게 흐르는 것은 놀람과 동요. 강석은 한 잘짝을 내디뎠다.
일반적으로 눈동자의 동공과 홍채 움직임까지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강석은 그게 가능했다. 집요한 관찰력과 한 번 본 것은 쉽게 잊지 않는 경이로운 암기력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으니까. 어쨌든 강석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를 뇌에 덧그렸다.
동공이 커졌다 좁아진 사람의 눈동자는 총 넷.
‘그것이 뜻하는 바는 놀람과 동요.’
눈동자는 순간적인 뇌의 반응을 그대로 담는다.
때문에 훈련된 사람이 아니고서야 거짓말을 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즉.
방금 움직인 시선 중, 양선구 선생님과 마우리지오 네그리를 제외하더라도 최소 둘이 자신을 안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양선구 선생님과 마우리지오 네그리가 자신을 보고 놀라거나 동요할 일은 없다. 일단은 다시 넷.
강석이 머리를 굴리며 양선구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작은 정보도 놓칠 수 없다. 갑작스럽게 참여한 만큼 자신은 정보가 적었다. 그리고 이 경매는 참가한 사람 전원이 루나 대리석을 노리고 온 자리였다.
방심은 실수를 부르고, 실수는 돌을 놓치게 만든다.
강석은 그 뜻을 파악하기 힘든 무덤덤한 낯에 속내를 감춘 상태로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강석이 양선구 바로 옆에 도착했을 때.
인식하지 못한 사각지대에서 시원한 목소리가 귓가로 날아왔다.
“우리 강석 작가님을 여기서 다 만나네?”
140. 강석이 뒤를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