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54
154
* * * *
인간을 위한 조각.
공민석은 문을 굳게 닫고 있는 육면체 공간, 을 바라보며 확신했다.
이건 인간을 위해 만든 조각이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마치 신이 내려주신 자비 같았다.
‘······과장이 아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는 공민석의 뇌는 이미 공평성과 공정성을 살짝 놔버린 상태였다. 원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은 금이라도 바른 것처럼 빛나보이기 마련이니까.
근데 그렇다고 너무 과장도 아니었다.
진짜로 안에 들어선 는 꼭 인간만이 보라 만든 조각같았으니까.
공민석이 몽롱한 눈으로 자신이 보았던 순황빛 공간을 떠올렸다.
‘저 튤립 꽃송이 장식이 튀어나온 손잡이를 열고 들어가 앉아 의자에 일정시간 앉아있으면 비밀의 공간이 열리는 구조였지.’
···그곳에는 하늘을 등지고 땅을 내려다보는 여인이 서 있었다.
순백색마저 황금으로 물들일 것 같은 그 화려한 빛의 물결 속에서 신과 인간의 도개교처럼 서있던 는 정말 죽을때까지 간직할만한 추억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작품을 보기 위해서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아야 구조가 큰 역할을 했어.’
의 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두걸음을 나아가야 했다. 어두웠던 공간이 제 죄를 용서하듯 빛으로 물드는 것도 감동인데 진짜 감동은 자신도 모르게 한두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 찾아왔다.
자신은 다 자라지 못해 어머니의 허리춤에도 닿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 자라기 전에는 그것이 얼마나 작았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크고 넓다란 어머니의 품으로 내달려 안기는 어린아이 말이다.
‘진짜 대단하지. 경지에 이른 거라고. 작품을 보는데 작품을 보고 감정이 격화된다니···’
소설이나 드라마, 만화 또는 영화나 음악에서는 그런 경우가 있을지언정 미술 작품만 보고 감정을 느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강석은 해냈다. 작품의 설명란 없이, 그 작품의 특수한 환경이나 스토리 없이도 강석은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 감정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작가였다.
강석은.
겨우 스물에 그런 게 가능했다.
공민석이 눈을 감았다.
그때의 감정이 생생했다.
공민석은 안에 있는 를 보았을 때. 한국에 있을 제 어머니를 자기도 모르게 떠올린 순간에 감정이 매몰되어갔다.
‘내가 무엇을 느꼈더라.’
대비감.
나는 황금빛에 둘러싸여 자애로운 미소를 보내는 를 바라보며 공항에서 저를 배웅하던 어머니의 품을 떠올렸다.
공항에서 배웅하던 어머니의 품이 당장 그려보래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눈에 선했기에 대비감은 빛과 그림자처럼 심해졌다.
거대한 와 왜소한 어머니의 품이 눈에 잡힐듯 그려져서였다.
어릴 적에는 조각상처럼 커다랬던 어머니의 품이 지금은 얼마나 작아졌는지가 너무도 확실히 와닿았다.
내가 자란 만큼 작아진 어머니.
지금보다도 더 작아져서 쪼그라드는 게 아닐까 안쓰러운 어머니를 떠올리며 공민석이 한숨을 삼켰다.
어느새 작품을 봤을 때의 감정은 걱정으로 치환되어갔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성과를 좀 내야 할 텐데···’
공민석은 정말 겨우겨우 이곳에 올라왔다.
그리고 이번 기회는 이례적이었다.
한국관의 총괄감독이 한국의 기존 미술계 기득층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이사벨라 리날디라는 존재가 나타나면서, 우연이 몇 번이 겹치고 겹쳐 겨우 잡아낸 자리이기도 했다.
‘이번에 성과를 내야···’
공민석이 덮쳐오는 우울함에 후드를 깊게 눌러썼다.
아까까지의 해맑음과 신남이 푹 꺼져버린 공민석은 쭈글한 풍선마냥 우울감에 젖어 팔랑댔다.
시야 사이로 들어오는 만이 제 유일한 위로였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옛날 옛적 이야기가 되어버린 지금.
당당히 실력만으로 급부상한 미술계의 혜성.
가장 빛나는 자신의 태양.
저의 이정표.
강석은 나이와 여건을 떠나 제 롤모델이었다.
공민석이 닫혀있는 을 살피며 우울함 속에서 희망을 피어올렸다.
‘빽도 돈도 없이 오직 자신의 실력만으로···’
스물의 나이에 제 실력으로 이룩한 것들을 보아라.
어떻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나.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나···!
공민석이 을 바라보았다.
현대미술과는 다른 클래식한 향기가 났다.
철학과 개념미술, 고정관념의 틀을 깨버린다고 옛스러운 것은 도태되고 지루한 것이 되어버리고 새로운 것만 찾아헤매는 이 미술계에서 강석은 청정구역이었다.
가장 미술(美術)다운 미술.
공간과 시각을 꽉 채우는 거대한 작품을 바라보며 공민석이 낯 부끄러움도 잊고 입을 헤 벌렸다.
이 짙은 낭만의 냄새.
멋있다.
공민석이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 찬가. 이것이야말로 인간 예찬. 이것이야말로 로봇을 향한 인간의 새로운 이정표였다.
난해해질수록 창작이라는 패턴화가 쉬운 이 거친 세상에서 이 당당한 클래식함을 보아라. 공민석이 침을 꿀꺽 삼켰다.
– ‘사···사사, 사직,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 ‘얼마든지요.’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였지만 사진도 가득 찍었지. 당장 내일 저녁에 비엔날레가 개막하는대로 해외로밍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팬카페에 사진들을 올릴 생각이었다.
다들 부러워하라지.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에 못 갔던 서러움을 이번에야말로 풀겠다. 공민석이 그렇게 생각하며 을 바라보았다.
너무 집중하여 바라보는 탓에 옆에 누가 있는지도 몰랐다.
“석이의 작품을 좋아하는감?”
응? 언제 옆에?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공민석이 후드를 눌러쓴 채, 옆을 돌아보았다. 후드 아래로 드러난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양, 양선구다.”
“음? 젊은이가 나를 아나.”
장난하나. 공민석이 순간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1세대 조각가이자 비엔날레 초청횟수로 치면 열 손가락 안에도 드는 대한민국 미술계의 커다란 획을 그은 예술가도 모른다면, 어디가서 전업작가라 할 수 있겠는가.
“······양선, 선생님을 모를 분은···여기에 없죠.”
“음? 그런감.”
양선구가 평온한 표정으로 뒷짐을 졌다. 한평생 유유자적 살아온 양선구는 이 나이가 되도록 자신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모른다는 듯 행동했다. 지금도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뭐. 그런 걸로 하고, 그래서 자네는 석이 작품을 좋아하남?”
“네? 그, 그건 왜요?”
“아직 석이의 어머니께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중이실텐데 앞에서 서성거리기에 보통 관심이 아니지 싶었네.”
그래서 궁금해서 물어봤을 뿐이야. 양선구가 고개를 돌렸다. 양선구에게 제 어머니를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강채영과 강현도가 찾으러 가는 강석의 뒷모습이 보였다.
공민석도 강석의 뒤꽁무니를 시선으로 쫓았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시선은 어느새 바닥을 향해 있었다.
“······네. 뭔가 고결한 느낌이 들어서 좋아합니다. 성스럽고, 강하고, 위대하고, 아름답고···”
끝없이 이어지는 칭찬에 양선구가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강석의 작품이 이름 모를 젊은 작가를 단단히 홀려놓은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후드를 뒤집어쓴 젊은이. 공민석이 불쑥 고개를 들어 올렸다.
“······특, 특히 이번 작품은 더더욱 좋아질 것 같고요.”
공민석은 가만히 바라보는 양선구에게 묻지도 않은 답을 내놓았다.
“인간, 이 작품은 특히 작품을 바라보는 인간 그러니까 화자를 향한 사랑이 느껴져서 좋습니다. 묘하죠. 가장 하이라이트 부분에 를 조각해서 일순 자애로운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놓은 듯 하지만, 자세히 느껴보면 하이라이트는 가 아니니까요.”
한국관의 주제는 구원이었다.
그리고 급하게 참여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강석이 이를 놓쳤을 리는 없다. 그것이 강석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공민석의 생각이었다.
강석을 저 위에 올려놓고 생각하니 보였다.
“이, 일단 첫번째 힌트는 입니다. 이라는 곳은 검색을 해보니까 성당에 고해소라는 곳이 있더라고요. 아마 거기서 본을 따온 것 같습니다. 꼭 성당을 축소해놓은 것처럼 양각되어있는 문양들과 구획별로 나눠진 부조 조각들은 전부 죄를 빌고 용서를 받는 내, 내용입니다.”
“호오······”
양선구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공민석을 바라보았다.
공민석이 고개를 들어 올려 양선구를 쳐다보았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 공민석의 눈동자에는 양선구가 정면으로 비추어지고 있었으나, 공민석은 양선구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참으로 묘한 시선이었다.
“그, 그거 아십니까? 강석님이 조각한 저 하얀 튤립의 꽃말은 새로운 시작, 사과, 용서입니다. 이, 인상적이죠. 저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건 죄를 빌러 가는···그러니까 사과를 하러, 용서를 받으러 가는 길이란 겁니다. 문이 육중한 것도 무거운 발걸음, 그그, 그런 걸 표현하거나 그런 자리라는 걸 은연중에 표현한 게 아닐까 싶긴 합니다만.”
공민석은 투명한 시선으로 수학 계산기를 두들기듯이 또는 키보드를 치듯이 허공을 누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협소한 공간에 작은 숨구멍, 살짝 들어오는 빛, 음영진 그늘 속에 갇혀서 몸을 웅크리고 앉아야 하는 의자. 꼭 고해소의 신도가 앉는 자리를 떠오르게 합니다. 그곳에 앉으면 선, 선생님도 보셨겠지만 한국어로 [죄 없는 자만이 일어나 나가라.]라고 쓰여있죠. 아, 한, 한국어로 쓴 것은 저도 왜 그런 선택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평소에 라틴어나 이탈리아어를 자주 차용하셨는데···이번 작품은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전시하는 것이고 천주교에서 좋아할만한 작품을 만들었으니 이탈리아어가 좋았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 저 대, 대화중이었죠?”
사실 이미 공민석은 양선구가 앞에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았다. 공민석은 과열되어가는 컴퓨터처럼 말을 속사포로 말을 쏟아냈다.
양선구는 생각했다.
그는 지금 제가 이 자리를 뜬다고 하더라도 말을 계속할 거라고. 그러나 양선구는 공민석의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로워 자리에 남아있었다.
굉장히 날카로운 것이 옛적에 화자의 시점을 서술하라는 문제는 항상 백점을 맞았을 것 같은 분석이었다.
“어쨌든 돌아와서 [죄 없는 자]가 애초에 있을까요. 그 문장은 용서를 비는 시간을 가지라는 강석님의 의도가 다분히 느껴졌습니다. 용서를 비는 시간은 길죠. 용서를 빌 것이 없고 죄 없는 자는, 그냥 일어나서 나가는 겁니다. 왜요. 이게 중요한 포, 포인트인데···나간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앉아있는 자만이 정답을 알 수 있죠. 문, 문, 문이 열리잖아요.”
후드티를 입은 그는 낯을 가리는 와중에도 눈을 깜빡거리며 말을 쏟아냈다.
“고, 고해, 고해성사는 원래 사제가 듣는데 사제가 잘못을 고백한 신도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사합니다. 용서를 하는 사람은 사제가 아니예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지. 십자성호. 이, 이거 맞나.”
공민석은 눈을 깜빡였다.
빛.
최고의 연출가.
빛을 머금어 제 따스한 품으로 품어주는 동정녀 마리아. 모후. 여왕이신 어머니.
양선구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아랑곳 않고 공민석은 무언가 정답을 찾아헤매는 사람처럼 기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그 거울에 덧댄 스테인글라스 방의 빛이 진짜인 겁니다. 구원의 빛이 를 통해 내리쬐는 겁니다. 네. 그, 그게 구원이에요.라는 존재를 통해 품어주는 빛. 용서는 아니죠. 용서는 아니지만 그게 진짜···따스하셨죠?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답고 따스했어요. 대리석의 특징인가···”
품 속에 들어갈 때 정확하게 머리를 스치는 손과 얼굴에 내리쬐는 빛이 저를 구원하는 느낌. 어머니의 태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그 따스하고 자애로운 빛을 떠올리며 공민석이 눈을 감았다.
“어, 어쨌든 전 그래서 좋습니다. 이, 이번 작품은, 작품을 보고 위대함이나 존경심을 느끼라는 게 아니라···마음의 구원. 인간을 돌보는 그 마음이 좋습니다. 오만한 신 같지만 자비롭죠. 소, 솔직히 이건 성장입니다. 한국의 미켈란젤로라고 강석님이 불리셨는데···그, 그거 아십니까. 미, 미켈란젤로는 에 대해서 인체 비율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을 때 그 작품을 하느님이 보시라 만든 작품이라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천재성이 인정받았지만 예, 그건 신을 위한 작품이었죠. 하지만 이 대조를 보라고요. 가, 강석님은 인간을 위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공민석이 감동까지 느낀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 진짜 백미는 그거죠.”
공민석이 슬쩍 뒤를 돌아 문을 바라보았다.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천국의 문.”
“······천국의 문이라···”
양선구가 웃음을 터트렸다.
일전에 강석이 했던 말이 떠올라서였다.
– ‘구원을 만나기 위해 지나칠 때는 고해의 문이고, 구원을 만나고 나서야 천국의 문이 될 테니까요. 저 나뭇더미의 이름은 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이제야 강석의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천, 천국의 문 맞아요. 분명 그거예요. 전 그 문을 열고 나와서 새 사람이 되었거든요.”
“그런감?”
“네. 저, 저는 비엔날레가 끝나는 대로 용서를 빌러 갈거예요. 용서받지 못한다해도···네, 용서를 빌러 갈 겁니다.”
그때였다. 우울함이 서렸던 얼굴에 해맑은 빛이 서렸다. 양선구가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제 아버지와 여동생을 끌고 자리로 돌아오는 강석이 있었다.
양선구가 웃음을 뱉으며 수염을 길게 쓸었다.
“자네.”
“······아, 안보여. 비켜. 아, 네?”
공민석이 후드 너머에서 다시 시선을 밝혔다. 양선구가 공민석의 작품을 떠올리며 툭툭, 제 턱을 두들기다 말했다.
“예술 평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남?”
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도 한다.
양선구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
“아.”
백명희가 눈을 깜빡였다. 살짝 팔과 다리가 저린 게 포근한 품 속에서 너무 오래 있었던 것 같다. 얼마나 있었지. 시계가 없는 이 곳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핸드폰을 더듬거리며 찾아보니 대충 짐작만 해보아도 40분이 훌쩍 넘은 것 같았다. 세상에. 백명희가 당황하여 주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에도 작품을 혹시 건드릴까 망가질까 걱정하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석이가 기다리겠어.’
백명희가 몸을 돌렸다. 어서 나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백명희 눈이 커졌다. 백명희가 살짝 두손을 모아 입을 가렸다.
“······천국?”
자개와 황금, 그리고 루나 대리석의 자투리를 잘게 잘라서 조각한 문이 보였다. 빛이 문 위로 물결치고 있었다.
하늘 위.
구름 위에 황금빛 햇볕이 부딪혀 하얀 오로라가 만들어진다면 이런 느낌일 터였다.
모두가 저와 같은 생각을 할 거였다.
구름 위의 문.
백명희는 생각했다.
만약 천국이 있다면, 천국이 존재한다면, 이 문은 마땅히 그곳의 문일 거라고.
* * * *
“포르타 델 파라디조, 천국의 문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Anche le porte del paradiso sono buone).”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155. 1512년 1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