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214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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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분명한 확답은 피해야 했지. 어쨌든, 자네 같은 오랜 친구를 위해 일하겠네. 자네의 성의에 보답해야지.”
바르톨로메오 안지올리니로부터 전해져 온 편지를 읽은 미켈란젤로는 답 편지에 위와 같이 썼다.
성의에 대한 보답.
여기서 말하는 성의란 안지올리니가 편지를 통해 산 마르코의 추기경 도메니코 그리마니가 미켈란젤로 작품을 애타게 바란다는 걸 전해준 것을 뜻한다고 봐야 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그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아킬레이아 대주교이자 동시에 산 마르코의 추기경인 그리마니가 진심으로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원한다고 구구절절 써있는 구절들.
그리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한 것이 아니라 50두카토를 선금으로 지급하며 최고위성직자가 예술가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예우(禮遇)해주는 점까지. 진심어린 대우에 미켈란젤로는 이리 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대우 받는다면 그것에 대한 답을 할 줄 아는 자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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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관리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응?)”
“(지속적인 관리입니다.)”
아슈라 왕자는 어리다. 그러나 어리다고 해서 사고까지 마냥 어리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슈라 왕자는 어릴 때부터 고등 교육을 받은 자였고, 아주 어려서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넘치는 돈을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배운 자였다.
하여 아슈라는 강석이 지속적인 관리라는 말을 언급하자마자 그것에 숨겨진 뜻을 알아들었다.
아슈라 왕자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겠지? 강석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저 나무를 관리해주겠다고 한 게 맞지? 아슈라 왕자가 몸을 바짝 식탁 쪽으로 당겨앉았다.
“(진짜로?)”
아슈라 왕자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강석은 마치 안 사주겠다고 했던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말을 번복하는 아버지가 된 기분이었다.
“(저희 사이가 틀어지지 않는다면 당신이 선물한 이 집에 일년에 몇 번은 방문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내 집인데. 강석이 뒷말을 흘렸다. 맞다. 아슈라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강석의 집이다. 이미 일주일 전에 진짜 강석의 집이라는 서류도 다 넘긴 참이었다.
세금도 완벽하게 정리를 끝내주었고, 손이 많이 들어가는 자택 관리와 정원 관리 역시 아슈라 왕자가 무상으로 진행해주겠다고 공증을 받은 서류도 쥐어주었다.
“(그렇지. 이런 집을 썩히면 아깝지.)”
아슈라 왕자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이 집 주변이 죄다 아슈라 왕자가 작품을 사들여 모아놓은 미술관이었다. 수도 리야드, 나아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예술을 공부하기에 여기만한 곳이 없다고 봐야 했다.
원래는 남들에게 잘 공개안하는 미술관이어도 강석에게는 언제든지 공개할 용의가 있는 아슈라 왕자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저택과 정원에 돈을 안 아끼길 잘했다.
‘솔직히 강석에게 준다고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강석은 알게 모르게 부메랑이나 요요 같은 성격일 수 있겠다. 아슈라 왕자가 작게 중얼거렸다. 준 만큼 돌려주는 타입이라니. 아슈라 왕자 근처에선 자주 볼 수 없는 타입이었다.
아슈라 왕자가 눈을 빛내었다.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마음에 드는 것 투성이었다.
아슈라 왕자가 덤덤한 낯으로 차를 마시고 있는 강석에게 맹세하듯 읊조렸다.
“(나 정원이랑 저택 관리 진짜 열심히 할거야.)”
정확하게는 아슈라 왕자가 아니라, 아슈라 왕자 밑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겠지만. 어쨌든 관리감독은 아슈라 왕자가 할 테니 아예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강석은 손에 들려있던 찻잔을 조심히 내려놓았다.
달깍, 하는 소리가 어쩔 수 없니 테이블에 깔렸다.
강석은 아슈라 왕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셔야 할 겁니다. 관리를 안해주시면 나무가 죽을테니까요.)”
벽으로 가려진 너머의 나무가 보이기라도 한다는 듯 강석의 고개가 슬쩍 돌아갔다. 제 나무고, 제 정원이고, 제 집이지만···언제까지고 이곳에 머물고 있을 순 없었다.
집이 여기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이곳이 마음에 들기는 했다. 그래서 기왕이면 놀러왔을 때 첫날 보았던 녹음이 그대로 유지되었으면 좋겠다고, 강석은 생각했다.
“(나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데?)”
“(자주 찾아오지 않겠죠.)”
강석은 꽤 자연물을 좋아하는 편이었으므로 진짜로 그럴 확률이 높았다.
나무가 죽을 정도면 정원의 잔디도 다 말라붙어 있을 터인데···그렇다면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먼 나라에 있는 집을 과연 강석이 보러올까. 확률은 희박했다.
저택. 정원. 잔디. 나무.
그 중에서도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정원 가운데에 뿌리를 박아넣은 울창한 나무였다. 제 집이어도 보러올 것이 있어야 보러오지 않겠나. 강석은 그게 바로 저 울창한 나무라고 생각했다.
“(잘 관리해야겠네.)”
“(그렇죠.)”
어떻게 보면 저 나무는 자신과 아슈라 왕자가 친구라는 증거물이기도 했다.
많은 모래 바람이 부는 사우디아라바이에서 저 정도 크기 되는 나무를 계속 먹여살리려면···많은 돈이 필요할거고 시간도 많이 들 것이다. 그런데도 아슈라 왕자가 일년에 자주 못 오는 강석을 위해서 정원과 나무를 관리해준다면, 그게 바로 우정의 증거물이나 다름 없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며 강석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아슈라 왕자를 바라보았다.
제 친구를 계속하고 싶다면 나무를 잘 관리해야 할 거라는 무언의 응시였다.
그리고 아슈라 왕자는 찰떡같이 그 눈빛을 읽어냈다.
“(잘 관리할 거야!)”
“(그럴거라 생각합니다.)”
강석이 살짝 웃었다. 워낙 옅은 미소라 바로 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슈라 왕자도 구분을 못했을 정도로 아주 옅은 미소였다.
아슈라 왕자는 자신을 응시하는 강석을 피해 눈을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진짜 고마워.)”
“(됐습니다. 어차피 제 집이고, 제 나무라니까요.)”
강석은 강조했다.
1,600만 파운드와 별도로 아슈라 왕자가 선물해준 집과 나무였다. 강석은 그걸 얼렁뚱땅 아슈라 왕자의 것이라는 둥, 작품을 아슈라 왕자에게 선물했다는 뉘앙스를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아슈라는 친구라서 놀러오는 것 뿐이고요.)”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됐습니다.)”
낯간지러운 말은 그만하라는 듯 강석이 입을 막았다.
자신은 그저 잘 관리된 집에 머물면서 제 나무를 조금 제 취향으로 다듬을 뿐이었다.
다듬는 데 필요한 재료는 가위밖에 없었고, 가위는 쿠킹호일이나 알루미늄캔을 자르는 것만으로 날을 관리할 수 있는 간편한 날붙이였다.
그리고 저렇게 울창한 나무는 잘 관리되면 관리될수록 손이 많이 안 가기 때문에 일년에 몇 번 놀러오면서 다듬는다면 시간을 그리 길게 들이지 않고 다듬을 수 있을 터였다.
나무 한 그루 달랬더니 나무에 정원과 자택까지 패키지로 묶어서 선물하는 큰손이신 아슈라 왕자에게는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었다.
“(친구끼리는 원래 그렇게 재고 따지는 거 아닙니다.)”
“(허어···!)”
아슈라 왕자가 놀랍다는 듯 입을 벌렸다.
이것이 친구···!
아슈라는 다시 태어나도 강석의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러면서 입꼬리를 비질비질 움직여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안달이 난 교황과 추기경의 얼굴이 떠올랐다. 물론, 교황과 추기경은 이것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다.
‘강석이 비밀이랬으니까!’
아슈라는 이 일을 일기에만 적을 거였고, 일기는 자신이 죽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금고에 보관중이었으니···제 사후에나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아슈라는 교황과 추기경보다 어리므로···그들은 아마 끝까지 모를 것이다.
아슈라 왕자가 완전히 승리했다는 생각을 하며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얼굴들을 떠올렸다. 기분이 좋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석의 고요한 표정으로 차를 마실 뿐이었다. 강석 입장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돈이 많은 사람 중에서도 상위권에 있을 아슈라 왕자가 보여준 명에로운 대우에 마땅한 답례를 한 것 뿐이었다.
누군가 먼저 그 성의를 보이고 행동한다면 그에 걸맞는 자세로 대답하는 것. 강석은 그런 쪽으로는 칼같은 사람이었다.
“(석. 나는 죽을 때까지 석의 친구지?)”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친구란 세월이 증명하는 거였다.
지금 당장은 친구인 것 같아도 몇 년이 지나고 보면 연락하기도 꺼려지는 사이가 될 수도 있고, 십몇년이 지나도 연락 한 번에 가까울 수도 있었다.
“(아냐. 난 직감이 왔어. 석이와 나는 언제나 친구일거야.)”
아슈라 왕자는 아니라면 그렇게 만들 것이라는 듯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강석을 바라보았다. 강석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우정은 이 집 정원 가운데 굳건히 버티고 있는 나무가 증명할 것이다.
우리의 우정이 지속된다면 나무는 언제나 푸르르고, 그 안에는 풍파에도 굴하지 않는 조각상 하나가 머무르고 있겠지. 그러나 우리의 우정이 어긋난다면 나무는 죽고, 푸르른 정원은 흙먼지에 덮히고 말라붙으며 조각상은 풍파에 스러질 것이다.
그건 오로지 시간만이 증명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나저나 석이. 저 작품의 이름은 무엇인가?)”
이름?
둘만 아는 작품에 이름이 왜 필요한가. 그게 왜 필요하냐는 표정으로 아슈라 왕자를 바라보았으나, 아슈라 왕자는 꼭 필요하다는 듯 강석을 바라보았다.
강석은 이제 바닥을 드러내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한숨처럼 내뱉었다.
“(·········대충 라고 부르죠.)”
“아미치찌아? (그게 무슨 뜻인데?)”
아슈라 왕자는 이탈리아어를 할 줄 몰랐다. 강석은 밤그림자에 다 가려졌을 조각상을 떠올리며 입을 다물었다. . 이탈리아어말로 우정이란 뜻이었다.
* * * *
“(···한국에 집을 하나 살까?)”
아슈라 왕자가 턱을 괸 채, 중얼거렸다.
라고 작품의 이름이 지어진 지 이틀이나 지나있었다. 그러니까 오늘이 9월 11일이었다. 강석이 갈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슈라 왕자는 개인 미술관 창문 너머로 보이는 강석을 응시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강석이 작품을 완성해줄수록 기쁘면서도, 제 미적 취향과 148% 일치하는 예술가가 떠날 때가 다가온다고 하니 울적해졌다.
이럴 거면 한국에다 집을 하나 사서 강석의 작품 투어라도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역시 사는 게 좋겠지? 거기까지 결심했을 때. 아슈라 왕자의 결심을 단칼에 자르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안 됩니다.)”
“(뭐?)”
아슈라 왕자가 눈썹을 찌푸렸다.
“(왜 안 되는데?)”
안 되는 게 어딨어.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그의 짜증스러운 성미가 고개를 들었다.
“(아직 교육을 다 이수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왕자님께서 해외에만 머무신다면 강석 작가님이 왕세자님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왕세자 전하가 강석을 안 좋게 보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냐는 듯 수행원이 아슈라 왕자를 살살 달랬다. 하는 말만 들어보면 이미 아슈라 왕자가 한국에 집을 사면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 말에 아슈라 왕자가 입을 비죽이며 턱을 다시 괴었다. 흥. 사실 아슈라 왕자도 한국에 집을 사지 않는 이유가 그래서였다.
강석의 작품이 제일 많이 있는 서울에 집을 한 채 사버리면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올 자신이 없었다. 거긴 천국일거야. 아슈라가 황홀한 것을 떠올리듯 풀린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아침까지 보았던 이 떠올라서였다.
이제 거의 완성이 코앞인 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스해지는 조각 군상이 아닐 수 없었다.
어린아이의 곁에 붙여놓은 수호천사들이 나뭇잎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은 한폭의 그림 같은 조각상은 보고 있으면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갓난아기처럼 작고 귀여웠다. 코도 작고, 입도 작고, 손도 작고, 눈도 작았다. 또 어째서인지 코와 입은 반질거리는 것 같아 보고 있으면 손발이 간질거리도록 사랑스러웠다.
물기가 살짝 묻은 것 같은 작은 아기 천사들이 오밀조밀한 생김새로 역동적인 움직임을 유지하며 햇살에 흔들리는 풍경은 문장 몇 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으아아. 생각하니까 또 보고 싶었다. 아슈라 왕자가 그 사랑스러운 작은 것들을 떠올리며 손발을 꼼지락거렸다.
이걸 자신만 본다는 것이 억울해 어제 일기만 7장은 쓴 것 같았다.
“(이번에 주문한 폴라로이드는 왜 아직도 안 온 거지?)”
“(곧 올 겁니다.)”
“(그래···역시 한국에는 집을 사지 않는 게 낫겠지?)”
“(············네.)”
“(역시 그렇지······아! 강석의 집도 단독주택이라고 하지 않았나? 한국에서는 꽤 큰편이라고 들었는데···그래. 난 강석의 친구니까 이번에 한국에 가면 그 집에 머무는 거야. 내가 산 집이 아니니까 오래 머무르기도 눈치보이고, 그리고 숙박비 명목으로 강석에게 돈도 좀 쥐어주고, 어때?)”
“(··················.)”
수행원이 침묵하는 그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평소의 아슈라 왕자였다면 신경질을 냈겠지만 그는 지금 열흘가까이 미술관 간이 숙소에 머무르면서도 낮이고 밤이고 싱글벙글 모드였다.
“(왜?)”
아슈라의 물음에 문밖에서 조심스럽게 답이 넘어왔다.
“(······나뭇잎 다듬기가 끝났다고 합니다.)”
나뭇잎 다듬기. 강석이다. 강석이 나뭇잎을 다 다듬었다고 전달해온거다. 아슈라 왕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뭇잎이 다 다듬어졌다면 그게 뜻하는 것은 하나였다.
가 완성되었다.
즉, 강석이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아···안 돼!
215. 페르실레스와 시히스문다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