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232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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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자(Il Magnifico).
르네상스시기의 로렌초 데 메디치를 부르는 이름이다.
1469년, 로렌초는 이미 피렌체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다. 그는 피렌체를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시켰고 황금기를 맞이하게 했다.
그 위대한 메디치의 전성기를 이끈 수장을 두고 누가 감히 일 마니피코(Il Magnifico, 위대한 자)가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미술과 시, 건축과 학예, 외교와 교육이 그의 손에서 만개하듯 피어나니 시민들의 사랑과 지지가 로렌초 데 메데치를 저 높은 곳에 올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시민들은 그를 위대공, 일 마니피코, 위대한 자라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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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비누라거나?”
비누···? 양선구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대리석에 이어서 다른 돌도 주고, 해외 작업실도 구해준데다 보석류도 가져다주니 이제 내가 만물상으로 보이는 모양이구남. 하하. 양선구가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내저었다.
“비누를 취급하지는 않지.”
비누에는 관심이 없다.
양선구가 취급하는 물건들은 죄다 자신이 관심있는 것들을 모으다 처치 곤란일 정도로 쌓인 것들 뿐이었다.
사실 취급한다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양선구는 그냥 들고 있는 현금으로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돌을 사들였을 뿐이다. 그러다 돌이 넘쳐나길래 작업을 했고, 남들 눈에 띄였고, 인기가 많아져서 이른 나이에 해외에 나가게 되었다.
돈은 걸림돌이 아니었기에 해외에서 여유롭게 작업을 하는 도중에 마음에 드는 돌을 발견하면 또 사들였고, 그러다 이곳저곳 들르는 나라들이 자연스럽게 많아졌다.
인기가 높아질수록 숱하게 해외에 나가게 되었고, 그러면 또 발견하지 못했던 돌을 발견하게 되고, 사들이고, 그러면서 돌을 전문적으로 모으는 컬렉터들의 명함이 쌓이더니 언제부턴가 더 쉽고 안전하게 사모을 수 있게 되었다. 돌을 사도 작품이 팔려 또 돈이 쌓이니 양선구의 이 취미생활은 계속되었다.
돌에서, 보석으로, 보석에서 작업실로, 작업실에서 다시 돌로, 사들이고 사들이고 사들이다보니 나라별로 창고를 구했는데도 더 놓을 데가 없어졌다. 그래서 나누었다. 팔기도 팔았고, 그냥 준 것들도 꽤 되었다. 그리고 작업용으로 소진한 것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팔고, 나누고, 또 팔고, 팔고, 그러면 또 돈이 쌓이고 양선구는 다시 사들이고···진짜 이게 반복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어디가서 한국에서 제일 가는 석재상이라고 누가 소개하면 민망하기만 했다. 그래도 강석이 당장 필요한 것을 떠올리자마자 저를 떠올렸다는 사실이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작품 때문에 대리석뿐 아니라 비누도 필요한 모양인데, 비누를 어디서 구할까 생각을 하자마자 양선구가 떠올랐다는 것이니. 기분은 오히려 좋았다.
“···역시 그렇죠?”
“뭐 네가 부탁하면 한 번 알아는 보마. 근데 갑자기 비누는 왜 찾는 건감?”
“아. 그게요.”
강석이 뒷목을 긁적였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오늘 아침까지 만지고 있던 나무 목재쪽으로 돌아갔다. 나무목재는 1층부터 4층까지 강석의 조각도가 닿지 않은 곳이 없다는 듯 꼼꼼하게도 꾸며져 있었다.
“······목욕탕을 이렇게 꾸미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서요.”
“으음?”
양선구의 시선도 강석을 따라 목재로 이동했다. 양선구는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건물을 지을 거는 아니지?”
갑자기 목욕탕을 왜 짓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양선구는 강석을 신뢰했다. 그가 어떤 이유에서든 목욕탕을 만들겠다고 정했다면 그저 지지할 따름이었다.
애초에 양선구가 생각하는 강석은 불가능을 모르는 소년 그 어디쯤이었다.
‘그런 석이 녀석이 목재를 구해다 예행연습을 해볼 정도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니 안 도울 이유가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양선구가 강석에게 힐긋 시선을 주었다. 강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을 지을 건, 아니란 소리였다.
“건물을 짓진 않을 거고요. 적당히 괜찮은 호텔 하나를 사서 용도변경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그렇지. 호텔. 호텔이 배관공사하기에도 대리석을 깔기에도 편하긴 하겠어. 하중 무게 문제도 있고 말이지. 일단 나를 부른 건, 목욕탕에 쓰일 대리석 때문이겠지? 보통 대리석뿐만 아니라 석이 네가 보여준 저 조감도에 따르면 조각상이나 기둥들도 죄다 대리석인 모양이니까 말이다.”
“예. 맞아요.”
목욕탕에는 보통 대리석을 이용한다.
대리석은 거칠지도 않고, 엄청나게 매끄러운 축도 아니다. 물론 많은 사람이 오고가고 물이 그 위에 쌓여있으면 미끄러워지는 것은 동일하나, 다른 돌들에 비한다면 안전상 괜찮은 축에 속한다. 어떤 목욕탕을 가도 대리석인 이유가 그거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업주 입장에서도 또한 대리석만큼 때가 끼지 않게 관리하기 쉬운 것도 없다. 청소하기 편하다는 소리였다. 매일같이 물이 흐르는 장소인 만큼 청소하기 편리하다는 건 매우 대단한 장점이었다. 그리고 다른 돌에 비해서 다치기도 덜 다치지.
어찌되었든 목욕탕에 사용할 대리석의 양이 적당할 리가 없는데다 거기에 조각용 대리석도 구하려고 하니, 양선구만큼 물어보기 적당한 적임자도 없었을 거다.
“일단 네 말대로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게 뭔지 알겠구나. 필요한 대리석 종류가 한둘이 아니야. 적당히 필요한 것도 아니고···이거 운송비용만도 꽤 되겠는데···그래. 이런 큰 목욕탕을 어디에다 설치하려고? 서울? 아니면 경기도?”
“·········음.”
“아랫지방에 설치하려고 했남? 부산이나 울산? 석이 네가 그쪽에 연고가 있던감?”
“············아뇨.”
“으잉?”
서울도 아니고 경기도도 아니고 부산과 울산도 아니면, 어디에다가 설치하겠다는 건감. 이런 거대한 목욕탕을 운영하려면 만들고서부터가 시작이었다.
르네상스 복합쇼핑몰이 사람들에게 외면받다가 그렇게 유명핫플레이스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서울이어서였다. 지방에 있으면 보러 가고 싶어도 동선이 편할래야 편할 수가 없었다.
전국 어디에서나 서울은 쉽게 올라갈 수 있게 대중교통이 마련되어 있다. 기차, 버스 할 것 없이 편하게 갈 수 있지만 지방에서 지방으로 넘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러 가고 싶어도 보러 가기 힘든 사람들이 생길 거고, 외국인들은 더더욱 그렇다.
큰 도시가 아니라면···커다란 행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평소에 성수기를 제외하고 비수기에는 극도로 사람이 적어질 것을 대비해야 하고, 그런 상황에서 목욕탕은 일반적으로 살아남기가 어려울 거였다.
다른 게 아니라 이 정도 크기의 4층짜리 목욕탕을 유지하는 게 어려울 거란 소리였다. 물론 밑빠진 독에 물붓기처럼 돈을 퍼붓는 것도 상관은 없지만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남?
양선구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강석을 바라보는 그때.
강석이 답을 제시했다.
“한국이 아니라 이탈리아에 설치할 겁니다. 이탈리아 피렌체요. 아까 사겠다고 한 호텔도 피렌체에 있는 낡은 호텔을 하나 사서 보수할 계획으로 말씀드린 겁니다.”
“피렌체?”
“그리고 목욕탕뿐 아니라 도서관도 하나 만들 생각입니다.”
“···그것도 피렌체에 말인감?”
“예.”
“·········피렌체와 너 사이에 무슨 깊은 인연이 있기라도 한감?”
갑자기 피렌체라니.
양선구가 조금 놀랐다는 듯 흰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런 양선구를 바라보며 강석이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놀라는 게 당연했다. 양선구 입장에서는 며칠만에 본 손주 같은 녀석이 갑자기 강석이 세계지도 위에 다트촉을 하나 던져서 걸린 지역에다가 목욕탕과 도서관을 짓겠다고 나선 것마냥 느껴질 터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양선구는 피렌체와 강석의 연결점을 찾아내었다.
– ‘석아.’
– ‘예. 선생님.’
– ‘그···환경미술이면·········가르시아 형제 대신에 피렌체에서 얼굴마담으로 뭘 맡길지 모르겠다만, 그 저기···보통 지자체는 돈하고 작품을 교환하지 않남? 으음? 아닌감?’
그날이다.
가르시아 형제와 자신의 방문이 맞물린 그날. 아슈라 왕자가 강석의 집으로 홈스테이를 하러 온 그날. 가르시아 형제는 강석을 피렌체 환경개선 프로젝트에 대체인력으로 소개시키겠다고 했다.
양선구는 그 프로젝트에서 강석의 작품이 강제로 피렌체 당국 소유로 넘어갈 수 있음을 지적했고, 강석은 걱정하는 양선구에게 의미 모를 말을 남겼었다.
– ‘아니요. 보통은, 그렇죠.”
– ‘보통은···말이지. 뭔가 묘수가 있단 소리로 들리는데 이 늙은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남?’
– ‘맞을 겁니다.’
– ‘맞으면 맞지. 맞을 거라는 건 또 뭔감.’
– ‘맞습니다.’
– ‘그래?’
양선구의 눈이 흡 뜨였다. 묘수가 있다고 했었다. 이게 그 묘수로구나. 환경개선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도 작품을 넘기지 않는 방법.
강석이 제 돈을 들여 목욕탕과 도서관을 만든 뒤에 거기다 작품을 놓는 거다. 그걸 라이브로 하든 아니면 만든 다음에 목욕탕과 도서관을 오픈하든, 전자든 후자든 피렌체 당국은 목욕탕과 도서관이라는 시설까지 만들어준 강석에게 작품을 내놓으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런 거대한 사업체 두개를 피렌체에서 운영하는 강석은, 피렌체에서도 상대하기에 부담감이 있을 테니.
만약 잘만 운영된다면 피렌체 시민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으며 르네상스 발상지에서 유명한 조각가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나쁘지 않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지 않남.”
“예?”
“시간 말이야. 환경개선 프로젝트에 가르시아 형제가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는 라스베가스 일정과 겹쳐서라고 했는데, 본격적인 시작이 11월이었남? 10월에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시상식에 참여해야 할 거고, 피렌체로 프로젝트 시작보다 일찍 넘어간다고 해도······”
아니. 이런 루트 계산이 쓸모가 없다. 무려 4층짜리 목욕탕을 작업물로 채우는 작업이다. 이 건축모형대로 채우려면 도서관은 둘째치고, 목욕탕을 완성하기에도 시간이 모잘랐다.
양선구가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미간을 세모꼴로 좁혔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강석이 양선구의 흐려지는 말끝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비누에 대해서 물어본 겁니다. 목욕탕을 완성하기에는 모자른 시간이라고 생각되어서요.”
양선구가 작업실로 들어왔을 때. 강석이 뒤돌아보지 못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가르시아 형제의 대체인력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작품을 빼앗기지 않게 목욕탕과 도서관을 만들고, 목욕탕과 도서관을 랜드마크화 시켜 성난 시민들을 달래면서 동시에 환경 개선 프로젝트에도 부합될만한 방법을 떠올리느라.
양선구가 미간을 좁혔다.
“······비누가 묘수에 대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감? 어떻게?”
강석이 양선구를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혔다. 양선구는 거부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그와 동시에 강석 역시 간이의자를 끌어다가 양선구 앞에 놓고 앉았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각개격파로 생각하면 되더라고요.”
“각개격파?”
“예. 일단 조각을 만드는 라이브쇼를 선보여서 가르시아 형제가 요청한 대체인력 제안을 해결하고, 동시에 환경개선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에 목욕탕과 도서관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처럼 건축과 관람이 가능한 장소로 랜드마크화를 시키면서, 조각과 이 두 건물간의 긴밀한 연결점을 찾아 함부로 작품을 가져갈 수 없게 해놓고, 그와 동시에 성난 시민들을 달래주면 되는 일인거죠.”
어떻게 보면 강석 입장에서는 잘된 일이었다.
이번 목욕탕과 도서관 건축은, 강석이 서울에다가 가족 무덤겸 작품 전시관을 만들기에 앞서 예행 연습이 되줄 터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처럼 130년의 건축 역사를 지니고 있지 않아도 건축되고 있는 현장이 랜드마크화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예행 연습 말이다.
강석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강석을 바라보며 양선구가 입을 살짝 벌렸다. 각개겨파라더니, 정말 각개격파였다. 난도가 높은 동시 작업이었다.
“···거기에 비누가 필요한 거고 말이지?”
“예. 네 가지 일 모두에 쓰일 겁니다.”
“도대체 어떤 대단한 비누이길래 그 일들에 다 쓰일 수 있단 말인감?”
“그냥 하얀 비누면 되요. 기왕이면 냄새도 좋은 걸로요. 아. 찰흙같이 잘 뭉쳐지는 비누면 좋겠어요. 정확하게는···”
강석이 말끝을 흐리며 드로잉북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양선구에게 내보였다. 양선구의 눈이 커졌다. 아까 보았던 목욕 욕탕 앞에 세워져있던 물병 든 아가씨를 그린 데생이었다.
섬세한 소묘가 가슴을 저릿하게 건들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강석의 소묘는 언제 보아도 감탄이 절로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방금까지의 대화 주제를 잊고 강석이 그려놓은 아가씨 데생에 집중하는 그때.
강석이 연필로 아가씨 주위에 직선 네개를 찍찍, 그었다.
“어어···!”
양선구가 기함을 하듯 입을 쩍 벌렸다.
흰 여백에 그려놓은 것과 네모로 된 직사각형 연필선 안에 그려넣어진 데생은 느낌이 다른 법이었다.
이게 뭔. 꼭 이렇게 했어야만 했냐. 양선구가 놀란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입을 벌린 채, 강석에게 시선으로 항의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석은 묵묵하게 말을 이을 뿐이었다.
“조각상을 우선 만들어놓을건데 그 위를 이렇게 덮을 수 있는 비누가 필요해요.”
“·········음?”
놀랐던 가슴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훅치고 들어오는 말에 양선구가 눈을 깜빡였다. 이 직사각형 연필선처럼 조각상을 덮을 비누가 필요하다고?
“조각상을 숨기는 건감?”
“예. 그리고 그 비누로 아가씨를 숨겨놓은 채 조각을 하는 겁니다.”
상자 구조로 되어있는 마트료시카처럼요.
233. 마트료시카(Matryosh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