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46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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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피에트로 대성당.
또는 성 베드로 대성당. 그도 아니면 성 베드로 대성전, 다른 이름으로는 베드로 대성전, 가끔은 바티칸 대성당, 혹자에겐 바티칸 대성전.
수많은 이름을 가진 산 피에트로 대성당은, 가톨릭의 총본산이자 사도들의 바실리카(가장 격이 높은 대성당)이며 가장 큰 성전임과 동시에 교황의 성당이고, 이 땅 위에 가장 신성하고 가장 유명하고 웅장한 건축물이었다.
그 사실은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326년, 초대 교황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세운 이래.
1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에 따라 허물어졌다 브라만테에 의해 다시 개수되고, 줄리아노 다 상갈로와 프라 조콘도, 라파엘로에게 그 이름이 넘겨갔다가, 발다사레 페루치, 안토니오 다 상갈로 일 조바네를 지나.
1547년, 일흔둘의 미켈란젤로가 산 피에트로 건설 책임자로 임명될 때까지 변함이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위대한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건축가를 미켈란젤로라고 기억한다.
1626년, 산 피에트로 대성당이 다시 완공되기까지 120년. 그 중에 미켈란젤로가 건설 책임자로 일한 기간은 15년.
미켈란젤로 이전으로 여섯, 이후로 둘이 더 있음에도 그렇게 기억하는 이유는 뭘까.
위대한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가장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 바로 미켈란젤로였기 때문이다.
갖은 질투와 모략에도 대성전의 돔을 재설계함으로써 장엄하고도 균형 잡힌 바로크 건축의 원형을 되살린 예술가.
그것이 바로 미켈란젤로가 예술가임과 동시에 뛰어난 건축가이기도 했음을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이유였다.
* * * *
“다른 거라면···?”
류수헌이 당황해서 강석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시력이 좋지 않은 탓에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류수헌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흔들리는 초점 사이로 건물 하나가 보였다.
폐놀이공원에 어울리는 으스스한 폐건물이었다. 건물? 설마 건물을? 에이? 류수헌이 말도 안 된다는 눈빛으로 강석을 바라보았다.
“설마 건물을 짓겠단 말씀이십니까? 여기에?”
건물에 흥미가 있더라도 그건 들어주기가 어려웠다. 건물을 건축하기란 매우 복잡한 일이었다.
용적율, 건폐율, 건축조건 등등을 따져봐야 하고 무엇보다 건축이 잘못되어 부실 설계가 된다면 이는 안전상의 문제로 이어진다.
그가 그저 팬심으로 들어주거나, 하고 싶다는 이유로 허락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건축이란 그런 거였다.
애초에 이번 사업 자체가 건축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원해줄 리도 없었고. 이 일은 어디까지나 개인 소유로 있었던 땅을 사 와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율을 뽑아먹을 수 있는 테마 촬영스튜디오를 재단장하는 사업이었다.
버려진 땅이 아님에도 버려진 땅이라 언플하여 처럼 성공적인 핫플레이스를 만들어 그 이윤을 뽑아먹는 게 목표이자 취지였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가만 보자. 건축비용이 많이 올라서 이제 건물 지을려면 5, 6억은 든다했던가···’
류수헌은 건축에 들어갈 단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흔들림 없는 강석의 눈빛 때문인지, 문화예술과에 들어와 똥처리로 맡은 일도 대대적으로 성공시킨 엘리트 공무원으로서의 촉인지 류수헌이 본능적으로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을 때.
강석이 류수헌의 생각을 일축했다.
“아뇨. 건물을 지을 생각은 아니고요.”
류수헌의 생각과 달리 강석은 건물을 지을 생각까지는 없었다.
첫째로는 그럴 시간이 안 되었고, 둘째로는 이곳에 건물을 세울 마음도 없었다. 류수헌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건물을 세울만한 단가가 나올 사업도 아닌 것 같았고.
강석의 흥미는 그게 아니었다.
류수헌과 강현도가 의문을 담은 눈으로 강석을 바라보는 사이. 강석의 눈동자는 다시 폐건물로 돌아가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먼지가 잔뜩 끼얹어진 폐건물을 적갈색 눈동자에 담은 강석이 입을 떼었다.
“개축(改築), 아니. 대수선(大修繕) 정도면 되겠네요.”
대수선?
류수헌이 기억을 더듬었다.
건축 용어에서 대수선이란 아마 증축, 개축, 재건축보다는 규모가 작은 재설비를 말함이었다. 물론 적어도 건축물의 기둥 또는 보, 아니면 내력벽이나 주계단 등의 구조나 외부 형태를 고치거나 바꾸거나, 증설해야만 대수선이라 이름 붙여주었지만.
어쨌든 그 대수선이란 것도 열여덟 아니, 이제 막 한국 나이로 열아홉이 된 고등학생이 하기에는 버거운 일임은 틀림없었다.
‘근데 어째서···’
까닥. 까닥. 강석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바라보던 류수헌이 침을 꿀떡 삼켰다. 르네상스 쇼핑몰 8층에서 보았던 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폐놀이공원이 아니라 그 르네상스 쇼핑몰을 사야 했었다고 혀를 차던 위쪽 분들의 대화도 기억을 스쳤다.
프레스코를 위해 석고벽을 직접 작업했다고 하던가. 류수헌이 눈을 깜빡였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어째선지 강석은 가능할 것 같았다.
“저···그럼 강석 작가님은 폐건물 대수선을 어떻게 진행하실 생각이신건지···”
류수헌이 의견을 말해주시면 경청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나 강석은 입꼬리를 씰룩일 뿐. 계획을 말하지 않았다.
“그건 아직 시기상조 같은데요.”
폐건물을 바라보던 강석이 입꼬리를 일자로 늘리며 뒷말을 덧붙였다.
“만약 저에게 합당한 가격에 저 폐건물 대수선을 맡겨주시겠다 하면, 그때 다시 자리를 만들죠.”
“예? 그래도 아이디어는···”
“언제나 예술 작품은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한 거잖아요.”
건물을 향해서도 예술품이라 아낌없이 칭한 강석이 고개를 돌렸다. 동조를 구하는 눈빛이 강현도를 향했다.
“그렇죠, 아버지?”
“···어어. 그렇지.”
강현도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강석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놀라워하면서였다. 항상 양보하고 참고 성실하고 묵묵하게 열심히 하는 강석만이 기억에 아른거리는데. 언제 이렇게 컸을까. 강현도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태까지 항상 강석이 혼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피력해 온 건가.
대견했다.
그리고 대단했다.
“힌트라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힌트라·········”
강석이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세모꼴로 좁혔다가 손가락을 다시 까닥였다. 그리고 결심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어둠과 괴현상. 성물. 그리고 빛과 성스러움.”
“네?”
“힌트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힌트를 주지 않겠다는 듯 강석이 입을 꾹 다물었다.
* * * *
“고작가님. 오랜만이에요.”
“아. 네. 오랜만입니다.”
“개인전 너무 축하해요. 벌써 기자들이 꽤 왔다갔다 하던데···”
“그렇죠, 뭐.”
제 개인전에 기자들이 왔다가는 게 뭐 특별한 일인가. 고두한은 시큰둥한 표정을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도 고두한의 앞에 있던 사모님은 그런 고두한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 옆을 힐긋거렸다.
고두한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따라 돌아갔다. 거기에는 작품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강석의 작품 이 웅장하게 서있었다.
여인은 벽에 걸려있지 않고 전광판이나 조각품처럼 위품당당하게 홀로 서 있는 의 위용에 감탄하며 탄성을 흘렸다.
“진짜 이 작품은 너무 좋네요.”
“그렇죠?”
고두한의 표정이 나른해졌다.
이 옴짝달싹 못하게 묶여있는 고두한을 유일하게 위로하는 건, 강석의 과 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매일 이렇게 잠깐씩이라도 감상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고두한이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이 작품을 만든 작가가 [인체소묘집]을 출판한다고 하던데···”
“어머, 그래요? 잘 되었네요! ·········그거 혹시 저도 구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작품을 팔지 않을 거라 해서 무척 아쉬웠거든요.”
손뼉을 쳐가며 좋아하는 여인에게 고두한이 아쉽다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그게 아직 좀 몇달 남았네요. 음. 원하신다면 갤러리 통해서 출간소식 전해드릴 수 있도록 설관장에게 부탁 좀 해놓겠습니다.”
“아우, 고마워라. 이걸 어쩐담. 고작가님. 이번에 작품은 다 팔렸나?”
“아쉽게도 다 팔렸습니다.”
“으음···그러면 오랜만에 고작가님 밑에 있는 작가들 좀 살펴볼까요?”
여인이 입을 가리며 웃을때마다 손가락에 걸려있는 알반지가 반짝였다. 고두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여인을 갤러리 소속 도슨트에게 맡겼을 때였다.
지잉, 지이잉.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을 토해냈다.
고두한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었다. 그리고 액정에 보이는 이름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박지엽이었다. 이게 또 무슨 일 때문에 전화질이야.
“왜.”
━ 이거 뭐야?
“뭐가.”
아.
막상 불퉁하게 뱉고 보자 박지엽이 말하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오늘 아침에 막 박지훈을 통해 강석의 스케치를 전달한 참이었다.
아침에 보냈더니 이제야 열어본 모양이군. 고두한의 입가에 삐뚜름한 미소가 걸렸다. 꼬리가 있다면 기분 좋게 팩팩 하늘을 향해 쳐댔을 정도로, 그 스케치를 박지엽보다 먼저 보았다는 점에서 고두한은 기분이 좋았다.
“이제 본 모양이네. 마크툽? 마크툽이라고 이름 지었다던데. 이번 인체해부학 프로젝트에 선보일 작품의 스케치라고 전해달라더라.”
━ ·········진짜 엄청난 해부도야. 이게 카데바가 아니라고? 강석 학생의 수준이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어떻게 인체를 연성하는 수준으로 그린 것도 놀라운데 여기에 질환까지 반영시키지. 이건 마치 수술 환자의 몸을 실시간으로 해부해서 그려넣은 수준이야. 알아?
“어어.”
고두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리가. 인체 변태라고 소문난 박지엽만큼은 아니어도 고두한 역시 인체를 파고든 세월이 꽤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알고 있다. 그 스케치가 고등학생이라는 사실만으로 질투가 날 정도로, 완벽하리만치 대단하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고두한은 신이 났다.
강석만큼은 저보다 더 오랫동안 작가로서 이 바닥을 뜨지 않을 테니. 그 정도 실력이라면, 떠나고 싶어도 미술판을 떠날 수 없을 거였다.
하늘이 그걸 허락할 리가 없었다.
━ 근데 이걸 입체모형으로 만드는 게 가능할까?
고두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는 원활한 전화 통화를 위해 갤러리 입구 쪽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고두한이 입구 쪽으로 걸음 할 때마다 사람들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아는 척 했다.
“뭐라는 거야. 강석의 입체모형실력이 얼마나 뛰어난···너 아직 못봤냐?
━ 무슨 소리야? 내가 뭘 못 봐?
고두한이 우뚝 멈춰 섰다. 갤러리 입구가 바로 보이는 앞이었다. 그는 핸드폰 너머로 소리가 들려오거나 말거나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이 설치된 건, 전시회 전전날인가 전날이었고. 그래. 2월 14일이었지. 박지엽이가 언제 마지막으로 작약갤러리에 왔더라. 2월 6일? 그러네. 2월 6일이네.
고두한이 핸드폰 화면을 홈화면으로 돌렸다. 여전히 핸드폰에서는 말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고두한은 귀를 이미 핸드폰에서 떨어트린 채였다.
그래서 그는 핸드폰 너머에서 말소리뿐만이 아니라 차가 지나다니는 바깥소리가 나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 고두한? 안 들려?
“오늘이 2월 26일이네. 너 진짜 못봤겠구나.”
━ 아까부터 무슨 소리야.
모르니까 강석이 인체모형을 만들 수 있을까말까 의심하지. 물론 고두한도 그걸 세밀하게 다 표현할 수 있을 지는 의심스러웠지만, 적어도 입체 모형을 만들 수 없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입구 앞에 선 고두한이 옆을 돌아보았다.
꽃처럼 만개한 이 빛나고 있었다. 저런 걸 만든 녀석이 인간이라고 못 만들겠나. 인간의 눈을 속일 정도로 실제 꽃에 가까운 을 바라보는 그 순간.
“이건 또 뭐야?”
━ ···이건 또 뭐야?
충혈된 눈을 한 박지엽이 갤러리 입구를 통과했다.
핸드폰과 현실에서 같은 음성이 울려퍼졌다.
박지엽이 드디어 을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 * * *
구름이 사라진 파란 하늘은 해가 드러나 겨울치고 따뜻해져 있었다. 이제 겨울도 끝나가네. 패딩을 대충 손에 걸친 강석이 조수석에서 내리려고 벨트를 풀었다.
트럭이 이제 막 유리 공방 앞에 주차공간에 차를 대어놓은 채였다.
“다녀올게요.”
강석이 인사를 건네며 트럭문을 열어젖혔다.
“오늘은 일찍 들어와라.”
“예?”
갑작스러운 강현도의 말에 강석이 뒤를 돌아보듯 운전석을 바라봤다. 강현도가 눈꼬리를 접었다. 다정한 눈동자가 강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여사가 오늘 갈비찜 한다더라.”
“갈비찜이요?”
어머니 백명희의 갈비찜이 일품이라는 걸 알고 있는 강석이 놀라 되물었다.
“선물 받은 지갑 자랑하려고 시장까지 나갔다가 싸게 도축한 고기를 발견해서, 오늘은 갈비찜이래. 네가 준 지갑 덕분에 내가 호사를 다 누리는구나.”
“하하. 뭘 또. 일단 알았어요. 오늘은 최대한 일찍 들어가 볼게요.”
“알았다.”
조수석에 내린 강석이 손을 흔들며 공방 안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보던 강현도가 다시 시동을 걸었다. 한가롭고 기분 좋은 오후를 만끽하며 트럭이 도로를 미끄러지듯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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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네.
여벌키로 문을 열고 들어온 강석이 주변을 살폈다. 어두웠다. 불 하나 켜지지 않은 게 진짜로 저한테 공방을 맡기고 조동범이 부산 해운대에 갔음이 실감났다.
– ‘스승님. 부산 해운대 쪽에 생긴 유리 공방이 꽤 특이한 공병을 파나 보더라고요.’
– ‘그래요?’
– ‘무슨 파도모양 공병이라던데. 어떤 부부 작가한테서 전수를 받았다나. 제가 한 번 출장가서 보고 와야 할 것 같거든요. 여기 여벌키 드릴테니까 저는 신경쓰지 마시고 편하게 쓰십쇼.’
괜찮다는데도 여벌키를 쥐어준 조동범은 2박 3일 일정을 잡고 부산으로 내려가버린 듯했다.
강석은 키를 돌려가며 공방 차고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다. 공방 가마에는 불이 꺼져있어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바깥 따뜻한 공기보다 어쩌면 더 여기가 겨울 같았다.
터벅터벅.
차고를 개조해서 만든 공방답게 발소리가 주변을 음산하게 울렸다. 강석은 묵묵히 공방 끝쪽으로 걸어갔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이었다.
걸음의 끝에 서있는 것은 검은 봉지였다. 실제로는 특수분장이나 수술용 더미 등을 만들 때 쓰이는 재료들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이걸 보고 강채영이 메이크업 대회라도 나가는 거냐며 추궁했었지.
강석이 허리를 숙여 천천히 재료들을 꺼냈다.
처음 다뤄보는 재료.
강석의 눈동자에 흥미가 돌았다.
‘시험 삼아 하나 만들어볼까.’
어젯밤에 고기를 먹은 뒤에 집에서 그린 스케치들이 가방에서 튀어나왔다. 강석은 거기서 눈도 깜빡이지 않고 심장 스케치 하나를 꺼내 들었다.
심장을 만들어볼 셈이었다.
강석은 연금술사가 된 심정으로 알지네이트 봉투를 뜯었다. 선분홍빛과 벚꽃잎 사이에 색깔을 닮은 가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코끝을 타고 올라오는 것은 박하향이었다.
강석은 알지네이트를 망설임 없이 공방 제조용 그릇에 부었다. 그리고 물을 1 대 1 비율로 섞었다. 누가 보면 숙련자라고 착각할 정도로 그 모든 행위가 재빨랐다.
대부분 알지네이트를 다루는 특수분장사들은 그 알지네이트를 직접 몸에 갖다 대 주형을 만든다. 만약 지금 강석이 만들려는 것처럼 심장이나 실제 갖다 댈 수 없는 것을 만든다면 점토 같은 것으로 그 모형을 만들어야만 했다.
알지네이트와 물을 섞으면 처음에는 흐르는 물과 같아 조형할 수 없고, 그 상태로 두면 빠르게 경화되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러나.
강석은 그 모든 방식을 거부하듯 알지네이트째로 퍼올렸다. 끈적한 고체도 물도 아닌 진흙 같은 것을 강석이 천천히 매만졌다.
책상 위에 흐르는 진흙을 일자로 백번 세워봐라. 그게 서는가? 강석의 손길 아래에선 그게 가능했다. 무너져야 하는 것이 옳음에도 알지네이트는 무너지지 않고 불안한 자세로 책상 위에 섰다.
두근두근.
물이었던 것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면서 천천히 경화되어 가는 것은 마치 신이 흙으로 인간을 빚을 때와 같았다.
천천히, 그러나 느리지 않게, 강석이 세우면 그것은 천천히 말라갔다. 마치 갯벌을 허공에 노출시켜 말리는 것처럼 강석은 흐르는 것을 세워 조형해갔다. 그리고 차가운 바람에 그 모든 알지네이트가 말랐을 때.
책상 위에는 선분홍색 심장 하나가 놓여있었다.
47. 그늘진 유리공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