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57
57
* * * *
6월 13일의 저녁.
강석이 조각상을 완성했다.
그리고 조각계의 대부 양선구의 지휘 아래 조각상을 전시하고 있는 블룸 미술관 전시4실에 암막이 안팎으로 쳐졌다.
몇겹이 되는 바리케이드.
전시 4실로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모든 문을 막고, 블룸 미술관의 경비 고용 인원을 1.5배 늘리는 것과 별도로 경호업체에 협력을 요청하여 특수경비요원까지 고용했다.
거의 사건 현장을 방불케 하는 행위에 늦은 밤 중에 블룸 미술관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이 전례 없는 일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일인지 몰라, 더욱 그러했다.
그날 괴소문이 하나 더 미술관 담장을 넘었다.
“그 외국인 조각가 있지. 그 사람이 드디어 조각상을 완성한 모양인데 그걸 보면 사람이 굳는대.”
“아냐, 죽는댔어.”
“아닌데. 그거 보면 저주에 걸린대. 그래서 패닉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막 폭력적으로 변한다던데?”
“내가 듣기로는 심장이 두근거린다던데.”
“4번 보면 심장이 멈춘대.”
때 아닌 도시 괴담이었다.
* * * *
6월 14일.
만개한 장미가 당장에라도 똑 떨어져 버릴 것 같은 날.
파란 하늘에 빨간 장미의 대비가 아름다운 화단 위, 델피니움관 3층.
소묘실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하복에 앞치마나 작업복을 입은 아이들이 침묵 속에서 작업에 몰두하는 중이었다.
“이거 이렇게 마감하면 완성도 너무 없어 보이지?”
“당연하지. 이제 곧 전시회 도록에 들어갈 사진 찍을 건데 이건 조금 너무하지 않냐. 조금 더 밀도 높여 봐.”
“여기서 어떻게 높여. 아, 초벌을 너무 얇게 깔았어. 아무리 해도 안 올라오잖아.”
서양화전공 여학생이 못하겠다는 듯 바바라 붓을 툭 던져버렸다. 화홍 붓을 쓰던 옆 친구가 진상이라는 듯 친구를 바라봤다.
그리고 뭐라고 한소리 하려는데 옆으로 임우현이 지나갔다.
“그럴 시간에 붓 놀려라. 붓.”
따끔한 일침이었다. 바바라 붓을 던진 여학생이 입이 댓 발 튀어나온 얼굴로 붓을 주워들었다.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아, 지금이 소묘 시간이 아니라 전공 시간이었으면 쌤한테 봐달라 했을 텐데.”
“너 사랑쌤한테 어지간히 기대. 그렇게 되면 그게 네 작품이냐. 쌤 작품이지. 지금 이 시간에 소묘 수업 안 하고 전시회 작품 손대게 해주는 게 어디냐. 이번에 미술이론 쌤은 죽어도 진도 나가겠다면서 이 악물고 허락 안 해주던데.”
“그건 미술이론 선생님이 이상한 거지. 아니, 저번에 만나던 남친이랑 잘 안되었는지 괜히 우리한테 화풀이야.”
청화예고 미술과 3학년들은 입시 특성상 1학기에 졸업 전시회를 끝으로 대부분의 학교 활동을 마무리한다. 3학년 1학기까지만 내신 성적을 반영하는 입시를 이용하여, 반영 시점이 지나면 학교에 허락하에 학원에서 보내거나 실기나 수능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동아리 활동에 미치지 않고서야 3학년 1학기 교내 활동 중, 졸업 전시회는 학생들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때문에 곧 전시회 도록이 마무리되는 6월에 접어드는 경우. 미술 과목 담당 선생님들은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하여 실기 시간에 작품을 준비할 수 있게 배려를 해주곤 한다.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그래서 소묘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지금 아크릴이나 유화를 손에 들고 붓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다.
개중에 디자인 전공 몇몇은 작품을 위해 비품실에서 남는 책상을 가져와 앉아서 노트북 작업을 하기도 했다. 영상이 작품인 아이들이었다.
또 조소 전공들은, 도저히 여기서 작업할 수 없다고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고 조소 실기실로 단체로 떠나기까지 했다.
‘이게 고등학교인지, 대학교인지.’
임우현이 그 보습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대학 시절 야작을 하던 저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잠깐 떠올린 그 시절에 몸을 부르르 떤 임우현의 고개가 본능에 따라 한 곳으로 돌아갔다.
강석이 있는 곳이었다.
강석은 보기 드물게도 붓을 들고 있었다.
유화 물감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나무 파렛트를 한쪽 손에 들고, 간이의자에 올려놓은 오일통에 유화용 돼지털 붓을 찰팍찰팍 묻히는 것이 꽤 노련했다.
“석이가 졸전에 제출할 작품이 저것들이 아니라고 했죠?”
임우현에게로 장유민이 다가왔다.
손동욱, 임우현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소묘 수업 시간 강사 장유민이 레드와인빛 보브컷을 슬쩍 쓸며 임우현을 올려다봤다.
“네. 조소 전공이잖아요.”
대리석을 조각하고 있다는 건, 아는 사람만 아는 일이었다. 아. 대리석을 조각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이제 완성한 거구나.
임우현의 시선이 비어있는 고두한의 가죽 소파로 이동했다. 요즘 미술 과목 전공 선생님들은 교장실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회의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건, 고두한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자기가 그림으로 먹고사는 사람인지 입 털어서 먹고 사는 사람인지 모르겠다며 짜증을 내던 고두한이 임우현의 뇌리를 스쳤다.
– ‘내가 석이 일 아니었으면 당장에 알아서들 하시라고 때려치우고 소묘실로 토꼈을 텐데. 젠장.’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했을 때였다. 장유민의 감탄이 임우현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근데 저렇게 대단한 아이는 처음 봐요. 천재가 고등학생 때는 다 저랬을까요?”
다 저랬냐고?
임우현의 눈동자는 다시 강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강석의 앞에 놓인 네 개의 이젤을 향해서였다. 유화 특성상 물감이 마르는데 오래 걸리는 게 지루하다고, 이젤을 네 개를 펴서 각각 다른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한마디로, 네 작품을 동시에 그리는 중이란 소리였다.
“석이처럼 욕심 많은 천재는 드물었을 겁니다.”
능력이 되어서 여러 우물을 판다고 모든 우물에서 물을 퍼올릴 수 있는 건 아니다. 꾸준하게 한 우물만 파야 물이 바닥에서 차오를까 말까인데. 강석은 상남자식으로 물이 나올 때까지 기관총을 쏴대듯이 작업했다.
시간과 물량으로 결과를 얻어내는 느낌이랄까. 참으로 폭력적인 수확이었다.
“그래도 작품 준비도 따로 하면 피곤할 만도 한데 저렇게 열심히 그리는 걸 보면, 진짜 천상 예술가구나 싶어요.”
장유민이 뭉클했단 듯 미소를 지은 채, 강석을 바라보았다. 아마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건, 강석이 그리는 그림의 정체 때문일 터였다.
“서프라이즈 선물이라니. 너무 로맨틱하지 않아요? 석이가 이사가 언제랬죠?”
“아마···이게 좀 늦어져서 언제더라. 전시회 즈음인가 끝나고인가 그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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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장유민과 임우현이 제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강석은 붓을 놀렸다.
네 작품을 반원을 그리듯 이젤에 펼쳐놓은 강석은 왼쪽부터 오른쪽 순으로 몸의 각도를 살짝씩 틀며 캔버스에 붓을 갖다 댔다.
캔버스 하나에는 자신을 포함하여 아버지, 어머니, 강채영이 화면을 바라보며 점잖게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을.
다른 캔버스 하나에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꽃밭을 바라보던 어머니가 뒤돌아보며 웃는 것을 상반신까지만 확대하여 그린 모습을.
또 하나에는 해맑게 카메라를 향해 브이자를 갖다 대며 보조개가 폭 패일 때까지 웃음을 짓고 있는 강채영의 얼굴을.
마지막 하나에는 의자에 앉은 채, 허리를 젖히며 활짝 웃어 잔주름이 매력적으로 드러난 아버지를 그리는 중이었다.
이번에 이사 가는 집 거실에 걸어놓을 것들이었다. 성북동 단독주택 1층의 거실이 워낙 커서 큼지막한 그림 네 개가 걸려도 비좁아 보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뭐···위치야 이사 갈 때 마음 가는 곳에 걸어도 되는 거고.’
강석은 입꼬리를 씰룩였다. 이 속도면 아무리 유화가 느리게 마른다 하더라도 이사 전에는 맞출 수 있을 거였다. 사진보다 더 사진같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림에 만족스럽게 붓을 놀렸다.
가족들 얼굴을 그려 선물하는 건, 놀랍게도 처음이었다.
여태까지 제 그림으로 만족스럽게 가족의 얼굴을 그림에 담아내지 못해서이기도 했다. 이제라도 그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붓을 움직이는 그때.
종이 울렸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시계를 돌아보는 강석이 화장실이라도 갈 생각으로 나무 파레트를 제 옆에 둔, 여분의 간이의자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뒤를 도는데 눈이 마주쳤다.
박혜연이었다.
고양이 눈매로 뭘 봐, 하는 것 같은 박혜연을 바라보고 있자니 지레 겁을 먹은 진세현이 손사래를 치며 다가왔다.
“방, 방해하려는 건 아니었어. 그냥 너무 잘 그려서, 내가 구경을 좀 하고 싶다고 그래서···! 그, 집, 집중해서 그리길래 뒤에서 좀 구경을 한 건데···방해되었다면 미안, 미안해에······.”
아무것도 안 했는데 숫제 울 기세였다. 몇 번 덤비던 김동휘을 툭툭 갈구던 말솜씨가 이제 미술과에 제법 유명한 소문으로 부풀려진 모양이었다.
게다가 쉬는 시간이지 않은가.
제가 산 땅도 아니고, 어디에 서서 뭘 보든 무슨 상관이란 말이야. 강석이 괜찮다는 뜻에서 손을 내저었다.
“뭘 그렇게까지.”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는 진세현을 대충 달랜 강석이 그들을 지나치려고 하는 그 순간.
“근데 진짜 예쁘다.”
혼잣말이 들렸다. 박혜연이었다. 강석이 뒤를 돌아보았다. 박혜연의 시선은 어머니의 미소를 향해 있었다.
박혜연이 한동안 감상하는가 싶더니 무감한 표정으로 강석을 돌아봤다.
“너. 비너스 석고소묘 때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가만 보니까 여자를 잘 그리는구나?”
·········뭐?
강석의 한쪽 눈썹이 꿈틀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혜연은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듯 허공을 응시했다. 고양이처럼 말려 올라간 눈초리에 연갈색에 가까운 눈동자가 흐릿해졌다.
“하긴. 생각해보면 1학년 때도 네가 했던 작업들을 생각하면 여자 위주로 작업하긴 했었지. 그때는 잘 그리는 줄 몰랐는데······이렇게 보니 알겠다. 이게 네 강점인가 봐. 이 부드럽고 질감이나 율동적인 선.”
그렇게 중얼거린 박혜연은 궁금증을 해결했다는 듯 다시 새침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살짝 눈인사를 하더니 진세현을 끌고 저보다 먼저 소묘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진세현은 당황하여 끌려가는 채로, 손을 봉제인형처럼 흔들었다.
“매점 가자. 배고파.”
“너 또 그 옥수수빵 먹으려고 그러지? ······너희 어머니가 그거 너무 먹게 하지 말라셨는데···있지, 혜연아. 밀가루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잖아. 그거 말고 어머니가 싸주신 거 먹자. 수박. 수박 어때. 싫어?”
“물려. 됐고 가자. 그거 15초만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으면 천국이야. 1,700원이면 천국을 맛볼 수 있는데 수박은 무슨 수박.”
“······그래에? 난 수박이 더 맛있는데에.”
“그럼 너 먹어.”
“어···? 어? 진짜?”
속닥거림과 함께 진세현과 박혜연이 멀어져갔다.
강석은 둘의 등을 응시하다 천천히 몸을 돌렸다. 돌아보는 강석의 뇌리로 언젠가의 심술궂은 목소리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 미켈란젤로가 즐겨 그리는 근육질의 몸은 꼭 울퉁불퉁한 호두알을 연상케 하지. 꼭 여자도 남자를 갖다놓은 것 같지 않나? 그게 해부학적으로 실패했단 소릴세. 】
그는 여성의 몸도 남성처럼 그리는 미켈란젤로를 두고, 비수 같은 평가를 아끼지 않았었다.
강석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화폭 속에 그려진 어머니 백명희와 동생 강채영이 누가 봐도 아름다운 여자였다. 유약한 선과 여성스러운 목부터 어깨의 율동, 사랑스러운 웃음까지. 이걸 보고 아름답다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강석은 묘한 얼굴로 그 자리에 못이 박힌 사람처럼 화폭을 바라봤다. 낯선 사람이 그린 걸 바라보듯 묘한 표정이었다.
얼마나 그러고 서 있었을까.
얼마 가지 않아, 종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리고 강석에겐 그것이 꼭 벽이 깨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 * * *
붉은 노을이 하늘에 걸린 초저녁.
[석이 가구점]이라 적힌 트럭의 문이 열렸다.강남구 대치동 도심 한복판이었다.
강남치고 너른 주차장에 트럭을 댄 강석과 아버지 강현도가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6층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강현도는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왼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간판이 보였다.
시누스.
라틴어로 굴곡.
사무용 가구나 기기를 도매하는 중소기업 브랜드의 이름이었다. 물론, 시누스에서 자체 생산하는 제품을 보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어쩐 일로 오셨는지 친절하게 표정으로 묻는 여성에게 강현도가 슬쩍 고개를 돌리며 한 곳을 가리켰다. 손가락의 끝에 걸린 것은 메테우스 의자였다.
“저 의자에 좀 앉아보려고 왔는데요.”
“아아, 에어갓이요?”
강현도와 강석이 오늘 시누스에 온 이유는, 이사를 앞두고 메테우스 의자를 사기 전에 앉아보기 위함이었다. 기왕이면 백명희와 강채영도 같이 왔으면 좋았겠지만, 백명희는 가구점을 봐야 했고 강채영도 학원을 가야 하니. 둘둘 따로 오기로 하고 오늘은 둘이 먼저 온 참이었다.
“편하게 앉아보셔도 돼요.”
의자를 끌고 오는 여직원의 말에 강현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앉아보세요.”
“그, 그럴까?”
강현도는 내심 설렌다는 표정으로 강석의 권유를 마다치 않았다. 여윳돈이 생긴다면 한 번쯤은 꼭 마련해보고 싶은 의자였다.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자신이 알기로도 하이엔드 의자로서는 제일 첫 번째로 나오는 브랜드이기도 해서였다.
이렇게 앉아보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사는 게 좋다는 소리에 앉아보러 온 것이긴 한데 뭔가 어색했다. 가구점 안에 강석과 강현도 둘만 손님이어서 그런지 시선이 모이는 것 같단 생각도 했다. 아무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데도 그랬다.
그런 어색함에 강현도가 의자를 제대로 못 만지고 있자 나선 건, 강석이었다.
“아버지 이것도 돌려보고, 엉덩이도 의자 끝에 좀 붙여보고, 그래야 좀 차이를 알죠.”
“난···좋은 것 같은데.”
“B가 맞아요?”
강현도가 앉고 있는 건, 메테우스 에어갓 메탈릭 버전 중에서도 B사이즈였다. 에어갓 중에서는 평균 사이즈였다.
“헤드레스트는 어떤데요?”
“그, 난 좋은 것 같은데 하하.”
강현도가 어색함에 그냥 좋다고만 반복했다. 살짝 귀 끝이 붉어진 강현도가 새삼 설렌다는 표정으로 의자에 팔걸이를 툭툭 쳤다.
자신이 이런 의자를 사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나이 삼십이 넘어갈 때 즈음 접었거늘. 이렇게 돌고 돌아 꿈을 이루는 날이 돌아온 거다.
강현도가 아이처럼 웃으며 의자를 만끽하다 돌연 자리에서 일어섰다.
– ‘아버지. 채영이, 그 녀석은 아무래도 아빠 다리를 많이 하니까 그걸 교정하려면 이렇게···해서, 여기 곡선을 살짝 올려서 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 ‘어머니 다리가 한 길이가, 아마 발 받침대를 할 거면 의자를 조금 낮추거나 발 받침대도 안 할 거면 아예 이만큼 낮춰버리는 게···’
몇달 전에 제 스케치를 가지고 이런저런 내용을 보강하던 강석이 떠올라서였다. 단순히 회화나 입체조형만 잘한다 생각했는데 강석은 전반적인 미술의 재능이 있었다.
그러니 역시 무조건 좋다는 자신보다는 다소 이성적인 강석이 판단하는 게 나을 터였다.
“석이 너도 앉아봐라.”
“그럴까요?”
강현도의 권유에 강석은 거절하지 않았다. 가족 네 명 모두 메테우스를 맞출 생각이었으니 넷 다 각각 앉아봐야 맞았다.
강석의 다리가 땅에 닿았다. 슬쩍, 강석이 의자를 밀었다. 진동을 느끼며 허리를 맞댄 강석이 눈을 감았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메테우스나 의자에 대해 많이 알아본 참이었다.
“어때? 괜찮지? 편하지?”
좋지 않냐고 동조를 구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강석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편안한 것은 둘째 치고, 메테우스는 바른 자세를 강제하는 역할도 하므로 마냥 편한 의자는 아니긴 했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하다고 하더라도···강석이 묘한 얼굴로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우리 이사가 얼마 남았다고요?”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질문을 받은 강현도가 의아함을 품으면서도 냉큼 대답했다.
“그래도 한 달은 족히 남았지?”
한 달.
강석이 팔걸이를 내려다봤다.
이거, 내가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58. 미켈란젤로는 평생을 일에 파묻혀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