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56
56
* * * *
조각이 완성된 후.
미켈란젤로는 모세의 무릎을 망치로 툭툭 치며 물었다.
❝이보게. 그대는 왜 일어나지 않는가❞
이걸 지켜보던 이들은 숨을 참았다. 진짜로 모세가 무릎을 털고선 일어서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 미켈란젤로 作, 모세상을 두고 전해지는 일화 –
* * * *
팟.
침묵 속에서 조명이 켜졌다.
무대 위 화면에는 [마크툽,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라는 글자만 남겨져 있었다. 나체의 일곱 명이 무대 위에 올라온 것에 경악하자마자 틀어진 영상이 이제야 끝난 것이다.
의사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등받이에 몸을 기대듯 파묻었다.
ㅡ 이건 짧게 편집된 영상이고, 안의 구조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각 마크툽이 판매되면 무편집본 작업 영상을 같이 동봉해 드릴 예정입니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행사에 초대받은 관계자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릴 정도로, 영상은 붉고 붉어서 붉었다.
수술하는 의료진들에겐 지나치게 익숙한 색감이었지만, 재무회계팀이나 마케팅팀에게는 이만큼 자극적인 영상도 없을 터였다. 이래서 19금 딱지가 붉은색이구나. 자극적인 영상에 정신 한쪽이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사람들은 눈을 깜빡거리며 강석이 말하기를 기다렸다.
보기는 다 봤으나, 이건 어떤 구조고, 이걸 어떻게 만들었고, 이 인체 모형의 기능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강석은 그들과 잠깐 아이컨택을 하더니 콧등을 긁었다.
ㅡ 그, 제가 말주변이 있는 편은 아니어서요.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질문하실 분 있으십니까?
그와 동시에 손이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지금까지 질문에 재무회계팀과 마케팅팀만 계속해서 손을 든 것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사람들이 손을 든 것을 손가락으로 툭툭 세어보던 강석의 미간이 슬쩍 찌푸려졌다. 세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많이 들었다.
오늘 이 자리에 정확한 수는 몰라도 눈대중으로 어림잡아보자면 병원 세 개를 합쳐서 가운을 입은 사람이 1백에 가까운데 손을 든 사람은 그중에 칠 할이 넘었다.
겹치는 질문이 있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저걸 다 답해줄 수는 없는 요령이었다.
ㅡ 저 때문에 행사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되니, 질문은 마크툽 숫자에 맞춰서 일곱 개 정도 받아보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강석의 말에 의사들이 되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행사를 빨리 끝내고 쉬고 싶어하던 의사들이라곤 믿을 수가 없었다.
특히 아쉬워하는 건 외과계열이었다. 단순히 해부 한 번 하고, 해부가 끝난 인체모형으로 보관하는 것에 내과계열이 흥미를 둔 정도라면 외과계열들은 실제 질환을 구현화 시킨 장기 모형들로 수술연습을 해볼 기회가 생기는 것이니 더욱 그랬다.
또, 수술연습을 해본 뒤에도 재활용이나 아니면 카데바 실습보다 좀 더 위생적인 해부학 실습이 가능할 거였다. 카데바는 해부학 실습에 필수라 치더라도, 횟수가 많아질 수는 없는 법이니 그것을 보충하기에도 충분해 보이는 현실감이었다.
ㅡ 예. 질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제가 영상을 봤을 때 같은 장기가 반복돼서 영상에서 보여졌을 때 다른 모습을 한 경우가 있었는데. 간 같은 경우에도 건강한 간의 모습인 장기가 있고, 다른 장면에서는 3기 형상을 띄는 경우가 있는 걸로 보였거든요. 각각 혹시 마크툽? 그 인체 모형의 장기상태가 다른 것인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질문은 최대한 전문용어를 배제하고 진행되었다. 여기서 쓸데없는 지식을 자랑해서 얻고 싶은 것을 놓치는 걸 원하는 의사들은 없었다.
ㅡ 질문 감사합니다. 일단, 실제로 1호부터 7호가 다 다른 질환을 담고 있습니다. 1호 같은 경우에는 질병이 아예 없는 형태로 만들었고, 마크툽 3호 같은 경우엔 지적하셨던 것처럼 4cm 정도 크기로 간암 3기에 혈관침범, 그리고 전이 증세를 살짝 보이는 정도로 만들었습니다. 각각 1호부터 7호까지 완전히 같은 경우는 없습니다. 다음 분, 예. 질문해주세요.
“그럼 각각 외과 마다도 필요한 마크툽이 다를 것 같은데 이걸 전부 다 알려주실 순 없습니까.”
ㅡ 질문 감사합니다. 판매할 때 화면에 띄워놓고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1호에서 7호로 갈수록 증상과 상관없이 완성도적인 측면에서 높아서 그 부분도 참고 부탁합니다. 예, 질문부탁드립니다.
완성도라는 말에 이번에는 내과 쪽 사람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의 의사가운에는 볼펜이 세 개 정도 꽂혀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완성도라고 하셨는데 어떤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겉으로 볼 때는 저희 눈에는 비슷하거든요?”
ㅡ 예를 들어 1호 같은 경우에는 혈관을 다 통하게 하지 못했고, 혈관 모형을 만든 다음에 일부 중간중간에 용액을 주사하고 레진으로 납땜하듯 마무리를 했습니다. 실제로 모형으로 수술을 시연하거나 가상 수술을 해보더라도 실제에 가깝게는 진행하지 못할 겁니다. 다만, 4호 이상부터는 혈관을 전부 관통하여 용액이 지나갈 수 있게 구현했습니다. 실제로 혈관봉합수술을 시연해볼 수 있는 정도의 구현은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세한 부분은, 구매 시 자료 영상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혈관에 피가 통하는 것까지 구현해냈다고?
이건 정말 인체 해부학에 집중한, 더미에 가까웠다. 자동차 충돌테스트용 더미인형과는 달랐다. 그들이 피부의 상해, 출혈량, 신경계 손상 여부나, 충돌로 말미암은 뇌의 상태까지 측정할 수 있는 충격에 대한 반영을 목적으로 만들었다면, 이건 순수하게 육안 해부학을 위해 제작된 더미였다.
수술이나, 해부학 실습과 같은 자료에 집중해서 만들었다는 게 느껴졌다. 프로젝트에 가장 걸맞은 작품이었다. 그래, 작품. 이건 자료라기보단 작품으로 분류해야 옳았다.
“실제로 이 마크툽을 반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지 얼마 정도가 지나면 자료적 가치가 훼손되거나 오염될 수 있는지 아십니까?”
재무회계팀의 질문이었다. 그들은 이걸 한 번 샀을 때 몇 년까지 그 가치를 다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ㅡ 반영구적 소재로 사용하였습니다. 일부러 훼손시키려는 행위에는 답변드릴 수 없고, 일회성 수술실습을 진행한 뒤 관상용으로 보관하는 것이라면 약 10년은 오염이 없을 겁니다.
강석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ㅡ 아마 10년이면 더 좋은 자료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의학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한다.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일이기 때문이었다. 강석은 그저 이번 기회를 통해 인체 해부학에 대해서 파고들고 싶었을 뿐이지만, 이 의학계를 발전시키고 싶은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았다.
400년동안의 발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의학은 발전할 게 분명했다.
물론, 작품적인 가치로는 강석이 만들었다는 이름 아래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었다하지만 강석은 그것까지 말해주진 않았다.
그 뒤로도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강석은 자신이 답변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재치있게 대답을 이어나갔다. 말주변이 없다고 한 것치고는 혀에 기름칠한 것처럼 매끄럽고 막힘이 없었다.
다소 심포지엄을 떠올리게 하는 구조의 의사들이 날카롭게 질문을 하더라도 강석은 냉소적으로 잘 응대했다.
일견 강석은 성실하고 착한 모범생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늙은이는 지나치게 고집스럽고 냉소적이고 성질이 사나워 그게 가능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일곱 번째 질문에 다다랐다.
“최소 경매가를 얼마로 하고 싶으십니까?”
마케팅팀에서 모든 발표자에게 질문했던 공통질문이었다. 강석은 그 질문에 올 것이 왔단 듯 웃음을 참지 못했다.
솔직히 작품적인 가치로 따진다면 더 커야 맞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걸 작품이 아니라 자료로 보고 있다. 차후에 이 일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외국의 예술가들은 이 피그말리온보다 현실적인 예술 작품을 인간이 될 때까지 납두지 않고 자료로 해부하게 두었다는 사실에 무릎을 꿇고 오열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강석과 박지엽, 조동범은 확신하고 있었다. 이런 예술적인 작품이 어디 있나. 그러나 강석은 망설이지 않았다. 프로젝트는 프로젝트에 충실하여야 아름다운 법 아니겠나.
그래서 높은 가격은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촬영에 쓰일 정도로 잘 만들어진 더미가 일반적으로 비용만 1천만 원에서 2천만 원을 들여 만들어지고, 그것보다 비싼 값에 팔리는 걸 떠올리면···, 당연히 강석의 것은 그것보다 배는 비싸야 했다.
일부만 구현한 것이 아니라 인체의 모든 장기가 현실에 가깝게 구현되어 있지 않은가.
강석은 자신감 있게 말했다.
“마크툽 하나당 1억은 해야 될 것 같네요.”
낼 수 있으면 내라.
이것이 최대한의 양보다.
강석은 평이한 어조로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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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날, 마크툽 일곱 구는 총 16억 4천에 팔렸다.
* * * *
진파랑빛 하늘.
행사가 끝난 뒤 강석은 오랜만에 가구점에 들렸다. 같이 회식이라도 하러 가자고 프로젝트 In체팀이 강석을 붙잡았지만, 아직은 사회생활보다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가 더 좋은 나이였다.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즐기는 일이 뭐가 나쁠까. 강석은 그냥 집으로 향했다.
강석은 저녁밥을 먹은 뒤에 가구점 비매품 소파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화롭고 나른해지는 광경이었다.
어머니는 곧 이사 갈 집을 위해 백화점 잡지를 넘기며 인덱스를 붙여 꼼꼼하게 표시를 하고 있었고, 강채영은 비장한 표정으로 핸드폰으로 셀프 방 꾸미기를 검색하며 노트에 열심히 뭔가를 끼적이고 있었다.
나름 프리즈마 150색짜리 유성 색연필도 챙긴 것이 색감도 맞춰볼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강석의 고개가 돌아갔다.
아버지는 밥을 드시기 전에도, 밥을 드신 후에도 가구점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신경 쓰이면 가서 보는 게 어떠니?”
어머니 백명희가 강석에게 턱짓했다. 제 아버지와는 죽이 척척 맞아 남다른 부자(父子) 사이 아니냐며,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보고 대화라도 하라고 강석을 은근하게 부추겼다.
“괜찮아요. 괜히 방해되는 것보단 낫죠.”
“네 아버지 하루 이틀 보니. 네가 몰라서 그렇지. 작업실에 틀어박힌 지 벌써 2주다, 2주.”
“맞아. 아빠 작업실에서 안 나온 지 꽤 되었을걸. 진짜 오빠가 한 번 가보지그래. 가서 우리 엄마 삐치면 어떻게 할 거냐고 옆구리 좀 찔러보고 와.”
“얘가?”
백명희가 강채영을 바라보는 사이. 강석이 못 이긴 척 자리에서 일어섰다. 둘 덕분에 명분도 생겼겠다, 오랜만에 아버지 얼굴이나 봐야겠다는 생각에 강석이 슬리퍼를 신은 채 슬렁슬렁 걸음을 옮겼다.
백명희와 강채영을 등진 채 걷는 강석의 입꼬리가 씰룩거리고 있었다.
– ‘16억 4천만 원이라니. 저 의료진들한테서 이 정도를 받아낸 건 정말 대단한 겁니다. 뭐, 대부분은 재단에서 나온 별도 운용금액이겠지만···강석 학생. 이건 진짜 큰돈이에요. 아, 물론 저는 이 금액도 너무 싸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 ‘괜찮아요. 재능기부 같은 거였잖아요.’
정확하게는 학계의 제 이름이 오르락내리락 거릴 것도 고려했다. 다빈치 영감이 의학계에서 이름이 화두 되는 걸 떠올렸을 때부터 결정된 사안이었다.
지금은 어떤 종자로 태어나 현시대를 살고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현대에는 내가 확실히 이겼다. 먼저 태어나서 먼저 가버려 제대로 된 승부를 내지 못한 영감을 떠올리며 강석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 ‘일단 결재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하더라고요. 정리가 끝나면 통장사본 주셨던 곳으로 입금 정리해놓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정도면 슬슬 세금에 대해서 신경 써야 할 것 같은데···아는 세무사는 있나요?’
– ‘세무사는 잘 알지 못해서. 혹시 추천해주실만한 곳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 ‘감사합니다.’
물론 이 모든 걸 가장 신나게 하는 것은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는 거였다. 어머니가 가장 알뜰살뜰하게 가구를 보는 잡지 위에다가 계약서와 선수금이 들어간 통장을 슬쩍 건네고 싶었지만, 첫 번째 타깃은 아버지였다.
똑똑.
“아버지. 들어가도 돼요?”
“·········어, 석아!”
쿠당탕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지친 기색이지만, 얼굴엔 즐거움과 기쁨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이었다. 웃음에 잔주름이 진 것이 참 멋있게 늙은 미중년이었다.
잘 깎지 못해 듬성듬성 나기 시작한 수염에도 이렇게 얼굴이 화사하니, 나 원. 강석이 아버지와 마주 웃으며 스리슬쩍 작업실로 발을 들였다.
주머니에는 계약서와 통장이 어거지로 들어간 채였다.
“하하. 지금 작업실이 좀 더러운데, 편한 데 앉아라.”
“···이게 다 뭐에요?”
작업실엔 나무들 천지였다. 정확하겐 가구 만들 때 쓰일 법한 제도 된 목재들 투성이였다. 두껍고 얇고, 다양한 종류와 크기에 목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강석의 질문을 받은 강현도가 주변을 돌아보다가 쑥스럽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귀 끝이 붉어져 있었다. 강석이 닮은 부분이었다.
“그게, 하하. 그래도···이사를 하는데 식탁 정도는 내가 만들고 싶어서 말이다. 스케치라도 볼래?”
“예. 어디, 이거에요?”
“여기를 이렇게 해서···”
강현도가 신나게 스케치를 짚어가며 설명을 했다. 팔지 않아도 되는 것을 설명하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그제야 가구장이가 아니라 가구 디자이너를 꿈꾸던 아버지의 젊은 날이 보였다.
심미적인 것보다 강채영의 체형과 어머니의 버릇을 말하며 이렇게 디자인한 이유를 설명하는 아버지를 보며 강석이 즐겁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데요?”
“진짜로?”
“예. 진짜로 좋은데요. 이거 딱 강채영이 좋아할 만한 의자네요. 이렇게는 어때요. 그러니까···”
강석도 신이 나서 작업실 책상으로 걸어가 연필을 뽑았을 때였다. 쾅쾅. 문을 누가 밖에서 거칠게 두들겼다.
“오빠, 오빠, 오빠!”
빨리 나오란 소리였다. 강석이 강현도와 눈을 맞추는가 싶더니 일단 쾅쾅 두들겨대는 소리에 빠르게 문을 열었다. 문앞에서는 강채영이 놀란 표정으로 핸드폰을 가리키고 있었다. 토끼도 울고 갈 큼지막한 눈이었다.
“오···오빠, 이게 다 뭐야?”
시선이 강채영의 손가락을 따라 이동했다. 하얀 화면에 글자들이 그득했다.
[특종! 산강의료원과 한양예술종합학교 연계 프로젝트, in체 괄목할 성적 거둬···!] [“유의미한 행사였다.” 최고 경매가 16억 4천만 원!] [16억 4천만 원의 주인공, 예술계 고등학교 3학년?] [청화예술고등학교 3학년 강석, 갑자기 미술계에 나타난 혜성?!] [현재 리모델링 공사 중인 르네상스 쇼핑몰 ··· “강석이 만들었다!”밝혀져 화제!] [“강석은 화가가 아니라 조각가다.” 블룸의 관장, 의미심장한 발언?] [미술협회 발칵 뒤집혀··· “강석이 누구길래?!”]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산강생명공익재단과 산강의료원이 보낸 기자들이 이런 용도였던 모양이네. 강석이 기사들을 쭉 읽어봤다. 어느새 강채영의 손에서 강석의 손으로 핸드폰이 이동한 상황이었다.
“오빠 이제 부자야?”
강채영이 놀란 상태 그대로 강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석이 입꼬리를 씰룩였다. 성북동의 단독 주택보다 16억 4천만 원이 더 실감적으로 와 닿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거론 모자라지.
강석이 웃었다.
이제 시작인데.
* * * *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한동안 인터넷과 SNS를 달구었던 강석의 이름도 서서히 사그라졌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자꾸 달라붙는 바람에 귀찮은 일이 종종 벌어졌지만, 강석은 그러려니했다.
원래 능력있는 예술가에게는 인기가 따라오는 법이니까.
강석은 사랑하는 그라인더를 잡고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한 걸음씩 물러날 때마다 조각상의 전체적인 윤곽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목처럼 우직한 다리였다.
분명히 멈춰 있음에도 느껴지는 역동성.
발뒤꿈치 위로 불거진 힘줄과 복사뼈는 모두 새하얀 대리석을 깎아 만든 것이었다. 대리석 특유의 광질이 조명을 받아 땀방울이 흐르는 것 같은 연출을 주었다.
천천히 뒤로 물러나던 강석이 걸음을 멈춰선 것도 그것이 눈에 들어오면서였다.
다리를 타고 시선을 올리자 서 있는 사람의 등이, 망치를 내려치는 대장장이의 널찍하고 울퉁불퉁한 등짝이 시야를 사로잡았다.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은 피부에 완전히 들러붙은 채였다. 저 섬세한 근육의 굴곡을 잡아내는 과정은 다시 생각해도 참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디테일을 살피던 강석이 흡족하게 미소지었다.
“완성이다.”
재료는 대리석.
5.7미터짜리 조각상을 완성하기까지 3개월 하고도 6일.
세상에는 짧았고, 강석에게는 긴 시간이었다.
57. 6월 13일의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