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68
068
* * * *
정영호는 사서민혁의 구독자였다.
그것도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이민혁 교수의 라이브 스트리밍을 챙겨볼 정도의 애청자였다.
불상 제작 동아리 단톡방에서 알림이 계속 뜨는 걸 대충 닫아버린 정영호가 의자에 등을 붙였다. 주말 미술학원을 오후 시간대와 저녁 시간대로 하길 잘했지.
여유롭게 보다가 점심 먹고, 영어과외를 한 다음 바로 학원에 출발하면 될 것 같았다. 사탐 인강은 밤에 보충해서 들으면 되겠지. 정영호가 이어폰으로 잘 되어있는지 확인하며 뒤를 돌아봤다.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ㅡ ···그래서 오늘은 그 조각상을 우리 구독자분들에게도 보여줄까, 합니다.
이어폰 안에서는 이민혁 교수의 인트로가 시작되고 있었다. 오늘은 상당히 급하네. 정영호가 좋으면서도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화면을 돌아봤다.
그나저나 아티스트 소개라니. 부럽다, 부러워. 정영호가 부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각상이라고 하는 걸 보아서 조각가임이 분명했다.
‘누굴까.’
소개되는 조각가는 전생에 무슨 복을 쌓았길래 이렇게 인플루언서에게 소개되는 걸까. 수많은 무명의 예술가보다 한발 앞서 가는 조각가가 그저 부러웠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기 자신을 향한 한심함이 밀려옴을 느꼈다.
원래는 이렇게 남을 부러워하지 않았는데···어쩐지 고삼이 되면서 요즈음 유독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일이 많아진 느낌이었다.
초조함이랄까.
이렇게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갔는데 과연 조각가로서 먹고살 수는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랄까.
저 위에 도달한 조각가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 아래 깔린 수많은 조각가 중 한 명이 되는 건 아닐지. 두려움이 스트레스가 되어 계속 자신을 잡아먹는 기분이었다.
‘오늘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틀어본 거였는데···여기서도 조각가 소개라니.’
진짜 작품만 보고 바로 꺼버리든가 해야지, 밤에 할 인강을 지금 풀어놓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화면 안에서 이민혁 교수가 팔을 크게 휘둘러 천을 거뒀다.
천을 거둠과 동시에 처음으로 보인 것은 커다란 날개 이전에 눈이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일 텐데 노을을 닮고 있는 것처럼 묘하게 주홍빛이 도는 것 같은 눈동자.
칡부엉이었다.
보통 칡부엉이는 못생겼지 않았나 싶었던 생각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화려한 날개가 눈에 들어왔다.
아침인데 일부러 유도한 건지 조명 때문인지 노을이 차오르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ㅡ 이 작품의 이름은 입니다.
참으로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칡부엉이가 나뭇가지를 박차고 도약하는 순간을 잡아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
화면 속임에도 정영호는 마음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분명 나무일진대 날개 깃의 움직임이 참으로 거칠면서도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이민혁이 카메라를 칡부엉이 상에 맞추면서 웃으면서 말했다.
ㅡ 어떻습니까. 꼭 노을이 지고서야 날개를 펴는 칡부엉이가 사냥을 위해 도약하는 순간을 조각해놓은 것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그렇다.
그렇게 느껴졌다.
정영호가 이민혁은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아래위로 세차게 끄덕였다. 조각상만 보고 인강을 들으러 가겠다는 원래 계획은 저 멀리 사라진 뒤였다.
정영호는 화면에 빨려 들어갈 기세로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실제로 보고 싶었다.
조각상은 정면에서만 보면 되는 게 아니었다. 옆에서도 보고, 대각선에서도 보고, 위에서도 보고, 뒤에서도 보고, 쭈그려서도 보고···으아아! 못 참겠다.
의자를 당겨 앉은 정영호가 키보드를 두들겼다.
[교수님. 죄송한데 가능하시면 카메라를 움직여서 다른 방향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정면만 보는 건 너무 아쉬워서ㅠㅠㅠㅠ]그리고 같은 생각을 한 건 정영호만 아니었는지 얼어붙었던 채팅방이 빠르게 올라갔다.
[숨 멈추고 봤네요] [와···미친···이거 누가 조각한 거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미쳤다] [아 어쩐지 눈물이 나네요] [맞아요 뭔가 눈시울이 붉어지는 기분?] [(₩10,000)ㅠㅠㅠㅠㅠ제가 미술품에 감동을 받을 줄은ㅠㅠㅠㅠ아 진짜 요즘 뭘 만든 건지도 모르겠는 작품들 보면서 저는 미술을 보는 눈이 없나 생각했었는데 대박이네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전시회 가고 싶어졌어요ㅠㅠㅠ] [와···이거 실제로 전시 예정인 작품인가요?]대부분이 이런 작품을 보여줘서 감사하다는 채팅이었다. 정영호는 이걸 보면서 묘한 감동을 느꼈다. 작품이란 것이 화면을 통해서 보여지는데도 대단함을 느낀다는 게···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전공자가 아니고서야 이 감동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거였다. 전공자가 아님에도 이 작품의 대단함을 느낄 수 있는, 직관적인 미(美).
그곳이 여기에 있었다.
이 정도 되니까 추천하는 거구나. 정영호는 채팅에서 눈을 떼고 카메라에 계속 잡히고 있는 조각상 을 바라봤다.
다른 화면에서도 보지 못하고 있지만, 좋은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는 만큼 세세하게 잘 보였다. 부엉이의 깃과 털이 나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섬세했다.
불상 제작 동아리에서 직접 나무를 깎아봤던 정영호로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찬찬하고 세밀하게 조각한 작품이었다.
정영호가 감탄하는 사이 채팅창은 계속해서 속도를 붙여가며 올라갔다. 시청자의 수 또한 빠르게 늘고 있었다.
[(₩5,000)요즘도 직접 조각하는 조각가가 있었나요. 대박이네요. 교수님 저도 영호보살님처럼 다른 방향에서 본 이 궁금하네요.] [영호보살님 의견에 저도 동의요2222] [동의합니다3333]영호보살님은 정영호의 닉네임이었다.
[진짜 다른 화면에서도 보고 싶어요. 최근에 블룸 미술관에 라는 조각상을 보러 갔다 왔는데 약간 그런 느낌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오] [윗분 말씀 맞는 듯] [오?] [저도 보러 갔었는데 진짜 인간과 동물인데도 어쩐지 뭔가 묘하게 같은 느낌이네요?] [이랬는데 진짜 동일인이곸ㅋㅋㅋㅋ]작품을 감상하던 정영호가 채팅창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라는 이름에 고개를 기울였다. 라면 강석의 작품이 아닌가. 이게 그 작품이랑 느낌이 비슷하다고?
정영호가 고개를 돌렸다.
어···? 뭔지 알 것 같았다. 어? 어라? 어?
채팅방에 같은 말들이 도배되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르고 이민혁 교수는 구독자들이 원한다면 해주겠다면서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정영호는 이민혁 교수가 천천히 흔들리지 않게 카메라 캠을 붙잡고 다양한 각도에서 작품을 보여주는 것에 감사하다는 채팅을 치며 감상에 빠져들었다.
채팅창에서 불타고 있는 화젯거리는 관심도 없었다.
‘강석이 이 칡부엉이 조각상 을 만들었다고?’
말도 안 되지.
정영호가 저 사람들이 뭘 몰라서 하는 말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조각상 를 만든 강석이 그 시기에 뭘 같이 했었는지를 모른다.
‘석이가 그 시기에 , , , 까지. 몇 개를 작업했는데···! 그 전에 작업하려고 해도 그전에는 르네상스 쇼핑몰에다가 프레스코 벽화를 만들었고, 이번에 출판한 [강석의 인체소묘집]도 만드느라 정신없었지 않나? 그렇게 바빴는데 무슨···!’
말이 안 된다.
정영호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헛발을 짚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카메라는 아직도 돌아가고 있었다. 정영호가 특유의 오지랖을 발휘할 기세로 근질거리는 손가락을 긁었다.
‘이거 자신이 강석의 지인이라는 사실을 밝혀서라도 확실히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 할까? 저렇게 채팅칠 시간에 작품을 조금이라도 감상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채팅을 쳐야 해, 말아야 돼···?’
그렇게 정영호가 고민하는 사이.
한 바퀴를 다 돈 이민혁이 카메라 캠을 거치대에 꽂으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조각가가 청화예고 강석인가요?] [강석이 을 조각한 게 맞나요?] [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 동물상도 이렇게 잘 조각했으면 진짜 천재 맞는 것 같은데ㅠㅠㅠ] [진짜] [천재 호소인이라고 욕하지 좀 않았으면;; 솔직히 보고 오면 진짜 천재라는 생각밖에 안 들던데] [ㅠㅠㅠㅠㅠㅠㅠ교수님ㅠㅠㅠㅠ진짜 강석이 조각한 건가요? 대답좀ㅠㅠㅠㅠㅠ부탁드려요]그 순간이었다.
드디어 채팅창을 읽었는지 이민혁 교수가 미간을 좁히며 컴퓨터 화면 어딘가를 응시했다.
[오] [응답받았다] [곧 응답올거임] [응답바람] [응답바람22222] [응답해라3333]화면을 읽어내리던 이민혁 교수가 활짝 웃었다. 왜 웃지. 정영호가 놀라서 바라보는 순간, 화면이 또 흔들렸다.
이민혁 교수가 카메라 캠을 다시 붙잡은 탓이었다. 흔들려서 초점이 잡히지 않는 카메라와 달리 이어폰에서는 잡음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ㅡ 오늘 제가 좋은 아티스트님을 소개해 드린다고 했었죠? 안 그래도 옆에서 이 채팅을 지켜보고 있으셨습니다. 소개합니다···!
[오오오] [오오오오오] [빨리빨리] [으아아아아아앙ㅠㅠㅠ못기다려ㅠㅠㅠㅠ카메라 빨리ㅠㅠㅠㅠ]ㅡ 열아홉 살 천재 조각가! 강석입니다!
이민혁 교수가 옆으로 돌린 카메라 캠이 고정되며 컴퓨터 화면 안에 강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형의 얼굴에 적갈색 눈동자. 한 번 보면 쉽게 잊을 수 없는 특유의 까칠한 표정. 분명하다. 옆으로 보고, 앞구르기 자세로 보고, 물구나무를 서서 봐도 강석이었다.
정영호가 입을 쩍 벌렸다.
···네가 어떻게 거기서 나와?
* * * *
라이브 시청자 수는 어느새 7,000명이었다.
강석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화면을 바라봤다. 물론, 누가 봐도 무표정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인사 한 번 부탁드립니다.”
이민혁이 활짝 웃으며 강석을 돌아봤다.
강석이 도대체 어딜 봐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자 이민혁이 카메라에 안 잡히게 슬쩍 캠을 가리켰다.
강석이 고개를 슬쩍 숙인 뒤. 카메라를 응시했다.
“안녕하세요. 청화예술고등학교 3학년 강석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를 끝낸 그의 눈동자가 슬쩍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아까 이민혁 교수님이 뭐라고 할 때와 달리 채팅창은 조용했다.
민망하고 어색하여 콧등을 긁적이는 그 순간.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갔다.
[···잘···잘생겼어.] [어디 있다가 나타난 거야. 이 잘생긴 놈.] [헉] [잘생겼어] [···존잘 미쳤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옆에 분만 보이네요.] [······뭐임? 갑자기 보기 불편해짐. 땀이 눈에서 흐르네.] [거울 보지 마. 오징어가 있을 것임] [눈이···눈이 정화된다] [미쳤다.] [와·········연예인?] [뭐임?] [··················왜 잘생겼음?]미친듯이 올라가는 채팅창에 강석의 눈동자가 잦게 흔들렸다. 이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선뜻 강석을 카메라 앞으로 이끈 이유가 이것이었다. 미형의 얼굴. 어디 가서도 꿀리지 않을 얼굴이었다.
착한 듯 착하지 않은 인상이 묘하게 시선을 끈달까.
뭔가 부드러운 미남형의 얼굴에 성격 까칠한 사람이 들어앉은 것 같은 특이한 마스크였다.
그때였다.
[(₩50,000) 혹시 [강 석]이라는 너튜브 채널이 있는데 이거 혹시 본인인가요?]핫핑크색 채팅이 화면에 떠올랐다. 슈퍼챗이었다. 강석이 옆을 돌아봤다. 대답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물음이었다.
이민혁 교수가 대답하라는 듯 손짓을 하자, 콧등을 긁적인 강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더블 모니터 한쪽에 열어놓은 강석의 구독자 수가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민혁이 감탄사를 흘리며 마우스로 구독자들 몰래 새로 고침을 눌렀다.
49, 75, 133, 164, 182···!
빠르게 강석의 구독자 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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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
짙은 남색의 밤하늘을 지켜보던 강석이 뒤로 넘어졌다.
풀썩, 푹신한 침대가 강석을 받쳐주었다.
강석의 눈동자는 이제 밤하늘이 아니라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 석] [@GANGSUK] [구독자 4,094명] [조각가, 강석의 공식 너튜브 채널입니다.]하루만에 늘어난 구독자 수가 꿈만 같았다. 실시간으로 몇 명이 줄어들고 있긴 했지만, 4천여 명이 방송 한 번에 붙어버린 꼴이었다.
지금도 줄어들고 늘어나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민혁 교수님이 말하기를 실시간 방송이 편집해서 다시 올라가면, 또 숫자가 천천히 늘어갈 거라고 했다.
묘한 기분이었다.
솔직히 오늘 구독자 수가 늘어나는데 일등공신은 작품 이 아니라, 강석 자신의 외모였다.
콧등을 긁적인 강석이 검은 쇼츠 영상에 달린 수많은 댓글을 슥슥 내리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라파엘로 그 놈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강석이 애매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는 와중이었다.
“근데 오빠, 너튜브 방송 활성화는 시켰어?”
“뭐?”
강석이 누웠던 몸을 일으켰다. 팩을 만들고 있던 강채영이 방망이로 오이를 두들기며 말했다.
“방송 활성화 말이야. 이게 알아보니까, 최소 24시간 전에는 활성화를 시켜줘야 나중에 라이브 스트리밍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
몰랐다.
강석이 눈을 끔뻑거리며 화면을 이것저것 눌러댔다. 방송 활성화가 진짜로 있었다. 강채영이 마스크 시트를 펼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보니까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려면 구독자 수가 1,000명을 넘어야 하더만. 오늘 이민혁 교수님 덕분에 넘겨서 다행이지. 그거 아니었으면 실시간 방송도 못 켤 뻔했어.”
“그런 조건이 있었다고?”
“그래, 그러니까 나중에 밥이라도 한 끼 대접해 드려.”
마스크 시트를 강석의 앞으로 들이미는 강채영을 피하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몰랐다.
채널을 만들 때만 해도 아무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 알려준 이가 없었다. 아마, 그 녀석들 전부 몰랐던 사실이겠지. 이게 진짜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마스크 시트가 결국 붙은 강석이 눈을 감았다. 차가운 오이의 감촉이 시트 위로 올라왔다.
“근데 오빠···불상은 뭐로 만들지 정했어?”
“어.”
“그럼 그렇지. 그것도 빨리 정···어? 정했어?”
“어.”
“뭐로? 뭐로 할 건데?”
눈을 감았는데도 토끼처럼 눈을 큼지막하게 뜨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강채영의 얼굴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강석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화이트 오닉스.”
처음 불상을 만들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딱, 그거 하나만 떠올렸었다. 화이트 오닉스는 강석이 1학년 때 불상 제작 동아리였을 적부터 불상을 만들게 된다면 꼭 작업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석재였다.
“오닉스? 보석?”
“아, 그거 말고 대리석.”
“아아. 대리석.”
강채영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바람으로 느껴졌다.
“ 조각상이랑 같은 그런 거야?”
“조금 달라.”
“달라? 뭐가?”
강석이 강채영의 말에 침묵하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투두둑. 오이랑 마스크 시트가 다 볼품 사납게 침대 위로 떨어졌다. 강채영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이, 이, 이이이게 무슨!”
“잠깐만.”
길길이 날뛰려는 강채영을 진정시키며 강석이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화이트 오닉스는 생산이 불규칙적인 석재 중 하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수급이 많은 갈색과 노란색이 아닌 화이트 오닉스라면 원하는 때에 수급하기란, 불안정하기 짝이 없었다.
평소라면 상관없었겠지만, 불상이 8월 말까지는 완성이 되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석재가 있다고 끝이 아니었다.
여태까지는 운이 좋아 바로바로 작업에 들어갔지만, 강석은 미켈란젤로였을 적 심하면 대리석을 고르는데 길게는 6개월이 걸린 적도 있었다. 고르는 데만 걸린 시간이었다.
강석이 [양선구 선생님]이라고 적힌 연락처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 ‘앞으로도 대리석으로 조각할 거면 내 도움이 필요할 거다. 편하게 연락해라.’
이럴 때 연락 달라고 주신 연락처였다.
아직 시간은 여덟 시.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었다.
신호가 몇 번 가기 무섭게 양선구의 목소리가 스피커 너머에서 들려왔다.
ㅡ 석이냐. 무슨 일인감?
“아,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ㅡ 으음. 그런감. 그래서 무슨 일인감? 필요한 게 있나?
양선구가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락, 사락, 한복 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부드러웠다.
“그···화이트 오닉스 석재가 필요해서요.”
ㅡ 화이트 오닉스? 그 요사스러운 걸 어디다 쓰게?
역시 아시는구나.
강석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부탁할 사람을 제대로 찾은 것 같았다.
“불상을 만들려고요.”
ㅡ 불상?
펄럭, 부채가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양선구의 대답이 스피커를 타고 넘어왔다.
ㅡ 그거 재밌겠구나.
됐다.
허락이었다.
* * * *
일주일 뒤, 7월 22일.
여름 방학식으로부터 바로 다음날.
불상 제작 동아리는 본격적인 여름 특강을 하기 전, 고등학교 마지막 동아리 합숙 느낌으로 산자락에 온 참이었다.
합숙 느낌이랄까.
정영호가 주변을 돌아봤다. 전부 산이었다. 서울 근교의 이런 한가한 곳이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여기 맞아?”
정영호의 어머니를 포함하여 몇몇 부모님께서 차에서 내려왔다. 카니발부터 스타렉스가 문이 열리고, 불상 제작 동아리 회원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여기가 맞다고 했는데···”
정영호가 말을 흐렸다. 그의 두 손에는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정영호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이리저리 방황했다.
여름방학 특강에 들어가는 바람에 불상을 혼자서 제작하게 된 강석을 응원하는 차에 방문한 참이거늘.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서였다.
어떻게 하지. 돌아가야 하나. 전화를 걸어봐도 될까. 작업 중이면 어떻게 하지. 여러 가지 문제를 산정하느라 불안해지는 그때.
까아아아아아앙!
무언가 유리가 강하게 터지는 소리가 났다.
정영호를 비롯한 불상 제작 동아리 회원들의 고개가 한 곳을 향해 매섭게 돌아갔다. 알 것 같았다. 본능이었다. 저곳이다. 저기에 강석이 있다.
“가자.”
정영호가 외치자, 아이들이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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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중턱까지 오르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한옥이었다. 아이들이 산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지어진 한옥과 주변에 세워진 돌들에 감탄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뒤를 몇몇의 어머니가 오묘한 얼굴로 뒤따랐다.
“무슨 산에 도로가 이렇게 정갈하게 다듬어져 있대요?”
“그러니까요. 이거 차 끌고 그대로 올라왔어도 되겠는데요?”
“뭐지?”
산인데 산 같지가 않았다.
저 멀리 보이는 돌들의 무게로 봐서는 채석장이라고 해도 될 정도인데 마치 도심 한복판에 지어진 것 같은 한옥과 도로라니.
마치 별세계 같았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 대로 감탄하며 전진하는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앙! 까아아아앙!
돌과 유리가 부딪치는 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산은 그 소리를 품고 메아리처럼 퍼트렸다.
산 전체가 울리는 것 같은 소리에 모두가 놀라 걸음을 멈췄다. 소리의 근원지는 한옥이었다. 올라올 때마다 들었던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커지고 있었다.
이제 막 문 앞.
정영호를 아이들이 쳐다봤다. 진짜로 여기가 맞느냐는 표정이었다. 기대감과 두려움을 안고 있는 그 표정에 다시 한 번, 주소를 확인한 정영호가 용기를 가지고 문을 두들겼다.
“석, 석아아아!”
텅텅텅텅, 나무문을 두들기자 그 울림이 되돌아오듯 진동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파스스스. 바람이 불어오며 모래가 대문을 넘어왔다.
정영호와 아이들이 환한 대낮인데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두려움을 안고 대문에서 물러서는 그 순간.
끼이이익, 문이 열렸다.
하늘거리는 품 넓은 한복이 그 틈을 비집고 긴 수염을 늘어트린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 시, 신선?”
신선이라고 착각해도 좋을 모양새였다. 너무 긴장해서 얼굴도 제대로 못 알아본 정영호가 두어 번 눈을 깜빡거리자 그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야, 양선구···!”
너무 놀란 상태라서 앞에 있는 것이 양선구 본인인지도 모르고 대뜸 반말이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양선구가 그저 허허롭게 웃으며 문을 활짝 열어 반겼다.
“너희가 석이 녀석 친구들인감?”
“예, 예?”
이 관계에 친구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나. 아이들이 망설이며 서로를 바라보는데 양선구가 그런 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팔을 내저었다.
“뭐, 되었어. 나 혼자 보기 아까운 참이니 들어오지. 거기, 자네들도 들어오고.”
아이들과 뒤에 서 있던 어른들까지 초대한 양선구가 느린 걸음으로 돌아섰다. 모래바람이 날려 마치 구름을 타고 걸어가는 모양새였다.
아이들과 어른들은 홀린 듯 그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이익.
그들이 들어서자 문이 닫혔다.
그와 동시에 모두가 목도했다.
구름을 닮은 무늬가 잔뜩 새겨진 석재 위.
강석이 석재를 의자 삼아 걸터앉아, 왼손에 망치를 든 채 석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갈색 눈동자로 돌들을 응시하는 강석은 마치···신과 같았다.
하나의 장면이었다.
신화 속 한 장면을 목격한 것 같은 기분에 모두가 그 자리에 굳어서 멈춰있는 그때. 양선구가 그들의 옆에 서서 검지를 입가로 가져다 대며 말했다.
“돌을 고르는 중일세.”
돌을 고르는 중이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있었다. 까아앙, 까아아앙, 산을 오르는 중에 내내 산 전체에 울리던 소리였다.
이제 보니 모래바람 아래에 이리저리 깨지고 형태가 바스러진 석재들이 가득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강석의 왼손에 들린 망치가 눈에 들어왔다. 설마 저 망치로 석재들을 부순 건가. 저 작은 망치로 이것들을 다 부서트린 거라고?
석재들은 커다란 크레인이 부딪힌 것마냥 큼지막한 형태로 이리저리 무너진 채였다. 만약 강석이 망치 하나로 부서트린 거라면, 말도 안되는 힘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강석이 천천히 일어나 망치를 들고 석재를 내리쳤다.
까아아아앙!
형질 자체는 단단하지만, 유리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쉽게 파손될 수 있는 오닉스와 망치가 거칠게 부딪쳤다.
정영호가 눈을 질끈 감았다.
다뤄 본 적은 없지만, 내려쳐 진 것은 화이트 오닉스가 분명했다.
화이트 오닉스는 고급석재일수록 충격파손도가 심하기 마련이었다. 분명 부서질 거야.
정영호가 저 위로 새롭게 쌓일 오닉스를 떠올리며 눈을 감고 기다리는 그 순간. 콰아아아앙! 예의 들었던 그 소리와 함께 석재가 부서져 내렸다.
정영호가 다리의 힘이 풀리는 것 같은 감각에 바짝 힘을 줌과 동시에 콰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앙! 석재가 마구잡이로 떨어졌다.
미···미친.
그야말로 신이 눈앞에서 철퇴를 휘두르는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즈즈즉, 정영호의 신발이 모래를 파고들고 뒤로 물러났다. 도망치고 싶었다. 무서웠다. 다리가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였다.
까아아아아앙!
강석이 새로운 장난감을 찾은 것마냥 석재를 내리쳤다.
정영호가 눈을 질끈 감은 채로, 한 번 더 질끈 감았다. 이번에도 거대한 굉음과 함께 석재가 내려앉을 게 분명했다.
············?
그러나 이번에는 한참을 기다려도 석재가 땅에 닿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뭐지?
정영호가 의아한 눈을 하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강석의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이거다.”
정영호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경이로움, 경악, 놀라움, 그 모든 것이 그 표정에 담겨있었다.
오닉스가···강석의 망치질에도 부서지지 않고 그 형태를 유지한 채, 먼지 구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허?
강석이 그걸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이걸로 할게요, 선생님.”
불상을 조각할 돌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69. 청명한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