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73)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73화
소집 (2)
차를 타고 낙원, 아니 강화도 특별 관리 구역에 도착한 오진은 바로 천상길의 저택으로 향했다.
시골집에 내려온 것 같은 정겨운 풍경을 지나 정갈하게 꾸며진 한옥에 도착한 오진에게 한 노인이 마중 나왔다.
곱게 다린 도복을 입고 있는 노인.
주름진 눈가 사이로 현기(賢氣)에 가득 찬 맑은 눈동자가 오진을 향했다.
“왔는가.”
탐랑성.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손꼽히는 일곱 각성자 중 한 명이 오진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허허. 이 늙은이 사는 거야 뭐 늘 똑같지. 아, 그래도 요즘 그 아이의 수련을 도와주다 보니 금방 시간이 가더군.”
천상길이 말하는 ‘그 아이’가 누군지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진은 눈을 빛내며 천상길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누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이보다 더 건강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 지내고 있다네. 성취도… 아주 큰 성취를 이뤘고 말일세.”
“오.”
고작 한 달 좀 넘는 시간 만에 탐랑성의 입에서 ‘아주 큰 성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성취를 이뤘다니.
‘역시 우리 누나라니깐.’
하은이 지닌 재능도 여타 각성자와 비교하면 경이롭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뛰어났다.
“누난 안에 있습니까?”
“흐음. 지금 하은 양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네.”
“예?”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니?
오진의 눈가에 서늘한 살기가 맺혔다.
각성자가 아니었다면, 아니 설사 각성자라 해도 성(星)이 낮다면 그의 눈만 마주쳐도 거품을 물며 기절할 정도로 섬뜩한 살기.
낮게 깔린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누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하하. 그런 게 아니니 진정하게나. 방금 전에 건강히 지내고 있다 하지 않았는가.”
“그럼.”
“지금 하은 양은 ‘탈피’ 중이라네.”
“예?”
파충류도 아니고 뭔.
“하은 양이 지니고 있는 눈 있지 않나.”
“용안 말입니까?”
“그래. 그 용안의 힘이 새롭게 개화했다네.”
“…그래서 탈피 중이라는 겁니까?”
천상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용안이 새로운 힘을 각성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용자리의 성흔을 지닌 각성자들의 특징인지는 모르겠네. 하지만 몸에 해를 끼치는 건 아니라고 이 늙은이의 이름을 걸고 말할 수 있네.”
오진은 가늘게 눈을 떴다.
탈피라.
이제까지 각성자가 그런 현상을 겪는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었다.
물론 용자리의 성흔을 지닌 각성자의 숫자가 거의 북극성의 각성자와 비슷한 수준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하은의 일이다 보니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걱정되면 직접 보겠나?”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죠.”
오진은 천상길을 따라 저택 근처에 위치한 집으로 향했다.
아니, 정확히는 ‘집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였다.
화르르르륵!
저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강렬한 화기(火氣).
한때 멋들어진 한옥이 세워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터에는 이제 다 타고 남은 잿더미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눈처럼 흩날리는 재 사이로, 얇은 피막 같은 화염에 둘러싸인 채 눈을 감고 있는 하은의 모습이 보였다.
“이건….”
“이렇게 된 지는 나흘 정도 지났네.”
“나흘 동안 쭉 이 상태였다는 말씀입니까?”
천상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진은 화염에 둘러싸인 하은을 향해 다가갔다.
온 세상을 녹여버릴 것처럼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눈을 감은 하은의 표정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해가 될 리 없다고 말한 건 이것 때문인가.’
오진은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하며 하은의 상태를 살폈다.
천상길의 말마따나.
그녀의 몸을 뒤덮고 있는 화염은 마치 ‘탈피’를 하듯 낡고 시들시들해진 화염을 밖으로 밀어내고 활활 타오르는 새로운 화염으로 몸을 바꾸고 있었다.
“어떤가?”
“확실히 누나한테 해가 되는 건 없어 보이네요.”
“끌끌. 이 늙은이가 그리 말하지 않았나.”
나지막하게 웃는 천상길을 향해 오진은 난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천상길 님의 말을 의심한 건 아닙니다.”
“알고 있네. 연인의 안위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지.”
천상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는 언제까지 이 상태로 있는 겁니까?”
“그건 이 늙은이도 모르겠구먼.”
오진은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하은을 바라보며 침음을 삼켰다.
오랜만에 하은과 만날 생각에 내심 들떠 있었는데 이런 상태일 줄이야.
“어쨌든. 확인이 끝났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겠나? 안에 기다리는 사람이 좀 있어서 말일세.”
“아, 예. 물론입니다.”
“끌끌. 자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네.”
“수호성의 멤버 말씀입니까?”
“그래. 이번에 새로운 얼굴들이 좀 있을 걸세.”
천상길은 자신에 찬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탐랑성이 직접 뽑은 인재들이라.
오진도 기대된다는 듯 눈을 빛내며 그의 뒤를 따랐다.
-화르르륵.
물론.
돌아가는 길에 몇 번이고 불길에 휩싸인 하은을 돌아보면서.
* * *
“자, 안으로 들어오게나.”
천상길의 안내를 따라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잘생긴 외모를 지닌 청년이었다.
야수처럼 날카로운 눈매에, 어딘가 고독한 분위기를 풍기는 청년은 오진을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흑사자 이우혁.
이신혁의 동생이자, 10대 길드 중 하나인 발할라 길드를 이끄는 사자자리의 각성자였다.
“오랜만입니다, 오진 씨.”
이우혁은 오진에게 다가오며 가볍게 고갤 숙였다.
“예,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일본에서 활약하셨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저보다 그쪽 각성자들이 훨씬 활약했죠.”
“아, 사카키 씨라 했던가요? 이번에 흑성회의 집행관을 쓰러트린 각성자가.”
“맞습니다.”
오진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흑성회의 집행관을 쓰러트린 건 사카키가 아닌 자신이었지만.
흑성회의 어그로를 끄는 것을 피하기 위해 대외적으로는 사카키가 흑성회의 집행관을 쓰러트린 거로 공표했었다.
“그래도 대단하십니다. 외국까지 나가셔서 흑성회와 싸우셨다니….”
이우혁은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진 씨에 비해 전 형의 복수를 하겠다고 입으로만 설치고 다닌 느낌이네요.”
“우혁 씨는 바쁜 몸 아니십니까. 이건 어쩔 수 없죠.”
실제로 그는 한 길드를 이끄는 수장이었다.
오진처럼 흑성회가 활동한다는 소문만 듣고 바로 외국까지 가서 그들과 싸울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오진의 위로가 꽤 마음에 와닿은 건지 이우혁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얼굴 하난 진짜 난 놈이네.’
이 정도로 잘생긴 외모는 데네브의 12사도 중 하나인 알렌 오스칼을 제외하고는 본 적 없었다.
오진도 어디서 못났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는 외모였지만.
이우혁의 앞에 서니 뭔가 한 마리의 오징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허허. 우혁 군은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겠구만.”
천상길은 오진과 이우혁을 돌아보며 가볍게 웃음을 흘리더니 발걸음을 옮겼다.
오진와 이우혁은 천상길의 뒤를 따라 소박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와, 진짜 뇌랑이 왔네?”
“흥, 뭐야? 소문이랑 달리 존나 비실비실해 보이는데?”
“저어… 초, 초면에 그런 말씀은 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인 것은 두 명의 여인과 한 명의 소년.
“소개하겠네.”
천상길은 쇼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게스트를 소개하는 것처럼 한 명씩 소개를 시작했다.
“우선 여기 있는 아름다운 분은 제갈소영. ‘흑장미’란 칭호로 유명한 궁수자리의 각성자네. 들어본 적 있는가?”
“예. 물론입니다.”
흑장미 제갈소영.
중국과 한국인의 혼혈로 한국과 중국 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실력파 각성자였다.
“반가워? 소문은 많이 들었어.”
비단처럼 고운 흑발을 지닌 제갈소영은 오진을 향해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흥미 가득한 표정으로 오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 그래도 전에 방송을 보고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되네?”
제갈소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오진을 향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분홍빛 매니큐어가 칠해진 예쁜 손이었다.
오진은 그녀의 손을 가볍게 마주 잡았다.
“반갑습니다. 권오진이라 합니다.”
“말 편하게 해도 되는데.”
“그건 좀 더 친해지고 나서 하기로 하죠.”
오진은 매혹적인 눈웃음을 지으며 달라붙으려는 그녀를 향해 적당히 선을 그었다.
“그래? 그럼 지금 바로 친해지는 건 어때?”
그런 선 따위는 안중에는 없다는 듯 제갈소영은 마주 잡은 오진의 손바닥을 손가락으로 살살 간질였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노골적인 유혹이었지만.
“할 일이 있으니 다음 기회로 하죠.”
오진은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단호하게 마주 잡은 그녀의 손을 놓아버렸다.
“흐응. 그래?”
가늘어지는 제갈소영의 눈.
그녀는 먹잇감을 사냥하는 야수처럼 위아래로 오진을 살피더니 이내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다음은 봉황자리의 각성자인 최유미 양이라네.”
귓가에 닿을 정도로 짧게 자른 주황빛 머리를 지닌 여인, 최유미가 탁자에 턱을 괴며 오진을 올려다봤다.
꽤나 호의적으로 다가왔던 제갈소영과는 달리 오진을 살피는 그녀의 눈에는 짜증과 불신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역시 존나 비실비실해. 느껴지는 기운도 별거 없고. 이 새끼 진짜 북극성의 성좌 맞아?”
그녀는 영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듯 오진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한 번 테스트해 봐야겠어.”
“저… 그, 그만둬 주세요, 유미 씨.”
그런 최유미의 옷소매를 붙잡으며 말리는 갈색 더벅머리의 소년.
나이는 김시후 정도 됐을까?
데네브와는 달리 유약하고 여리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소년이었다.
“마지막으로 이쪽은 물병자리의 각성자 오현빈 군일세.”
“아, 안녕하세요. 오현빈이라 합니다! 그… 저, 전에는 저희 길드원이 큰 결례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오현빈은 오진을 향해 90도에 가까울 정도로 꾸벅 허리를 숙였다.
전에 길드원이 큰 결례를 끼쳤다는 건 아마 최종철을 가리키는 말이리라.
“이렇게 다섯 명입니까?”
원래라면 하은도 함께 있어야겠지만, 지금 그녀는 ‘탈피’ 과정을 겪고 있어서 이번 작전에 참여할 수 없었다.
“아니, 아직 한 명 남았네.”
천상길은 고개를 저으며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안 그래도 이제 슬슬 도착할 때인 것 같네만….”
똑똑.
마지막 남은 한 명이 양반은 되지 못하는 걸까.
미닫이문을 두드리는 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도착한 것 같군. 들어오게나.”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며 황금을 녹여 만든 듯한 백금발이 찰랑 흔들렸다.
“어?”
문을 열고 들어온 여인을 본 오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여인은 오진을 향해 방긋 미소 지으며 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정중하게 허릴 숙였다.
“반가워요. 이번에 수호성에 들어온 이사벨라 콜그란데라고 합니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절도 있는 예법.
“…….”
흑천의 주인과 흑성회 3위의 집행관이 속해 있는 수호성이라.
‘라인 업 쥑이네.’
오진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