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72)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72화
소집 (1)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민망한 ‘체벌 타임’이 끝나고.
오진은 본격적인 회복에 들어갔다.
[자, 아~ 하거라.]베가가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숟가락에 푼 전복죽을 내밀었다.
오진은 침대에 누운 채 넙죽 전복죽을 받아먹었다.
우물우물.
입 안에 퍼지는 고소한 전복죽의 맛.
오진은 침대 옆자리에 앉아 자상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베가를 향해 고갤 돌렸다.
“이런 건 다 어디서 구한 거야?”
“…….”
아니 황도 12궁의 성좌에게 빵셔틀을 시키다니.
아무리 북극성의 성좌라 해도 그래도 되는 건가?
[스피카는 본녀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유일한 친우이니라.]“그래 보통 다 그런 애들이 친구라고 하더라고.”
[으음? 그런 애들이라니?]“아니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스피카.
밝은 미소와 함께 푸들처럼 복슬복슬한 핑크 머리칼을 지녔던 성좌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전복죽을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윽…!”
밥을 다 먹은 후 몸을 일으키려 하자.
배에서부터 시작된 찌릿한 통증이 전신에 퍼졌다.
샤오린의 검에 찔린 부위였다.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베가가 오진의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하루 종일 누워만 있을 순 없잖아.”
[어허. 움직이지 말래도.]답답하다는 듯 다시금 몸을 일으키려 하는 오진을 제지하는 베가.
그녀는 반론을 들을 생각 없다는 듯 단호한 표정으로 가볍게 오진의 명치 부근을 터치했다.
파직!
작은 스파크가 튀어 오르는 것과 동시에.
“어?”
풀썩.
오진의 몸이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단순히 쓰러지기만 했다면 모를까.
팔다리가 축 늘어진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뭐, 뭐야?”
[잠시 몸을 마비시켰느니라.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절대! 움직이면 안 되느니라.]단호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오진은 끄응, 침음을 삼켰다.
“알았어. 안 움직이겠다고 약속할 테니까. 이것 좀 풀어줘.”
[불가하느니라!]베가가 절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붕붕 저었다.
흔들리는 은발의 머리칼이 오진의 코끝을 간질였다.
“하아.”
짧은 한숨을 내쉬며 베개에 머리를 대었을 때.
-달칵.
방문이 열리며 커다란 덩치의 은색 늑대 한 마리가 걸어들어왔다.
노련한 전사처럼 형형하게 빛나는 눈이 오진 향했다.
“애송이, 너를 찾는 사람이 찾아왔다.”
“응? 나?”
침대에 누운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오진.
“천혜라는 길드에 속해 있는 놈이라 하더군.”
“아하.”
천상길이 보낸 연락책인가.
성소 안에선 전파가 통하지 않으니 연락을 하려면 직접 사람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본녀의 아이는 움직일 수 없으니 나중에 찾아오라 전하거라.]“저도 그렇게 말은 했습니다만. ‘수호성’ 관련으로 급히 연락할 게 있다 해서 일단 내버려 뒀습니다. 쫓아낼까요?”
“잠깐.”
천상길이 보낸 연락책을 쫓아내려는 베가를 말리며 오진은 고개를 간신히 베가 쪽으로 돌렸다.
“수호성 관련 일이면 흑성회에 대한 얘길 거야. 일단 마비부터 풀어줘.”
[하지만.]“베가.”
[…하아. 정말 못 살겠구나.]철없는 아이를 둔 어머니처럼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는 베가.
잠시 고민을 이어가던 베가가 오진의 명치를 가볍게 두드렸다.
파지직!
다시 한번 스파크가 튀어 오르며 오진의 몸을 속박하고 있던 뇌전이 사라졌다.
“끙차.”
오진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야구방망이에 전신을 두들겨 맞은 것처럼 이곳저곳이 쑤셔 왔지만, 성소까지 직접 찾아오면서까지 전달하려고 한 내용이 뭔지 듣기 위해서는 태평하게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오진은 리아크, 베가와 함께 신전 밖으로 나갔다.
신전 밖에는 반듯한 양복 차림의 사내가 오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오진 씨. 천혜 길드의 백동일이라 합니다.”
“예.”
사무적인 인사를 건네며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수련에 집중하시기 위해 성소에 계시다 들었는데, 이렇게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흥. 무례라는 걸 알긴 아는 모양이구나.]오진의 휴식이 방해받은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베가가 팔짱을 낀 채 찌릿 백동일을 노려봤다.
“크, 크흠. 저, 정말 죄송합니다.”
북극성의 성좌가 내뿜는 기운에 압도된 백동일이 말을 더듬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베가.”
[하아. 미안하구나.]오진이 그런 베가의 팔을 가볍게 잡아당기자 베가가 한숨을 내쉬며 기운을 거둬들였다.
“수호성 관련해서 급히 연락할 게 있다 들었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예. 최근 흑성회의 행동이라 의심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어떤 일이죠?”
오진은 가늘게 눈을 떴다.
백동일이 깔끔하게 정리된 서류철을 오진에게 내밀었다.
“최근 한 달 사이에 인천항 부근에서 정체불명의 마수가 출현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마수라.
과연, ‘괴수’가 아닌 ‘마수’라면 흑성회와 연관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얼마 전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미리내 길드의 부길드장마저 실종되어 버렸죠.”
“미리내 길드라면.”
“예. 인천 지역에서 활동하는 대형 길드입니다.”
들어본 적 있다.
순위가 높지는 않아도, 나름 10대 길드 안에 들어가는 대형 길드라 했던가.
“미리내 길드의 부길드장이라면 8성 각성자 아닙니까?”
“맞습니다.”
“흐음.”
8성 각성자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괴수라.
확실히, 한국 내에선 쉽게 찾을 수 없는 수준의 변종이었다.
“아마… ‘네임드’ 중 하나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네임드.
천주룡 바르바토스처럼 괴수 자체가 이름을 지니고 있는 경우를 ‘네임드’라 불렀다.
개체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보통 ‘네임드’라 불리는 괴수들은 일반적인 괴수라 볼 수 없는 지능과 통솔력으로 재해에 가까운 피해를 주기로 유명했다.
“흑성회가 그 네임드를 만든 겁니까?”
“아뇨. 그것까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고개를 젓는 백동일.
“하지만 최근 인천항 부근에서 흑성회가 밀입국한 것과 그 정체불명의 마수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시기가 어느 정도 일치합니다.”
“밀입국이요?”
“예. 아무래도 베트남이나 필리핀 쪽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흑성회의 파벌 중에서도 ‘두꺼비자리’를 지닌 각성자들이라 합니다.”
두꺼비자리라.
‘올빼미랑 해마에 이어서 이번엔 두꺼비인가.’
그러고 보니 이신혁의 기억 속에서 잠깐 스쳐 지나가듯 들은 적 있는 이름이었다.
‘그때는 올빼미자리와 손을 잡았다니 어쩌니 했었는데.’
하지만 그들이 손을 잡을 올빼미자리는 이미 오진의 손에 의해 멸망한 상황.
그렇다는 건 파벌 간의 동맹이 아닌, 다른 목적을 가지고 한국에 밀입국했다는 뜻이리라.
‘올빼미가 사라진 한국을 노리고 들어온 걸 수도 있고.’
동남아시아 상황을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쪽은 과거 괴수에 의한 피해가 상당히 컸던 지역이었다.
지금은 거의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을 정도로 나라 꼴이 망가졌다고 하니 그와 비교해 훨씬 멀쩡한 한국을 노린 걸 수도 있었다.
‘뭐, 그건 직접 확인해봐야 아는 거고.’
중요한 건 두꺼비자리의 파벌이 한국에 밀입국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나타남과 동시에 네임드로 추정되는 강력한 마수가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해당 사건을 조사해 달라는 부탁을 하시려고 오신 거겠죠?”
“그렇습니다만. 당연히 오진 씨 한 명에게 조사를 맡길 생각은 아닙니다.”
아까 전에 ‘수호성’ 관련해서 전할 얘기가 있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지금 강화도 쪽에 수호성이 모여 있습니다. 부디 오셔서 힘을 보태줄 수 있습니까?”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는 백동일.
오진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고민에 잠겼다.
‘흑성회 일이라면 무조건 가는 게 맞긴 한데.’
문제는 지금 자신의 몸 상태.
알바일의 치료 덕분에 외상은 다 나은 상태였지만 아직 내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력의 운용이 상당수 제한된 상태기 때문에 그의 가장 큰 강점이라 할 수 있는 막대한 마력은 물론, 뇌신체와 같은 강력한 기술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여기서 활이랑 화살만 있으면 호크아이나 다름없는데.”
“예? 호크아이요?”
“아. 혼잣말입니다.”
어쨌든.
제대로 된 힘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함부로 몸을 움직이는 건 위험했다.
하지만.
‘지금 타이밍을 놓치면 점점 더 숨어들겠지.’
위험을 감수하고 두꺼비 파벌의 뒤를 쫓느냐.
아니면 안전하게 몸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느냐.
둘 사이에서 고민을 이어가던 오진이 이내 결론을 내렸다는 듯,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알겠습니다. 그럼 강화도로 같이 가시죠.”
“소집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백동일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깍듯이 머릴 숙였다.
[나의 아이야. 아직 몸도 낫지 않았는데 흑성회의 뒤를 쫓는 건….]“뭐, 아예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아니니까.”
[하지만!]“그리고 나 혼자 가는 게 아니잖아?”
아직 이우혁을 제외하곤 수호성의 멤버가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탐랑성 천상길이 직접 뽑은 이상 꽤나 실력자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 위험하면 이걸 쓰면 돼.”
오진은 품속에서 엘릭서를 꺼내 들었다.
하은의 다리를 치료해주기 위해 구한 거였지만, 만약 목숨이 위협받는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자신이 복용하는 게 맞았다.
‘엘릭서라면 내상도 한꺼번에 나을 테고.’
물론 정말 뒤지기 직전이 아니면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이번엔 운 좋아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언제 또 엘릭서를 구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하아. 정말 매번 무리를 하는구나.]베가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오진의 뒤에 따라붙었다.
[본녀도 함께 가겠느니….]“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베가님.”
그런 그녀를 불러세우는 리아크.
리아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데네브의 신격을 흡수하는 게 우선이시지 않습니까.”
[그, 그건.]베가는 움찔 어깨를 떨었다.
잔뜩 움츠러든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나중에 하면….]“외부에 나온 신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소멸한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니면 애송이가 피를 철철 쏟으면서 얻은 신격을 날려버리실 생각이십니까?”
[우으.]드레스 자락을 꼭 손에 쥔 채 입술을 잘근 깨무는 베가.
그녀는 원망스럽다는 눈으로 리아크를 노려보더니,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느니라. 우선 지금은 신격을 흡수하는 데 집중하마.]베가는 그렇게 말하며 오진의 팔을 슬며시 잡았다.
[그래도 위급한 상황이 닥친다면 펜던트를 통해 본녀를 부르거라. 당장에라도 현신하마.]“알았어.”
리아크의 표정을 보아하니 엔간해서는 부르면 안 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정말 위급한 상황이라면 베가의 도움을 바랄 수밖에 없으리라.
‘그런 상황이 나오지 않는 게 최선이지.’
일단 보험은 몇 개 마련해 뒀다.
그 하나하나가 사용하기 뼈아픈 보험이긴 하지만 그래도 위급한 상황에 사용할 카드가 있다는 것만으로 꽤나 마음이 든든했다.
“그럼, 가시죠.”
“예.”
오진은 백동일을 따라 성소 밖으로 나섰다.
‘다른 수호성 멤버는 누구려나.’
부웅.
오진을 태운 차가 부드러운 시동음과 함께 도로를 가로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