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5)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5화
가해자 없는 밤 (2)
뭔가.
뒤틀려 있다.
기계장치의 부품을 억지로 끼워 맞춘 듯 어긋나 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은신처를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갑자기 돈을 뿌리거나 뜬금없이 형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는 건 너무 앞뒤가 맞지 않았다.
“자, 잠깐!”
다급히 손을 뻗어 이우혁을 말리려 했지만.
-콰드드드득!
성인 몸통보다 굵은 나무들이 부러지며 거칠게 튕겨 나갔다.
야수의 발톱 같은 검기가 유진을 노리고 사납게 쏘아졌다.
“제길!”
다급한 표정으로 팔을 뻗는다.
왼쪽 가슴의 성흔이 타오르듯 빛을 뿜으며 검은 깃털 수십 개가 허공에 만들어졌다.
카가가가각!!!
검은 깃털들을 가뿐하게 분쇄하며 휘둘러지는 검격.
유진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강하다!’
흑사자 이우혁은 소문으로 듣던 대로 괴물 같은 무위를 자랑했다.
“크윽!”
검은 깃털을 쏟아부어 가까스로 검격을 늦춘 후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뒤로 거리를 벌렸다.
“실망스럽군.”
이우혁은 서릿발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거리를 벌린 유진에게 따라붙었다.
“고작 이 정도 실력으로 감히 날 노렸던 거냐?”
강렬한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이번 일로 인해 안 그래도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던 이신혁이 얼마나 괴로워하게 될지 생각하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이제 겨우.’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는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꿈을 품었는데.
━모조리 망가지고 말았다.
“뭐, 뭐라고?”
유진은 크게 눈을 부릅떴다.
자신이 흑사자 이우혁을 노렸다니.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설마.’
유진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어긋나 있는 것들이 지나치게 많다.
앞뒤도, 흐름도 뒤틀려 있다.
그렇다는 말은.
‘누군가━ 흑사자를 이용하고 있다.’
그게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가능성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촤악!!
“커헉!!”
검에서 쏘아져 나온 야수의 발톱이 가슴부터 배꼽 위를 길게 갈랐다.
살점이 벌어지며 핏물이 튀어 올랐다.
“오, 오해다!!”
다급히 외쳤다.
“나,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이우혁은 차가운 조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평소였다면 저 궁색한 변명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였을지도 모르지만.
“헛소리하지 마.”
지금은 아니다.
-촤악!
“아아아악!!”
유진의 옆구리가 길게 베이며 핏물이 움큼 쏟아져 내렸다.
‘비, 빌어먹을!’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흑사자는 자신이 범인이라고 단단히 믿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느긋하게 오해를 풀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말을 하는 사이에 분노한 흑사자의 발톱에 갈가리 찢기게 되리라.
‘일단 도망쳐야 해!’
싸워 이길 수는 없는 상대였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며 두 팔을 교차했다.
기회는 단 한 번.
전신의 마력을 쥐어 짜내며 성흔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자신이 무슨 발악을 하더라도 놈에게 생채기 하나 줄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조금의 틈이라도 만든다면…!’
이럴 때를 위해 숨겨둔 비장의 한 수 정도는 남겨두고 있었다.
-촤악! 푸욱!
“크윽! 크하악!”
정신을 집중하는 짧은 틈에도 야수의 발톱이 사납게 몸을 난자했다.
“흑익산화(黑翼散花)!”
투두두두둑!!!!
교차한 두 팔을 엑스자로 내리그었다.
궤적을 따라 만들어진 수십, 수백 개의 검은 깃털이 폭발하듯 전면을 향해 쏟아졌다.
“소용없어.”
오히려 이우혁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시야를 가득 메울 정도로 쏘아지는 검은 깃털.
나름 강력해 보이는 기술이긴 하지만.
“같잖은 건 마찬가지지.”
사자자리의 성흔이 강렬한 빛을 뿜었다.
검에서 흘러나온 돌풍이 극도로 압축되며, 야수의 발톱과 같은 검기의 형태로 변했다.
야수의 발톱이 쏟아지는 검은 깃털과 격돌했다.
-콰자자자자작!!!
주변 대지와 암석, 나무가 믹서기에 갈린 듯 갈려 나갔다.
비산하는 흙먼지가 시야를 가린다.
이우혁은 가볍게 검을 휘둘러 흙먼지를 없앴다.
“하압!!”
이우혁이 흙먼지를 없애는 사이 생긴 짧은 틈.
유진은 품속에서 재빨리 검은색 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푸욱!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몸을 찔렀다.
“…무슨!”
이우혁이 다급히 유진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파드드드득!!
유진의 몸이 순식간에 검은 깃털로 변하더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제길!!!”
이우혁은 거칠게 입술을 짓씹었다.
“어디야… 어디로 간 거야.”
다급히 주변을 둘러봤지만, 무슨 능력을 쓴 건지 도망친 방향을 알 수가 없었다.
‘놓칠 수 없어.’
까득.
검은 사자가 사납게 이를 갈았다.
‘산 밖으로 벗어나지는 못했을 거야.’
이럴 때를 대비해 협회에 도움을 요청해 포위망을 구축해뒀다.
-콰아앙!
포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검은 사자가 어둠이 내려앉은 숲을 질주했다.
* * *
푸드드득!
수백 개의 검은 깃털이 허공을 갈았다.
회오리치듯 한곳에 뭉친 검은 깃털이 사람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검은 깃털에서 사람의 형태로 돌아온 유진은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발을 박찼다.
탁! 타다닥!!
어둠이 내려앉은 숲을 질주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며 시야가 흔들렸다.
“빌어먹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쿵!
“크윽!”
나무뿌리에 걸린 몸이 흙바닥을 뒹굴었다.
상처가 벌어지며 핏물이 쏟아졌다.
“제, 제기랄!”
다급히 뒤를 돌아봤지만 누군가 따라오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성공…한 건가?’
탁.
긴장이 풀리며 급격한 피로가 밀려왔다.
“하아, 하아!”
심장이 터질 듯 뛴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크윽.”
유진은 상처를 부여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몸은 만신창이가 됐고, 아끼고 아끼던 비장의 성유물을 허무하게 써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입가에 환희의 미소가 지어졌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성공했어.’
그 미친 야수에게서 도망치는데 성공한 것이다.
“대체… 대체 왜 이런 일이.”
하지만 그것뿐.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자신의 부하도,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도.
“씨발, 씨발, 씨발!!”
머리를 쥐어뜯으며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검은 별의 성유물을 되찾아오기는커녕 은신처와 부하들까지 모조리 잃어버렸다.
그것도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해서.
“어, 어떻게 해야….”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 갔다.
이 상태로 살아 돌아간다 하더라도 천도윤의 손에 죽게 되리라.
“…….”
유진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아샤드 칸.’
그 개자식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죽을 만큼 싫었지만, 그렇다고 진짜 죽을 수는 없는 노릇.
그에게 머리를 조아려 도움을 구해야 했다.
“제길.”
낮은 욕설과 함께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을 때.
-사락.
“누, 누구냣!!”
유진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다급히 몸을 돌렸다.
소리가 들린 곳에 서 있는 것은━
“네놈이 왜 여기에….”
자신에게 가짜 성유물을 팔아치운 사기꾼.
그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놈이 눈앞에 걸어오고 있었다.
“푸흐흐! 고생 좀 했나 봐? 꼴이 말이 아닌데 이거.”
오진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유진을 내려다보며 낄낄 어깨를 들썩였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
의문을 이어가던 유진의 두 눈이 부릅뜨였다.
“…잠깐.”
그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서, 설마.”
━쫘악.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서로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았던 퍼즐 조각이 맞물려지는 듯한 감각.
어긋났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
‘모두… 저놈이 꾸민 일이라고?’
아까는 너무 급박한 상황이라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지만.
되짚어 생각해 보면 은신처를 알고 있을 만한 놈은 저놈 외에는 없다.
그의 뒤를 쫓던 부하가 둘이나 당했었으니까.
“아, 아아.”
은신처가 발각됐을 가능성은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생각했다.
의미 없다 생각했다.
쫓기는 건 자신이 아닌━ 저놈이었으니까.
자신은 강자였고.
놈은 약자였으니까.
‘그런데.’
분명.
그랬었는데.
그래야만 했는데.
어째서.
짓밟히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약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단 말인가?
“이제 알았어?”
귓가에 들려오는 온화한 목소리.
덜덜덜 몸을 떨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으아아아아아아아!!!!!!”
콰앙!!
유진은 발작을 일으키듯 괴성을 지르며 발을 박찼다.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쥐어짜내 검은 깃털을 만들었다.
“어이쿠, 아직 기운이 팔팔하네.”
캉! 카강!
오진은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급소를 노리고 날아드는 검은 깃털을 쳐냈다.
“근데 그렇게 격렬하게 안 움직이는 게 좋을걸?”
몸을 숙여 바닥을 쓸 듯 창을 낮게 휘둘렀다.
“크윽!”
유진은 가볍게 뒤로 물러나 공격을 피하긴 했지만, 이내 가슴의 상처를 부여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우혁에게 당한 상처가 다시금 벌어지며 핏물이 흘러내렸다.
“거봐, 안 움직이는 게 좋다 했잖아.”
오진은 조소를 흘렸다.
“너, 너 이 개….”
“그러게 왜 그랬어?”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흑사자를 함부로 건드리면 쓰나?”
“뭐, 뭐?”
“에이. 또, 또 모른 척한다.”
“모른 척은 씨발!!!”
유진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네가!! 모두 네가 꾸민 짓이잖아!!”
“엥? 무슨 소리야?”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다 네가 한 짓이잖아?”
어차피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단 한 번도.
중요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중요했던 건 진실이 아닌, 진실처럼 보이는 것들일 뿐이다.
“이우혁의 형을 납치해서 협박한 건━ 모두 흑성회의 짓이잖아?”
“이, 이 빌어먹을 새끼가아아아아!!”
“푸흐흐흐!!!”
천박한 웃음을 터트리며 유진의 배를 거칠게 걷어찼다.
“커헉!!”
바닥에 쓰러진 그의 가슴을 지그시 밟았다.
“내가 너희들한테 궁금한 게 좀 많아서 말이야. 알려주지 않을래?”
“…뭐, 라고?”
유진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오진을 올려다보았다.
“하, 하하하하핫!!”
이내 폭소를 터트리며 사납게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이딴 식으로 은신처의 정보를 얻어낸 거냐?”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도 않았다.
“카악, 퉷!!”
가슴을 짓밟고 있는 오진의 다리를 향해 걸쭉한 가래침을 뱉었다.
“네놈에게 알려줄 정보는 없다, 이 사기꾼 새끼야.”
아무리 자신이 그에게 속아 이 모양 이 꼴이 됐다 하지만, 흑성회에 대한 정보를 나불거릴 생각은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무슨 짓을 해도 내 입을 열 순 없을 거다.”
검은 별에 대한 그의 충성심만큼은 진심이었으니까.
“그래? 말하기 싫으면 어쩔 수 없지 뭐.”
“…뭐? ”
유진은 고개를 들어 오진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검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어?”
어째서일까.
분명 오늘 밤은 쏟아질 듯 많은 별이 떠있었는데.
찬란한 은하수가 하늘을 수놓고 있었는데.
‘왜 이렇게.’
빛 한점 보이지 않는 검은 하늘만 보이는 걸까.
“그럼 이제부터.”
유진의 손가락 하나를 손에 쥐며,
“아무 말도 하지 마.”
오진은 환하게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