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56)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56화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 (3)
“요, 용의자?”
기자들이 벙찐 표정으로 외쳤다.
“조용.”
최우진이 사납게 눈을 뜨며 나지막이 말했다.
━영혼을 옥죄는 듯한 눈빛.
피 냄새를 맡은 짐승의 눈이 차갑게 타올랐다.
“히, 히익!”
“우웁!”
기자들은 그 엄청난 기세에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기자들의 대부분은 각성조차 하지 못한 일반인.
‘전견(戰犬)’이라 불리며 협회 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최우진의 기세를 견뎌낼 리 만무했다.
“특무관의 권한을 이용해 긴급 수사를 진행하겠습니다.”
최우진은 협회에서 발급받은 특무관 증명증을 내밀었다.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기자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각성자가 몇 있긴 하지만… 그다지 높은 수준은 아니야.’
기껏해야 2~3성에 불과한 각성자들.
그조차 소수에 불과했다.
‘내 감각을 속일 정도의 각성자라면….’
최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지닌 자신의 감각을 속이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
최우진은 가늘게 눈을 떴다.
기자회견장에 들어온 이후, 아니 오진과 만나 악수를 나눴을 때부터 성흔을 활성화해 주변을 경계했다.
‘암습의 기척은 전혀 느끼지 못했어.’
밀착 경호를 하고 있던 자신의 감각을 피해 오진에게 독을 주입했다고?
‘불가능하다.’
9성 이상의 고위 각성자가 아니라면 사냥개자리의 감각을 속이고 그에게 접근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진짜 고위 각성자가 오진을 노렸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이유도 명분도 없을뿐더러, 그들 대부분이 현재 인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마경(魔境)’에 있었으니까.
‘뭔갈 마시거나 먹은 적도 없어.’
그렇다면.
‘나와 만나기 전에… 이미 중독된 상태였다.’
오진이 집을 나와 여의도까지 오는 사이에 중독당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기자들 인적사항이랑 알리바이 모두 다 조사해 둬.”
“알겠습니다!”
부하직원에게 일을 맡긴 후 최우진은 오진이 쏟아낸 피에 코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우우우웅!
왼쪽 가슴에 새겨진 사냥개자리의 성흔이 밝게 타올랐다.
폭발적으로 증폭된 감각.
반경 수백,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냄새들이 그의 콧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냄새라고는 해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풍기는 냄새는 아니었다.
‘마력의 냄새.’
성흔을 지닌 자라면 반드시 풍길 수밖에 없는 냄새를 쫓는다.
“…역시.”
오진에게서 흘러나오는 ‘거문고자리 성흔’의 냄새 외에 다른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아주 희미하게 이어진 마력의 흔적.
그가 아니라면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옅은 마력의 흔적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현장은 맡겨둔다.”
“특무관님은….”
“조사할 게 따로 있어.”
부하직원들을 현장에 둔 채 그는 마력의 흔적을 쫓았다.
끊어질 듯 말 듯 희미하게 이어진 마력의 흔적은 오진이 타고 온 차에까지 이어져 있었다.
‘예상대로 여기 오는 도중에 중독된 게 맞았군.’
달리는 차 안에서 중독당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쓰읍.”
깊게 호흡을 들이쉰다.
단거리 육상선수가 레이스 위에 선 것처럼 바닥에 손을 짚은 채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평소라면 차로 이동했을 테지만.
‘시간이 없어.’
오진이 자신과 만나기 전에 당한 거라면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범인은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있을 테니깐.
“야수의 발걸음.”
폭발하듯 뿜어지는 푸른 빛.
성흔의 마력이 전신을 휘감으며,
-콰아앙!
거칠게 발을 박찬다.
-투두두두두두!!!!
주변을 달리는 자동차가 굼벵이처럼 느껴질 정도로 빠른 속도로 도로를 질주했다.
칼날 같은 바람이 뺨을 스쳤다.
희미하게 이어지는 마력의 흔적을 따라 오진의 집이 있는 인천을 향해 달렸다.
“하아, 하아.”
그렇게 20여분 정도를 달렸을까.
살짝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는 오진의 집 근처에 도착했다.
‘뇌랑이 이런 곳에 살았던가?’
최근 유명세를 얻으며 급부상한 각성자기에 당연히 집 또한 좋은 곳에서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폐허나 다름없는 곳이군.”
8년 전, 아니 이젠 해가 바뀌어 9년이 지난 과거에 괴수의 습격이라도 당했던 걸까.
사람이 살고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 쓰러져가는 동네였다.
반쯤 부서져 있는 건물 사이를 따라 걷던 도중.
‘찾았다.’
마력의 흔적이 짙어진 장소를 발견했다.
“여기서 습격당한 거야.”
그것도 자신이 중독됐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과연.”
주변을 살피던 최우진은 쯧 혀를 찼다.
‘여기서 습격한 이유가 있었군.’
그 흔한 CCTV조차 하나도 보이지 않는 장소였다.
암습을 하기 위해 최적화된 장소.
“…오진 씨는 분명 의식을 잃고 집에서 요양 중이었다 했었지.”
그렇다면 범인은 처음부터 그의 집 근처에서 잠복하며 그가 나오길 기다렸다는 얘기가 된다.
“…….”
계획된 암습.
하지만 의문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왜 집에서 나오길 기다린 거였지?’
암습을 한다면 그가 의식을 잃고 있던 지난 일주일 사이에 하는 게 현명했다.
“…집에 누군가 있었다면?”
그러고 보니 들은 적 있었다.
그와 동거하고 있는 여자가 한 명 있다고.
‘송하은이라 했던가?’
최우진은 협회에 연락해 그녀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5년 전 사고로 인해 힘을 잃었다가 최근에 회복했다, 라.’
최근 마수 토벌에 참여해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기록도 있었다.
“용자리의 7성 각성자.”
과연.
범인이 밖에서 기다린 이유가 있었다.
‘송하은이 같이 있단 걸 알고 있었던 거야.’
그렇기 때문에 오진이 혼자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
이제 막 의식을 차려 완전히 회복조차 하지 못한 오진을 은밀하게 처리하기 위해.
“이유는… 생각할 것도 없지.”
최우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오진이 기자회견장에서 말하려고 했던 판디누스 길드와 최종철 사이의 은밀한 관계.
‘그 증거를 권오진이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범인은 당연히.
“아니. 아직 섣불리 판단할 순 없어.”
그는 수많은 범죄자들을 감옥에 처넣은 특무관이다.
정확한 물증 없이 심증만으로 범인을 확정할 순 없다.
‘증거가 필요해.’
최우진은 성흔의 마력을 더욱 강하게 끌어올렸다.
빼도 박도 할 수 없는 완벽한 물증.
그는 그것을 찾는데 가장 특화된 각성자였다.
‘범인은 흔적은… 저기군.’
두 사람이 교차했던 자리를 지나 마력의 흔적을 뒤쫓았다.
최대한 은밀하게 마력을 숨기려 한 모양이지만, 사냥개자리의 7성 각성자인 최우진의 감각을 속일 수는 없었다.
-뚜벅, 뚜벅.
최우진은 마력의 흔적을 쫓아 발걸음을 옮겼다.
마력의 흔적이 이어져 있던 건 골목 중간에 버려진 에코백.
정확히는 에코백의 끝부분에 묻어 있는 녹색 액체였다.
오진의 피에서 맡았던 냄새와 똑같은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가방을 들고 자연스럽게 부딪힌 다음 독을 묻힌 건가.”
그렇다면 오진이 자신이 ‘중독됐다’라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길 가다 부딪힌 사람이 독이 묻은 가방을 들고 있었다곤 예상할 수 없었을 테니까.
“…여기서부턴 흔적이 아예 없군.”
최우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버려진 에코백을 마지막으로 주변에 어떤 마력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았다.
냄새도, 발자국도 없다.
말 그대로 증발하듯 이 자리에서 범인은 사라져버렸다.
‘무슨 수를 쓴 거지?’
그것까진 알 수 없었지만.
-턱.
최우진은 에코백 끝에 묻은 녹색 액체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정신을 집중해 독에 담긴 성흔의 마력을 읽었다.
감추려고 노력한 것 같지만.
그는 느낄 수 있었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전갈자리 성흔의 마력을.
“역시. 반전은 없었군.”
그의 눈빛이 사납게 번들거렸다.
다른 성흔과는 다르게 전갈자리 성흔을 지닌 각성자는 거의 예외 없이 판디누스 길드에 소속되어 있었다.
특히 이 정도로 은밀하게 암습을 할 수 있는 실력자라면 판디누스 길드 말고는 생각할 수 없다.
심증도, 물증도 있는 이상.
더 이상 판단을 보류할 순 없었다.
“범인은━ 판디누스 길드였어.”
최우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 * *
여의도에 위치한 병원의 중환자실.
성유석을 활용해 만든 값비싼 의료 기구에 둘러싸인 채 오진은 천천히 눈을 떴다.
‘쓰벌. 드럽게 아프네.’
내장 일부를 녹일 정도로 강력한 독을 사용했다보니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뭐, 이 정도는 해야 속을 테니깐.’
산소호흡기를 낀 채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진은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올려진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뉴스 탭으로 들어가 최신 기사를 확인했다.
[뇌랑 권오진 기자회견 도중 피를 토하며 쓰러져… ‘충격’] [범인은 판디누스 길드? 현장에 남아 있던 ‘전갈자리 성흔의 흔적’] [피를 토하며 혜성 병원으로 이송된 뇌랑… ‘조금만 늦었으면 목숨을 잃었을 것’ 의사의 증언 잇따라.] [뇌랑이 말하려 했던 판디누스 길드와 최종철과의 관계는?]헤드라인부터 시작해 모든 기사들이 이번 사건에 관한 얘기로 가득했다.
“흔적은 잘 찾아줬나 보네.”
기사들을 바라보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못 찾을까 봐 좀 걱정했는데 말이야.’
최우진.
소문으로 듣던 대로 뛰어난 수사 실력을 지닌 각성자였다.
‘어디 사람들 반응 좀 볼까.’
저번에도 찾아봤던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갔다.
[로유진 : 속보))) 뇌랑 독살 시도한 ‘그’ 길드 근황]이번에도 관련 없다며 발뺌하는 중 ㅋ
┗제리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새끼들
┗흙흙수저 : ??? : 현장에서 전갈자리의 성흔이 발견되긴 했지만 저희와는 아무 연관 없는 일입니다.
┗멍멍킴 : ㅆㅂ 저렇게 뻔뻔한 것도 재능인 듯;
┗벤티는암컷 : 그럼 저번 사건도 판디누스가 벌인 거?
┗멍멍킴 : 그럼 독살을 괜히 하려 했겠냐? 딱 봐도 찔리는 게 있어서 그런 거지 ㅋㅋ
┗제리엠 : 별빛 호수 길드도 존나 억울하겠네 ㄹㅇ 저런 정신 나간 놈들한테 물렸던 거 아녀
들끓는 여론.
별빛 호수를 향했던 비난의 화살은 모두 판디누스 길드로 향하고 있었다.
‘이젠 발뺌할 수도 없겠지.’
이미 여론은 그들의 적으로 돌아섰으니까.
외통수.
지금 판디누스 길드가 놓인 상황을 이보다 적절히 표현할 단어가 있을까.
물론 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자기들은 관련 없는 일이라며 빠져나가려는 것 같지만.
‘어디 한 번 마음껏 발버둥 쳐봐.’
어차피 이건 ‘흑천’에 대해 알지 않고는 반박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 범행 현장에서 전갈자리의 성흔의 흔적이 발견됐는데 뭘 어쩌겠는가.
판디누스 길드는 독살 혐의와 함께 토벌 사건에 있었던 일들까지 모두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이제 여기서 느긋이 누워 있으면서 공짜 밥이나 얻어먹으면 되지.’
굳이 더 나서서 설칠 것도 없다.
이제까지 여론의 화살을 맞았던 10대 길드가 친히 나서서 놈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다.
‘우리 누나가 걱정할지도 모르니 카톡만 몇 개 보내 놓고.’
흑천에 대한 건 그녀도 모르지만.
이 상황을 자신이 만들어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짐작하고 있으리라.
“푸흐흐흐!!”
오진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느긋이 침대에 누웠다.
“그러게 함부로 사기를 치면 안 되지.”
말했잖아.
이건 내가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