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61
261. 죽이기 위하여(5)
산국의 왕이 통신을 걸기 전, 제국의 현 황제 엘피디우스는 재상과 싸우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모든 나라가 연합하여 데온 하르트를 죽인다니…!”
재상은 이 소식을 너무 늦게 접했으니까.
심지어 이것도 재상이라 일찍 알려준 것이란다. 황제와 황태제를 제외하면 저 외에는 누구도 모른다는 말에 어떻게든 진정하기 위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재상 아르달은 결국 언성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터무니없는 규모의 계획이잖습니까! 그 중요한 일을 어찌 일언반구도 없이 멋대로 결정하실 수 있는 겁니까!”
“규모만 크다뿐이지, 잘못된 계획은 아니지 않나.”
“지금 제가 그것에 대해 뭐라 하는 것으로 보이십니까? 폐하, 저는 지금 나라의 명운이 갈릴지도 모르는 중요한 계획을 신하들에게 어떠한 언질도 없이 진행하신 것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회의에 의제로 올리고, 논의가 오간 다음에 내려야 할 결정이다. 하다못해 의견을 밀어붙이더라도 회의에서 진행되었어야 할 일이었다.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게 해주어야지, 졸지에 귀족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날벼락 맞게 생기지 않았나.
게다가.
“그리고 폐하께서는, 그 결정에 어떠한 사감도 들어가지 않았노라 확언하실 수 있겠습니까?”
“…….”
데온 하르트를 죽이는 것을 최우선에 둔 계획이다. 사감이 들어가지 않았을 리가.
그들의 숙부이자 선황 에도아르도는 데온 하르트의 손에 죽었다. 복수하겠노라 온몸으로 외치며 기 싸움을 하던 것이 엊그제인데, 벌써 감정을 정리했을 리 없지.
황족들의 사이가 돈독한 것은 좋다만,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해서야. 아르달은 흐린 한숨을 내쉬었다.
“선황께서는 그래도 제국의 ‘황제’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은 지켰습니다.”
아니, 이제 와서 보니 그 누구보다 황제다웠더랬다.
“그런 그분께서 친히 후계로 인정하고 자리를 물려주었거늘, 폐하께서 이러시면….”
“자네는.”
말이 끊겼다.
창틀에 걸터앉듯 기댄 채 상황을 지켜보던 알레테아가 몸을 세우고, 잔소리가 지겹다는 듯 삐딱하게 턱을 괴고 있던 엘피디우스가 손을 내린다. 금안이 서늘함을 담고 매섭게 빛났다.
“짐이 우습나?”
“…….”
“선황은 선황이고, 나는 나다. 어찌 감히 선황과 짐을 비교할 수 있는 거지?”
사람을 타인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큰 실례임을 모르지 않을 텐데, 하물며 황제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하며 압박했으니 이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내가 그렇게 우습다는 뜻인가. 엘피디우스의 목소리가 한층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짐은 선황을 깎아내리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내세워 짐을 깎아내리는 것을 허락하지도 않았네. 물론 자네는 선황 세대의 인물이고 짐을 황태자 시절부터 봐왔으니 지금 이렇게 짐의 등을 받치고 있는 옥좌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도 이해하지만…….”
“…….”
“그걸 겉으로 드러내서는 안 되지. 그렇지 않나?”
“……실례했습니다.”
실수를 자각하자 사과는 빨랐다.
곧바로 고개를 숙이는 재상을 노려보던 엘피디우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됐다는 듯 내젓는 손에 피곤이 담겨 있었다.
“자네가 유능하지 않았다면 진즉에 목이 날아갔을 거네.”
유능한 재상 덕분에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제국이 나름대로 균형을 잡고 운영되고 있으니까. 안정적으로 변해가는 속도도 제법 빠르다.
‘애초에 유능하지 않았다면 평민인 그가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겠지만.’
재상이 말없이 허리를 굽힘으로써 재차 사과하고, 침묵이 찾아왔다.
이로써 한고비 넘겼군. 조금 불쾌하긴 했지만 덕분에 껄끄러운 화제를 넘겼으니 재상의 무례는 이것으로 계산을 끝내도록 할까. 온화함을 되찾은 분위기 속에서 엘피디우스가 등받이에 상체를 기댔다.
“……종종 생각하곤 하는 것이지만.”
침묵 끝에, 혼잣말에 가까운 누그러진 음성이 나직이 울렸다.
“우리 가족은 황가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행복했을지도 모르네.”
“…….”
“재상 자네는 숙부님이 황제다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네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말이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던가.
에도아르도 데세르트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천장을 올려다보는 눈빛에 조소가 스쳤다.
“천성과 별개로, 숙부님은 그저 기를 쓰고 자리에 맞춰 스스로를 깎고 있던 것뿐이라서.”
황관이 저를 짓누르다 못해 숨통마저 조여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황관이 아니라 목줄이었노라 자조하면서도, 그는 버텼다. 그래서…….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똑똑히 지켜봤던 엘피디우스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버지도, 숙부님도 황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군.”
“…….”
“그리고 나조차도.”
만약 아버지가 왕이 되었더라도 숙부님과 비슷한 길을 걸었겠지.
천성적으로 그들은 군주의 자리에 맞지 않았다. 그건 엘피디우스 역시 그랬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난 그분들처럼은 못 하지.’
이 자리와 맞지 않는다고 하여 스스로를 깎아 자리에 맞추는 짓은 할 생각이 없다. 황관의 무게를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황관을 쓰지 않았다.
‘난 황제가 아니야.’
‘진짜’ 황제가 아니기에 이리 멋대로 굴어대는 것이고.
입 밖에 내지 못할 말을 꿀꺽 삼키고 눈을 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저를 보는 재상을 향해 엘피디우스는 웃었다.
“연합 건은 그냥 넘어가주게. 잘못된 길도 아니고, 사감과 별개로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은 맞지 않나.”
“하오나.”
“뒷감당은 짐이 할 테니까.”
어차피 욕받이는 내가 될 생각이었다. 애초에 내가 벌인 일이니 욕받이라 할 것도 없지.
알레테아는 물론이고, 재상 역시 알면서도 왜 말 안 했냐는 질타를 받게 둘 생각은 없으니 그들이 걱정할 건 없다.
단호한 엘피디우스의 표정에서 설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읽은 아르달은 한숨을 삼켰다.
“……어차피 이미 벌어진 일인 것을요.”
이미 제 선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마음대로 하라는 체념 섞인 간접적인 허락에 엘피디우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그렇지.”
“…….”
“그럼 이만 나가보게.”
한쪽에서 통신기가 깜빡인다. 누구와 연결된 것인지 잘 아는 그는 자연스럽게 축객령을 내리며 손을 뻗었다.
재상이 나가고 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통신이 연결되고 목소리가 울렸다.
– 르웨체의 설득은 어떻게 되어가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어쩐지 조금은 살기가 어린 듯한 목소리였다.
***
젊은 황제는 산국의 왕을 달랬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을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 …….
“이미 서신까지 전부 작성했죠. 적당한 사람을 고르는 즉시 바로 보낼 겁니다.”
산국의 왕은 말했다.
– 연합에 동참하겠습니다. 하니 최대한 빨리 진행해주시지요.
이 말을 들은 이상 모를 수가 없다. 엘피디우스는 확신했다. 무언가 일이 터졌구나. 그것도 시간이 촉박한 일이.
우위가 바뀌었다. 이제 제국이 산국을 상대로 고지를 차지했다. 여유를 슬슬 부리며 애간장을 태운다면 원하는 것을 받아낼 수 있을 터.
하지만.
“알겠습니다.”
가능한 많은 나라의 연합을 바라는 입장에서 그런 짓을 하다가 진정 산국이 망하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그리고 그건 나라의 이득을 위하는 ‘군주’가 하는 일이지, 내가 할 일은 아니니까.
엘피디우스는 쓸데없는 거래를 붙이는 대신 순순히 수긍했다.
그리고 고민했다.
누구를 보내야 할까.
“아무나 보내면 거절당할 테고…….”
“목이 잘리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죠. 마침 적당한 이가 있어요.”
통신을 끊고 고민에 빠진 지 얼마나 되었을까.
나직한 중얼거림에 줄곧 가만히 듣기만 하던 알레테아가 입을 열었다. 엘피디우스의 의문 어린 눈빛 아래, 여유로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황태제인 저의 참모 역할을 맡고 있을 정도로 머리를 쓸 줄 알고, 르웨체 왕의 호의를 사기 쉬운 이죠.”
“……그런 사람이 여기에 있었나?”
“이미 그의 동생이 르웨체에서 분노한 왕을 상대로 살아남은 것은 물론, 약속까지 받아온 전적이 있으니까요. 그녀와 닮은 모습을 보면 르웨체의 왕도 쉬이 화를 낼 수 없지 않을까요?”
“아.”
누군지 알겠다.
나직한 탄성 뒤에 대상의 이름이 뒤따랐다.
“린델 라이너.”
리엔 라이너의 오라버니.
정답. 알레테아는 생긋 웃으며 말을 마무리 지었다.
“네, 아마 그녀보다 더 똑똑한 그라면 르웨체의 왕을 설득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거예요.”
***
산국의 왕과 한창 체에스를 둘 때 – 그것도 마지막 날 바로 이전에 – 데온 하르트는 습격을 당한 적이 있었다.
여느 때처럼 게임을 끝내고 나왔을 때였다.
쓸데없이 눈에 걸릴 일 없도록 돌아 돌아 이동하느라 외진 곳으로 갔을 때, 발밑이 푹 꺼지더니 머리 위에서 자그마한 불꽃이 떨어졌더랬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 용사의 눈은 똑똑히 보았다. 그냥 불꽃이 아닌 불화살이었다. 새카만 밤하늘을 배경으로 시야를 메우며 떨어지는 불똥이 제법 아름답긴 하다만…….
‘고작 불화살 몇 개로 뭘 어쩌려고.’
배후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산국은 아닌 모양이다. 이곳에 온 첫날 그렇게 날뛰며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고작 이걸로 용사를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할 리 없으니까.
─따위의 생각을 하다가 문득, 그는 생각했다.
‘발밑이…….’
──원래 이런 느낌이었던가?
발밑에 잘그락거리는 것들이 잔뜩 쌓여 있다. 자갈돌이라기엔 너무 크고, 부자연스러운 감촉.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보인 것은…….
“……하, 빌어먹을.”
이 많은 게 전부 폭탄이라니. 누군지 몰라도 아주 작정한 모양이야.
시냇가의 자갈돌처럼 새까맣게 깔린 것들이 전부 폭탄이다. 여기도 폭탄, 저기도 폭탄. 폭탄. 폭탄. 폭탄…….
‘방심했네.’
이제 와 불화살을 잡아채거나 쳐내기엔 너무 늦었다.
뒤늦게 구덩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충 머리만 가린 채 화살 비를 뚫고 뛰어올라 보지만….
콰과과광!!
폭발의 영향 범위에서 벗어나기엔 역부족이었다.
‘시발.’
뜨거운 열기와 함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
때아닌 달밤에 태양이 고개를 비친 듯 붉은빛이 세상을 비추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사그라들 무렵, 어느 한 무리가 구덩이 주변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까지도 탄내가 풀풀 나는 시커먼 땅은 밟을 때마다 ‘치이익’ 소리를 내며 김을 뿜는다. 흡사 지옥이 구현된 듯한 광경에 구덩이 안쪽을 기웃거리며 살피던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역시… 죽었겠지?”
“그 말은 금기어인 거 모르나?”
“하지만 분명 죽었을걸. 아무리 용사라지만 그 정도의 폭발에서 살아남을 리가 없잖아. 시체를 찾는 게 기적일…!”
터억.
거짓말처럼, 구덩이 안쪽에서 손이 올라왔다. 땅을 짚은 시커먼 손 이후, 잿빛 머리카락이 모습을 드러낸다.
“역시.”
음산한 목소리가 울렸다.
“여기서 기다리면 누군가 올 줄 알았지.”
이어서 새빨간 눈동자가 달빛 아래 번뜩인다. 흡사 괴담에서나 나올법한 모습에 모두가 흠칫하며 주춤 물러섰다.
데온은 개의치 않고 입꼬리를 올렸다.
구덩이를 빠져나오자 그의 모습이 선명히 노출되었다. 옷은 너덜거리고 몸 전체는 여기저기 그을린 듯 검은빛으로 얼룩덜룩했으나, 눈에 보이는 상처는 없었다.
“내가 방심하긴 했어.”
누구의 말대로 용사가 되어 기고만장해지긴 했다. 이번에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고.
폭발 속에서 몸은 수없이 찢겨지고 회복되기를 반복했다. 열기에 의해 피부가 녹아내렸다가 회복되기도 했다. 거의 부상을 입는 것과 동시에 회복이 진행되어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등의 영구적인 손상은 없었지만, 고통은 어찌할 수 없었기에 데온은 방심한 스스로와 일을 저지른 상대에게 분노하며 몇 번이고 상황을 곱씹었다.
“그리고 생각했지. 누가 해이해진 내 정신을 일깨워줬을까?”
누가 이런 개 같은 짓을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