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349
349. 이후의 이야기(3)
깊게 파고들 것도 없이, 레멤베르는 공화국을 살피자마자 알았다.
공화국은 자유와 평등을 외치고 주권이 국민에게 있노라 말하면서도 정작 권력은 수장이 쥐고 있는 모순을 품고 있다. 이 나라를, 너희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그 무엇이든 너희에게 균등하게 나눠 주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수장은 여타 왕국의 왕들과 다를 바 없이… 아니 오히려 그들보다 더 권력을 꽉 쥐고 있었다.
“……어쨌든.”
이쪽이 신경 쓸 거리는 아니지만.
그쪽의 수장이 무슨 생각을 품고 무엇을 꾸미든 이쪽과는 관련 없는 일이다. 레멤베르는 공화국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가는 대신 다른 나라를 입에 올렸다.
“주목할 만한 나라는 공화국만이 아닙니다.”
아직 다른 이야깃거리가 많이 남았으니까.
“제국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아르달 왕국이 들어섰습니다. 이름에서 예상하셨겠지만, ‘그’ 재상 아르달이 세운 왕국입니다. 겉으로는 제국과 별개의 왕국인 듯했지만, 조금 주의 깊게 살펴보니 제국을 잇는 왕국인 듯하더군요.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라 감춘 것 같았습니다.”
***
특별히 누가 시작한 것이 아님에도, 언제부턴가 데온 하르트가 죽었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기 시작했다.
이를 들은 린델 라이너는 조용히 제 동생을 떠올렸다. 성인이 된 이후의 시간 대부분을 ‘리엔 경’이라 불렸던 강직한 기사를.
그리고 덩달아 과거 어느 순간, 저를 죽이려다가 끝내 죽이지 못한 채 살려 보낸 데온 하르트 역시도 떠올라서.
“데온 하르트가 죽었다고…….”
그는 그만 쓰게 웃어 버렸다.
그때 놈은 저를 리엔과 겹쳐 본 듯, 제 목 대신 그 옆 땅에 무기를 꽂아 넣고 울 것 같은 얼굴로 그녀의 이름을 읊조렸다.
당시에는 그걸 따질 겨를이 없어서 몰랐는데, 그게 그리도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기쁜 소식인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한데.
차마 시원하게 좋아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제 복잡한 감정 상태를 깨달은 린델은 씁쓸한 미소를 그렸다.
형용하기 어려운 침묵이 길어지자, 종이에 무언가를 쓰던 아르달이 슬쩍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마음이 복잡해 보이는데,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을 리가.
어쨌든 동생을 죽인 자가 죽었다는 뜻 아닌가. 당시의 무너진 얼굴이 어떤 의미로든 동생을 아끼고 사랑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 탓에 심경이 복잡하다지만, 그건 괜찮고 말고와는 별개였다.
……그렇지만 이 주제에 대해서는 더 이어 가고 싶지 않아, 린델은 말을 돌렸다.
“그보다, 정말 제국을 이으실 겁니까? 그냥 새 왕국의 1대 왕으로 시작하는 편이 더 깔끔하고 낫지 않겠습니까.”
재상… 아니, 국왕 아르달은 이 왕국을 제국을 잇는 왕국으로 하겠노라 말했다.
솔직히 이해되지 않는 선택이다. 제국이 민심을 샀던 나라라면 모를까, 제국의 마지막은 반란이었으니까. 민심이 최악이었다는 뜻이거늘, 왜 굳이 손해 보는 짓을 하는 건지.
하지만 아르달은 어느덧 검은 글씨로 꽉 찬 서류를 다음 장으로 넘기며 태연히 답했다.
“흔쾌히 제 시신을 이용하라 한 마지막 황제가 건넨 유일한 부탁이 에도아르도 데세르트에 관한 기록만큼은 역사에 남겨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것쯤은 굳이 나라를 잇지 않아도…!”
“자국의 역사에 비해 타국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덜 귀중하게 다뤄지죠.”
“…….”
“특히 전쟁의 화마에 많은 역사서가 사라질 텐데, 타국의 역사를 기록한 것을 신경 쓸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말을 잇는 와중에도 손은 멈추지 않고 빈 종이를 채워 내려간다. 아르달은 린델의 침묵을 배경으로 담담히 제 의견을 펼쳤다.
“아르달 왕국은 제국을 잇는 왕국으로서 1대 황제인 에도아르도 데세르트의 기록이 잊히거나 손실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겁니다.”
또한 부탁은 없었지만, 제국의 2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인 엘피디우스 데세르트에 관한 기록 역시 남길 것이다.
이는 성군이 될 수 있었던 자가 어떻게 폭군으로 전락하여 망했는지 그 과정을 선명하게 담고 있을 테니 반면교사가 되기에 충분하리라.
“물론 대놓고 제국을 잇는다고 선언하면 역풍을 맞으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공표하지는 않았잖습니까.”
“…….”
“왕족 등의 주요 인물들만 알고 있도록 조치를 취할 겁니다.”
수긍한 듯 그 이상의 반박은 없었다. 아르달은 그새 기록으로 가득 찬 서류를 넘겼다.
팔랑- 또다시 종이가 넘어갔다.
…….
[……조사 결과 제국 아르달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대 왕 아르달이 직접 쓴 것으로 밝혀졌다.] [다음은 그 기록 본원본의 일부이다.] [아르달은 ‘후제국’으로 ‘제국’을 잇는 나라다. 하여 이 기록은 ‘아르달’이 아닌 ‘제국’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첫 장. -에도아르도 데세르트-]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르러, 홀로 재앙에 맞선 황제가 있었다.]***
“……그리고 아마 이걸 가장 궁금해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익숙한 이들을 떠올린 듯 레멤베르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번진다. 봄볕 햇살처럼 부드러운 음성이 이어졌다.
“로프티 기사단은 용병단이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름까지 그대로 ‘로프티 용병단’이라 내건 채 활동하더군요.”
***
인간계 내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터지며 용병업도 활발해졌다.
용병업이 빛을 보기 이전에 주로 이루어지던 심부름이나 호위, 몬스터 처리 등의 가벼운 임무부터, 이젠 주된 업무가 되어 버린 전투 참전 같은 큰 의뢰까지.
저마다 의뢰를 맡고 맡기느라 언제나 사람이 가득한 가운데, 그런 용병 길드에 누군가 발을 들였다.
끼익- 낡은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실례합니다.”
용병과는 거리가 먼, 연륜을 담은 부드러운 목소리.
노년의 용병들은 보통 거친 음성을 가지고 있으니 아마 의뢰인일 것이다. 애초에 용병이 ‘실례합니다’ 같은 말을 할 리도 없고. 새 고객의 등장에 비싸고 편한 의뢰를 찾아 길드에 머물고 있던 이들이 즉시 목소리가 들린 곳을 돌아보았다.
역시나, 전투와는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병약한 노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리 옆에 찰싹 붙어 있는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 역시도.
‘……아기?’
모두의 눈빛이 의아함으로 물들어 갈 때, 눈치를 살피던 노인이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부탁을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만…….”
“……손님, 죄송하지만 여기는 용병 길드입니다. ‘부탁’이 아니라 돈을 걸고 ‘의뢰’를 넣으셔야….”
“아…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제 전 재산을 드리겠습니다.”
“……!”
전 재산!
다 죽어 가느라 노인의 안색은 안 좋지만, 옆에 있는 아기의 혈색은 좋고 옷차림도 둘 모두 깔끔하다. 태도도 묘하게 고급스러운 것이 전체적으로 부족함 없이 지낸 티가 나는데, 그런 이의 전 재산이라면 필시 적은 액수는 아닐 터.
용병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예 의자에서 등을 떼고 노인에게 집중하는 이도 있었다.
당황도 잠시, 귀한 고객이라는 것을 깨달은 직원이 창구에서 나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돈을 주신다면 그것이 바로 의뢰죠. 무엇을 의뢰하고 싶으신가요? 공개된 장소에서 밝히기 어려우시다면 방으로 안내하겠….”
“아, 아뇨.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분 단위로 체력이 훅훅 떨어지는 상황이라 시간을 길게 끌어서는 안 된다.
노인은 시선을 내려 다리 옆에서 바짓단을 잡고 서 있는 아기를 보았다. 순진무구한 아이의 눈을 마주 보는 그의 시선에 씁쓸함과 참담함이 묻어났다.
“이 아이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예?”
“나중에 아이가 성인이 되면 내보내도 좋습니다. 처음부터 용병으로 키워 직원으로 사용해도 좋고요. 성인이 될 때까지, 이 ‘용병 길드’에 아이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내 몸이 건강했다면 아이를 부탁할 일도 없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전직 황궁의였던 노인은 얼마 못 가 제 수명이 다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어차피 살 만큼 산 늙은 몸이니 죽는 것은 아쉽지 않지만…….’
내가 죽으면 홀로 남게 될 아이는.
‘이 불쌍한 아이는 누가 챙기나.’
아이를 맡아 줄 사람이 없다.
일반인에게 맡기기에는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삶에 짐을 얹어 주는 셈인 데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전쟁의 화마에서 아이를 지키지도 못할 것이다.
앞으로 닥칠 세상을 생각하면, 보호자로서는 쉽게 죽지 않고 아이를 지켜 줄 수 있을 만큼의 무력을 갖춘 사람이 제격이겠지.
마침 가진 것은 황궁에서 일하며 번 돈뿐이라, 노인은 고민 끝에 용병 길드를 찾았다.
……하지만 역시 안 되는 모양이다.
직원의 얼굴에 곤란한 표정이 스쳤다. 이를 놓치지 않은 그는 곧바로 체념했다.
‘하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그리 간단히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니.’
아이는 언제나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손이 많이 가는 존재다. 한두 달 정도 잠시 맡기는 것도 아니고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 달라는 것이니 거절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용병들의 비웃음이 실내를 가득 메웠다.
“늙은이가 노망이 났구만! 아무리 애를 맡길 데가 없어도 그렇지, 용병 길드에 와?”
“어이 영감! 전 재산이라고 했는데, 그게 얼마지? 액수에 따라 내가 맡아 줄 수도 있는데!”
“뭐? 자네 진심이야? 애는 짐덩이라고! 의뢰도 자유롭게 받지 못할 텐데?”
“뭐 어때? 일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액수라면 이득이지! 그게 아니어도 영 아니다 싶으면 그때 가서 버려도….”
“하, 할아버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불안해하던 아이가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노인이 급히 달래는 가운데, 시끄럽다느니 역시 애새끼는 귀찮다느니 등의 조롱 가득한 발언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수위가 선을 넘는다 싶을 때.
“침묵 마법.”
“……응? 컭!”
“사일런스.”
불쑥 등장한 사내가 가장 목소리 큰 놈의 목젖을 후려쳤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모두가 멍해진 가운데, 사내의 동료로 보이는 다른 이들이 저마다 거슬리는 망언을 뱉은 놈들을 응징하기 시작했다.
“수면 마법. 슬립!”
“물리 마법. 회개.”
상당히… 독특한 방식이었다.
저건 그냥 뒷목을 갈겨 기절시키는 거잖아. 그리고 뒤통수를 잡아 테이블에 처박는 게 왜 회개야? 심지어 물리 마법이래.
어이없는 감정을 담고 속삭임이 빠르게 오간다.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리를 마친 놈들이 실내를 죽 훑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잦아들었다.
정적이 찾아왔다.
“콜록콜록! 어느 미친 새끼가… 헉!”
“나라는 미친 새끼다 이 새끼야.”
뒤늦게 제 목젖을 후려친 상대를 파악한 녀석이 흠칫 시선을 내렸다. 살기 어린 눈도, 사납게 으르렁거리던 음성도 거짓말처럼 싹 거둔 태도.
뿐이랴, 간 크게 용병 길드 내에서 소란을 피웠음에도 누구 하나 나서지 않는다. 당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들은 미친놈들이니까.
‘미친개…….’
‘미친개 용병단이다…….’
정식 명칭은 ‘로프티 용병단’.
돈이고 뭐고 수틀리면 죄다 뒤엎고 물어뜯는 것으로 유명해진 놈들이다. 심지어 실력조차 만만치 않아 이를 갈고 덤벼든 놈들은 모조리 곤죽이 되어 버리고, 은밀하게 살인 의뢰를 넣어도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멀쩡히 등장한다지. 오히려 의뢰를 넣은 놈들이 실종되어 버리는 공포스러운 상황이 펼쳐져 아무도 살인 의뢰는 넣지 않게 되었다고 했던가.
“음! 이제 좀 조용해졌네!”
흡족하게 고요한 실내를 둘러본 놈들이 조금 전까지 비웃음을 사고 있던 노인에게 다가간다.
애 우는 소리만이 크게 들리는 가운데, 아이를 끌어안은 채 경계 가득한 시선을 보내는 노인 앞에 선 용병단의 단장, 밀란이 씩 웃으며 말했다.
“영감, 그 애 우리가 키우면 안 돼?”
“그게 무슨…….”
“안전하게 키울 자신 있어. 절대 도중에 버리는 일 없이 성인이 될 때까지 애지중지 잘 키울게.”
“맞아! 낯익은 얼굴이어서 버리고 싶어도 절대 못 버릴걸?”
조금 전까지 제정신이 아닌 듯한 모습을 보여 놓고는, 대체 뭘 믿고.
엽기적이면서도 폭력적이던 조금 전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혹여 이들도 ‘전 재산’이라는 말에 욕심이 나 그런 것은 아닐까. 노인은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조심스럽지만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대답은 반걸음 뒤에 서 있던 부단장 클레터가 했다.
“소중한 아들을 잃었거든.”
“…….”
“그 빈자리가 너무 커서… 새 아이라도 키워 보려고.”
우리는 살아야 하니까.
“삶의 낙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