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7
7. 0군단장 데온 하르트(5)
깔끔한 검은 옷을 차려입은 나는 거침없이 군단장 전용 식당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내가 복도를 지날 때마다 날 발견한 병사들이 흠칫하더니 눈이 마주치면 돌이 되는 괴물을 본 것처럼 허리를 푹 숙인다.
처음엔 부담스럽고 무서웠지만 이젠 고마울 정도다. 네놈들이 참 무섭게 생겼거든. 전에 우연히 정면에서 마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땐 정말 돌이 되는 줄 알았다. 물론 너희 말고 내가.
쏟아지는 시선들을 무시하고 어느 거대한 문 앞에 멈춰 섰다. 그러자 문을 지키던 이들이 움찔 몸을 떨더니 정자세로 각을 잡는다.
“시, 식사하러 오셨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그그럼 문을 열겠습니다.”
그 흔한 ‘끼익’ 소리 하나 없이 큰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안에 들어서자, 나름 복작거리던 식당에 정적이 내려앉는다. 일제히 나를 향한 시선들을 느끼며, 나는 속으로 절규했다.
이래서 내가 식당에 안 오려는 거였는데!
저 시선들의 주인이 죄다 ‘군단장’이다. 혼자만의 무력 하나로도 충분히 전장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바로 그 군단장!
“…….“
“…….”
어, 어떡하지?
침착해, 침착하고, 이이이이일단 음식부터 받는 거야.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걸음을 내디뎠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집요한 시선들이 따라붙었으나 모르는 척 요리사들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어째 요리사들의 움직임이 더 빨라진 것 같다.
‘그래, 될 수 있으면 서둘러주라.’
지금 내겐 이렇게 군단장들의 주목을 받으며 서 있는 것 자체가 고문이나 다름없거든.
“요, 요리 나왔습니다. 마마마싯, 아니 맛있게 드십시오.”
달그락달그락.
나는 요란하게 떨리고 있는 쟁반을 내려다보다가 시선을 들어 요리사를 쳐다봤다.
너도 어지간히 긴장한 모양이구나. 하긴… 무려 군단장들이 이곳에 모여 있는데, 누가 긴장하지 않을 수 있겠어.
반가움과 안쓰러움에 힘내라는 뜻을 담아 웃어주니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더 요란해진다.
이러다가 쏟을 것 같아 빨리 받으려고 손을 올리는데… 아뿔싸.
촤악!
……너무 올렸다.
아무리 그래도 내 앞에 있는 요리사보단 덜할 거라 생각했는데, 나 역시 그 못지않게 긴장한 모양이다.
너무 빨리, 너무 높게 들어 올린 손은 보기 좋게 쟁반을 쳐올렸고, 내 손에 의해 하늘을 날게 된 쟁반은 공중에서 몸부림치며 음식을 흩뿌리더니 바닥에 요란히 나뒹굴었다.
“…….”
“…….”
아까보다 더욱 싸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나는 속으로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얼굴을 한차례 쓸어내렸다.
제기랄, 망했다.
***
사악하다. 역시 사악해.
지금 이 순간, 이 식당에 자리한 모든 이들이 동시에 떠올린 생각이었다.
데몬 아루트.
마지막 용사를 죽인 자이자 마왕이 직접 데려온, 마왕도 함부로 못 건드릴 만큼 강한 무력을 지녔다고 알려진 마왕군의 제0군단장.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군단장들이 장담하건대, 그는 무서운 작자다.
평소의 온건한 모습? 그것만 믿고 안심했다간 큰일 난다. 그는 그저, 분노하는 시점이 남들과는 다를 뿐이니까.
지금도 봐라. 얼마 전 식물을 제대로 가꾸지 못해 자신을 공격하게 만든 식인 식물의 담당자를 살려둔 것과 대비되게, 이번엔 고작 ‘떨었다’는 이유 하나로 요리사가 내민 쟁반을 내쳐버렸지 않았나.
‘그래도 이건 평소에 비해 정도가 지나친데….’
1군단장 제이카르가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지켜보며 조용히 나이프를 까닥였다.
……그러고 보니 정원에 불을 질렀다지. 불을 질렀을 정도면 상당히 화가 났다는 것일 테고.
여러 가지 가정을 세우던 머리가 가장 적합한 가정을 찾은 듯 어느 순간 뚝 멈췄다.
‘그때, 용서를 했던 것이 아니라면?’
그저 마왕성의 인력을 줄이는 것이 껄끄러워 정원에 불만 지르는 정도로 참은 것이라면?
그래서 그때의 분노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이라면?
‘요리사만 불쌍하게 되었군.’
그는 운 나쁘게 화풀이 대상이 된 것이다.
뒤늦게 데몬의 검은 옷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아마 ‘오늘 기분이 별로이니 건들지 마라’라는 무언의 경고였을 테지.
제이카르는 눈은 저들에게 고정한 채 느릿하게 고기를 썰어 입에 넣었다.
요리사에겐 미안하지만 불쌍한 것과는 별개로 감싸줄 생각은 없다. 고작 요리사 하나 구하자고 목숨 걸고 0군단장과 대치하는 것은 크나큰 손해이니까.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죽는 것도 아닌, 같은 편의 손에 죽는 허무한 일을 당하고 싶지는 않기에 제이카르는 그저 침묵했다.
그건 아마 다른 군단장들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다들 침묵하고 있는 것이겠지.
데몬의 얼굴은 진작부터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침잠하게 가라앉은 채 요리사를 향한다.
저건 분명 화가 난 거다. 당장 엎드려서 빌지 않으면….
“죄, 죄죄죄송합니다!!”
역시 군단장들을 상대해 온 요리사다 이건가. 눈치는 빠르군.
제이카르는 포크로 샐러드를 찍으며 슬쩍 데몬의 표정을 살폈다. 가라앉았던 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고민하는 모양이군.”
근처에 앉아 있던 3군단장 아실드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제이카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하며 묵묵히 상황을 지켜봤다.
어떻게 하려나.
죽이진 않겠지. 평소의 그는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을 극도로 꺼리니까.
또 불을 지르려나, 아니면 간단하게 반신불수로 만들어버리려나.
데몬은 종잡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제이카르의 눈빛은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
데온 하르트, 이번 생은 망하다. 머릿속에서 그 짧은 문장만 둥둥 떠다닌다.
머릿속이 백지가 되어버린 나는 눈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요리사를 멍하니 바라봤다.
요리사의 안색은 나보다도 더 창백했다.
그래, 정성 들여 한 요리가 바닥의 토핑이 되었으니 속상하고 화가 났겠지. 그런데 상대는 군단장이라 화도 못 내겠고…. 어떻게든 분을 삭이려는 모양인데, 역시 사과해야겠다. 안 그러면 언제, 어디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르니.
때문에 사과를 하려는데, 요리사가 갑자기 넙죽 엎드렸다.
“죄, 죄죄죄송합니다!!”
“!?”
이건 또 무슨 상황인지.
갑자기 훅 들어온 공격에 순간 동요해 버렸다. 아마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으리라.
나는 빠르게 동요를 수습하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요리사를 내려다봤다.
“……일단 일어나시죠.”
“죄송합니다! 부디 자비를!”
아니, 이 상황은 누가 봐도 내가 잘못한 거잖아. 도대체 왜 그러는데?
“자비랄 것도 없습니다. 일어나세요.”
“히익!”
기껏 네 잘못이 아니라고 부드럽게 말했는데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다.
오히려 더 납작 엎드리는데…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지.
“역시 데몬….”
“이름값을….”
심지어 다들 뭔가 속닥거린다.
인간 주제에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걸까.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돌아보자 다들 입을 다물고 시선을 피한다. 역시 내 이야기를 하고 있던 게 분명해.
지금 내 이미지는 완전히 바닥이겠지.
그래, 어차피 망한 이미지다. 거기서 더 망쳐도 회복되어도 거기서 거기 아니겠나.
그리 생각하자 마음이 한층 편해진다.
나는 해탈한 표정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여전히 엎드려 있는 요리사를 바라봤다.
“이럴 시간에 요리부터 다시 해오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괜찮지만 다른 군단장들이 화를 내지 않을까. 군단장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꼬인 구석이 있다고 들었는데.
특히 아랫것들에게는 자비가 없다고….
“네, 네네! 당장 다시 해오겠습니다!”
언제 엎드렸냐는 듯, 벌떡 일어난 요리사가 주방을 향해 후다닥 달려간다.
나는 벽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다시 식사가 나오길 기다렸다.
왜 눈을 감았냐고? 안 그러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았으니까.
아, 인생….
음식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심지어 내미는 것도 빨랐다.
빠르고 신속하게 요리를 전달한 요리사는 직각으로 허리를 푹 숙여 보이고는 후다닥 주방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이 어찌나 빠르던지, 내 손에 들려있는 음식이 아니었다면 아마 바람이 왔다 간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겨우 음식을 받아들고 걸음을 뗐다.
고작 열셋의 군단장의 식사를 제공한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식당은 넓고도 자리가 많았다.
스무 명은 앉을 수 있는 직사각형의 테이블이 무려 열세 개!
하지만 조금만 상황을 생각해보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군단장들은 각각의 개성이 강하다. 그만큼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었다.
마왕에게 들은 것이지만 식당에 저 20인분 테이블을 한 개만 갖다 놓았을 때, 서로 싸웠던 두 군단장이 저놈과는 같은 테이블에 앉고 싶지 않다며 식당을 뒤엎었단다.
그 이후로 설사 모든 군단장들이 싸우더라도 별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20인분짜리 테이블을 군단장의 수대로 준비해두었다고….
‘그러니까 내 곁에는 아무도 안 오겠지.’
자리도 넉넉한데, 왜 굳이 내 곁에 오겠어.
그런 장담을 할 수 있었기에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아니었으면 아무리 등을 떠밀었어도 차라리 죽이라며 바닥에 드러누웠겠지.
아무튼 나는 가장 끄트머리의 테이블에 슬그머니 앉았다. 내게 볼일이 있지 않고서야 굳이 시선이 닿지도, 발걸음이 향하지도 않을 자리.
이제부터 마음 편히 식사하려 막 포크를 드는 순간….
“여기 앉아도 되겠나?”
“……?!”
한 마족이 다가왔다.
어두운 피부색과 인간이 아님을 증명하듯 길고 뾰족한 귀. 모두가 내게 경어를 사용하는 상황에서 능숙하게 반말을 해오는 태도까지.
이 모든 것을 확인한 순간 나는 입을 꾹 다물어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집어삼켰다.
모든 군단장들의 실세.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나와 달리 공식적으로 마왕의 대행을 맡을 수 있는 실질적인 권력자.
1군단장 제이카르가 그릇이 담긴 쟁반을 든 채 내게 옆자리의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심지어 먹던 중 왔는지 슬쩍 확인한 그릇에는 음식이 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냥 앉은 자리에서 다 먹으면 될 것을, 왜 굳이.
마음 같아서는 거절하고 싶지만 딱히 이렇다 할 명분이 없어 나는 뻣뻣하게 굳어버린 입꼬리를 힘겹게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 없는 자리입니다. 굳이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대답은 뭐, 이 정도면 무난할 테고.
“그도 그렇군.”
피식 웃은 그가 쟁반을 내려놓고 드륵- 의자를 빼더니 자리에 앉는다.
설마 설마 했더니, 정말 앉을 줄이야. 도대체 내게 무슨 볼일이 있다고.
원래부터 희미하던 입맛이 싹 사라졌다. 자꾸만 나오려는 한숨을 꾹꾹 눌러 삼켜가며 샐러드만 뒤적이는데, 느닷없이 낯설고도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저도 앉아도 되겠습니까.”
하마터면 포크를 놓칠 뻔했다. 등 뒤에서 말하다니, 매너는 어디에 팔아먹은 건지.
화들짝 놀랐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분노로 변화하는 것을 고스란히 느끼던 나는, 상대를 확인하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관자놀이에 뿔이 달려 있는, 인간이라면 절대 가질 수 없는 비상식적인 수준의 근육을 가진 마족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으니까.
3군단장 아실드. 제이카르와 마찬가지로 먹다가 이동한 듯 음식이 반쯤 남은 쟁반을 든 그가 답을 재촉하듯 나와 눈을 마주한다.
이 상황에서 해야 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네, 당연한 것을.”
1군단장에게 앉든 말든 자유라 말해놓고 3군단장을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앞자리는 이미 제이카르가 차지하고 있기에 아실드는 자연히 내 옆에 앉았다.
졸지에 앞과 옆이 봉쇄된 나는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하고 떨리는 눈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고 음식에만 집중했다. 물론 통 넘어가지는 않아 포크로 뒤적이는 것이 전부였지만.
‘3군단장 아실드라면, 아마 마왕의 친위대였지.’
생존을 위해 이곳에 오고 외워두었던 정보를 머리 한구석에서 끄집어냈다.
군단장을 비롯한 모든 군단원이 대검을 사용하며, 압도적인 힘으로 적들을 섬멸하는 군단이 바로 3군단이다. 그만큼 강력한 군대가 필요할 때 마왕이 주로 사용하는 군단 역시 3군단이고.
1군단을 움직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1군단은 움직이는 것 그 자체로 큰 의미를 부여하기에 1군단이 움직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괜히 제이카르가 마왕의 대행을 맡는 것이 아니란 말이지.
“…….”
“…….”
아, 이런. 다른 생각을 너무 오래 했나.
문득 어색한 침묵이 피부에 와닿아 살짝 고개를 들었다.
불쾌하다거나 화가 난 것은 아닌지 표정을 살피려는 의도였으나, 안타깝게도 이쪽을 보고 있던 제이카르와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차마 눈을 피하지 못하고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그 역시 어색했는지 잠시 접시에 시선을 두더니 이내 고개를 수직으로 들어 올리며 천천히 입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