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reincarnated as a Doggo RAW novel - Chapter 160
161. 초코똥 판촉 행사(2)
그날이 다가왔다.
수십 번의 통화와 확인. 아무리 그래도 스튜디오 꿀잼으로서도 정성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내 얼굴이 들어가는 제품, 그리고 분명 상자 하단에 스튜디오 꿀잼 마크와 ‘소속 크리에이터 해피’ 문구, 우리의 동영상 채널 주소도 들어가 있었다.
거기에 조은이에게 떨어지는 개런티의 30%가 스튜디오 꿀잼의 수익이다.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회사도 좋은 것이었다.
게다가 장소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들이기에 너무나 좋았다. 예전의 첫 팬미팅 장소였던 ‘할매분식’이 온전히 조은이의 팬들이나 일부러 찾아와야만 할 곳에 위치한 협소한 공간이었다면, 어린이 대공원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스튜디오 꿀잼의 이름과 해당 소속 크리에이터들까지 알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걸덕이도, 점례도 각자의 채널에서 팬들을 모으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우리의 판촉 행사 때문이라 해도, 무대가 마련되고 많은 이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기에 그들로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이긴 했다. 봄에 한 번쯤 있을 팬미팅을 멋지게 실외에서 열 수 있는 셈이었다.
조은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SNS와 동영상 채널에서의 문의는 미어터지고 있었다. 하루 종일 사인하고 사진 찍어주는 것만으로도 뻗어버릴지도 몰랐다.
조은이는 이틀 후의 판촉 행사 겸 팬미팅을 앞두고 밤에 라이브 방송을 하며 팬들에게 다시 한 번 공지를 하고 있었다.
“네! 저는 사실 크게 할 일이 없어요. 여러분께 인사드리고 해피와 함께 이번에 나온 ‘해피의 싱글벙글 초코타임’ 제품을 소개하는 거죠, 같이 사진도 찍고. 그리고 제가 그날 김밥이랑 떡을 엄청 많이 주문했어요. ‘개똥팸’이라고 말씀해주시면 제가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조은이의 신난 모습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엄청 많이 오기야 할 것이다. 지금 구독자 수가 30만을 향해 가는 조은이의 채널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로 생각 외로 많은 이들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조은이와 나를 보러 오는 것이었다. 조은이가 판촉 행사에서 인사를 하더라도 그 자체의 모습을 보러오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이 세상 무시무시한 괴물인 초코똥 보급형, 고급형이 등장한다면? 함성이 짜게 식을지도 몰랐다.
초코똥 고급형이 이제 막 눈 초코바를 들고 ‘자아, 개똥팸 여러분, 드셔보세요!’ 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노라니 눈앞이 아찔해졌다. 내가 똥을 싼 짤방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
“이 옷 어떠냐?”
막 방송을 마치자마자 노파가 휘황찬란한 옷을 들고 들어왔다. 딱 봐도 예전에 귀생이와 데이트하려고 사 둔 옷인 듯했다. 가슴께에 달린 ‘나 플라스틱이요’하는 느낌을 팍팍 주는 브로치와 진주가 현란하기 그지없었다.
“와아, 진짜 예쁘다! 그나저나 웬 옷이야, 할머니?”
“네가 토요일날 저 귀신들린 인형 팔러 나간다고 하니 도와주려고 헌다. 겸사겸사 바람도 쐬고.”
“에엥? 진짜?”
“우리 손녀가 그렇게 인형 하나라도 더 팔려 하는데, 할매가 돼서 가만히 있으면 되것어? 가서 전단지라도 나눠 줘야지. 그리고 그날 점쟁이도 오기로 했어.”
“아주머니도?”
“와서 모여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사주 봐준다드라. 이런 행사에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이 좋다고. 자기가 잘 하는 것으로 도와주겠디야.”
자꾸 일이 커지고 있었다. 그러나 조은이는 싱글벙글이었다.
“와아, 진짜 고맙다! 이렇게나 신경 써 주시고. 나야 고맙지!”
하아… 될 대로 돼라.
***
그리고 판촉 행사 당일.
새벽부터 예보에도 없던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난 조은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노파도 새벽처럼 일어나 든든하게 아침밥을 준비하려던 손을 놓고 묵묵히 바깥의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부, 분명 구름만 살짝 낀다고 했는데!”
“이게 뭔 일이여. 회사에서는 전화 안 왔고?”
“응? 그게…”
순간 타이밍 좋게 전화벨이 울렸다. ‘박건혁 팀장님’이라 뜬 화면을 확인한 조은이가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팀장님! 지금 비가!”
– 네, 큰일이네요. 당연히 로이 님이나 로랑 님은 팬미팅이니 취소하거나 아니면 인근의 다른 시설을 급히 섭외해서 할 예정입니다. 아마 거의 취소가 되겠죠. 빨리 정해서 공지 띄우라고 연락했어요.
“그럼, 저는…”
– 조은 님의 판촉 행사는 그대로 진행됩니다. 이건 스튜디오 꿀잼이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용실업이 행사의 주최니까요. 지금 김택준 팀장과 전화했는데 일단 천막 부스를 세우고 진행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아, 그래요? 사람들이 거의 없을 텐데요.”
– 어쩔 수 없네요. 운이 지독히도 안 따라주네요. 앞의 장소에 대여 허가까지 받아놨는데 미룰 수 없어요. 다른 날은 꽉 차 있고. ㈜용실업 측에서도 도우미부터 음향업체, 진행요원 등을 전부 예약해 둔 상황입니다.
“알겠어요. 그나저나 큰일이네요. 떡이랑 김밥도 전부 주문했는데. 김밥은 그때 먹방했던 그 김밥집 것인데.”
– 얼마나 주문했는데요?
“떡, 김밥 모두 200개씩이요. 떡 200팩, 김밥 200줄. 개똥팸 분들에게 주려고요. 어린이 대공원 구경하시면서 드시라고.”
[종료일 2026년 3월 8일 오후 10시 13분. 현재 순자산 2억 5,476만 7,250원. 스튜디오 꿀잼 스톡옵션 26,923주]돈도 엄청나게 썼다. 150여만 원 가까이 나갔다.
사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정성스럽게 모양과 구성까지 신경 써 맞춘 떡과 김밥집에 특별히 부탁해서 준비한(아마 지금 이 새벽에도 싸고 있을 것이었다.) 김밥이 모두 쓸모없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전화기 상으로 한참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 일단 준비하세요. 가서 상황을 보죠. ㈜용실업도 정말 절실하니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네, 그럼 준비해서 나갈게요.”
조은이가 힘없이 전화를 끊은 후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축 처진 뒷모습을 바라보던 노파가 한숨을 쉬었다.
정말 예상치도 못한 공격이었다. 이런 날씨라면 백약이 무효할 상황, 오가는 이들도 전부 우산을 쓴 채로 급히 종종걸음으로 지나칠 것이 뻔했다. 아니, 애당초 비 오는 날 사람들이 어린이 대공원에 나올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때 노파의 전화가 울렸다.
“잉, 점쟁이! 이 새벽에 왜?”
– 왜긴 왜야, 보살님! 새벽기도 드리는데 비가 엄청 쏟아져서 전화했지. 오늘 취소되는 것 맞지?
“한대. 한다고 허네.”
– 이 비에? 아이고…!
“점쟁이는 맨날 신령님 개령님 해대면서 오늘 비 온다는 소리도 못 들었어?”
– 보살님, 말 쉽게 하는 것 아니에요! 신령님이 일기예보나 하시는 분인줄 알아? 아예 물어볼 생각도 못 했지. 보살님은 그래서 어떻게 하시려고?
“뭘 어떻게 해. 그래도 한다는데, 가서 응원이라도 해야지.”
– 그래요, 그럼 나도 준비해서 나갈게요. 비 그치게 용왕님에게 기도나 해야겠다.
다들 분위기가 추욱 늘어졌다.
조은이가 씻고 있는 동안에도 핸드폰의 알림은 쉴 새 없이 울리고 있었다. 아마 SNS나 동영상 채널에 달리는 댓글 때문일 것이었다.
머리에 수건을 감고 나온 조은이가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곤 한숨을 크게 내쉰 후 ‘이상 없이 진행합니다! 오실 수 있는 분들만 오세요! 떡과 김밥도 준비했어요!’ 하고 공지를 올렸다.
‘차라리 다행일지도 몰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빗방울이 두들겨대는 거실의 창문을 쳐다보았다. 모든 이의 마음을 대변하는 양, 마치 눈물 자국처럼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
“어서, 여기에 천막 치고! 지금 전기를 딸 수 있어요? 방수케이블이잖아. 응?”
어린이 대공원 앞 야외 광장은 난리통이나 다름없었다. 행사 기자재를 싣고 온 차량들이 멈춰 서 있었고 우비를 입은 인원들이 헐레벌떡 뛰어다녔다. 현장을 돕기 위해 나온 어린이 대공원 관계자도 ‘안 돼, 무리야’라 중얼거리며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그 사이로 눈이 시뻘게진 김택준 팀장과 ㈜용실업의 직원들이 어떻게든 행사 부스의 느낌이 나도록 무대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저 왔어요, 안녕하세요!”
일부러 씩씩하게 소리 내어 외친 조은이와 가방 안의 나를 향해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들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절망’의 기운에 나는 몸서리를 쳤다.
힘든 가운데 이 초코똥에 사활을 걸었다는 업체였다. 그리고 무리해서 생산 라인을 늘리고 이런 큰 판촉 행사까지 주최했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적어도 첫 단추는 잘 끼워야 하는 법이었다.
“아, 오셨어요?”
“네, 팀장님. 고생 많으시죠. 해피 인형들은요?”
조은이의 말에 김택준 팀장이 우울한 얼굴로 한쪽에 세워진 트럭을 가리켰다.
“비가 이렇게 쏟아져서 꺼내지도 못하고 있어요. 일단 천막들 다 치고, 어떻게라도 정리가 좀 되면 그때 꺼내려고요. 10시부터 4시까지 장소를 대여했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12시나 되어야 준비가 끝날 듯하네요.”
“아, 네에…”
그때 멀리서 우비를 입은 박건혁 팀장과 스튜디오 꿀잼의 촬영직원들이 카메라 가방을 메고 뛰어왔다.
“차가 많이 막혀서 좀 늦었습니다. 뭐, 저랑 직원들이 도울 건 없을까요?”
박건혁 팀장의 말에 김택준 팀장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 웃음 속에 담긴 의미를 아는 박건혁 팀장은 차마 위로의 말도 건네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스튜디오 꿀잼으로서도 홍보 효과, 매출 등을 고려하면 아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활을 걸어 준비해 온 ㈜용실업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안조은 님! 안조은 님!”
등 뒤에서 조은이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뒤를 돌아봤다. 경운기처럼 짐칸을 달고 온 오토바이가 멈춰 서 있었다.
“떡이랑 김밥 시키신 것. 각각 200개. 어디다 놓을까요?”
정말로 설상가상이었다.
***
김택준 팀장의 말마따나 오후 12시가 되어서야 무대 세팅이 끝났다. 급히 친 천막 아래로 모두가 달라붙어 상품이 젖지 않게끔 위에 비닐을 씌우고 제품 상자들을 꺼내 가득 쌓았다. 곧이어 테이블이 세팅되고 앞에 보급형과 고급형 인형이 놓였다.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행사 진행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에! 이제 곧 ㈜용실업과 스튜디오 꿀잼의 유명 크리에이터, ‘조은&해피 Story’의 안조은 님과 해피가 함께 만든 신세대, 새로운 반려견 인형 ‘해피의 싱글벙글 초코타임’ 홍보 행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홍보용 바람 인형이 비를 맞으며 무대 양쪽에서 구슬픈 몸짓으로 흐느적거렸다. 풍선으로 만든 대형 아치가 바람에 흔들리는 가운데, 떨어져 나간 풍선이 잿빛 하늘로 솟구쳤다.
“자아! 이제 재미있는 시연과 함께 안조은 님과 해피의 사인 및 기념 촬영이 있겠고요, 퀴즈쇼를 통해 10만 원, 20만 원 상당의 ‘해피의 싱글벙글 초코타임’ 제품을 선물로 드리고 있사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행사장으로 다들 모여주세요!”
진행자의 열띤 목소리가 광장으로 울려 퍼졌다.
단 한 명도 오가는 이가 없는 광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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